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격의 차이
* * *
"도대체. 왜 그리 거추장스러운 등장을 고집하는 거야?"
은발의 여자가 투덜대며 철로 된 관의 문을 강하게 당기자. 긴 망토에 짙은 회색의 경 갑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한. 옥색의 우는듯한 표정의 가면을 쓴 남자가 관속에서 나오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멋있잖아."
"에휴."
은발의 여자는 예상처럼 확실히 미녀였다. 선명한 이목구비며 우유 같은 흰 피부에 은발의 머리카락은 상당한 매력을 가졌다.
"안녕?"
우는 가면을 쓴 남자가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기에 얼떨결에 손을 들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니아에게 몸을 돌려 입을 열었다.
"너도 안녕."
"넌 뭐니? 아니다. 귀찮으니까 그냥 죽어."
소니아가 손가락을 튕기자. 공격 신호라도 받은 것처럼 주변을 둘러싼 남자들이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미친 듯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거참. 인사성 없는 마인일세."
우는 가면을 쓴 남자 주변으로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하나 같이 특이한 외양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났다.
피에로 복장을 한 남자, 드워프같이 생긴 작은 근육 덩어리. 분홍 머리의 소심해 보이는 미녀, 절벽 가슴을 가진 녹색 머리의 미녀와.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 하나까지.
저렇게 한곳에 모여있으니, 마치 서커스단 같아 보였다.
가면을 쓴 남자가 분홍 머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알리아스. 부탁해."
"네, 넵!"
알리아스라 불린 분홍 머리 여자의 손에서 분홍색의 장미 두 송이가 나타나더니. 돌연, 터져나가며 꽃잎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던 남자들이 벚꽃처럼 떨어져 내리는 분홍 장미 꽃잎에 닿는 순간, 그대로 기절한 사람처럼 다리가 멈춰. 옆의 사람과 함께 바닥을 크게 굴렀다.
그걸 반복하니 우리에게 달려오는 남자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못했다.
노인이 앞으로 걸어 나와 손을 합장하자. 거대한 크기의 결계로 보이는 듯한 것이 이 주변 일대를 감싸기 시작했다.
"소란을 듣고 찾아올 사람은 없을 것이오."
"굳 잡. 오오누마."
바닥에 쓰러진 신아린에게 다가간 절벽 가슴을 가진 미녀는 흘러내린 내장을 붙잡고 있는 신아린에게 포션을 부어주었다.
일단 이걸로 신아린의 목숨은 위험하지 않겠지.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신아린이 죽는다면 분명 큰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 여파가 나에게 오는 건 불 보듯 뻔할 테고. 내 인생은 힘들어졌겠지. 누군지는 모르지만 같은 편인 것 같아 이 서커스단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차성에서 고용한 호위일까? 실력을 보아하니 돈값은 하는 것 같다.
"내 유혹을 단번에 끊어내다니. 대단하네?"
조금 짜증 난 듯한 목소리로 소니아가 말하자. 가면을 쓴 남자가 망토를 휘날리며 소니아의 앞으로 걸어갔다.
"이제 다시 소개해도 되나?"
"흥, 해봐. 들어줄게."
건들거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소니아는 어이없어하며 팔짱을 꼈다.
"우리는 칠격(?)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인 사냥 집단. 마인인 너를 토벌하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모였어. 일종의 보스레이드?"
"...칠격? 하, 주제도 모르는 인간집단이 있다더니 그게 너희였구나?"
"소문 좀 내줘. 요즘 마인이 뜸해서 몸이 찌뿌둥하거"
소니아는 어느새 손에 붉은색의 채찍을 들어 가면의 남자에게 휘둘렀다. 남자는 급히 몸을 숙이며 채찍을 피하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거참 인사성 없는 마인일세."
"거참 인사성 없는 마인일세. 찌찌뽕."
"알펜시아…. 일 할 때는 장난치지 말랬지."
피에로 복장을 한 남자가 말을 따라 하더니 가면 쓴 남자의 옆구리를 꼬집어 둘이 다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에게 알리아스라 불린 분홍 머리를 가진 여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 여자친구분한테 가 있으시겠어요…? 보기 거, 거슬리는데."
"아, 예…."
이런 게 갭모에 그런건가. 소심한 목소리로 싹수없이 말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 절벽 가슴의 미녀에게 안겨 심호흡을 하는 신아린에게 다가가자.
절벽 가슴을 가진 미녀는 나에게 맡긴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일으켜 싸우고 있는 쪽으로 합류했고. 신아린은 힘든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져 나를 올려다보았다.
"괜히 방해하지 말고 내 곁에나 있어. 너무 붙진 말고."
"...그래."
