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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략 플래그가 세워졌다-66화 (66/160)

〈 66화 〉 In too Deep

* * *

갑작스레 눈이 떠졌다. 내 몸에 누군가 얼음물을 쏟아부은 듯한 느낌에 몸을 가득 채우던 잠기운이 순식간에 달아나버렸다.

황급히 몸을 일으키자 무언가 가슴 쪽에서 툭 하고 허벅지 위로 떨어지기에 놀란 눈으로 내려보자.

정령화를 한 아레아의 모습이 보였다. 장난을 치려 했던 걸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내 눈치를 보는 아레아의 모습이 귀여워.

양손을 앞으로 내밀자 손 위로 올라오기에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꼭 끌어안았다.

몽글몽글한 감촉이 상당히 기분이 좋았기에. 내 뺨을 아레아에게 비비다. 왜인지 모르게 땀에 젖은 내 모습에 조금 의아해할 차나.

나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김성현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어 노려보니 곧 시선을 내리깔았다.

김성현을 바라보자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김성현에게 느끼는 복잡한 감정은 이제는 하나하나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섞여버렸으니까.

세뇌당했을 때의 감정이 사라진 건 아니다. 마음 한편으로는 아직도 김성현을 사랑했던 기억이 남아 있고. 한 편으로는 김성현을 증오하며 멀리하는 지금의 내 감정도 뒤섞여.

사랑인지 집착인지 광기인지. 그 단어들을 섞는다 해도 이 감정에 완전한 이름을 붙이는 건 누구라도 어려울 것이다.

시선을 내려 내 가슴에 파묻힌 아레아를 양손으로 비비며 작게 속삭였다.

"아레아. 심심해?"

"심심해. 방에만 있잖아."

칭얼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머리 부분을 쓰다듬자 뭉클거리며 몸을 출렁거리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내일은 나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고기?"

"얼마든지 사줄게."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걸 키워보고 싶었는데. 귀여운 아레아는 심지어 반려동물들과 다르게 말까지 통한다. 물컹거리는 감촉에 소유욕이 조금씩 상승하는 중에.

의도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크게 헛기침을 해대는 김성현의 행동에 눈을 찌푸리며 바라보니.

할 말이 있다는 표정으로 내 시선을 받기에 입을 열었다.

"...왜?"

"내일 그럼 데이트야?"

"뭐?"

김성현의 맥락 없는 말에 당황스러웠다. 내가 왜 너랑 데이트해?

"맛있는 거 먹자며…?"

의아해하는 김성현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난 아레아랑 맛있는 거 먹는 거고. 너는 아카데미에 남아서 훈련해야지."

"뭐? 아니, 나도 데려가야지!"

뭘 당연하단 듯이 말하는 걸까. 당연히 나는 귀여운 아레아만 생각하고 말한 건데 그 범주에 자신을 포함하는 건 자의식 과잉이 아닐까.

"내가 왜."

나도 모르게 조금은 차가운 목소리가 내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말투에서 느껴지는 가시는 상대방을 찌르려는 의도가 명백하게 느껴졌다.

그 말을 들은 김성현의 얼굴도 얼어붙은 듯 딱딱하게 굳더니 시선을 내리깔아 말없이 휴대폰만 만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가슴 한편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짜증인 걸까 아니면 미안함일까. 그 어중간하게 느껴지는 감정들 사이에 나도 모르게 짜증이나. 아레아를 잡은 손을 조금 강하게 쥐니.

아레아가 아팠는지 몸을 출렁거리며 빠져나가려기에 황급히 손의 힘을 풀었다.

"미, 미안. 괜찮아?"

"응. 괜찮아! 근데 내일 주인도 데려가면 안 돼?"

"...왜?"

"그게 재밌을 것 같으니까!"

몸을 출렁거리며 애원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레아의 모습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럴까?"

