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원망
* * *
방음이 잘 안 되는 모텔의 특성상 연인들의 신음이 자연스레 음악처럼 복도를 타고 울리는 토요일의 밤.
복도를 울리는 야릇한 신음들 속에는 내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이미 옷이 벗겨져 나체의 상태로 빨개질 대로 빨개진 엉덩이와 가슴. 분홍색이던 젖꼭지마저 하도 비틀어져 빨개져 있는 상태였다.
며칠간 같은 방식으로 체벌 당하고 있음에도. 고통에는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고 매일같이 울면서 김성현이 구해주기만을 마음속으로 빌며 참고 있었다.
성현이라면 분명 날 구해줄 테니까.
진희도 그렇게 말해줬다.
성현이가 백마 탄 왕자처럼 구해줄 거라고.
짜악!
"으…. 읏…."
마지막으로 엉덩이를 세게 내려치고 나서야 체벌이 끝났다. 기한신은 만족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눈을 감은 채 휴식을 했고. 나는 쓰라린 엉덩이 때문에 앉지 못하고 서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방안을 울리는 진동소리에 기한신이 눈을 뜨고 내 휴대폰을 가져오라며 손짓했다.
이제 치료만 받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조금 원망하며 테이블 위의 휴대폰을 기한신의 손에 건네주니. 화면을 확인한 기한신이 자신의 옆 의자에 앉으라며 손짓했다.
"김성현한테는 아직 말 안 했나 보군?"
"...네."
말할 수 없다. 이런 짓을 당하는 걸 알면 성현이는 분명 아파할 테니까. 거기에 진희도 김성현에게 기한신에게 당한 일에 대해 언급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진희는 나를 위해 오늘도 기한신에게 갈 수 있게 거짓말로 도와주었다.
지금도 근처 카페에서 내가 돌아와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하는걸.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이게 친구라는 걸까. 진희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하다.
의지가 되는 든든한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은.
근거 없는 용기를 주기도 하니까.
"회초리."
명령하듯 낮은 목소리에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던 검은 나뭇가지를 급히 가져와 기한신에게 넘겨주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앉은 의자가 딱딱한 나무의자여서 엉덩이가 아파져 왔지만 내색하는 순간 엉덩이를 또 내려칠 기한신이기에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기한신의 손에 들린 회초리는. 직접 어디선가 체벌용으로 가져온 것이다. 검은색의 기다란 얇은 나뭇가지는 수백 번을 내려쳤는데도 부러질 기미가 전혀 안 느껴졌다.
휴대폰 화면을 보던 기한신의 미간이 좁혀졌다. 상당히 불쾌해 보이는 얼굴로 나를 돌아본 그는 낮은 목소리로 통보하며 휴대폰을 건네줬다.
"보기 역하군. 앞으로 교육시간 동안 김성현의 메시지가 올 때마다 교육을 10분씩 추가하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난 지금 버스타고 기숙사 가는중이얌 ㅎㅅㅎ]
하필이면 좋지 못한 타이밍에 온 김성현의 메시지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10분."
무심한 목소리에 다급히 김성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응. 재밌게 놀고 있어. 성현아 집에 가면 연락할게.]
10분 정도면 참을 수 있다. 그 정도는 금방이야. 괜찮아.
그런 내 자기 위안을 비웃듯.
휴대폰이 내 손으로 연속으로 3번 커다란 진동을 울렸다.
원래 이렇게 진동이 컸었나. 옆방에서 들려오는 신음보다 휴대폰의 진동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울 것 같았다.
[ 힝 (ㅠ_ㅠ)]
[진희랑 있다고 남친 버려?! 니 남친 버려?!ㅇ_ㅇ]
[나랑도 놀아줘~~~ㅠㅅㅠ;;]
"30분 추가."
절망스러운 기한신의 목소리에 성현이에 대한 조금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제발 그만 보내줘.
[이따가 진희랑 헤어지면 연락할게.]
마음속으로 부탁하며. 성현이라면 눈치채지 않을까 했는데….
[안대에에엥 지금 해줘 ㅠㅅㅠ]
[해줘 해줘 해줘 3]
[오늘 뽀뽀도 안해주고! ㅅ]
또다시 울리는 진동소리에 숨을 못 쉴 정도로 공황이 왔다.
도대체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걸까. 이러면 안 되는걸 알면서.
괜스레 성현이가 미워졌다.
"남자친구가 사랑꾼인가 보군."
비웃는 목소리 말하며 기한신이 파묻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밤이 꽤 길겠어."
그 가학심이 가득한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몸이 떨려왔다.
[성현아…. 제발 이따가 할 테니까 조금만 참아줄래?]
