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그대를 위하여
* * *
성현이는 화가 난 것인지 나와 얘기조차 하지 않으려 들었다. 평상시처럼 진희와 나랑 같이 점심을 먹기는 했어도 그렇게 떠들어대던 성현이가 침묵한 채.
조용히 밥을 먹는 모습에 진희도 의아해하며 나한테 물을 정도였으니까.
심지어 평소에 보내던 메시지 끝에 [ㅇㅅㅇ! ㅇㅂㅇ! ㅇㅁㅇ!] 같은 이모티콘도 보내지 않고.
[응 어 그래] 같이 딱딱하게 보내는 걸로 봐서 화가 단단히 난 것 같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눈치챈 걸까.
수업이 끝날 때까지 먼저 말을 걸지 않던 성현이는 종례가 끝나자마자 인사도 없이 기숙사로 가버렸다.
그 뒷모습에 서운한 마음이 들어 우울했다.
그 날 기한신의 체벌 때 평소보다 더 많이 운 것은 그 이유도 포함돼있지 않을까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평소처럼 포션을 넣은 욕조에 몸을 담갔다.
한 병에 수천만 원에서 품질에 따라 억 단위로 나가는 포션을 매일 같이 3~4병씩 써대는데도.
누군가 그 사실에 대해 뭐라 한 적은 없었다. 심지어 오지랖 넓은 임유모까지.
몸을 씻고 내일부터 있을 등급시험을 위한 공부를 했다. 한참을 공부하다 시간을 보니 밤 10시가 넘었기에.
평소처럼 성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짧은 신호음 끝에 성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통화할 수 있어?"
[응. 공부 끝나고 이제 씻으려고.]
"...응. 그렇구나."
성현이의 차가운 반응에 말문이 막혔다. 무어라 말을 하고 싶은데. 성현이의 반응이 안 좋을까. 괜한 두려움이 들었다.
평소였다면 먼저 말을 꺼내 대화를 이끌어갈 성현이였지만. 오늘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기에.
조금 긴 침묵 끝에 내가 입을 열었다.
"내일 시험 잘 봐."
[...그래.]
"...응. 잘자."
내 말에 성현이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통화를 종료했다.
복잡한 마음으로 마저 공부하다가 침대에 누워. 몇 시간을 성현이에 대한 생각에 몸을 뒤척이고서야 잠들 수 있었다.
***
수요일 목요일 동안은 오전동안 필기시험을 진행했다.
그래도 공부한 것들이 많이 나와서 가채점을 했을 때 상위권의 점수를 받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느라 소란스러워진 교실에서 나는 고개를 돌려 성현이를 바라봤다.
"시험 잘 봤어?"
"응. 그럭저럭."
나쁘게 보지는 않았는지. 성현이의 표정은 처음보다는 괜찮아 보였다.
오전에만 시험을 보기 때문에. 오후에는 같이 카페에 가서 공부라도 할까 싶어. 말을 꺼내려는데 성현이는 나에게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고는. 짐들을 챙겨 교실을 나가버렸다.
"싸웠어. 성현이랑?"
걱정하는듯한 진희의 목소리에 고개를 저었다.
"싸운 건 아니고 성현이가 나한테 화났나 봐…."
내가 우울한 것처럼 보였는지. 진희는 내 손을 잡아줬다.
"간만에 카페나 갈까?"
진희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성현이랑 카페 간다고 요즘 진희랑 카페에 자주 가지 않았으니.
아카데미에서 빠져나와 차를 타고 진희와 초월역 근처 카페로 갔다.
자리에 앉아 내일 있을 시험을 대비해 책을 꺼내는 나와는 다르게 진희는 커피만 마시며 휴대폰만 들여다봤다.
"진희는 공부 안 해도 돼?"
내일이 시험인데 조금 태평해 보여 걱정이 들었다.
"흐응. 대충 뭐가 나올지 알아서."
"정, 정말?"
내가 놀라워하자. 진희는 피식 웃으며 내 책을 가져가 페이지의 끝 부분들을 접어주고는 나에게 넘겨줬다.
"여기 접어놓은 곳 위주로 공부해."
"응. 고마워 진희야."
확실히 수업에서 핵심적인 부분이 많이 접혀 있었다. 한참을 진희가 알려준 페이지에 적힌 글들을 외우고 있는데.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드니. 진희가 내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있었다.
조금 부끄러워 책으로 얼굴을 가리자 진희가 그러지 말라며 책을 내렸다.
"너 저번에 SNS에 한 번 올리고는 하나도 안 올렸잖아. 내가 올려줄게. 그냥 공부하고 있어 알아서 찍을 테니까."
아. 까먹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공부를 계속했다. 진희는 사진을 계속 찍는가 싶더니. 테이블 위에 있던 내 휴대폰을 가져가 확인하기 시작했다.
"성현이랑 매일 자기 전에 통화 하는 거야~?"
놀리는듯한 진희의 말에 부끄러워져 대답하지 않으니. 진희는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으며 계속 내 휴대폰을 확인했다.
