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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략 플래그가 세워졌다-43화 (43/160)

〈 43화 〉 맹세

* * *

"이거 효과가 뭔데?"

"광폭화. 메긴기요르드와 사용하면 한 시간 정도는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강한 힘을 얻을 거야."

상당히 좋은 효과였지만. 고환이라는 점이 조금 그랬다.

"...그냥 쌩으로 이대로 먹는 거야?"

"아린이 구하고 싶은 거 아니야?"

피투성이로 몸을 반쯤 일으켜 빈정거리는 모습에.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고 생각하며 욕을 뱉었다.

"아오. 씨발 진짜."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고 크기가 커다래서 어쩔 수 없이 미노타우로스의 고환을 반 정도 씹어 삼켰다.

상당히 표현하기 좆같은 맛이라. 미간이 좁혀졌지만. 아린이를 위해 올라오는 구토감을 참으며 억지로 씹어 삼켰다.

"그냥 가서 줘패면 되는 거지?"

플라시보인가 벌써 힘이 넘치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들어가 봐…. 난 좀 쉬어야겠으니까."

백진희를 걱정하던 김성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기한신의 개인 연구실 문을 열었다.

김성현이 연구실 문을 열자 들려오는 신아린의 고통에 찬 비명에 김성현은 분노에 찬 얼굴로 황급히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모습을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지켜보던 백진희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조금 전 힘없어 보이던 모습은 연기였다는 듯 몸을 일으켜.

소란스러운 연구실 문을 닫았다. 그러자. 복도에는 적막이 짙게 깔렸다.

"하나는 됐고…."

흰 머리카락에서 붉은 피를 뚝뚝 흘리며 복도를 걷자. 백진희의 몸에 묻어 있던 피들이 복도를 향해 흩날리기 시작했다.

흰 페인트 벽 위로. 흩날려 퍼진 붉은 피가 흩뿌려지자. 복도 전체가 피에 젖은것처럼 붉게 변했다.

잠시 자리에서. 멈춰서 어딘가를 노려보던 백진희는 자신 옆의 벽을 향해 곧장 손을 내질렀다.

아무것도 없는 벽에 누군가의 목을 졸라 들어 올리는 시늉을 하며 손에 힘을 주자.

손끝이 얼어가며 주변의 온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백진희의 손끝에 보이지 않던 형체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크윽­"

"찾았네? 쥐새끼."

"너, 너­"

"안녕? 일리아."

은발의 머리카락 색을 한 단발의 미녀. 마인 사냥집단 칠격의 1번이자. 신살(??)법을 익힌 암살자.

신아린이 칠격에 맡긴 김성현의 안전을 위한 호위 임무를 담당하고 있던.

일리아 크리스토 카라에프.

"신아린이 계획에 없는 헛짓을 해서. 널 찾느라 조금 짜증 났어."

"너…. 어떻게 내 본명을…. 크으읏!­"

일리아의 의문 섞인 말을 무시하며. 백진희의 희고 긴 손가락 하나가 일리아의 관자놀이로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고통에 울부짖는 일라이를 보며 백진희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죽이지는 않을게."

백진희가 서늘한 백안을 일리아의 텅 비어가는 은빛 눈에 마주하며 작게 속삭였다.

"너도 중요한 등장인물이니까."

***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 정신이 몽롱하다. 나를 죽이려는지. 목을 한참이나 조르는 기한신의 이성을 잃은 모습에 시야가 점점 뿌옇게 변해갔다.

이게 내 마지막일까. 뇌에서 산소가 부족하다고 연신 경고를 울려댔지만. 더는 팔을 들어 저항할 힘도 없었다.

사라져 가는 의식 속에서 무언가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 이름을 부르는 성현이의 외침.

죽기 직전 뇌에서 보내는 환청일까.

고마웠다.

끝없는 고통 속에서.

그래도 마지막에는 성현이의 목소리를 듣다니.