제발. 성현아.
[참으면 뭐해줄건데! ㅎㅅㅎ]
성현이가 보낸 답변에 진동이 울리자. 다가온 기한신이 부드럽게 내 뺨을 쓰다듬었다.
"그렇다고 남자친구를 원망하진 않겠지?"
나도 모르게 차오르는 눈물을 흘리며 성현이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뭐든 해줄 테니까 이제 그만 보내]
그 뒤로 뭐든 해준다는 내 말에 넘어간건지. 김성현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추가 교육이 몇 분이지."
내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가 휴대폰의 메시지를 확인하며 기한신이 물었다.
내 대답을 기대하는 검은 눈에 나는 시선을 내리깔고 확신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90분…. 아닌가요?"
"틀렸다. 80분이지. 하지만 90분을 원하는 것 같으니 그렇게 해주지."
조각 같은 외모에 걸맞은 듣기 좋은 목소리지만. 그 내용은 나를 절망스럽게 했다.
*
"흐…. 흐흣…."
체벌이 끝나고 포션을 발라줄 때가 가장 고통스럽다는 걸. 눈앞의 기한신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체벌을 당할 때는 그저 이를 악물고 기한신을 원망하면 되었지만. 부드럽게 포션을 발라줄 때 그 손길에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쾌락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를 향한 원망이 고마움으로 바뀌는것 같아 입술을 깨물수 밖에 없었다.
느긋하게 애무하듯 포션을 손에 가득 묻혀 내 피부를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는 손길에 몇 번이고 절정 한 것 같다.
기한신은 포션을 발라줄 때 항상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려두는 걸 좋아했기에.
거슬린다며 털을 밀라는 명령에 깔끔하게 제모한 보지에서 홍수라도 난 것처럼 애액이 쏟아져 흘러나와 기한신의 허벅지를 적셨다.
이 정도로 했으면 보통의 남자였다면 이미 내 처녀를 취하고도 남았을 텐데. 기한신의 성벽은 특이한 것 같았다.
아니, 내가 알던 김성현처럼 조금씩 자기 입맛대로 바꿔가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자기 스스로 안달이나 원하게 하는….
실제로 나도 차라리 이대로 강제로 범하면은 못이기는 척 받아줄 것 같은 지경까지 왔으니까.
그런데. 위화감이 들었다.
내가 알던 김성현?
내가 알던 김성현이 뭐지?
내가 아는 김성현은 아직 동정인데?
무언가 생각을 할수록 머리가 몽롱해져 갈 때쯤.
가슴과 허벅지의 상처에 포션을 발라 치료해준 기한신이. 내 왼쪽 엉덩이를 가볍게 톡 치고 조금 텀을 두고 오른쪽 엉덩이도 똑같이 가볍게 쳤다.
왼쪽 엉덩이를 가볍게 치는 건. 포션이 다 떨어졌으니 새로 가져오라는 뜻이었고.
오른쪽 엉덩이를 가볍게 치는 건. 자세를 바꾸라는 신호였다.
신호와 체벌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려는지. 체벌할 때는 엉덩이를 항상 세게 내려쳤기에 헷갈릴 일은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억지로 팔의 힘으로 중심을 잡고 테이블을 붙잡고 클러치백에서 포션을 꺼내 들었다.
값이 상당히 나가는 포션이었기에. 치료 받고 싶으면 내가 직접 사서 가져오라고 명했다. 혹시 몰라 항상 여분의 포션까지 준비하고 있다.
포션을 기한신에게 건넨 뒤. 앉기 전 내 애액으로 반들거리는 기한신의 허벅지를 모텔의 수건으로 깨끗이 닦은 뒤. 엉덩이가 보이게 기한신의 허벅지 위로 올라갔다.
"이제 숙제를 내릴 때가 된 것 같군."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손길에 신음을 참고 있는데. 기한신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 흐읏……. 어, 어떤 숙제요?"
내 말에 기한신은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아버지. 기한진. 그분이 하던 연구자료에 대해 알아와라. 그게 숙제다."
"알, 알겠어요."
"실망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 말이 끝난 후 기한신은 입을 다물고 내 엉덩이에 포션을 묻혀주기만 했다.
2번의 절정을 더 경험하고 나서야 치료가 끝났다.
알 수 없는 언어로 내 가슴에 대고 무어라 말을 하는 기한신의 조각 같은 얼굴을 바라보며.
내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기한신이 눈치채지 못 채기만을 빌었다.
***
성현이가 사준 옷을 입고 진희가 기다리고 있는 카페로 향했다.