어째서인지 모르겠으나 하나 같이 주변 여자들의 개성이 넘치는 것 같다. 한숨을 내쉬며 신아린에게 시선을 떼어 소니아를 바라봤다.
공기를 찢으며 내려치는 채찍을 피하며 칠격이라 불린 집단은 가면을 쓴 남자의 말대로 소니아를 레이드하기 시작했다.
채찍을 피한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은발의 미녀는 소니아의 허벅지에 단검을 내리찍고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곧장 피에로 분장을 한 남자가 와이어같이 얇은 실선을 휘두르며 채찍을 막아냈다.
순식간에 오른팔이 잘린 채 피투성이가 된 소니아가 이를 갈더니.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태풍이라도 몰아치듯 거센 바람이 소니아의 주변에서 흘러나와 흙먼지가 날아와 얼굴을 가렸다.
"하, 너희들 모조리 잡아먹어야겠어."
먼지 속에서 형태만 보이는 소니아가 채찍을 땅바닥에 내리치자. 소니아 주변의 먼지가 걷혔다.
앞머리 양쪽에 손만 한 크기의 검은 뿔을 가진 채. 중요 부위만 가린 블랙의 음란한 드레스를 입은 소니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비골의 말대로 소니아는 서큐버스 퀸이 맞나 보다. 야겜에서나 볼 법한 음란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포션이라도 부었는지 몸에 나 있던 상처는 깔끔하게 사라져 흉터 하나 없는 구릿빛 피부를 자랑했고 잘려 나간 오른팔도 멀쩡해 보였다.
"오케이. 마인화 했으니 다들 물러서. 이제 내가 솔플하지."
옥색의 가면을 쓴 남자가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스트레칭을 하더니 검을 뽑으며 앞으로 나섰다.
"흐응, 너 동정이구나?"
가면을 쓴 남자를 놀리듯 소니아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가슴을 팔로 한곳으로 모았다.
"어떻게. 누나가 한 발 빼줄까?"
"아아, 나 고자야. 악마가 내 고추 떼어갔어."
"하, 장난이 심하네. 우리 꼬마."
"진짜인데. 안 믿어주니까 좀 서운한걸?"
가면을 쓴 남자는 손을 들어 자기 가면을 떼어내 옷 안으로 집어넣었다. 가면 아래 숨겨져 있던 얼굴이 드러나자. 나는 충격을 받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 가죽을 이어 붙인 듯한. 목의 피부색과 전혀 다른 흰 피부를 가진 한 여자의 얼굴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소니아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손가락으로 남자의 얼굴을 가리켰다.
"너, 너…. 그 얼굴."
"아, 아는 마인이야? 너 잡으려고 열심히 준비했어. 보스 레이드는 준비가 철저해야지."
"에르핀이 왜 연락이 안 되나 했더니…. 너였구나?"
분노한 소니아의 주변으로 마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내 주변의 공기가 따갑게 느껴질 정도로 강력한 마기.
남자에게서 나온 기세가 마기와 맞부딪히면서 순식간에 주변을 감싸던 마기가 중화되었다.
침을 삼키며 피를 흘린 신아린이 괜찮을까 걱정되어 고개를 돌리니. 뭘 보냐는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기에. 할 말이 없어 고개만 까딱거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소니아를 바라봤다.
붉은 채찍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남자를 향해 날아들었다. 마치 뱀처럼 날아오는 도중에 채찍이 스스로 움직여 기괴한 방향으로 틀어져 공격해왔지만.
남자는 능숙하게 채찍을 감면으로 쳐내고는 곧장, 소니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소니아도 곧장 채찍을 회수하며 맞서려 했지만. 남자는 일섬(一?)을 내질러 소니아의 목을 쳐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내 눈에는 찰나의 순간으로 보였다.
소니아를 죽인 건가 싶어. 주먹을 쥐었을 때. 남자의 머리가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소니아처럼 잘려 나갔다.
"뭐, 뭐야."
내 당황스러운 혼잣말을 들었는지. 누워있던 신아린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소니아의 권능이야. 자신이 받은 공격을 반사해."
씨발 그런 사기적인 능력이라니. 심지어 지금 소니아는 머리가 흉측한 모양으로 재생되더니 본래의 얼굴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흥, 멍청하긴. 내가 그렇게 쉽게 당할 줄 알았니? 일부러 맞아 준 거야."
소니아가 쓰러진 남자의 몸뚱이에 비웃는 말을 하더니. 우리 쪽을 바라봤다. 당장에라도 신아린 들고 도망쳐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쓰러져있던 남자의 몸이 몸을 일으켰다. 소니아도 그렇고 저 남자도 그렇고 목 없이 다들 잘도 움직이는 것 같다.
요즘 유행인가. 나도 목 없이 움직일 수 있는 거 아니냐 이거?
