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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략 플래그가 세워졌다-62화 (62/160)

〈 62화 〉 관계의 정립

* * *

"김성현의 팔다리만 자르고 각성시키면?"

가축처럼 팔다리를 자르고 먹을 것만 챙겨주면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안 돼. 김성현이 재앙을 막을 수가 없잖아. 결국, 입학식으로 돌아가. 나도 해본 거라니까 아린아."

"김성현을 세뇌하면? 너 그거 잘하잖아."

"필연성 때문에 어떻게서든 능력 각성한다니까? 그리고 각성한 이후에는 세뇌가 안 통해. 결국, 일어날 일은 무조건 일어나."

백진희의 대답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떻게든 방법이 없을까?

"그럼 조민성을 이용하면? 조민성도 세잖아. 지금이라도 조민성에게 유물이랑 영약들을 몰아주면은…."

내 말에 한심한 소리를 들은 듯 진희는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너도 알다시피 조민성은 김성현보다 더 미친놈이야. 그 녀석은 단순히 재미를 위해 오히려 재앙을 깨울 미친놈이라고. 오히려 김성현보다 더 위험해. 절대 조민성과 엮이지 마. 알았지?"

그 말에 알겠다고 대답하려 했지만,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리자. 진희가 미간을 좁히며 가늘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 설마…. 조민성에게 영또플에 관한 얘기를 한 건 아니지?"

"그…. 다음 주에 있을 지하철 테러 사건에 대해 말했어…."

기어가는 목소리로 시선을 피하며 말하자. 백진희가 내 손등을 때리며 소리쳤다.

"그런 미친 짓을 도대체 왜 한 거야!"

"김성현이 없으니까! 누군가는 테러를 막아야 할 거 아냐. 그럼 마인이 테러해서 사람들이 다치게 놔둘까?"

내 말에 침대에 일어나 이마를 붙잡고 무어라 혼자 중얼거리던 백진희가 내게 다가와 무릎을 꿇으며 시선을 마주했다.

"잘 들어. 너는 지금 큰 위험 2개에 빠져있어."

"2개?"

나는 1개도 생각이 안 나는데. 2개나 되다니 도대체 뭘까.

"후반부에 나올 칠격과 접촉한 것과 조민성에게 영또플에대해 말한 것."

진희의 말에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생각해보니 칠격은 마인을 멸(?)하기 위한 집단. 그리고 나는 사람을 주기적으로 잡아먹는 마족이었고.

그 사실을 칠격이 안다면 필시 나를 죽이려 들것이다.

나는 멍청하게도 늑대들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 도와달라고 소리친 양이 된 것이다.

내가 얼마나 멍청한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되자 머릿속이 복잡해져 어지러워졌다. 그대로 상체를 기울여 지친 몸을 침대에 누웠다.

"좆됐네..."

짙은 한숨을 내쉬자. 진희가 내 옆에 마주 누워 속삭였다.

"괜찮아. 내가 해결해줄게. 일단 칠격한테 접근한 이유랑 얘기한 것들 내게 말해줘. 그래야 방법을 생각하지."

진희의 말에 나는 칠격과 만난 것과 파툴가의 마법 장갑을 대가로 김성현을 감시하라는 명을 내린 걸 고백했다.

내 말을 들은 백진희는 기가 차다는 듯 허리에 손을 올리고 나를 노려보았다.

"너…. 정말 미쳤구나. 파툴가의 마법 장갑이 얼마나 좋은 유물인지 몰라?"

"방법이 없었잖아. 그리고 그때 나는 너한테 세뇌당해서 김성현을 지킬 방법을 찾는다는 생각밖에 없었어. 따지고 보면 네 잘못이야."

내 변명에 화가 났는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는 백진희의 모습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파툴가의 마법 장갑은 나주려고 했던 거야?"

궁금했다. 정말로 운이 좋아서 발견한 건지. 진희가 일부러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 건지.

"맞아. 김성현에게는 필요 없지만. 너라면은 잘 사용할 것 같았으니까. 내 잘못된 판단이었네."

실망한듯 말하는 백진희의 모습에 화가나 몸을 일으켰다.

지금 진실의 끈을 묶고 있는 상태에서 말하는 건 모두 진심으로 하는 말.

정말로 백진희는 나한테 실망한 것이다.

"미안하다고! 세뇌하지 말든가! 애초에 날 멍청이로 만든 건 너야!"

내 말에 백진희도 짜증 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멍청아 잘 들어. 최대한 칠격과 멀어져야 해. 당장 오늘 밤 칠격에 연락해서 소니아를 죽여."

"오늘 밤에? 조금 피곤한데…."

조금 당황스러웠다. 조금 피곤해서 기숙사로 돌아가서 쉬려 했었는데.

"바보야! 너는 지금 네 앞에 놓인 위험이 안 보여? 당장에라도 칠격과 멀어질 생각을 해야지. 지금도 네가 차성의 후계자라는 이유로 관심을 두고 있는 데. 처리할 거면 당장 오늘 밤이어야 해."

