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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략 플래그가 세워졌다-25화 (25/160)

〈 25화 〉 스며듬

* * *

다음날. 나는 자퇴할 계획을 세우고 평소처럼 교실로 들어갔다.

"아린아~"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는지. 진희가 교실에 들어서는 나를 무척이나 반가워하며 안겨왔다.

"진희야…."

아무것도 모르고 내 얼굴을 봤다는 이유로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강아지처럼.

단지 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좋아해 주는 진희.

평소였다면 진희 덕분에 하루가 기분 좋게 시작됐을 것이지만.

오늘은 그런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날이 아니었다.

이렇게 나를 좋아해 주는 진희와 서로 모르는 사이가 된다고 생각하니.

입학식으로 돌아가기로 했던 마음이 흔들렸다.

다시 진희와 지금처럼 친해질 수 있을까. 진희의 얼굴을 보며 마음속에 생긴 두려움에 입술을 뜯었다.

"아린아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안 좋은데…?"

"아니, 나도 보고 싶었어. 진희야."

"그래? 마음이 통했네. 역시 평생 친구인가?"

웃으며 말하는 진희의 모습을 더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안겨있는 진희를 살짝 밀어내고 자리에 돌아가자.

진희는 밝은 미소로 자기 자리에 앉아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시선을 피하고 싶은데. 할 말이 많은지. 진희는 내가 바라볼 때까지 기다렸다.

그 투명한 백 안과 시선을 마주치자. 기다렸다는 듯.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성현이랑은 잘돼가?"

"...응."

진희에게는 거짓말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묻고 싶은 게 많은 눈치였지만. 비밀 연애라 누군가 들을 수 있는 교실에서 대화할 수가 없었기에. 진희는 궁금한 게 많은 표정으로 아쉽다는 듯 말했다.

"이따가 점심 먹고 어디까지 진도 나갔는지 말해줘야 해!"

밝게 웃으며 미소를 짓는 진희의 모습에 그만 눈물이 날뻔했다.

급히 진희에게서 시선을 떨구고 감정을 다스렸다.

"...아린아?"

친구가 오늘 조금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는지. 진희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처럼 진희를 대하고 싶은데. 자꾸만 마음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러지 말자. 마지막인데. 웃으면서 보내야지.

진희와는 처음으로 돌아간다 해도 다시 평생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될 거다.

진희는 착하고 남을 배려하는 나와는 전혀 다른 그런 사랑 받을 자격 있는 좋은 아이니까.

마음을 다잡고 진희를 얼굴을 바라봤다. 흰 백발에 흰 백 안. 누구라도 부러워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

물과 기름처럼.나와는 반대되는상반되는 매력을 가진 백진희.

영또플에서 항상 1위 2위 자리를 두고 다투며. 백진희와 묘한 대립관계를 보이던.

단지, 백진희의 성장을 위한 라이벌로만 묘사되는 신아린이.

사실은 평생 친구가 될 정도로 백진희와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알고 있었을까?

궁금증을 삼키며. 진희에게 내 진심을 말했다.

"항상 고마워 진희야. 우린 평생 친구 맞지?"

"당연하지~ 아린이 너는 내 소중한 평생 친구라고."

진희의 따뜻한 마음씨에 미안함과 후회가 찾아와 입술을 깨물었다.

"맞아. 우린 평생 친구일 거야."

"헤헤. 오늘따라 아린이가 이상하네~ 주말에 나랑 놀고 싶구나?"

"응…."

나에게 이번 주의 주말은 오지 않을 테지만. 밝은 미소로 맛있는 음식점을 찾았다며 휴대폰의 화면을 보여주는 진희를 실망하게 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 가득 가슴속을 꾹 누르는 듯한. 그런 압박감을 받으며.

한참을 지키지 못할 주말 약속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내 옆자리에 자신이 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는지. 큰 소리를 내며 김성현이 자리에 앉았다.

"좋은 아침이야. 아린아."

"안녕."

"굿모닝. 백진희."

"응. 안녕 성현아."