고개라도 끄덕이고 싶은지 몸을 앞뒤로 출렁거리는 아레아의 행동에 웃으며 김성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레아가 이렇게 말하니 김성현과 한 번은 놀아줄까. 못 이기는 척 김성현에게 말을 건넸다.

"너도 내일 오든가."

"안 가."

"뭐?"

"안 간다고."

짜증이 난 표정으로 툭 말을 내뱉는 모습이 왜인지 모르게 내 평온한 마음속에 화를 불러일으켰다.

기껏 못 이기는 척 놀아주려 했더니. 저 태도는 뭐일까. 자신의 위치를 아직도 자각하지 못한 걸까. 괜스레 기분이 나빠져 아레아를 옆으로 두고 김성현에게 손짓했다.

"이리 와."

"...왜."

"이리 오라고!"

갑작스럽게 소리를 지른 탓에 목구멍이 아파져 왔다. 내가 화났다는 걸 알았는지 꺼림칙한 표정으로 침대 곁으로 다가온 김성현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자.

김성현은 비웃는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1M 안으로 다가가지 말라며."

"...내가 명령할 때는 상관없어."

미간을 좁히며 노려보자. 결국에는 바로 옆까지 다가오기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그대로 뺨을 세게 쳤다.

짜악­!

고개가 돌아간 김성현은 한동안 맞은 자세 그대로 있다가 화난 얼굴로 고개를 돌아봤다.

그 건방진 모습이 오히려 내 분노에 기름을 붙인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내 호의를 거절해 나를 화나게 했으면 거짓이라도 미안한 척을 해야 덜 맞을 텐데.

아직 김성현은 자신의 주제를 모르는 것 같다. 감히 나에게 대든다는 생각에 몸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났다.

나는 침대에서 벗어나 김성현을 체벌할 것이 있나 방안을 둘러보다. 마땅한 게 없어 실망할 때쯤. 기한신이 나를 체벌할 때 휴대폰 충전선을 사용한게 떠올라 침대 옆으로 가 충전선을 채찍처럼 뽑아 들었다.

"윗옷 벗고 무릎 꿇어."

그때까지 나를 화난 얼굴로 바라보는 김성현의 모습에 나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무릎 꿇어!!!"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김성현은 무릎을 꿇고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안에 회색 무지티를 입고 있었기에 그것도 벗으라고 명하자. 허리에 메긴기요르드를 착용한 게 눈에 들어왔다.

"그거 빼. 이제 압수야."

이를 가는 소리를 내며 거칠게 메긴기요르드를 벗어 옆으로 던지는 모습에 잡고 있던 충전선을 꽉 쥐었다.

"소리 내면 10대 추가야."

곧장 김성현의 뒤로 돌아가 등을 향해 충전선을 채찍처럼 내리치자. 김성현의 하얀 등에 붉은 자국이 남기 시작했다.

끝까지 반항할 생각인지 이를 악물고 참는 모습에. 등이 피로 범벅이 될 때까지 내려치다. 결국, 충전선이 버티다 못해 내 힘에 찢겨 반토막이 되었다.

구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오들오들 몸을 떠는 아레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내 안의 분노는 아직도 거세게 불타올라 김성현을 괴롭히고 싶다는 욕구만이 연기처럼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너, 뭐 잘못해서 맞는 줄은 알아?"

"...네 심술 때문이지."

그 건방진 말에 뒤통수를 강하게 때리자. 앞으로 쓰러질뻔한 김성현이 다시 몸의 중심을 잡고 화를 참는지 어깨를 떨었다.

"정신 차려 김성현. 분명히 말하는데. 내 앞에서 네 기분대로 행동했다가는 그 행동이 고쳐질 때까지 체벌 할 거야."

"..."

"대답해. 명령이야."

"...그래."

김성현을 지나쳐 서랍에서 포션을 꺼내 들었다. 뚜껑을 열어 김성현의 얼굴에 대고 대충 포션을 부어버렸다. 기한신처럼 체벌 이후 섬세하게 포션을 발라줄 정도로 착한 마음은 나에게 없었다.

