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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략 플래그가 세워졌다-28화 (28/160)

〈 28화 〉 클리셰

* * *

맛있게 불백을 먹고 자리에 앉아 계산을 하러 간 아린이를 기다렸다.

아린이는 집이 잘살아서 웬만한 건 대부분 자기가 사려고 했다. 처음엔 좀 그랬는데. 몇 번 얻어먹다 보니 나쁘지 않았기에 그냥 적응했다.

어차피 결혼하면 저 돈이 자신의 돈이 될 텐데.

지금부터라도 저 씀씀이에 적응해야 하지 않을까?

계산을 끝낸 아린이가 계산대에서 누룽지 맛 사탕 3개를 손에 꼭 쥐고 돌아왔다.

하나씩 사탕을 나눠주는 아린이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받자 기쁜 듯 미소 짓는 아린이의 모습에. 당장 뜨거운 키스를 하고 싶었지만.

옆에서 눈치 없이 자기는 누룽지 사탕 안 먹는다고. 신아린을 당황하게 한 누구 때문에 참았다.

밥도 먹었으니 코인 노래방이라도 갈까 계획을 세우는데. 백진희가 신아린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아린이의 얼굴이 굳어지는 게. 뭔가 백진희가 안 좋은 소리를 한 걸까? 갑자기 기운 없어 보이는 아린이의 표정에 걱정되어 손을 잡아주자.

조금 힘 빠진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피했다.

"아린이랑 나는 따로 약속이 있어서. 오늘 데이트는 여기까지 해야겠네."

"어?"

"미, 미안 성현아. 까먹고 있었어."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는 아린이의 모습에 괜히 마음이 아파 얼른 대답하려다.

조금 전 생각하던 망상이 떠올랐다.

`백합`

자신을 두고 단둘이만…?

그럴 이유가 있을까? 자신을 떼어내고 둘이 보빔을 하려는 거 아닐까?

그런 합리적인 의심에.

아린이를 바라보며 추궁했다.

"나도 끼면 안 돼?"

"응? 그, 그건……."

시선을 돌려 백진희의 눈치를 보는 신아린의 모습에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려는 순간….

"여자끼리 속옷 사는 것 까지 따라오게?"

"어?"

"미, 미안해 성현아. 진희랑 둘이서만 갈게. 좀 부끄럽잖아…."

부끄러워하는 아린이의 모습에 의심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다.

"아냐. 괜찮아. 오늘 많이 돌아다녔으니까. 나도 슬슬 기숙사 가서 쉬려 했어."

"다행이네. 그럼 아린이랑 나는 먼저 가볼게."

기다렸다는 듯이 얄밉게 말하는 백진희의 모습에 잠시 올라갔던 호감도가 뭉텅 사라졌다.

오늘은 키스도 못 했는데. 가슴도 못 만졌는데!!!

오늘의 음흉한 계획이 단 한 개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에 아쉬워 백진희의 손에서 아린이를 뺏어와 한 번 끌어안았다.

"재밌게 놀고. 집에 가면 전화해 알았지?"

"응. 연락할게. 피곤하면 먼저 자도 돼."

"아냐. 기다릴게."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던 아쉬운 마음에 그리 말하자. 아린이는 무어라 말하려 입을 열다. 다시 입술을 깨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게에서 빠져나와. 인사를 한 뒤. 밤거리로 사라지는 아린이와 진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아직 기숙사로 돌아가기에는 꿀 같은 주말 저녁이었기에. 근처 피시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

문란한남자 (애무무)님이 위험신호를 보냄.

문란한남자 (애무무)님이 위험신호를 보냄.

문란한남자 (애무무)님이 위험신호를 보냄.

추가 신호를 보내려면 기다려야 합니다.

문란한남자 (애무무):아니 빼라고 핑찍었잖아***아

초월동보안관 (대리우스):ㅇㄱㄹ니가 핑찍으면 빼야함? 명령 ㅈ되네

초월동보안관 (대리우스):갱처오든가 그럼 바텀시팅해놓고 탑탓 ㄹㅈㄷ.