성현이의 모습을 떠올리고 싶었지만….

산소가 부족한 뇌가 그 정도까지 기능은 하지 못하나 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죽어가고 있음을 받아 들일 때.

내 목을 짓누르던 손길이 사라졌다. 본능적으로 살고자 하는 육체의 반사신경이 급히 숨을 크게 들이쉬다 사레가 걸려 헛기침을 했다.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숨을 들이 쉴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식도를 타고 피가 역류해 질식할 것 같아 몸을 돌려 카펫 위로 피를 토해냈다.

"아린아…. 괜찮아?"

정신없이 피를 토해내고 고통에 이성이 마비 될 때쯤. 그 걱정하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이 환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힘들게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그토록 나를 구해주기를 바라던 성현이가 기한신의 목을 붙잡은 채 있었다.

"성, 성현이…?"

꿈일까? 이미 육체는 죽고 뇌에서 죽기 직전에 간절히 바라던 것을 환각으로 보여준 게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들었다.

성대가 갈라져 입 밖으로 나온 것은 내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성대 안에 모래라도 부은 것처럼 목이 아파져 왔지만.

그 고통에 지금이 환각이 아닌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로 구해주러 왔구나 성현아.

눈물이 흐를 정도로 기뻤다.

"기다려 내가­"

무어라 말을 하던 성현이의 몸이 갑자기 뒤로 한참을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그리고 쓰러진 김성현의 위로 달려든 기한신이 성현이의 얼굴을 짓밟기 시작했다.

안돼 그러지 마. 성현이를 아프게 하지 마!

내 목을 조르는 것도 막지 못할 정도로 힘이 빠져 있었는데. 어디서 힘이 솟아났는지. 나는 몸을 꿈틀대며 일어나 기한신에게 달려들었다.

"하…. 지마!"

내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챈 기한신의 주먹이 내 얼굴로 날아왔다. 맞을 것을 예상했기에 잠시 머리가 멍해졌지만, 급히 정신을 차리고 성현이를 보호하기 위해 성현이의 위로 쓰러졌다.

등을 내려찍는 발길질보다도. 코피가 터진 것인지 피가 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성현이의 모습이 더 마음 아팠다.

"아, 아린아…."

나 때문에 이렇게 돼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면 입안에 고인 피가 튈까 봐. 그럴 수가 없었다.

성현이의 시골 똥강아지 같은 눈을 보자. 어제의 감정이 떠올랐다.

매일 같이 성현이와 있고 싶­

등을 내려친 발길질이 안 좋은 곳에 맞은 것인지. 참지 못하고 성현이의 얼굴에 피를 뱉어냈다.

"그만해 이 씨발놈아!!!"

내 등을 내려찍는 발을 붙잡고 성현이가 몸을 일으켜 기한신의 몸을 붙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성현이를 도와주기 위해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다. 내 눈에 들어온 성현이의 모습에 그래도 몸이 굳어버렸다.

성현이의 등 뒤로. 기한신의 피 묻은 팔이 빠져 나와 있었다.

거짓말…. 말도 안 돼.

진희는 분명히 성현이가 나를 구해줄 거라고….

기한신의 팔이 성현이의 몸에서 빠져나가자. 빈 구멍으로 내장이 쏟아져 내렸다.

"안, 안돼!!!"

쓰러지는 성현이에게 달려가다 기한신에게 머리카락을 붙잡혔다. 머리카락이 뜯어져도 나는 쓰러진 성현이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기한신은 억지로 나를 책상 위에 쓰러트린 뒤. 이미 걸레가 된 교복을 찢어 나체로 만든 뒤. 짐승처럼 나를 겁탈하려 들었다.

나는 팔과 다리를 허우적대며 내 위로 올라타려는 기한신을 막으며 고개를 돌려 쓰러진 성현이를 바라봤다.

"성현아! 정신 차려 김성현­하, 하지마!"