"알았어…."

백진희의 말이 맞다. 칠격은 마인사냥에 있어서는 S급보다 더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집단. 그 집단과 내가 싸운다면 백진희의 도움을 받아도 내가 죽을 수 있다.

당장에라도 목 밑으로 다가온 칼을 소니아에게 휘두른 뒤. 멀리 내던져야했다. 잘 드는 칼이라고 계속 쥐고 있다가는 언젠가는 내가 그 칼에 내가 베인다.

"김성현을 이용해서 소니아를 유인해. 동정인 김성현이라면 소니아는 별 의심 없이 나올 테고. 그때를 노려 칠격이 소니아를 제거하면 돼. 파툴가의 마법 장갑은 아깝지만…. 깔끔하게 넘겨주고 그다음부터는 연락하지 마."

"알았어. 조민성은 어떻게 해? 그놈은 나보고 파트너라면서 계속 영또플에 대한 정보를 달라고 할 텐데."

내 물음에 진희는 입술을 깨물며 잠시 고민하다. 옅은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조민성은…. 어쩔 수 없어. 그건 내가 최대한 막아볼 테니까. 일단 오늘처럼 성현이 죽이려 들지 말고 그냥 평소처럼만 지내. 거리 두고 싶으면 그러든가. 잘못해서 김성현이 죽으면 우리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김성현과 키스하고 사귀는 걸 반복하고 싶진 않지?"

"씨발…. 알았어. 고마워 진희야."

백진희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와 나를 따뜻하게 끌어안았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거니까. 조금만 참아. 반드시 행복하게 해줄게."

"...김성현의 육변기가 되는 게 내 정해진 운명이라며."

괜히 그 마음씨에 미안해져 툴툴대자. 내 등을 꼬집는 손길에 결국, 진희와 서로 등을 꼬집으며 싸웠다.

***

백진희와 김성현에 대해 조금 더 얘기를 나눈 뒤. 내 기숙사 방으로 들어와 소니아를 죽이기 위해 곧장. 알펜시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고객님.]

"소니아 죽일 준비는 됐나요?"

[그 소니아라는 여자가 마인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으니. 확실한 증거를 잡기 전까지는….]

"증거 있어요. 확실한 증거니까. 오늘 밤. 소니아를 죽일 준비나 해주세요."

[뭐, 그렇게까지 얘기하시니. 일단은 알겠습니다.]

칠격에게 연락은 했으니 이제 김성현만 설득해 소니아를 유인하면 된다.

김성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음이 연결된 지 얼마 안 가 곧장 전화가 끊겼다.

미친놈이 설마 내 번호를 차단한 건가. 어이가 없어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김성현을 때리지 말걸. 후회가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시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어머니. 저 신아린이에요."

[어머~! 아린아~ 진작 전화하지, 그랬어. 남편에게 들었는데 차성의 후계자라며!!]

"네에~ 어머니 죄송한데. 성현이가 연락이 안 돼서 그런데. 혹시 빨리 연락 좀 달라고 전해주실 수 있으세요? 너무 급한 일이라…."

[당연하지! 성현이 또 게임에 정신 팔려서. 연락 안 하고 있을 거야. 내가 바로 전화하라고 해줄게!]

"감사합니다. 어머니. 다음에 성현이랑 같이 이사한 곳으로 한 번 찾아뵐게요."

[그래. 성현이가 잘못하면 언제든지 전화해줘 혼내줄 테니까.]

"네. 들어가세요. 어머니. 감사합니다."

통화를 끊고 휴대폰을 침대 위에 대충 던져놓고 그 옆에 누웠다.

김성현의 육변기가 될 운명이라는 백진희의 말이 떠올라 침대를 발뒤꿈치로 퍽퍽 찼다.

진희는 나와 김성현을 사랑으로 엮어 김성현이 나를 육변기가 아닌 연인으로서 서로를 아껴주는 관계가 되는 것이 제일 좋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김성현이 나를 공략할 엄두도 못 내게 공포를 심어줘. 딱 한 번만 김성현과 섹스해 능력 각성만 시키고 그다음부터는 절대 섹스해주지 않을 계획이다.

아니 아예 김성현이 나와 섹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못하게 철저하게 교육할 계획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대충 침대 위로 던져놓은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전화를 받은 걸까.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성현이♥라는 글자에. 미간을 좁히며 나중에 이름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보세요."

[이 미친년아!]

김성현의 과격한 목소리에 코웃음이 나왔다.

"욕 한 번만 더하면 성은이 팔도 부러트린다."

내 경고에 휴대폰 너머로 씩씩대는 숨소리만 들려왔다. 다행히 김성현은 가족은 아끼는 것 같다.

"만나서 얘기할 거니까. 내가 있는 기숙사로 와."

본래라면 이성 간의 기숙사 출입은 불가능하지만. 내가 있는 곳은 1인 기숙사 돈 많은 남자 여자들이 사는 곳이라.