"자리에 가서 앉아. 앞으로 내가 명하기 전까지 항상 저 자리에 앉아 있는 거야 알았어?"

"...응."

고개를 떨구고 있는 김성현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모르나. 분명 나에 대한 분노를 마음속 깊이 채워놓고 있을 것 같다.

불편한 마음에 김성현의 무릎을 발로 툭 쳐 자리로 돌아가라는 신호를 보낸 뒤. 침대 위로 올라가 휴대폰만 만졌다.

불편한 침묵이 방안을 가득 채웠지만. 우리 중 누구도 숨소리를 제외하고는 밤이 깊어지기 전까지 서로에게 말을 꺼내지 않았다.

왜 이렇게 김성현은 나를 짜증 나게 하는 걸까.

깊은 짜증이 담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

기숙사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내 어깨에 올라탄 비골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된 거야. 씨발. 발정 나게 해준다더니 미쳐서 때리기만 하잖아."

"그, 그게. 이제 막 박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여주인이 꿈이 깨어나 버렸어."

"갑자기?"

"정신력이 뛰어나면 가끔 그렇다고는 하는데 처음이야 나도! 꿈속에서 섹스해야 정기를 뺏고 주인에게 발정 나게 할 수 있는데…. 내 통제에서 순식간에 벗어나 버렸어."

씨발. 비골의 능력이 있다면 신아린을 무너트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앞으로가 고민이다. 신아린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소니아를 죽인 것으로 완전히 나를 가졌다고 생각하는지.

나를 사람이 아닌 무슨 물건처럼 대하며. 내 행동을 자신의 입맛대로 교정하고 싶어 했으니까.

"씨발 무슨 방법을 찾아봐. 이대로는 못 버텨."

신아린을 홧김에 덮쳤다가는 가족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 칠격이라는 그 단체를 신아린이 또 고용한다면. 가족의 안전은 S급 영웅이라도 보장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정 안된다면….

신아린을 어떻게서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죽이는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깊은 고민을 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

토요일은 약속대로 본 모습을 한 아레아와 초월역에서 맛있는 것들을 먹고 옷 몇 벌을 구매한 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김성현은 내 방에 갇혀 의자에 앉아 내가 돌아올 때까지 명령대로 기다렸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김밥 몇 개를 사서 던져줬다.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에 노려보자. 시선을 내리까는게 무척 만족스러웠다.

다음 날. 요즘 택배는 일요일에도 일을 하는지. 주문한 정조대가 담긴 상자가 내 방문 앞에 놓여있었다.

김성현에게 명해 상자를 가지고 들어오라 시켜. 그 안의 내용물을 꺼내 보라고 말하니.

상자의 테이프를 뜯어 안의 내용물을 꺼내던 김성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가 주문한 것이 무엇인지 눈치챈 것 같다. 나는 굳어버린 김성현을 옆으로 밀쳐내고 상자 안의 정조대를 꺼내 들었다.

서비스 상품인지 상자 바닥에 수갑도 들어있었다. 실용성 있는 제품이라 그런지. 수갑도 일반 성인용품이 아닌 진짜 같이 꽤 단단했기에 마음에 쏙 들었다.

마치 철로 만든 팬티처럼 자물쇠가 걸려 풀 수 없게 만들어진 정조대를 손가락으로 툭툭 쳐보자. 팅팅­거리는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착용해봐. 선물이야."

"너, 이걸…."

"얼른."

바지와 팬티를 벗고 마지못해 하며 정조대를 차고 있는 김성현을 보며. 상자 안의 사용설명서를 읽고 겉에 있는 잠금장치들을 걸은 뒤. 자물쇠를 채워 열쇠를 빼냈다.

열쇠를 김성현의 얼굴 앞에 흔들었다. 열쇠를 따라 눈동자가 움직이는 게 조금 우스웠다.