내 외침에도 성현이는 미동조차 없었다. 나를 겁탈하려는 기한신의 얼굴을 밀어내도 억지로 몸을 달라붙었기에 결국 저항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차라리 이 모든 게 악몽이었으면 싶었다.

마음속으로 진희를 애타게 불렀다.

제발 도와줘 진희야.

그리고 커다란 소리와 함께 내 허벅지를 억지로 벌리던 기한신의 손길이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에 감았던 눈을 뜨니. 성현이가 기한신을 쓰러트리고 그 위에 올라가 주먹으로 내려찍는 모습이 보였다.

당황한 기한신이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지만 내려치는 주먹질 한 번에 팔이 부러져 너덜거렸다.

마치 신화 속 괴물이라도 된 것처럼. 온몸의 혈관이 튀어나와 흉측해 보였다.

주먹질 하나하나에 방안이 울릴 정도로 엄청난 힘을 담아 내리찍었다.

"죽어, 죽어!!!"

이성을 잃었는지. 미친 사람처럼 외치며 기한신의 얼굴을 내려찍기 시작했다.

이미 기한신 머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숴버렸으면서도 성현이는 계속해서 흥분해 주먹을 내려찍었다.

나는 책상에서 내려와 포션이 담겨 있는 가방으로 기어갔다.

가방 안에서 포션을 꺼내 마시자. 몸 안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성현이를 위해 남은 포션을 챙기는데. 방안이 묘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내 뒤에 누군가 서 있다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리려 하자.

성현이가 나를 뒤에서 강한 힘으로 끌어안아 그대로 카펫 위로 같이 쓰러트렸다.

"성, 성현아."

내 위로 짐승처럼 올라타는 성현이의 행동에 놀라 다급하게 불러봤지만. 내 말이 들리지 않는지. 격한 숨소리만 들려왔다.

"아, 아린아. 못, 못 참겠어."

발정이 난 짐승처럼 바지를 벗지도 않고 내 엉덩이에 자신의 자지를 비벼대며 나를 체중으로 눌러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성현아 정, 정신 차려!!"

발정기의 동물처럼 이성을 잃은 성현이는 바지를 입은 채 구멍으로 억지로 집어넣으려 해 쓸린 엉덩이가 너무 아파졌다.

내 고통스러운 신음에 이성을 잃었던 성현이가 잠깐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아, 아린아."

언제 또 이성을 잃을까 두려워. 몸을 일으키자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성현이의 눈빛이 다시 변하려 하기에 황급히 다시 뺨을 때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머릿속에서 진희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떠올랐다.

[그래. 성현이가 너를 구해주면. 꼭 금고 안에 들어있는 기아스를 성현이에게 써야 해. 알았지? 그래야 그런 멋진 성현이가 다른 여자에게 안 넘어가지.]

이럴 줄 알고 말했던 걸까? 기한신의 금고에 들어 있는 기아스.

그거라면 성현이를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벽으로 가 금고의 문을 살짝 건드려 봤다. 불행하게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 뒤에서 책상을 부숴버릴 듯 내려치는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성현이가 흥분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성현아 내 말들려? 이 금고를 열어야 너를 통제할 수 있어."

"금…. 고?"

이성을 잃기 직전이던 성현이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힘겹게 금고를 향해 걸어갔다.

"이 안에 있는 걸 꺼내줄 수 있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현이는 말도 안 되는 힘으로 주먹으로 굉음을 내며 그대로 금고문을 박살 냈다.

너덜너덜해진 금고문을 잡아 뜯고는 화난 것처럼 바닥에 내던지는 모습에 조금 두려움이 생겼다.

평상시의 성현이가 아니다. 기한신의 머리를 박살 낼 정도로 성현이는 강하지가 않았으니까.

지금 성현이는 마치.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라도 되는 것처럼 무식한 힘을 통제 없이 휘두르고 있었다.