출입 허가만 받으면 이성도 출입 가능하다. 당연히 김성현은 출입 허가를 해놨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났다는 것을 티나라도 내려는지 발소리를 의도적으로 쿵쿵대며 누군가 거칠게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화난 기색이 역력한 김성현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보건실에서 치료받았는지. 한쪽 팔에 반깁스를 하는 모습이었다.

"들어와."

내 말에 방 안으로 들어온 김성현은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앉아. 서 있지 말고."

"...나한테 할 말 없어?"

"할 말 있으니까 앉으라고."

짜증을 내듯 의자를 거칠게 당긴 뒤. 앉는 모습에 코웃음을 치며 맞은편 의자에 앉아 김성현을 노려봤다.

"김성현. 앞으로 내 앞에서 네 감정대로 행동하면 후회하게 될 거야."

"뭐?"

"처신 잘하라고. 그동안 내가 너무 풀어준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야!"

"아, 소리도 지르지 말고. 시끄러우니까."

내 말에 화가 났는지 멋대로 의자에 일어나 나가려 하기에 뒤에 대고 소리쳤다.

"자리에 앉아! 네 부모님 거지꼴로 만들어줄까?"

"너…. 진짜."

이를 갈며 뒤도는 김성현의 모습에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라고. 두 번은 경고 안 해."

결국, 싫은 표정을 얼굴에 감추지 못한 김성현이 의자에 마지못해 하며 앉았다.

나는 그런 김성현을 바라보며 경고의 말을 했다.

"잘 들어. 나는 네 행동이 선을 넘었다고 생각해. 한서아를 강간하려 한 것도. 백진희를 공격하려다 나를 때린 것도. 그래놓고 도망친 것도."

"그건 용서해 준다고­"

"거기에 오늘 진희와 얘기한다는 나한테 욕한 것까지."

김성현의 말을 끊으며 검지를 들어 김성현의 눈앞에 갖다 대자. 움찔하며 목을 뒤로 뺐다.

"너를 사랑하니까. 이제부터 제대로 된 나에게 어울리는 남자친구로 만들어야겠어."

거짓말은 이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할 수 있다. 죄책감과 갈증에 해방된 나는. 원래의 이기적이며 효율충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는 가방에서 노트와 필기도구를 꺼내와 김성현의 앞에 놔두었다.

"받아 적어."

"뭐?"

짜악­!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김성현의 뺨을 강하게 쳤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손바닥이 얼얼한 찰진 손맛.

군대에서 후임을 갈구던 때가 떠올랐다. 그 때는 참 재밌었는데.

"표정 관리해. 자, 받아 적어."

경고하듯 손을 올리자. 김성현은 목을 움츠리며 볼펜을 잡았다.

"나 김성현은 신아린의 남자친구로서 약속합니다."

삐뚤삐뚤 초등학생 글씨로 꾹꾹 눌러 쓰는 모습이 참으로 한심해 보였다.

"첫 번째. 신아린에게 말을 먼저 걸지 않는다."

"뭐? 야 이건 너­"

짜악­!

불평을 내뱉는 얼굴에 또다시 뺨을 치니. 더는 화를 못 참겠는지 나를 죽일 듯 노려보기에 웃으면서 속삭였다.

"네 가족. 다 내 인질이야. 하라는 대로 안 하면 후회하는 건 너야."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보던 김성현은 내 비웃음에 반항하기를 포기한 듯. 고개를 떨궜다.

"나는 시키는 것만 잘하면은 터치 안 해. 내가 널 싫어해서 이런 걸 시키겠어? 다 너 좋으라고 하는 거잖아."

부들부들 팔을 떠는 모습이 건방져. 김성현의 머리칼을 붙잡고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했다.

"야, 또 치겠다?"

나를 노려보는 김성현의 시골 똥강아지 같은 눈을 보며 건들거리며 묻자. 김성현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두 번째. 신아린이 허락하지 않는 이상 1M 안으로 접근하지 않겠습니다. 항상 3M 안 시야에 보이는 곳에 있겠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다 눈치를 보며 다시 글을 쓰는 모습이 딱 폐급 신병 같았다.

"세 번째. 신아린의 말에 절대복종하며. 어길 때 체벌을 받겠습니다."

"네 번째. 다른 여자들과 대화하지 않으며. 접근할 생각도 하지 않겠습니다."

김성현이 볼펜을 놓자. 나는 공책을 김성현에게 들게 한 뒤.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네가 쓴 거니까 약속 지켜야 해. 알았어?"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김성현에게 비웃음을 짓고 말했다.

"이제 그런 거 안 통해. 자, 내 약속 잘 지키는지 확인해봐야겠어."

나는 김성현이 들고 있는 공책을 뺏어 서랍 안에 넣어놓고 김성현을 돌아봤다.

"소니아 죽이는 거 네가 도와줘야겠어."

"뭐…?"

평소보다 두 배는 커진 김성현의 눈에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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