"앞으로 허락 없이 자위 금지. 자물쇠를 부수거나 명령 없이 정조대를 풀면 체벌할 거야."

"씻을 때는 어떻게 하라고. 학교에서는? 화장실은?"

"그건 네가 알아서 해."

"야!"

소리를 지르는 김성현의 모습에 내 마음의 악랄한 감정이 또다시 튀어나왔다.

"참고로 이번 체벌은 네가 당하는 게 아니라 성은이가 당할 거야."

"...뭐라고?"

성은이에게 손댈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 말을 하면 김성현이 화가 날 것 같다는 본능적인 느낌이 들어 일부러 얘기했다.

내 예상이 맞았는지. 화를 참지 못하고 턱에 힘이 들어가는 모습에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내 명령 잘 들면 되는걸. 왜 화를 내?"

모른 척 의아해하며 물어보자. 김성현은 화난 얼굴로 나를 노려보다. 정조대를 찬 채 바지를 입었다. 팬티처럼 생겨서 그런지 바지 위로 큰 티가 나지 않았다.

"오늘은 진희랑 있을 거니까. 가서 훈련 카드 쓰고 저녁 먹고 방에서 대기하고 있어."

대답 없이 몸을 돌려 방을 나가려는 김성현의 뒷머리를 거세게 붙잡았다.

"대답 안 해? 한 번만 더 이러면 아예 짐승 우리 안에 가둬버릴 거야."

"...알았어."

마지못해 대답하는 김성현의 머리카락을 놔주고 앞으로 밀자. 김성현은 한숨을 내쉬고 문을 열고 나갔다.

*

"...그래서 성현이한테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데?"

이제는 익숙하게 서로의 손목에 진실의 끈을 묶은 채 크림색의 침대 위로 누운 우리는 성현이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내 말을 안 듣잖아. 나는 솔직히 김성현이 짐승이라고 생각해."

"...짐승?"

"응. 교육받지 못한 짐승. 성욕에 못 이겨 자지만 세우는 짐승. 지금이라도 내가 철저하게 그 본능을 억제하는 교육을 시킬 거야."

내 말에 진희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걱정하듯 내 손을 꼭 잡았다.

"아린아. 성현이와 잘 지내는 게 너한테 무조건 좋을 거야. 나도 김성현이 싫지만은…. 지금 네 방법은 김성현의 반발심만 기를 뿐이야. 오히려 김성현이 능력을 각성하면 악순환이 될 거란 말이야."

그 말에 나는 욱하는 반발심이 튀어나왔다.

"네가 뭘 알아. 너는 그냥 생각 없이 김성현한테 몸을 대줬다가 배신당한 거면서."

진실의 끈의 효과는 상대방에게 사실만을 전할 수 있다는 것뿐이지만. 그 덕에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상처를 주지 않게 그어놓는 선이 사라지는 악효과도 있었다.

나는 필터링 되지 않은 내 설익은 생각을 반발심에 내뱉었고. 그 말에 충격을 받은건지 백진희는 차가운 얼굴로.

내 손을 잡고 있던 손을 떼고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너…. 마음대로 해."

화가 났는지. 손목의 끈을 풀려는 모습에 나는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왜 이렇게 감정적으로 행동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내 입은 멈출 수가 없었다.

"내 방식이 맞을까 봐. 걱정하는 건 아니고?"

"뭐?"

"내가 너처럼 몸을 대주지 않아도 김성현을 조종할 수 있을까 봐 걱정­"

내 목을 부러트릴 정도로 강한 힘이 내 목을 졸라. 이어지는 말을 막았다.

얼음처럼 차가운 하얀 손으로 내 목을 조르며 백진희는 내 몸 위로 올라와 분노에 찬 눈으로 나를 내려봤다.

"죽고 싶어?"

그 차가운 목소리에 나는. 아직도 진실의 끈이 백진희의 손목에 묶여있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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