어제 일 때문에 자신감이 생겼는지. 조금 건들건들하며 오른팔로 턱을 괴며 나를 멋있는 척 바라봤다.

"어제 좋은 일 있었나 보네. 성현이 기분이 저리 좋은 거 보면. 푸훗…."

속삭이는 진희의 말에 부끄러워져 김성현을 그만하라는 눈빛으로 노려보니.

오히려 느끼한 눈빛으로 한쪽 눈썹을 올리는 김성현의 모습에 결국 진희의 웃음이 터졌다.

마지막까지 김성현과 투닥거리기 싫었기에 시선을 무시하고 진희에게 시선을 고정하자.

김성현이 내 팔을 툭툭 쳤다. 진희의 시선도 김성현을 향해 있기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왜…."

눈앞에는 어디선가 꺾어왔는지 모를. 이름 모를 보라색의 꽃 한 송이를 내밀고 있는 김성현이 보였다.

"마, 오다 주웠다…."

어디서 이상한 대사를 주워들은 걸까. 어울리지 않는 사투리로 부끄러운지 얼굴은 빨개져 놓고 보라색 꽃 한 송이를 내미는 김성현의 모습에.

결국, 나도 조그맣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기숙사에 살면서 나보다 늦게 교실에 들어온 게. 어디선가 꽃을 꺾어 오느라 늦게 온 것 같다.

바보 김성현.

이름 모를 보라색 꽃을 받아들자. 교실 안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으니. 남의 시선 따위는 상관없었다.

진희는 친구의 연애가 잘 돼 가고 있는 것에 기쁜듯한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웃으며 김성현에게 물었다.

"성현아 그 꽃 이름이 뭔지 알고 주는 거야?"

"크흠. 히아신스…."

"그럼 꽃말도 알겠네?"

"몰, 몰라! 오다가 주웠다니까!"

김성현의 과한 반응에 꽃말을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꽃말이 뭔데?"

"..."

"뭔데 성현아?"

정말로 궁금해서 김성현을 바라보고 묻자.

난처한 듯 자신의 이마를 긁으며 김성현이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영원한 사랑."

그 작은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내 마음속 깊이 들어와 내 감정을 흔들어 놨다.

그 묘한 부유감은 내 말문을 막히게 했다.

솟구치는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더는 김성현을 바라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앞으로 돌리니.

엄마 미소를 짓고 있는 진희가 보였다.

"얼레리 꼴레리~"

물론 장난칠 타이밍은 놓치지 않았지만.

*

"자. 조례 끝. 다들 수업 잘 듣고~ 오늘 내가 A반 수업이 있나? 없네. 이따가 종례 때 보자."

그렇게 말하고 기한신이 나가려다가. 갑자기 뒤돌아 김성현을 지목했다.

"김성현. 너는 나따라 교무실로 와. 교장 선생님 화단에서 꽃 꺾어갔다며?"

담임의 말에 그 꽃을 받은 게 나라는 걸 아는 교실의 애들이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나와 있을 때는 차갑고 권위적이던 말투였는데. 연기도 잘하지. 저 평범한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

기한신이 사실은 미친놈이라는 걸 눈치챈 사람이 있을까? 확실한 건 이 아카데미에서 기한신의 평가는 상당히 좋았다.

잘생긴 외모. 학생들과 원만한 관계. 젊은 나이. 좋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돌아간다면 가장 경계해야 할 사람으로 기한신을 마음속 1순위로 올려놨다.

김성현은 고개를 떨구고 기한신의 뒤를 힘없이 따라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그래도 나에게 꽃을 준 것이. 자신이 생각하기엔 뿌듯했는지.

모습이 사라지기 전에 뒤를 돌아. 나에게 눈웃음을 지으며 손 하트를 살짝 만들어 보냈다.

진짜 바보….

김성현이 무심코 하는 행동이. 내 결심을 가볍게 흔드는 것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

수업이 시작하기 전 나는 화장실에 간다고 둘러대고 교실에서 빠져나와 교장실로 향했다.

자퇴하려면 교무실로 가서 신청하면 되지만. 일단은 담임인 기한신이 교무실에 있기도 했고. 내가 자퇴해서 도망치려는 것을 눈치채면 무슨 짓을 할지 몰랐으니까.

