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반항
* * *
갑자기 성현이가 나타날 줄 몰랐기에 무척이나 당황했다. 분명 기숙사로 돌아갔다고 했는데?
의문 속에서 성현이의 얼굴이 빨개진 것을 보고 나는 김성현이 `얼른 졸업하고 성현이랑 하고 싶어`라는 말을 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아. 무척이나 부끄러워졌다.
나도 얼굴이 빨개져 시선을 피하자. 묘한 어색함이 우리 사이를 휘감았다.
"일단 앉아."
진희의 말에 성현이는 반대편에 앉았다. 조금은 진정한 듯 빨개졌던 얼굴이 원래의 피부색으로 돌아오는 게 보였다.
나는 괜히 성현이와 시선을 마주하기 부끄러워서 시선을 내려 내 손만 바라봤다.
"기숙사로 돌아간 거 아니었어…?"
작은 목소리로 시선을 내리깔고 물어봤다.
"아…. 보고싶어서 왔어. 진희가 너랑 같이 여기 있다기에."
그 말에 마음이 조금 간질간질해졌다. 그렇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내가 보고 싶은 걸까?
"뭐. 여기까지 왔는데 눈치 없이 계속 있을 수는 없지."
테이블 위에 놓아둔 읽던 책을 가방 안에 넣고 진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월요일에 보자. 즐거운 시간보내 아린아."
미소 지으며 인사하는 진희에게 나도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진희는 어쩜 저리 배려해주는 걸까. 날 위해 2시간 넘게 기다려줘 놓고.
아쉽게 헤어진 나랑 성현이랑 만나게 해주려고 하다니.
나도 진희처럼 남을 자연스럽게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진희가 빠져나간 자리는 상당히 어색했다. 서로 부끄러워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눈치를 보는 상황이랄까.
"그…. 아까 한 말은 뭐야…?"
"으, 응?"
"그 나랑 뭐 하고 싶다고 들은 것 같은데."
조금씩 어색해하던 모습이 사라지고 성현이의 얼굴에서 점점 짓궂은 장난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듣고 싶어서 말이야."
"아, 아무것도 아닌데…."
난처해 하는 나를 보고 성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자리에 앉았다.
"왜 옆으로 와…?"
조금 불안한 마음에 물어보자. 성현이는 입꼬리를 올리며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흐읏…."
갑자기 허벅지를 쓰다듬는 성현이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신음이 나왔다.
기한신때문에 아직도 몸이 달아올라 있는 상태인데. 무방비한 상태에서 성현이의 손길을 받으니. 점점 잊혀가던 쾌락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나랑 하고 싶어?"
"..."
"대답해봐. 하고 싶어?"
"응. 그치만 아카데미 졸업 전까지는 절대 안 할 거야."
혼전순결을 유지하고 싶었기도 했고. 진희가 아카데미 졸업 전까지 김성현의 동정을 무조건 지키라고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왜…. 하고싶으면 그냥 하면 되잖아."
"안된다고 몇 번 말했잖아…."
"나도 하고 싶은데…?"
서운하다는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는 성현이의 모습에 미안했지만. 절대 허락할 수 없다.
"미안해 좀만 참아줘. 나도 얼른 졸업하기만을 기대하고 있으니까."
진심을 담아 말하자. 서운한 기색을 지우고 성현이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처녀막 문제면은 뒤로 해도 되잖아."
"그런 문제가 아니라구…."
음흉한 표정을 짓는 성현이를 살짝 밀어내자. 장난이었다는 듯 웃으며 허벅지를 만지던 손을 멈추고 속삭였다.
"아까 나한테 뭐든지 들어준다 했지?"
"...응.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만이야."
내가 미리 선을 긋자. 조금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성현이가 아까 사준 옷이 담긴 쇼핑백을 바라봤다.
"저거 지금 입어주면 안 돼?"