"성현이랑 나 빼고는 따로 연락하는 사람이 없네. 아주 좋아."
"응. 난 너랑 성현이만 있으면 되니까…."
진짜로 성현이랑 진희만 곁에 있어 준다면 아카데미 생활은 항상 즐겁고 좋을 것 같다.
진희가 성현이랑 주고받는 메시지를 확인하는 모습에 부끄러워져 휴대폰을 뺏으려 손을 내밀었다가.
"아야. 아파 진희야."
진희가 내민 내 손을 잡아 손등을 아프게 꼬집었다.
손등에 남은 손톱자국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 왜? 휴대폰에 나한테 숨기는 거라도 있어?"
"그런 거 없어 진희야."
의심하는듯한 진희의 시선에 황급히 말을 했다. 진희에게 그런 오해는 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내 말을 듣고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휴대폰을 보는 진희의 모습에 할 게 없어 다시 책을 보고 있자.
진희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성현이가 삐졌나 보네?"
"응…. 그런것 같아."
이제는 좀 마음이 풀릴 때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진희 말대로 성현이는 삐져있는 걸까.
진희는 SNS에 내가 공부하는 사진을 올리고는 나에게 다시 휴대폰을 넘겨줬다.
"아린아. 성현이 화 풀어주고 싶어?"
"응. 그럴 수 있으면 좋지…."
내 대답에 진희는 미소를 지으며 카페 화장실로 나를 데려갔다.
"아린아 사진 찍게 가슴 보여줘 봐."
"어?"
갑작스러운 진희의 말에 당황해 되묻자. 진희는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내 가슴을 만졌다.
"성현이 화 풀어주려면 이게 제일 좋을 거야."
"그, 그치만…."
성현이한테 내 가슴 사진을 보낸다고? 생각도 못 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 겁이 났다.
"나 믿어. 벗어봐 얼른."
진희의 말을 거부할 수가 없어 조심스럽게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어 살짝 벌렸다.
부끄러워하는 나를 보고 진희가 차갑게 말했다.
"뭐해?"
"...응?"
"속옷도 벗어야지."
그 말에 당황해 진희를 바라보자 서늘한 시선의 백안이 나를 노려보는 게 보였다.
"진, 진희야 이거는…."
"얼른."
속옷을 내려 가슴을 노출하자. 진희는 내 가슴을 움켜쥐고 그 모습을 자신의 휴대폰으로 찍기 시작했다.
"자. 핥아봐."
쥐고 있었던 내 가슴을 들어 올려 내 턱밑으로 가져와 핥으라는 말을 하기에 혀를 내밀어 내 젖꼭지에 가져다 댔다.
"좀 더 침도 흘리고."
서늘한 목소리에 황급히 가슴에 침을 흘리자 잘했다는 듯 진희가 미소를 지었다.
자기 가슴을 핥는 이상한 내 모습을 찍던 진희는 그만하면 됐다며 손짓했다. 부끄러움에 황급히 다시 옷을 입자. 진희는 찍었던 사진 중에 몇 장을 내 휴대폰으로 전송했다.
"성현이한테 보내면 바로 연락 올 거야."
"으, 응…."
화장실에서 나와 진희와 자리로 돌아왔다. 성현이에게 사진을 내 사진을 어떻게 보낼까. 겁이 났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진희가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보내 지금."
침을 삼키고 진희가 가슴을 움켜쥔 사진과 내가 혼자 가슴을 핥고 있는 사진 두 장을 성현이에게 전송했다.
내가 보낸 메시지 옆의 1의 숫자가 사라지자. 나도 모르게 겁이나 휴대폰 화면을 꺼버렸다.
성현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겁이 났다.
"성현이가 뭐라 하면 그냥 가슴 만질래? 하고 대답해."
진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휴대폰의 진동이 울려댔다.
화면을 확인하니 성현이에게 온 전화였다.
떨리는 마음에 진희를 바라보자. 진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 여보세요."
[어, 그…. 뭐해?]
조금 당황스러움이 섞인 성현이의 목소리가 들려와 나도 부끄러워져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 진희랑 지금 공부하려고 카페와 있어…."
[어…. 근데 그 보낸 사진은 뭐야…?]
뭐라 말할까 안절부절못하자. 진희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성현아."
[응….]
휴대폰 너머로 성현이의 숨소리가 괜히 크게 들렸다. 나도 떨리는 마음을 숨기고 진희를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다.
"가, 가슴 만질래?"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휴대폰너머 성현이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
3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카페 안으로 성현이가 들어왔다.
달려왔는지 조금 숨을 거칠게 쉬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후…. 오래 기다렸지?"
"응? 아니야. 기숙사에 있던 거 아니야? 되게 빨리 왔네?"
기숙사에서 버스 타고 왔으면 최소 30분은 넘을 텐데. 30분이 지나기도 전에 왔다는 게 신기했다.
"아니…. SNS에 사진 올린 거 보고 출발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어."
"오려고 했다고?"