문란한남자 (애무무): 네 다음 띠모한테 솔킬 3번따이고 대리우스로 0/5/0박고 자존심 세우시는 분.

초월동보안관 (대리우스):응 카운터야~거기에 띠모 점화임

문란한남자 (애무무):지는 유체화 **고 ㅋㅋㅋ

초월동보안관 (대리우스): 케윈3 애무무0 ㅈㄱㅊㅇ ㅈㄱㅊㅇ ㅈㄱㅊㅇ

문란한남자 (애무무): ㄴㅇㅁ

사용자의 대화를 이제 무시합니다 (초월동보안관)

간만에 애무무를 꺼냈더니 게임이 지랄이 났다.

왜 탑 하는 놈들은 지영이 마인드일까. 정글러인 김성현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위험하다고 빼라 하면은 오히려 앞으로 들어가는 게 `니가 안오면 나 뒤질거임`이라는 마인드가 뻔히 보여서 더 화가 났다.

갱 `와줘` 역갱 `봐줘` 바텀에서 킬따고 있으면 알아서 사릴 것이지.

망나니 라인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주말 저녁이라 해도 이딴 놈들이랑 게임을 하는 건 시간 낭비다.

과감히 탈주하고 부계정으로 다시 돌렸다. 이번엔 좀 자신 있는 니신을 꺼내 들었다.

박고싶은남자 (밀프이트): 나 궁온 정글 탑오면 무조건 킬

박고싶은남자 (밀프이트)님이 지원 요청을 보냄

박고싶은남자 (밀프이트)님이 지원 요청을 보냄

박고싶은남자 (밀프이트)님이 지원 요청을 보냄

박고싶은남자 (밀프이트):상대 탑 노스펠 지금 궁각 예사로움

박고싶은남자 (밀프이트)님이 지원 요청을 보냄

박고싶은남자 (밀프이트)님이 지원 요청을 보냄

박고싶은남자 (밀프이트):상대숨못쉬는중 CS허락받는중 오면 킬

박고싶은남자 (밀프이트):안옴?

박고싶은남자 (밀프이트):5

박고싶은남자 (밀프이트):4

박고싶은남자 (밀프이트):3

보물짓 (니 신)님이 가고 있음

보물짓 (니 신)님이 가고 있음

박고싶은남자 (밀프이트):2

보물짓 (니 신):탑가는중임 ㄱㄷ

보물짓 (니 신)님이 가고 있음

보물짓 (니 신)님이 가고 있음

보물짓 (니 신)님이 가고 있음

요들줘팬다 (에이트록스)님이 보물짓 (니 신)님을 처치하고 더블 킬 달성!

박고싶은남자 (밀프이트):니신 ­ 43초 후 재생성

박고싶은남자 (밀프이트):니신 ­ 43초 후 재생성

박고싶은남자 (밀프이트):니신 ­ 43초 후 재생성

박고싶은남자 (밀프이트):니신 ­ 42초 후 재생성

보물짓 (니 신):밀프이트 ­ 35초 후 재생성

보물짓 (니 신):밀프이트 ­ 35초 후 재생성

보물짓 (니 신):밀프이트 ­ 34초 후 재생성

박고싶은남자 (밀프이트):**아 스턴인데도 왜 Q를 처못맞춤?

보물짓 (니 신):니가 처 빨리들어감 타이밍 맞춰야지

SKL L1 PANDA (랄라): 니 신 R ­ 준비됨

SKL L1 PANDA (랄라): 니 신 R ­ 준비됨

SKL L1 PANDA (랄라): 니 신 R ­ 준비됨

SKL L1 PANDA (랄라): 니 신 R ­ 준비됨

보물짓 (니 신):방금 쿨돔

SKL L1 PANDA (랄라):님 여태까지 궁 한번도 안씀 8렙인데

보물짓 (니 신):듀오 정치질 *역겹네 ㄹㅈㄷ

사용자의 대화를 이제 무시합니다 (박고싶은남자)

사용자의 대화를 이제 무시합니다 (SKL L1 PANDA)

"씨발 사람 새끼들이 없네!"