체벌 당할 때는 나체로 있기에 기한신의 흔적이 남아있거나 그렇지는 않았지만. 괜히 다시 저 옷을 입고는 싶지 않아서 조금 망설이자.
성현이가 재촉하듯 몸을 기대며 말했다.
"지금 입어줘~"
자신이 사준 옷을 입은 여자친구의 모습이 보고 싶은 걸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부탁을 거절하면 더 이상한걸 시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기도 했으니까.
다시 화장실로 가 김성현의 사준 옷을 입었다. 다시 봐도 너무 노출이 심했다. 가슴골이 노출된 채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이라. 배가 나온 것처럼 보일까 봐 배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고 자리로 돌아가자 성현이의 시골 똥강아지 같던 눈이 음흉하게 변하는 게 보였다.
"왜…. 그런눈으로 봐?"
조금 경계하자 성현이가 얼른 앉으라며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쳤다.
자리에 앉자 성현이는 기다렸다는 듯. 내 엉덩이를 감싸며 몸을 밀착했다.
"아…. 읏…."
체벌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완전히 상처를 치료해주지 않는 기한신의 버릇 때문에. 아직 엉덩이가 얼얼했기에 성현이의 손길에 나도 모르게 고통의 신음이 나왔다.
"오늘 왜 이렇게 색기가 있어?"
동의 없이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면서 능글맞은 목소리로 속삭이기에. 부끄러워져 고개를 돌렸다.
"하, 하지 마."
"왜~ 좋으면서."
"사람들이 보잖아."
"에이. 아무도 안 보는데 뭘."
성현이의 손길에 엉덩이가 아파졌지만 조금 좋은 느낌도 있어 괜히 기분이 이상해져 성현이의 팔을 붙잡자.
그제야 만지던 것을 멈추고 내 입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쪽
"귀여워가지고 말이야."
성현이의 말에 심장이 떨려왔다. 자기도 강아지처럼 귀엽게 생겨서. 누가 누구를 귀여워 하는 걸까? 조금 웃음이 나왔다.
"우리 할 것도 없는데 코인 노래방이나 갈까? 아린이가 노래 부르는 것도 듣고 싶고."
"노래? 그럴까?"
좀 더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성현이랑 노래방을 가본 적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처럼 연인들끼리 코인 노래방에 가는 것도 괜찮아 보였기에 의견에 동의하자 성현이가 미소를 지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 밖이 쌀쌀해 아까 입었던 가디건을 꺼내 입으려는 데. 성현이가 내 행동을 만류했다.
"가디건 입게?"
"응. 밖에 아직 춥잖아."
"에이. 그 옷은 원래 좀 춥게 입는 거야."
내 가슴골을 바라보며 말하는 성현이의 모습에 내가 이 옷을 입고 같이 있어 주기를 바라는 눈치기에. 어쩔 수 없이 가디건을 다시 쇼핑백 안에 넣고 클러치백과 쇼핑백을 손에 든 채 가게에서 나왔다.
"내가 들어줄까?"
"아니야. 내건 데 뭐."
내 대답이 중요하지 않은지.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을 뺏어 자신이 들어주는 성현이의 모습에 조금 고마움이 느껴졌다.
되게 나를 신경 써주는구나.
진희도 그렇고 성현이도 그렇고. 기한신을 빼고 다 나를 아껴주는 것 같았다.
조금 날씨가 추워 피부에 닭살이 돋았지만. 성현이가 꼭 어깨를 끌어안아 따듯하게 감싸줬기에 버틸만했다.
지나가는 남자들의 노골적인 시선이 몸을 훑는 것 같아 조금 기분이 이상했지만. 옆에 있는 성현이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성현이랑 근처의 지하에 있는 코인 노래방에 들어갔다. 내 지갑 안에는 만 원짜리밖에 없어서 성현이가 내 지갑에서 돈을 꺼내 카운터에서 대신 교환해줬다.
"자. 한 3천 원 넣을까?"