내 말에 성현이는 조금 땀을 흘린 이마를 손으로 닦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그, 만나서 사과하려고 했지…. 내가 좀 나쁘게 굴었으니까."
조금 쑥스러워하는 성현이의 모습에 나도 조금 어색해져 귀를 만졌다.
"잘들 데이트해. 나는 기숙사로 돌아갈 테니까."
진희는 우리를 보며 미소 짓고는 자리에서 비켜줬다.
"응. 진희야 고마워. 내일 보자."
"들어가~백진희."
진희가 카페를 나가자. 성현이는 슬쩍 나를 바라보더니 몸을 달라붙었다.
"근데 평소에도 그런 사진을 찍는 거야?
조금 능글맞은 목소리로 묻는 성현이의 모습에 부끄러워져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니야…. 처음이야."
"정말~?"
놀리듯 말하며 슬쩍 허벅지에 손을 올리기에 모른 척 고개를 돌리자. 더욱 더 몸을 밀착했다.
"진짜야…."
"알았어. 믿을게. 그럼 일어날까?"
"응? 왜?"
방금 카페에 들어와 놓고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기에 의아해 성현이를 쳐다보자.
평소 순진해 보이는 시골 똥강아지 같은 눈을 음흉한 게 뜬 성현이가 작게 속삭였다.
"여기서 할 수는 없잖아~"
내 가슴으로 시선을 내리는 성현이의 모습에 부끄러워져 나도 모르게 팔로 가슴을 가렸다.
***
멀티방이라는 곳은 처음 와봤기에 조금 신기했다.
큰 TV와 노래방 마이크. 게임기. 컴퓨터에 침대같이 둘이 누워도 넓은 조금 낡은 소파도 있었다.
카드로 계산하고 방을 배정받아 들어가기 전에 카운터에 퍼즐이랑 과자 음료수 같은 것들이 있어. 성현이가 음료와 과자를 챙겼고 나는 500피스라고 적힌 퍼즐을 챙겼다.
성현이는바깥에서 안이 보이지 않게 블라인드를 내리고는 TV를 켜고 소파 위에 누웠다.
"내일 시험인데 공부 안 해도 괜찮겠어?"
조금 걱정이 들어 물으니. 성현이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그것보다 얼른 누워봐."
소파에 앉아 퍼즐을 꺼내고 있는데 성현이가 팔을 잡아 부드럽게 나를 눕혔다.
약간 누워서 서로를 마주 보는 자세가 되어. 가까이 있자. 조금 땀을 흘린 성현이의 체취가 느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성현이는 몸을 움직여 조금 더 가까이 밀착하더니.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부드러운 성현이의 입술이 닿자. 마음속이 간질간질해져 살짝 입술을 벌리자. 기다렸다는 듯 성현이의 혀가 내 혀를 휘감아왔다.
눈을 마주친 채 서로의 타액을 교환하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성현이는 그런 나를 꼭 끌어안으며 키스를 하다. 끌어안은 손을 내려 내 엉덩이를 부드럽게 만졌다.
성현이와의 키스는 혼자 자위하는 것보다 더 만족스러웠기에. 내 윗입술이 조금 부을 때까지 우리는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
팬티가 젖어오는 게 느껴져 성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 허리를 빼고 다리를 모았다.
열렬한 키스가 끝나고 뜨거워진 시선을 마주하다. 목이 말라 몸을 일으키자. 성현이도 나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왜?"
"아, 목이 말라서. 물 좀 마시려고."
내가 갑자기 일어나자 뭘 하려는지 궁금했는지 성현이가 물어와. 목마르다고 대답하고 테이블에 놓인 물병을 갖으러 가려 했더니 성현이가 내 팔을 잡고 다시 나를 소파 위에 앉혔다.
"내가 할게. 앉아 있어."
무언가 음흉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성현이는 혼자 500mL짜리 물통의 물을 볼이 빵빵해질 때까지 다 마셨다.
그 모습에 조금 어이가 없어 성현이를 바라보는데. 마치 꼬북이처럼 볼을 빵빵하게 불린 채 성현이가 다가오더니.
"음! 음!"이라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얼굴을 가까이하기에. 뭘 하려는 걸까 이해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자.
입을 맞춰 자신의 입 안에 넣어놓았던 물을 내 입으로 조금씩 보내줬다.
갑자기 입안으로 물이 들어와 조금 당황해 몸을 움찔하자 성현이는 눈웃음을 지으며. 괜찮다는 듯 내 어깨를 쓰다듬어줬다.
성현이의 입으로 전해지는 물은 차가웠고. 갈증도 느껴졌기에. 성현이가 입으로 전해주는 물을 순순히 받아먹었다.
마치 아기 새가 된 것 같아 조금 기분이 묘했다.
성현이는 기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입안에 남은 물을 삼키고는 내 어깨를 붙잡고. 부드럽게 나를 뒤로 눕힌 다음.
내 위로 조심스럽게 몸을 겹쳐왔다.
"이제 목마른 건 됐지?"
음흉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성현이에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