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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략 플래그가 세워졌다-36화 (36/160)

〈 36화 〉 아레아 비고르

* * *

눈앞의 소녀는 지쳤는지. 몸을 비틀거리며 다가오다. 모닥불을 발견했는지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려다 힘을 잃고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조금 경계하며 바라보다.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쓰러진 소녀에게 다가가려는데.

어떻게 쓰러진 것인지. 치마가 위로 말아져 올라가 보라색의 팬티가 노출된 채. 조금 유혹하는 자세를 한 채 예쁜 외모로 고개를 들었다.

"도, 도와주세요…."

물기 있는 목소리로 간절하게 말하는 소녀에게 다가간 김성현은.

곧장 소녀의 얼굴을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내리쳤다.

김성현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황급히 뒤로 몸을 굴리고는. 소녀가 언제 쓰러졌느냐는 듯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트윈테일의 소녀는 분하다는 듯 몸을 떨며 김성현에게 소리쳤다.

"어떻게 알아챘지!"

"팬티 앞이…. 볼록하잖아!!!"

보라색까지는 좋았다. 팬티색으로 조금 괜찮은 색이었으니까.

가까이 갈수록 무언가 볼록하고 묵직한 게 담겨 있다는 느낌이 들기 전까진.

주변을 둘러봤지만, 일행은 없는듯했다. 한 놈정도는 처리하기 쉽지.

40% 정도 만들던 나무창을 들었다.

"잠, 잠깐! 나는 얘기만 하려 한 거라고!"

손을 앞으로 뻗어 좌우로 흔드는 전형적인 미소녀의 리액션을 취하는 모습이 더욱 화가 났다.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너희는 원래 여자 좋아하는 거 아니냐?"

"응? 뭔 소리야?"

"서큐버스는 남자! 인큐버스는 여자! 이게 상식이잖아! 왜 내 뒷구멍을 노리는 거냐고!"

그 말에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청 푸른색의 트윈테일을 한 소년이 모닥불에 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는 물고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굽고 있는 물고기랑 같은 거지."

"뭔 말이냐?"

"물고기도 맛있으면 됐잖아? 구멍이 맛있으면 됐지 성별을 왜 따져?"

그날 처음으로 김성현은 투창이란 것을 해봤다.

*

모닥불 옆. 조금 거리를 벌린 채 어디선가 평평한 돌을 주워. 의자로 삼은 녀석은 눈치 없이 구운 물고기 하나를 먹기 시작했다.

"소금 없나? 간이 안 돼 있네. 맛없어."

"아가리 안 하면 죽인다."

위협적인 적도 아니었고 언제든지 죽일 수 있었기에 정보를 얻기 위해 일단은 배가 고파. 휴전 상태를 유지한 채 모닥불을 쬐고 있다.

"그래서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거냐?"

누가 봐도 예쁜 미소녀의 외형을 하는 녀석은. 유혹하듯 입꼬리를 늘리며 다가오려 하기에. 곧장 땅에 떨어진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아니, 그만 좀 던져!"

"묻는 말에 대답해라. 토 나오니까."

"헤에. 이렇게 예쁜데 토를 해~? 혹시 근육 돼지가 취­"

반사신경은 꽤 빠른지. 고개만 피해 돌멩이를 피하는 모습이 상당히 얄미웠다.

"내 이름은 아레아 비고르야! 아레아라고 불러줘."

"그래. 비골."

"아레아라고!!!"

"비골이든 아레아든 할 말 있으면은 바로 얘기해라. 속 울렁거리니까."

목소리도 듣기좋은 예쁜 여자 목소리라 더 싫었다.

"너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지?"

"그래. 이딴 곳인 줄 몰랐으니까."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텐데. 백진희를 떠오르니 이가 갈렸다.

그 대답에 기다렸다는 듯 아레아는 상체를 기울이며 얼굴을 들이댔다.

"나랑 계약하자! 내가 도와줄게!"

"미쳤냐? 내 똥꼬를 노리는 놈이랑 계약하게?"

그 말에 아레아는 귀여운 척 허리에 손을 올리고 볼을 빵빵 불렸다.

신아린이 했다면 좋았을 모습이지만. 지금은 상당히 역겨울 뿐이었다.