저번 처음 자퇴할 때. 차성의 후계자라는 이유로 급히 학교로 돌아와 나를 자퇴시켜준 교장이라면.

오히려 직접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사실에 기뻐할 것 같았다.

진희와 김성현과 조금 더 많은 대화를 나눴어야 했을까….

아쉬운 마음이 발걸음을 붙잡았다.

이대로. 내가 아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는 게 아닐까.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살지는 않을까.

머리를 가득 채우는 불안감에 교장실 문을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차라리 점심시간에 돌아갈까.

한참을 문 앞에서 고민했다. 약해지는 마음을 가까스로 다잡고 한숨을 쉬며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듣기 좋은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흰머리가 듬성듬성 보이는 교장이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문을 닫고 다가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학생이 무슨 일인가?"

온화한 미소를 짓는 교장에게 곧장 본론을 꺼냈다.

"저는 1학년 신아린이에요. 차성의 후계자."

"오. 기억하지! 아린 학생. 학교생활은 어떤가?"

"자퇴하려고요."

"그래, 자퇴…. 뭐?"

"집안 사정 때문에 자퇴해야 해요."

"아니, 그래도 갑작스럽게…."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교장에게 미리 기한신의 눈을 피해 교무실에서 빼돌려 작성한 자퇴서를 내밀었다.

"해주실 거죠?"

"그래도 자퇴하려면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난처한 표정으로 말하는 교장에게 휴대폰을 내밀며 말했다.

"저희 아버지도 동의한 건데. 직접 물어보실래요?"

사실 휴대폰에 적혀 있는 건 차기사의 번호지만. 나는 괜한 허세를 부렸다.

어쩐지 요즘 거짓말이 늘어나는 것 같다.

"아니, 그럴 필요까지야…. 알았네. 내가 바로 처리해주지."

황급히 내 손에 들린 자퇴서를 챙긴 교장이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책상에서 인주와 도장을 꺼내 들었다.

"내가 곧 처리할 테니. 바쁠 텐데 이만 집으로 돌아가도 좋네."

"네. 감사합니다."

거짓말이 생각보다 잘 통해서 조금 기뻤다.

교장실에 나와. 교장의 말대로 집으로 가지 않고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언제 다시 입학식이 진행되는 날로 돌아갈지 모르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진희와 성현이와 같이 있고 싶었으니까.

교실로 돌아온 나는 태연한 얼굴로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왔기에 나는 그저 옆자리에 앉아 무언가 생각 중인 것 같은 멍한 상태의 김성현을 바라봤다.

그 멍청한 얼굴을 보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올려봤다.

김성현의 동정을 막아야 할까.

소니아를 내가 막지 않는다면.

지금의 김성현은 다시는 볼 수 없는 걸까?

내 고민 섞인 시선을 느낀 것인지. 멍하니 있던 김성현이 고개를 살짝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선생님에게 들키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왜?"

"...그냥."

"감동 받았지?"

씨익 입꼬리를 늘리며 순박한 미소를 보이는 김성현의 모습에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당황함을 숨기려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려 했지만, 더 이상하게 들려서 그만뒀다.

"바보. 꽃 땜에 많이 혼났어?"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화단 청소하래."

입술을 내밀며 `꽃 한 송이에 일주일 청소가 말이되냐` 툴툴거리는 김성현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는걸.

나는 곧 입학식으로 돌아간다는 조급함에.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성현아. 나 좋아해?"

맥락도 없이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도 김성현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밝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정말로 좋아해 아린아."

"...바보."

그 모습에 결국 오늘은 울지 않으려 했지만. 내 이성의 충고를 무시하고 내 눈에서 감정이 흘러나왔다.

"왜, 왜 울어?"

당황해하며 속삭이는 김성현의 얼굴을 더 이상은 볼 수가 없어서.

얼굴을 책상에 파묻었다.

차라리 얼른 입학식 때로 돌아가길 빌었다.

김성현에 대한 죄책감이 너무나도.