갑자기 체벌시간이 추가되었기에 한참을 기다리고 있을 진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진희가 성현이가 사준 이 부끄러운 옷을 입고가면 기한신이 조금 약하게 체벌할 거라고 조언해줬기에.
그 말에 따라. 카페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기한신을 만났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끌어안았으니까.
카페 안으로 돌아오니 진희는 헤어졌을 때와 똑같이 구석진 자리에서 표지가 없는 검은색의 책을 읽고 있었다.
"진희야. 나왔어 오래 기다렸어?"
독서에 집중하고 있었는지 내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던 진희는 책에서 시선을 올려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와. 화장도 다시 하고."
진희의 말대로 화장실로 들어가 원래 입었던 옷으로 다시 갈아입고 화장을 새로 하고 진희의 옆자리에 앉았다.
단둘이 있을 때는 맞은편이 아닌 바로 옆자리에 앉으라고 진희가 말했기에. 요즘은 항상 꼭 붙어 있다.
진희에게서는 항상 맡고 싶은 좋은 향이 나서. 옆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오늘은 늦었네? 평소엔 1시간만 하더니. 혹시 기한신이랑 섹스했어?"
"아, 아니야. 성현이가 교육시간에 메시지 보낸거때문에 화난다고 체벌을 추가했어."
"흐응, 사디스트새끼 좀 역겹네 대충할것이지. 그냥 죽일까…."
날 걱정해주는 진희의 말에 기분이 좋아져 미소를 짓자. 진희는 내 뒷목에 서늘한 손을 올리고 쓰다듬어줬다.
"그래서. 그놈이랑 오늘은 뭐 했어."
진희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몸을 배배꼬았다.
"모텔에 가서 엉덩이 맞고 젖꼭지 비틀리고. 가슴이랑. 허벅지 회초리로 맞고. 나 때문에 몸이 더러워졌다고 씻기라 해서 몸도 씻기고 그랬어."
"그래? 몸을 씻겨줬어?"
"응. 가슴으로만 씻기게 허락해줘서…."
"미친 새끼…. 풉."
기한신을 씻겨주려 열심히 가슴을 움직이는 나를 떠올렸는지 진희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따로 말한 건 없어?"
"아, 오늘은 숙제가 있었어."
내 대답에 흥미로운 얼굴로 진희가 물었다.
"숙제?"
"응, 기한신의 아버지…. 이름이 뭐더라. 아무튼, 그분이 연구하던 게 있는데. 그게 차성에 있대. 그거에 대해 알아오라고 숙제 주셔서 내일은 차성에 가보게."
이름이 뭐였지. 기억이 안 난다. 조금 제정신이 아닌 상태여서….
"아. 그거 소용없을 텐데."
"으, 응?"
기한신 아버지의 이름에 대해 기억하려다. 진희의 말을 못 들어 다시 물어봤다.
"아냐. 기한신이 내린 숙제 열심히 풀어봐."
"응. 알았어. 노력할게!"
진희 말대로 열심히 노력해야지. 더는 진희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기한신은 어때?"
"응? 어떠냐니?"
"기한신한테 체벌 받는 거 어떻게 느껴져?"
"...아프고 두렵고 내일도 체벌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서워."
정말로 차라리 내일이 안 왔으면 싶을 정도로 잠이 들기가 싫었다. 매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다면 누구라도 공감하지 않을까?
"그거뿐이야?"
마치 진실을 숨기지 말라는 듯 나를 보며 눈썹을 드는 진희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져 숨겼던 마음도 고백했다.
"...점점 기대도 돼. 막 치료해줄 때는 심장도 엄청나게 크게 뛰고. 만져줄 때마다 몇 번이나 절정 하는지 모르겠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키스 받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
감춰놨던 부끄러운 진실을 말하자. 진희는 테이블에 턱을 괴며 나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그럼 기한신이랑 섹스하고 싶어?"
"응? 으, 응. 해보고 싶어. 궁금하긴 해…."
내 솔직한 대답을 듣고 무언가 생각하듯 컵에 담긴 음료를 마시며 휴대폰을 만지던 진희가 한참 뒤에 무언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첫 경험은 사랑하는 성현이한테 줄 거야?"
"으, 응? 그건…."
말하기 부끄러워 우물쭈물하자 재촉하듯 진희가 물었다
"아카데미 졸업하면 김성현한테 처녀 줄 거잖아?"
"...응. 당연하지. 얼른 졸업하고 성현이랑 하고 싶어."
내 부끄러운 대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진희가 시선을 내 뒤로 보냈다.
"그렇다는데?"
나를 향한 말이 아니었기에. 진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얼굴이 빨개진 성현이가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