"아니야! 나는 똥꼬에 관심…. 조금 밖에 없어!"

부끄럽다는 듯이 고백하는 모습에 몸을 일으켰다.

"꽤 솔직하군. 보상으로 선택의 기회를 주지. 창으로 죽을래. 주먹으로 죽을래?"

깎고 있던 창을 들이대자. 기겁하며 아레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리를 벌렸다.

"나랑 계약하면 좋은 점이 많다고!!"

녀석의 말에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좋은 점이 뭔데."

"계약자가 원하는 이성의 꿈에 계약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관계를 맺을 수 있어!"

"씨발 내가 못하는 데 그걸 좋은 점이라고 말하는 거냐?"

화가 나 창을 들이밀자. 황급히 소리쳤다.

"꿈! 꿈속에서 계약자랑 관계한 이성은 무의식중에 그것을 떠올려서 계약자를 볼 때마다 성적인 흥분을 느껴!"

"아주 좋은 제안이군. 영혼은 반 정도면 되나?"

조금만 말이 늦었다면 창으로 목을 뚫을 뻔 했다. 도치법을 사용하라고.

이 자식 여장남자인 게 좀 그렇지만. 능력은 좀 괜찮은 놈일지도 모르겠다.

"영혼? 그런 걸 왜 줘. 쓸모도 없이."

"엉? 영혼이 필요 없어?"

자신의 상식을 바꾸는 아레아의 말에 당황스러웠다. 코 밑을 쓰윽 손가락으로 닦으며 건들거리는 게 진심인 것 같았다.

악마들은 원래 계약할 때 인간의 영혼을 원하는 거 아니었나?

"줘봤자 쓸 줄도 모르고. 요즘 인간 영혼은 하도 더러운 게 많아서 웬만한 건 판매도 안 될걸?"

"역시 아직 나는 멀었나."

조금 다행이다. 구운 생선을 다 먹고 꼬치로 이를 쑤시는 모습이 상당히 거슬렸지만, 꾹 참고 물어봤다.

"그럼 계약 조건이 뭔데?"

"당연히 나 먹여 살려야지?"

당연하다는 듯 지껄이는 아레아에게 던질 돌멩이를 찾자. 녀석은 황급히 자리를 피해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애완동물이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여장의 취미인 수컷을 먹여 살리는 취미는 없다. 심지어 내 똥꼬를 노리는 호모 애완동물은 더."

배고파서 몸에 힘이 빠졌다. 더는 드잡이질 하기 싫어 그냥 자리에 앉자 슬쩍 눈치를 보며 다시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히 계약하면 줄 때까지는 안노리지!"

"어휴. 일단 와서 앉아라. 안 때릴게."

그 말을 믿지 못하겠는지. 금방이라도 나무 뒤로 도망칠 준비를 하며 아레아는 자리에 앉았다.

"일단 나는 인간이야. 그건 알고 있지?"

"그럼. 이렇게 동정 냄새가 나면서 성욕이 많은 인간은 간만에 처음이야."

"입 닫아. 아무튼, 묻고 싶은 게 몇 개 있다."

"응. 뭐든지 말해!"

모닥불에 장작을 추가로 넣고 아레아를 바라봤다.

"인간과 계약하면은 너에게는 뭐가 좋냐?"

무슨 계약이든 서로에게 이득이 되어야 한다. 한쪽만 좋은 계약은 대부분 사기니까. 지금 여기서 나를 도와주겠다며 계약하자는 녀석의 말을 멍청하게 그대로 받아들일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일단 나는 하급 마족이야. 나 같은 하급 마족은 아무런 힘도 없어서 항상 삶이 힘들어…."

고개를 푹 숙이는 녀석의 모습에 조금 동정심이 들뻔했다. 겉모습의 효과가 이리 큰 건가.

"잠깐. 일단 좀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는 없냐?"

"응? 역시 근육 돼지가 취­"

바닥의 돌멩이를 줍자 말을 멈추고 나무로 뛰어갈 준비를 하는 아레아는. 돌멩이를 놓자. 내 행동을 따라 하듯 다시 자리에 슬그머니 앉았다.

"그래도 좋아하는 이미지 같아서 내 취향 아닌데도 입은 건데?"