결국, 서랜도 반대하는 1명이 나와. 15분 57초에 넥서스가 터지면서 게임이 끝났다.

"진짜 주말은 게임이 역겹네."

시간을 확인하니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딱히 더 할 것도 없었고. 게임도 트롤들이 많아 재미가 없었기에.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숙사로 돌아가서 딸이나 잡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시방을 나서는데.

저녁은 아직 추운 날씨임에도 꼴리는 미시룩 한 장만 입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멀리 보였다. 웬 남자에게 어깨를 잡힌 채 거의 끌려가듯 모텔이 몰려 있는 거리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부러움에 `나는 언제 저렇게 문란하게 살아보나`라는 생각을 하며 바라보다. 문득 여자가 입은 옷이 어디서 본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

신아린에게 사준 옷과 똑같은 디자인. 날이 어둡기도 하고 거리가 있어서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오늘 자신이 사준 옷과 거의 비슷했다.

`설마…. 아니겠지.`

진희랑 속옷 산다고 했는데. 갑자기 남자랑 모텔에 간다고? 말도 안 되는….

그 순간 여자의 어깨를 잡고 있던 남자가 옆으로 지나가는 차를 무심코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멀리서도 자기주장이 심한 외모.

저 기생오라비 같은 와꾸는 분명 기한신이다.

`기한신이 내가 신아린에게 사준 옷과 비슷한 옷을 입은 여자랑 모텔에 들어간다?`

무언가 개연성이 없는 상황이다. 우연에 우연이 겹칠까.

차라리 그 옆의 여자가 신아린이라면?

오히려 개연성이 있는 상황이지.

도서일을 도와줬다면서 1시간이 넘게 돌아오지 않았던 신아린.

기한신과 섹스한 거 아닌가 의심받았던 전력이 있다.

스스로 보지를 벌려 처녀막으로 결백을 증명하긴 했지만.

밑에 보지가 아니라 위의 입보지를 사용했을 수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

"충분해. 개연성 있어."

야동도 스토리를 중요시하는 김성현이기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을 지우지 못했다.

일단 기한신이 맞는지 확인해보려 황급히 달려가 봤지만.

이미 멀리 있던 기한신은 모텔에 들어갔는지. 도착했을 때에는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 뛴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게.

조금 전 게임에서 트롤 연속 2판 만났을 때와 똑같은 분노가 느껴졌다.

급히 아린이에게 전화를 하려고 휴대폰을 들었다가. 한숨을 내쉬고 그만뒀다.

지금 여기서 신아린에게 전화하는 건 클리셰를 따라 하는 행동이나 다름없다.

너무 뻔한 흐름이다.

신아린에게 전화를 걸면 이렇게 되겠지.

[여, 여보세요? 성현아?]

"어. 아린아 잘 들어갔어?"

[으흐응...잘, 잘 들어와았­흐읏...]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아니야. 운동 중이…. 었어….]

들뜬 목소리로 운동 중이라고 대답하는 신아린. 그 뒤로 배경음처럼 들리는 무언가 삐걱대는 소리.

전형적인 전화 NTR 상황이다.

여기서 신아린에게 전화하는 것은 악수(?手)

김성현은 처음으로 백진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이 지나도록 통화음이 연결돼. 다시 전화를 걸려고 휴대폰을 귀에서 떼려는 차에. 백진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어. 나 김성현인데…. 혹시 아린이랑 같이 있어?"

[응. 왜?]

당연하다는 듯이 곧바로 답변하는 백진희의 목소리에 조금 마음이 놓였지만.

눈앞에 숲처럼 빼곡히 서 있는 모텔들을 보고 완전히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아. 아린이랑 전화 연결이 안 돼서 전화 좀 잠깐 바꿔줄래?"

그런데 조금 전까지 곧바로 대답하던 백진희가 잠시 뜸을 들였다.

"...왜 말이 없어?"

[아린이 똥 싸]

"어?"

[아린이 똥 싸고 있다고]

백진희의 말에 긴장이 확 풀렸다. 왜 뜸 들이나 했더니 똥 싸고 있는 걸 말해야 하나 고민했나 보다.

