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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략 플래그가 세워졌다-63화 (63/160)

〈 63화 〉 사냥

* * *

내 귀로 들려온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갑자기 소니아를 죽이는 걸 도와달라니?

맥락 없는 장난인 걸까. 아니면 내 위치에 대한 자각을 주기 위해 하는. 경고성 협박 같은 걸까.

흑요석같이 밝게 빛나는 검은 눈은. 나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내 반응을 관찰하는 듯 했다.

"왜…. 소니아를 죽이려는 건데?"

의문이 들어 신아린을 바라보며 물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신아린은 소니아를 싫어했다. 나와 섹스하려는 것을 막기도 하고.

소니아와 사적인 대화하지 말라는 약속까지 받아낼 정도로. 소니아를 무척이나 경계했으며 질투했다.

최근에는 인사조차 주고받지 않는 어색한 사이가 돼버렸는데. 신아린은 아직도 소니아를 연적으로 생각하며 경계하고 있는 걸까?

"이유가 있어. 그냥 시키는 거나 잘해."

"무슨 이유인지 말해봐. 들어야겠어."

정말로 소니아를 죽이는 것을 도와야 한다면. 이게 신아린의 또 다른 함정인지 확인해야 했다.

"절대복종한다고 방금 약속한 거 아닌가?"

평소 사랑스럽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신아린은 어디로 간 건지. 내 눈앞에는 당장에라도 주먹으로 쳐버리고 싶을 정도로 얄밉게 말하는 신아린만이 나를 마주했다.

"이유 말해주면 정말 복종할게. 부탁이야."

그 이유를 알아야 앞으로 어떻게 신아린을 대할지 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물러서지 않았다.

한참을 나를 말 없이 바라보던 신아린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너한테 접근하는 것도 걸레처럼 구는 것도."

"...그게 죽인다는 이유야?"

"응."

단호하게 대답하는 신아린의 모습에 머리가 아파졌다. 한서아를 때렸을 때부터 신아린이 조금씩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단순한 내 착각일거라고 안일하게 넘겼었는데.

이제는 내가 알던 신아린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아무튼 하라는 대로 해."

신아린은 거절은 듣지 않겠다는 듯 내게 다가와. 비웃는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에 결국, 시선을 내리깔 수밖에 없었다.

***

식당 뒤편 창고.

매일 밤. 초월 아카데미의 동정남들이 소니아와 섹스하기 위해 남들의 시선을 피해 오던 곳.

나는 그곳에서 다리를 떨며. 마령화중인 비골과 함께 소니아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주인. 여주인 조금 분위기가 바뀐 것 같아. 무서워…."

평생 눈칫밥 먹던 하급 마족답게 신아린의 변했다는 것을 바로 눈치챘나 보다.

비골의 말에 나는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좀 잘하지, 그랬어."

"아가리 해라."

심란한 주인의 눈치는 안 보는 걸까. 짜증이나 눈을 좁히며 녀석을 바라보자.

오히려 입술을 부분을 삐쭉 내밀고 몸을 출렁거렸다.

"괜히 나도 눈치 보이고. 에이씨."

투덜거리는 비골을 때리고 싶지만 역시나 주먹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무튼. 잘해야 해."

"알았어. 난 시선만 끌면 되잖아."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접이식 칼의 존재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정말로 신아린은 내가 소니아를 찌르길 원하고 있다.

비유나 장난, 협박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소니아를 죽이기 위한 계획을 짜고 있었다.

나와 사귀기 전 백진희와 웃으면서 대화하던 밝은 모습의 신아린은 어디로 간 걸까.

지금의 흑화 신아린을 만든 건 내가 잘 대해주지 못해서일까?

가슴이 답답했다. 누군가를 칼로 찌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실습에서야 훈련용 검이나 칼로 몇 번 대련 같은걸 한 적이 있어도. 주머니에 들어 있는 칼은 진짜다.

찌르면 피가 나고 죽을 수 있는 진짜 칼.

조금 겁이 났지만.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다.

내 가족을 인질로 삼은 것도 있지만. 신아린이라는 황금 동아줄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이번 테스트만 통과하면 그동안의 잘못은 덮어주겠다던 신아린의 말이 내게 용기를 줬다.

그날 밤.

창고에서 소니아와 룸메이트가 섹스하는 것을 본 날.

내가 느꼈던 알 수 없는 분노를 다시금 떠올렸다. 룸메이트에게 뒤치기 자세를 취하던 그 모습.

그런 걸레 하나 죽는 건 차성에서 잘 처리해주지 않을까.

그렇게 스스로 자위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멀리서 신발을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자. 교복에 컨버스화를 신은 소니아가 멀리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언제든지 칼을 뺄 준비를 하고 비골에게 신호를 보냈다.