급히 금고 안에 들어 있던 내 보석함을 꺼내 들었다.

성현이가 다시 이성을 잃기 전에. 진희의 말대로 기아스를 성현이에게 걸어야 했으니까.

보석함을 열어 그 안에 있던 기아스. [붉은 실]을 꺼내 들었다.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쳐 부숴버린 성현이가 고통을 참는 듯한 표정으로 내 시선을 피했다.

황급히 진희에게 들은 대로 붉은 실을 내 새끼손가락에 풀리지 않게 칭칭 감았다.

그러자. 붉은 실이 자신의 주위에 밝은 빛을 내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새끼손가락을 들어 성현이를 향해 내밀자. 기다렸다는 듯 붉은 실이 성현이의 새끼손가락을 향해 날아갔다.

갑자기 자신을 향해 무언가 날아오자 본능적으로 쳐내려던 성현이였지만. 붉은 실은 유연하게 공격을 피한 뒤. 성현이의 새끼손가락을 칭칭 감기 시작했다.

서로의 새끼손가락에 붉은 실이 연결되자. 붉은 실을 통해 무언가 느껴졌다.

지금 성현이가 느끼는 불안한 마음, 분노, 걱정 같은 감정들이 붉은 실을 통해 전해졌다.

나는 떨리는 성현이를 향해 크게 외쳤다.

기아스의 마지막 단계.

진심을 담아 이뤄지기를 빌었다.

"영원히. 서로만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내 진심 어린 외침에도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

[...성현이가 구해줄 때 그 감정들이 행복과 사랑으로 바뀌는 걸 느끼게 될 거야.]

진희의 목소리가 머리에서 울렸다. 언젠가 기한신의 체벌을 당할 때 나에게 다정하게 해주던 말.

온몸이 떨려왔다. 기한신에게 받았던. 고통스럽던 체벌의 기억 위로 성현이가 나를 구해줬다는 기쁨이 덮어버려 무감각하게 만든다.

매일 같이 두려웠던 기억이 이제는 성현이와 진정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 겪었던 노력이었던 것처럼 평범하게 받아들여졌다.

눈앞의 성현이를 보고 심장이 이제까지 중에 가장 빠른 속도로 뛰는 것을 느꼈다.

내 감정이 전해졌는지. 성현이도 온몸을 떨며 물에 빠진 사람처럼 팔을 이리저리 허우적거렸다.

환각이라도 된 것처럼. 나와 성현이를 이어주던 붉은 실이 밝은 빛을 내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붉은 실을 감았던 새끼손가락에는 타투라도 한것처럼 아주 얇게 실반지같이 붉은 선 하나가 남아. 방금 있었던 일이 꿈이 아님을 증명했다.

"성현아 괜찮아?"

걱정스레 물으며 다가가려다. 황급히 성현이가 손을 흔들며 거리를 벌렸다.

"아직! 아직은…. 가까이 오지 마. 못 참을 것 같으니까."

자신을 통제하기 힘든지. 짐승이 으르렁거리듯 위협적으로 말했다.

한참을 숨을 돌리던 성현이가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낮게 물었다.

"...방금 그건 뭐였어?"

"영원한 사랑의 맹세."

내 대답에 성현이는 묘한 감정이 섞인 얼굴로 나를 보며 물었다.

"...나를 사랑해?"

"응. 정말로. 이제는 영원히."

내 진심어린 대답에 성현이가 크게 미소를 지었다.

"좋아. 어쩔 수 없지. 너가 그리 원하니 나도 영원히 널 사랑할게."

힘들어하면서도 본성은 숨기지 못하는 지. 성현이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서 느껴지는 진실된 감정에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했다.

상대방의 말이 온전한 진심이라는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마음속에서 느껴졌다.

기아스의 힘인걸까?

"사랑해 성현아."

그 말에 답하듯 성난 발걸음으로 다가온 성현이가 나를 끌어안으며 키스를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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