"응. 나중에 더 부르고 싶으면 추가하면 되니까."
주말이라 코인 노래방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빈방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주변에 코인노래방이 하도 많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간판처럼 조금 오래된 코인 노래방이어서 주변의 최신식 코인 노래방에 비해 인기가 없던 것일 수도 있다.
제일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 안을 확인하던 성현이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왜?"
"아. 아니 여기 말고 옆이 괜찮을 것 같아서."
옆 방의 문을 열고 고개를 들어 안을 확인한 성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불렀다.
"여기가 괜찮네. 들어와."
고개를 끄덕이고 안을 확인하자 생각보다 안이 꽤 넓었다. 문 앞에 6인실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손님이 없어서 사용해도 상관은 없었다.
성현이가 지폐를 노래방 기계에 넣자. 미러볼이 돌아가며 방안을 울리는 환영 인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부를래?"
"성현이가 부르는 거 들어보고 싶어."
"그래? 신청곡 받습니다. 원하는 거 있어요?"
성현이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방안을 울렸다.
"음. 버스 노래?"
"버스? 오케이 그럼…."
성현이가 리모컨으로 노래를 찾다가 마음에 드는 것을 찾고 나에게 리모컨을 넘겨줬다.
리모컨을 받은 나는 옆자리에 두고 성현이가 고른 노래를 확인했다.
[ 15442 /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 BUSS ]
아. 이 노래. 나도 한때 이 노래 많이 불렀었는…. 그랬나?
몽롱해진 머리로 성현이의 마이크를 타고 성현이의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한 아름 선물하고 싶어~ 하지만 주머니엔 먼쥐만 나마!!!""새하얀 편지 위에 적었어~ 추우카해 널 사랑해~~~""워 못난 내 사랑아~ 고작 이이이것바꼐! 못 하겠니 예이예~~~"
그렇게 잘 부르는 건 아니지만. 되게 집중해서 열창하는 모습이 조금 멋있게 보였다.
성현이가 노래 부르는걸 처음 봐서 그런가?
"사랑은 머리가 아니라아아아아~ 가슴이 흔다고오오 하는 너어어~~"
나를 보며 손가락을 가리키며 웃는 성현이의 장난에 결국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목이 쉬어라. 열창하던 성현이는 노래가 끝나고 82점이 나오자 역정을 냈다.
"아니 이렇게 잘 불렀는데 82점이 말이 되나."
투덜거리며 옆에 앉은 성현이에게 잘 불렀다고 동의해주자 금세 기분이 풀렸는지 얼른 부르라고 재촉했다.
"나도 신청곡!"
"뭔데? 나 아는 노래 별로 없긴 한데."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은 음악을 듣는 성격은 아니어서. 유명한 노래가 아니면은 부를 수 있는 게 별로 없긴 했다.
"아이너 노래! 신곡도 나왔던데"
"신곡은 모르는데…."
"그럼 아는 거라도 불러줘."
성현이의 말에 리모컨을 조종해 아이너를 검색해 아는 노래가 있을까 내려보다 한 곡을 골랐다.
가사가 좋아서 알고 있는 곡.
[ 45510 / 푸르던 아이너 ]
"너의 기억은 어떨까. 무슨 색일까~"
노래에 자신은 없었지만, 난이도 있는 노래도 아니었고 최선을 다해 부르자.
성현이는 감동한 표정으로 물개처럼 박수를 쳐줬다.
"아린아 너는 영웅말고 가수 해도 되겠다."
그 말에 동조하듯. 노래방기계에서 100점이라는 점수가 나오며 "가수 해도 되겠어요!"라는 멘트가 나와.
나와 성현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이 터졌다.
한두 곡 정도 더 부르고 난 뒤.
내가 부를 차례가 되어서 리모컨을 만지는데 성현이가 갑자기 허벅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뭐, 뭐해!"
"왜~ 우리 둘뿐이잖아. 괜찮아."