순식간에 소니아처럼 머리가 재생된 남자는 웃으며 다시 소니아에게 검을 내밀었다.
남자의 검 주변으로 불길한 검은 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검은 빛의 패기를 둘러싼 검의 위력에 멀리 있는 나조차 숨이 턱 막히는 압박감이 들어 뒷걸음을 쳤다.
검을 쥔 남자의 손이 움직였다.
거대한 패기를 둘러싼 검이 소니아를 향해 거대한 위풍을 내더니. 검기(??) 그 자체가 되어 소니아를 수백 조각으로 갈라버렸다.
그러자, 소니아에게 가했던 검기 그 자체가 그대로 복사되어. 남자는 소니아처럼 수백 가지로 갈라져 서로 고깃덩어리가 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역겨운 모습이었지만 남자가 보여준 강함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수백 가지로 조각난 고기들이 꿈틀거리며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더니 어느새 본래의 소니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남자도 그와 마찬가지로 조각난 몸이 맞춰지더니 나체의 모습으로 돌아와 땅에 떨어진 검을 주워 들었다.
소니아는 옷 자체가 피부라도 되는 것처럼 재생되었지만. 남자는 몸만 재생되어서 나체인 모양이었다.
아까 고자라고 한 말이 사실인지. 정말로 자지가 있어야 할 부분이 무언가에 뜯겨나간 것처럼 흉측한 흉터만 남아 있었다.
고추는 재생이 안 되는 걸까? 그 모습이 조금 안쓰러웠다. 오줌은 어떻게 쌀까 궁금했지만. 분위기가 매서웠기에 입을 다물었다.
"너, 그 능력을… 네가 어떻게…?"
소니아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 놀랐어? 네 권능의 능력을 확인해서 맞춤형으로 준비한 건데."
"어떻게 한낱 인간이. 마인의 권능을 사용하는 거야!!!"
분노한 소니아의 주변으로 폭풍 같은 마기의 기세가 치솟아 주변의 공간을 일그러트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자기 얼굴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거대한 살기를 내뿜으며 마찬가지로 주변의 공간을 일그러트리며 입을 열었다.
"자신의 받은 공격을 반사하며, [초회복]의 능력을 사용하는 사기적인 권능을 이기려면. [초회복]을 상회하는 [자가 구축]의 능력 정도는 써줘야 밸런스가 맞지 않겠어?"
남자는 씨익 웃으며 이 상황을 즐기는 듯. 소니아를 향해 검을 내밀며 말을 이어갔다.
"너를 죽이기 위해 에르핀이라는 마인을 잡아먹었어. 이 얼굴도 마음에 들지만 네 능력이 더 마음에 드니까. 이 얼굴은 버리고 네 얼굴로 갈아타려는데 순순히 얼굴 가죽을 줄래? 아니면, 끝없이 반복해서 서로를 죽일까? 결과는 정해져 있다는 거 너도 잘 알겠지만."
"웃기지 마!!!"
마치 검은 번개가 내려치듯 소니아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매서운 기세로 남자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콰앙!
거대한 충돌에 또다시 흙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그 뒤로 거대한 소리가 먼지 속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폭음이 연쇄적으로 울리더니 서로의 목을 쳐낸 두 몸뚱이가 눈에 들어왔다. 곧장 서로의 머리를 재생하더니 몸을 허공으로 뛰어 서로를 향해 거센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힘 두 개가 공중에서 정면충돌하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바닥이 떨려 오는 게 느껴졌다.
이게…. 마인과 영웅의 진짜 싸움인가? 격의 차이라는 게 느껴졌다. 메긴기요르드를 사용해 전력으로 내지른 주먹보다. 단순히 견제용으로 휘두른 소니아의 채찍의 위력이 몇 배는 강하게 느껴질 정도.
나와 같이 싸움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주변은. 노인이 주변에 작게 쳐놓은 결계 덕에 피해가 오지 않았지만. 결계 밖은 소니아와 남자의 충돌에 버터지 위압적인 풍경이었다.
공간 자체가 그대로 우그러진 듯한 모습에. 멀쩡한 곳이 없었다. 타일이 깔려 있던 바닥은 깨져나가고 뒤집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고. 소니아가 휘두른 채찍 자국이 움푹 파여.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대지는 균열이 났다.
콰아아앙!!!
폭음에 고개를 들자. 허공에서 공중제비하며 서로 거리를 벌린 소니아와 남자는. 마치 잘 짜인 연극이라도 하듯.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어 거대한 폭음과 함께 서로의 몸뚱이를 터트렸다.
공중에서 비산하며 떨어지는 고깃덩어리들이 결계에 부딪쳐 땅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다. 날아온 소니아의 눈동자가 결계에 부딪혀 터져나가는 걸 보고.
결국,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구석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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