"나는 그딴 취향은…."

다시 보니 주름 한 점 없이 깔끔하게 떨어져. 맞춤으로 수제제작한 듯 몸에 딱 달라붙는 교복이 눈에 들어왔다.

신아린의 교복이구나.

"그럼 바꿀게!"

순식간에 녀석은 연기를 풍겼다. 담배 연기처럼 금방 사라져 아레아의 모습을 확인하니 입고 있던 옷이 바뀌어있었다.

교복에서 고스로리풍의 옷으로.

이 자식 취향이 꽤 마이너 하구나.

"이것도 네가 무의식­"

학습이라도 됐는지 손을 바닥으로 내리자 급하게 입을 막고 내 눈치를 보는 녀석의 모습에 조금 미소가 나왔다.

"하던 말이나 계속해봐."

"응. 나는 하급 마족이라 삶이 힘들거든. 그래서 계약을 해서 인간들이 사는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마족이 인간계로 넘어가는 건 금지되었지만. 마령화 계약이면 상관없거든!"

"마령화?"

"응! 정령처럼 말이야."

"오."

신기했다. 마족이 정령처럼 변할 수 있다니. 이것 또한 새로 안 사실이다.

"한번 볼 수 있을까? 그 마령화라는거."

"그래! 계약 안 하면 유지하는 건 조금 힘들지만, 잠깐은 가능해!"

아레아는 또다시 몸에서 담배 연기 같은 것을 뿜어냈다. 연기가 걷히자. 그 자리에는 검은 먼지 덩어리가 모여 있는듯한 슬라임 같은 것이 동글동글한 눈을 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거 좀 귀여울지도?`

게임에서 종종 보던 슬라임 느낌이기에 슬쩍 손을 내밀자. 김성현의 손위로 아레아가 점프했다.

"몽글 몽글하면서도 탄력 있는 느낌…. 그리고 이 주름진 느낌은…."

무언가…. 무언가 머리에서 떠오른다. 이 손끝에서 느껴지는 주름진 느낌…. 익숙하게 탄력있게 추욱늘어지는 듯한 감촉. 이건….

"아이 시발!"

급히 손에 들고 있던 아레아를 땅바닥에 내던지자. 녀석은 황급히 트윈테일 고스로리 소녀로 변해 나무 뒤로 숨었다.

"왜 던져! 해보라고 해서 한 건데!"

"감촉이 불알 같았어. 남의 불알을 만진 느낌이라 존나 불쾌해."

"아. 네가 만진 곳은 불알이 있는 곳이 맞긴 해."

만들다가 만 나무창이 나무에 맞고 힘없이 부러졌다. 아쉽다. 앞에다가 돌을 달아놨다면 나무를 뚫지 않았을까.

얼른 석기시대로 넘어가고 싶다.

"네가 해보라며!!!"

"그런 좆같은거는 미리미리 경고 안 하면 위법이다."

"아무튼, 계약할거야 말 거야! 자꾸 이런 식이면 나도 안 해!"

"그 마령화면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냐?"

"정령처럼 계약한 인간 아니면 주인이나 내가 원하지 않는 이상은 마령화한 나를 못 봐! 물론 마령화를 풀면 다른 사람들도 날 볼 수 있고."

턱을 쓰다듬었다. 고민이 되네.

아레아와 계약을 한다면 실보다는 득이 크긴 하지만. 호모인 게 조금 거슬린단 말이야.

"좋아하는 여자가 있으면 내 능력이 엄청나게 좋을 거야! 심지어 상대방 성감대도 하나하나 알아낼 수 있어!"

"좋아."

역시 자가기 직접 홍보를 해야하는 자기 PR의 시대. 고민을 없애주는 아레아의 말에 냉큼 계약하기로 결심했다.

"진짜지! 진짜 계약하는 거지?"

나무 뒤에 숨어있던 아레아가 경계심을 풀고 해맑게 웃으며 옆으로 다가왔다.

"방금 한 말들 중에 거짓말이 없다는 조건으로. 그리고 평생 내 엉덩이를 노리지 않는 조건으로만."

"응. 그건 괜찮아! 어차피 인간계 가면 널린 게 여자일 텐데!"