"카메라 있잖아. 보고 있을 거라구…."
"괜찮아 여기는 카메라가 안 보이는 사각지대야."
괜찮다는 듯 달래며 허벅지를 주물럭대는 성현이 때문에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확인해봤다.
6인실이라 방이 컸고 우리가 앉은 자리는 카메라의 각도에는 보이지 않는 곳이기에 조금 안도감이 들었다.
"그, 그래도…."
오늘 기한신에게 몇 번이나 절정했기에 더는 무리였다. 성현이의 팔을 잡고 고개를 젓자. 성현이는 얼른 노래나 고르라며 나를 무시하고 계속 허벅지살을 만지작거렸다.
어쩔 수 없이 아는 노래를 대충 고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일어나려는 나를 막아서며 성현이가 음흉한 눈을 한 채 속삭였다.
"앉아서 계속 불러."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조금 불안했지만 노래가 이미 시작되어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노래를 불러야 했다.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불안….흣….하지마…."
허벅지를 만지던 손이 더 깊숙이 들어와 팬티 위를 만지기 시작했다. 성현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신음을 참으며 마이크를 떼고 말했지만. 더 노골적으로 팬티 위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어, 어떻게 그렇게 만져대는데 노래를 불러."
"참고 불러줘~ 부탁이야."
그렇게 말하며 계속 팬티 위를 쓰다듬는 성현이의 손길에 터져 나올 것 같은 신음을 참으며 억지로 노래를 이어갔다.
"우리 사이에…. 그, 그건 아마…. 흐읏…. 흐응…. 아닐꺼야."
팬티가 젖어가는 게 느껴졌다. 직접 만지고 싶었는지 팬티를 젖히려 하기에 급히 막았다.
기한신의 명령 때문에 제모를 한 상태기에 이 모습을 보여주기 부끄럽기도 했고 왜 제모했냐는 물음에 거짓말 할 수도 없었기에. 성현이의 손을 강제로 떼어낸 다음.
마이크를 내리고 노려봤다.
"이러려고 노래방 가자 한 거야?"
"아니. 겸사겸사 하는 거지 뭘…."
"노래방에선 노래만 불러야지!"
내 말에 성현이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려는 차에. 성현이가 날 만지던 손을 들며 속삭였다.
"근데 아린이도 느낀 거야? 팬티가 젖었는데?"
"...그런 거 아냐."
"아니야? 그럼 확인해봐도 돼?"
"안돼! 저번이 마지막이었어. 절대 안 돼. 안 만진다고 했잖아."
저번에도 손 안 댄다고 약속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박고 개처럼 혀로 핥던 것이 떠올라 격렬히 반대하자.
비 맞은 강아지 같은 글썽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처연하게 말했다.
"알았어…. 그럼 가슴이라도 보여줘."
"뭐?"
"안만질 테니까 가슴만 보여달라고."
김성현의 말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지금 가슴을 보여줄 수는 없다.
기한신이 남긴 체벌 자국이 아직 남아 있는 가슴을 본다면. 성현이는 분명 이건 뭐냐고 추궁할 것이고.
그럼 기한신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나와. 내 가슴에 남은 자국을 의심하는 성현이 때문에 또다시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에 서로를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을까 불안했다.
여기서 진실을 고백하는 것보다. 거짓을 말하는 게 더 좋았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기에 차라리 상황을 바꿔버리자는 생각에. 나는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했다.
"싫어. 맨날 나만 이러는게 어딨어…."
"보기만 할게~"
"아니, 나도 만질래."
오늘 내내 당하기만 했는데. 더는 남에게 당하고 싶진 않다는 반발심이 용기를 더했다.
아직도 흘러나오는 노래를 배경 삼아. 나는 내 말을 듣고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성현이에게 몸을 달라붙었다.
"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순박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성현이의 모습이 귀여워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자지 꺼내."
성현이의 얼굴이 미러볼 때문인지 더욱 빨갛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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