신호를 받은 비골이 소니아에게 굴러가려다. 돌연, 행동을 멈추고 우다닷 하는 소음을 내며.

갑자기 내 품 안으로 달려들었다.

무언가 무서운 거라도 본 마족처럼. 몸 전체를 오들오들 떠는 모습이 낯설었다.

"주, 주인! 저, 저 여자 마인이다!"

"뭐?"

비골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누가 마인이라고?

"지금 다가오는 여자!! 서큐버스 퀸의 종복이라고! 당장 도망쳐야 해!"

"그게 뭔…."

소니아가 서큐버스 퀸의 종복이라고? 말도 안 돼. 이곳은 초월 아카데미. 마수와 마인과 싸우는 영웅들을 육성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 서큐버스 퀸의 종복인 마인이. 교수와 경비들의 눈을 피해 학생으로 위장해 있다는 게 가능할까?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어느새 다가온 소니아는 전과 같이 금발태닝빗치의 모습을 한 채 가슴을 출렁거리며 미소 지었다.

"언제 올까 궁금했어. 성현아."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조금 찐득한 체취를 풍기는 소니아의 모습에 서큐버스가 맞을지도.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서큐버스라면 아카데미의 동정남들에게 왜 그리 집착했는지 이해가 됐으니까.

나에게 동정의 냄새니 뭐니 하며 펠라치오를 해주던 게 떠올랐다.

씨발. 진짜 소니아는 나를 좋아한 게 아니라 단순히 동정이라는 이유로 내게 몸을 대주려고 했다.

분노를 잠재우고 눈앞의 소니아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신아린이 소니아가 마인인지 알고 죽이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마인이라면 일이 커진다. 이딴 접이식 칼로 마인을 죽일 수 있을 리가 없다.

비록 소니아의 목을 직접 치겠다며 신아린이 숨어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일 때의 방법이었다.

복잡한 머릿속에 어찌할 줄 모르고 소니아를 바라보자.

소니아는 내 긴장을 동정을 떼는 것 때문이라고 착각했는지. 예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나를 안아 들었다.

다행인 점이라면 눈치 빠른 비골이 냉큼 내 등으로 돌아가 숨었기에 소니아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출렁거리는 노브라의 가슴이 블라우스 아래에서 그 부드러운 감촉을 자랑했다. 딱딱하게 선 유두를 내게 티라도 내려는지.

몸을 흔들어 내 몸에 스치는 모습에 당장에라도 섹스를 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어디선가 보고 있을 신아린이 떠올라. 정신을 차리고 소니아에게 속삭였다.

씨발 어떻게든 되겠지. 정말로 마인이라면 소리를 질러 아카데미의 경비원들을 불러오면 된다.

"빨리 섹스하고 싶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소니아를 바라보며 말하자. 푸훗­ 하는 소리를 내며 소니아가 밀착한 몸을 떼었다.

"응. 알았어. 나도 얼른 하고 싶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뒤를 도는 소니아의 모습에 기다렸다는 듯 주머니의 칼을 꺼내 들었다.

씨발. 이게 맞는 걸까.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오르자. 내 머리는 오래간만에 과열되기 시작하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단순한 생각만 남겨 두고 다른 생각은 모조리 버렸다.

`그냥 찌르자`

그 결론에 도달한 나는 창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소니아의 뒤로 다가가 칼을 찔러­

팅­

씨발. 등을 찌르려 내밀던 칼이 어떻게 된 건지 그대로 반으로 두동강이 나버렸다.

당황한 나머지 칼을 숨길 생각도 못 하고 바라만 보고 있자. 소니아가 몸을 돌려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날 공격하는 거야 성현아?"

"아니, 그게...씨발."

반밖에 남지 않은 칼을 소니아에게 다시 휘둘렀지만. 그대로 소니아에게 손목이 붙잡혀 칼을 땅에 떨궜다.

"김성현. 이제 보니. 나쁜 아이구나?"

처음 보는 소니아의 서늘한 시선. 멍청하게 느껴질 정도로 매일 헤실거리며 교실을 돌아다니던 소니아의 모습이 아닌.

적을 보는 듯한 매서운 눈빛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때.

창고의 뒤에서 어디서 본 듯한 붉은 빛이 터져 나왔다. 어둠을 밝히는 갑작스러운 불빛에 나와 소니아가 잠시 눈을 감았을 때.

신아린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뒤 얼굴에서 느껴지는 축축하면서 끈적한 액체의 느낌에 눈을 뜨자.

신아린의 검에 의해. 머리가 날아간 소니아의 몸이 보였다.

"으악! 씨발!!"

소니아에게 잡혀있던 손을 풀자. 머리가 날아간 몸뚱이가 툭­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바닥을 뒹구는 소니아의 머리를 보고 구역질이 올라와 시선을 돌리고 연신 헛구역질을 하자.