아레아는 자신의 엄지에 상처를 내 피를 낸 뒤. 나에게 엄지를 내밀었다.

"뭐."

"엉? 너도 나랑 똑같이해. 이게 마령화 계약하는 방법이야."

아레아의 엄지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조금 겁이 났다.

"너 혹시 에이즈나 그런 거 있는 거 아니지? 피로 감염되는 병이라던가."

"아잇! 나도 여자랑 몇 번밖에 안 자봤어! 그리고 우린 인간들의 성병 따위는 안 걸린다고!"

입맛을 다시며 캠핑용 나이프를 들어 오른 엄지에 일자로 그어 피를 냈다.

그대로 내민 아레아의 엄지와 부딪치자 손가락에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엄지를 확인해보니 피를 흘린 흔적만 남아 있고 상처는 없었다.

"좋아 계약 끝! 이제 주인이라 부를게!"

"그래. 비골."

"아레아라고!!!"

"비골이 더 개 같아서 좋다."

이렇게 간단하게 계약이 끝나다니. 요즘 계약은 이렇게 스마트하게 하는 건가. 마법의 발전속도는 따라갈 수가 없다.

"것보다 너. 나를 여기서 빼낼 방법은 있냐?"

"없어!"

"...?"

돌멩이를 찾는 시늉을 해도 녀석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피하지 않았다.

"후후. 주인. 계약에 묶여 있는 동안은 서로에게 위해를 가할 수는 없어요~!"

검지를 들어 흔드는 모습이 얄미워 돌멩이를 던지려 했지만. 뭔가 녀석을 향해 돌을 던질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시발. 네가 도와준다며."

"응. 도와준다고 했지 방법이 있다고는 안 했잖아? 난 당연히 주인이 계획이 있는 줄 알았지."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이 얄미워 노려보자. 어쩌라는 듯이 입안의 혀로 볼을 내미는 모습이 존나게 빡쳤다.

"너 환락가에 대한 정보는 좀 알고 있냐?"

"그럼. 나만큼 알고 있는 사람도 적지."

자신만만한 모습에 조금 믿음이 갔다.

"그럼 그 뭐냐 메긴기요르드 그게 뭔지 알고 있냐?"

"메긴기요르드? 뭐야 그게."

"계약파기 안 되나 이거?"

아무래도 사기계약을 당한 것 같은데. 어디로 전화를 해야 하나. 마왕성?

"진짜로 처음 들어서 그래! 어떻게 생긴 건데?"

"이런 허리띠 모양."

대충 나무를 주워 땅바닥에 그려주자. 아레아는 알겠다는 듯 박수를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거 뭔지 알아! 앙드레 백작이 차고 있는 거잖아! 힘의 허리띠!"

그 말에 전에 백진희도 힘의 허리띠 뭐라 한 게 기억이 났다.

"맞을 거다. 근데 앙드레 백작? 마족은 뭐 계급사회냐?"

아직도 그런 구시대적인 계급사회인 건가? 마족들은 좀 다른가?

"아니? 그냥 힘에 따라 하급 중급 상급으로 나뉘는데? 우린 서열사회야. 1위 마왕 2위 부마왕 이런 식으로."

"근데 왜 앙드렌지 곤드레인지 걔는 백작이냐?"

그냥 드라큘라 백작 같이 멋있어서 붙인 이름인가?

"아! 이름이 백작이야. 앙드레 백작 아빠의 이름이 앙드레 십작이었거든."

어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재미삼아 써 볼듯한 작명센스에 어이가 없었다.

"그럼 뭐 자식은 앙드레 천작이냐?"

"어? 맞아! 어떻게 알았어!"

마족 녀석들은 대가리가 이상한 게 분명하구나.

이상한 편견이 생겼다.

"아무튼, 이걸 앙드레 백작이 차고 있다고?"

포기해야 하나. 마족과 싸우기는 좀 그렇긴 하다. 아직 나는 영웅지망생일 뿐. 영웅도 아니고….

"엉. 저 힘의 허리띠가 엄청나게 정력을 상승시켜준대. 그래서 맨날 차고 다닐걸? 저거 노리는 인큐버스들도 꽤 많아."

비골의 말에 목표가 생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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