하긴 아린이도 사람이니까 싸긴 하겠지.

그쪽으로 취향은 없지만. 한 번쯤은 눈으로 보고 싶긴 하다. 조금 궁금하니까.

"아. 알았어. 그럼 이따가 내가 다시 전화 걸게."

[그래. 그리고 앞으로 전화 말고 메시지 보내줄래? 우리가 통화 주고 받을 사이는 아니잖아]

"어. 그래 미안하다."

조금 정색하며 대답했다.

씨발년 싸가지 존나 없네.

백진희와 통화를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사람이 많이 타는 초월역이기에 황급히 비어있는 노약자석에 앉아 아린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잘 놀고 있엉~? ㅇㅅㅇ?]

[난 지금 버스타고 기숙사 가는중이얌 ㅎㅅㅎ]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노래를 틀고 자는 척 눈을 감았다.

버스작아버스작아의 노래가 한 곡이 끝나기 전.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응. 재밌게 놀고 있어. 성현아 집에 가면 연락할게.]

휴대폰 화면을 보고 조금 서운했다. 나랑 있을 때는 좋다고 바라보더니. 진희랑 있다고 진희에게만 집중해?

남자친구는 나라고!

[ 힝 (ㅠ_ㅠ)]

[진희랑 있다고 남친 버려?! 니 남친 버려?!ㅇ_ㅇ]

[나랑도 놀아줘~~~ㅠㅅㅠ;;]

슬쩍 고개를 드니 조금 흰머리가 난 어머니뻘 되시는 분이 손잡이를 잡고 내 의자 앞에 서 있었다.

`저 정도면 건강 챙기실 때지`

엄마는 살 뺀다고 일부러 근처 공원 돌기도 하는데 굳이 자리를 양보할 정도의 나이는 아닌 것 같다.

괜히 자리를 양보해서 기분 나빠할 수도 있다. 아직 그럴 나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젊은 애가 자리를 양보한다면.

`내가 그리 늙어 보이나`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

일종의 배려라고 생각할 때쯤. 휴대폰이 울렸다.

[이따가 진희랑 헤어지면 연락할게.]

[안대에에엥 지금 해줘 ㅠㅅㅠ]

[해줘 해줘 해줘 ­3­]

[오늘 뽀뽀도 안해주고! ­ㅅ­]

[성현아…. 제발 이따가 할 테니까 조금만 참아줄래?]

[참으면 뭐해줄건데! ㅎㅅㅎ]

[뭐든 해줄 테니까 이제 그만 보내]

화났나? 장난이 조금 지나쳤던 걸까. 아린이는 항상 딱딱하게 메시지를 보내기에 잘 모르겠다.

자신처럼 이렇게 표현을 해주면 알기 더 쉬울 텐데.

아쉬운 마음으로 기숙사로 돌아왔을 때.

백진희에게서 메시지로 사진 하나가 도착했다.

아린이와 같이 셀카를 찍은 것인지. 둘의 예쁜 외모가 사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ㅎㅅㅎ 땡큐]

[ㅇ]

고마움에 메시지를 보내봤더니 싸가지 없는 단답이 왔다.

그래도 백진희와 아린이가 같이 있는 사진은 예열용으로 쓰기에는 좋았기에 방으로 돌아가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노트북에 휴대폰을 연결했다.

아린이가 백진희와 자기가 나온 사진을 모두 지웠기에 노트북에 비밀 폴더를 만들어 따로 저장하는 버릇을 들였다.

아린이의 음란한 모습이 찍힌 동영상도 들어있기에 이중 삼중으로 비밀번호를 걸어놨다.

백진희가 보내준 사진을 비밀 폴더에 집어넣다. 무심코 사진 파일의 옆. 수정한 날짜 탭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찍어서 보낸 줄 알았는데. 자신과 헤어지고 10분도 안 돼서 찍은 사진.

묘한 느낌에 급히 백진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ㅎㅎ 방금 찍은거야? 둘 다 예쁘게 나왔네 ㅇㅅㅇ]

[ㅇㅇ]

씨발년.

거짓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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