신아린의 짜증 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 김성현."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려다. 소니아의 눈뜬 머리통과 시선을 마주칠까봐. 무서워 눈을 감았다.

정말로 소니아를 죽이다니. 미친년.

신아린은 진짜 미친년이다.

정말로 나 때문에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얀데레성향이 눈을 뜬 걸까.

잘못하다가는 진짜로 신아린때문에. 가족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흘렀다.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으려 규칙적으로 숨을 내쉬자. 신아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 오늘처럼만 하면 돼. 내가 시키는 데로만 하면은 너희 가족이랑 너는 평생 돈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씨발. 비록 내가 데릴사위를 꿈꿔왔지만 언제 목에 칼이 들어올지 모를 연애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일은 저질러졌고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신아린의 비위를 맞춰주는 게 나한테 이득일 거라는 생각에 몸을 돌려 신아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는데.

"신아­"

장난이라도 치려 했는지 소니아의 잘린 머리통에 발을 올려놓고 있던 신아린의 배 앞으로. 신아린의 피에 젖은 손이 튀어나와 내장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잠시 몸이 굳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아 멍청히 서 있자. 신아린이 피를 토해내며 고통스러워했다.

"끄으윽­"

박힌 손이 빠져나가자 흘러나오는 내장을 붙잡으며 신아린이 쓰러졌다. 쓰러진 신아린의 뒤로 목이 없는 소니아의 몸뚱이가 신아린의 피로 붉게 물든 오른팔을 허공에 털고 있었다.

그 비현실적인 모습에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나는. 머리 없는 몸뚱이가 혼자 움직여 잘린 머리를 자기 몸에 붙이는 장면을 보고 결국, 구역질을 참지 못했다.

"우웨엑­!"

오늘 먹은 것들을 모조리 내뱉자. 정신이 들어 고개를 들어 앞을 확인하니. 잘린 머리를 붙인 소니아가 눈을 뜨고 해괴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아린이 날 죽이라고 했구나?"

피에 물든 교복으로 내게 다가오기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자. 소니아는 두려운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듯 낮게 말했다.

"가만히 있어. 맛있게 먹어줄게. 성현아."

그 괴물 같은 시선에 이성이 마비되어 두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이성은 당장 도망치라고 소리쳤지만. 육체는 죽음이라는 공포에 몸을 떨기만 했다.

신아린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오른팔을 내게 내미는 모습에 이빨까지 딱딱­ 소리를 내며 떨고 있을 때.

돌연, 나를 붙잡으려던 소니아의 팔이 누군가 검이라도 내려친 것처럼 잘려 나갔다.

"흐으. 오늘은 방해가 많네?"

내 앞을 막으며. 언제 나타난 건지 모를 은발의 여자가 양손에 보라색의 단검을 역수로 쥔 채 소니아를 막아섰다.

이 여자가 소니아의 팔을 자른 건가?

"소니아라고 했나? 머리를 붙였다 떼었다는 게 확실히. 역겨운 마인이 맞나보네."

"역겹다라…. 후. 오늘은 자기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애들이 너무 많네."

소니아가 바닥에 쓰러진 신아린의 발목을 밟아 부러트렸다.

뚜둑­

"끄으윽! 흐에윽…."

고통이 심한지. 연신 신음을 내는 신아린의 모습에 저러다 죽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마침 여자도 둘이겠다. 내 아이들의 먹이로 삼아야겠어."

그렇게 말한 소니아가 알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리더니.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성현이는 내가 맛있게 먹어줄게."

씨발. 이년이고 저년이고 미친년들만 있는 세계인가.

이 앞의 여자라면 어떻게든 소니아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리려 했지만.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남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는 나에게 소니아와 잠을 잤다고 자랑하던 룸메이트들도 있었다.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남자가 흐리멍덩한 표정을 지으며. 마치 내 주변을 포위라도 하듯 원을 그리며 좁혀왔다.

마치 좀비처럼 다가오는 그 모습에 불안한 마음에 내 앞을 지키고 있는 은발의 여자에게 소리 질렀다.

"씨, 씨발. 어떻게 좀 해봐!"

"...조용히 있어."

소니아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어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 정도의 목소리라면 조금은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발.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조금 자괴감이 들었다.

슈우욱­

무언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에 무심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올리자. 거대한 철로 된 관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큰 흙먼지가 일어났다.

흙먼지가 걷히자. 미사일이라도 된 것처럼 땅에 박혀있던 관이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조금 열리다가. 쿵쿵 거리며 노크를 하기 시작했다.

"야! 너무 깊숙이 박혔어. 도와줘 봐 안 열려!"

관속에서 들린 어이없는 말에 맥이 탁하고 풀린 느낌이 들었다.

뭐야 씨발. 어떻게 돼가는 전개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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