마음을 아프게 했으니까.

내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자. 당황했는지. 김성현은 어찌할 줄 몰라하며 자신의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내 책상 위로 건네줬다.

휴지를 받아 눈물을 닦고 아직 울렁거리는 시야로 김성현을 바라보자.

김성현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안해. 부담스러웠어?"

"아니야 그런 거."

처음으로 살면서 누군가에게 꽃 같은 걸 받아봤으니까.

김성현은 기억하지 못해도.

나는 항상 처음으로 꽃을 받은 건 김성현이라는 기억을 갖고 살겠지.

보라색 히아신스.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기억한 채.

오늘을 그리워하진 않을까.

"꽃이 한 송이라…?"

"그런 거 아니라고. 바보야."

내가 운 이유를 알고 싶은지 분위기 깨게 자꾸 옆에서 추측하는 김성현을 장난스레 흘겨보며 웃자.

김성현은 다시 멍청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

"김성현! 임마 수업 중에 누가 떠들래. 자리에서 일어나."

장난치려던 김성현은 결국 선생님에게 혼이 났다.

떠든 벌로 교과서를 들고 뒤에 서 있게 된 김성현은.

선생님의 시선을 피해 몰래 나에게 교과서를 찢어 무언가를 적은 뒤. 딱지처럼 접어 내 책상 위로 선생님의 시선이 칠판으로 돌아갔을 때 냉큼 던졌다.

책상 위에 올라온 딱지를 보며 김성현에게 몸을 돌려 의문스러운 시선을 보내자.

김성현은 어서 읽으라고 재촉의 눈빛을 보냈다.

책상 위에 접혀있는 딱지를 풀어 적혀 있는 글을 읽자.

나는 숨을 쉬는 방법을 까먹었다.

삐뚤삐뚤한 글씨. 초등학생이 쓴 거 아니냐고 의심해도 될 정도로 악필로. 꾹꾹 눌러가며 종이위에 적은 글.

[아린아 너도 나 사랑해?]

종이 위에 쓰여 있는 단순한 글자가. 내 위선적인 거짓말로 둘러싼. 역겨운 내 마음을 깊숙이 찔러 들어오는 것 같아서.

종이 위로 눈물이 떨어져. 글자들이 마치 곧 사라질 것처럼 뿌옇게 바꿔갔다.

나는 급히 공책의 한 페이지를 찢어.

김성현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빠르게 적었다.

지금 이 순간에라도. 당장 입학식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까.

성현이에게 미안한 것과 내 잘못들을 적으려면 하루로는 부족했기에.

나는 한 줄의 말로 내 모든 마음을 담았다.

[내일도 너랑 같이 있고 싶어]

기한신이 아니었다면. 내일도 주말도 김성현과 같이 보냈을 텐데.

나는 적은 종이를 구겨 바닥으로 굴려 김성현에게 보냈다.

종이에 적힌 글을 본 김성현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멍청하게 아무것도 모르면서. 정말로 기쁘다는 듯 환하게 웃는 모습에.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감정을. 더는 참을 수가 없어 나는 교실을 뛰쳐나왔다.

뒤에서 들려오는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와 나를 따라오려는 김성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제발 따라오지 마!"

내 목소리를 들은 김성현이 따라오던 걸음을 멈췄다. 나는 뒤 돌아보지 않고 곧장 아카데미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곧 자퇴처리가 되면 입학식으로 돌아갈 것이기에 잠시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자 강당으로 들어갔다.

강당 안에는 수업이 진행 중인 것 같아. 사람들을 피해 계단을 오르다 보니. 몇 번이나 왔던. 익숙한 곳까지 올라왔다.

소니아와 김성현과 몇 번이고 만났던 장소.

이제 다시 김성현의 동정을 노리는 소니아를 막아서야 할 곳.

떠오르는 기억들을 애써 무시하고.

남자화장실의 문을 열어 김성현이 입학식 날. 항상 숨어있던 변기 위에 앉았다.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누구의 시선이 없다는 사실에.

나는 처음으로 내 감정에 솔직해졌다.

허벅지 위로 눈물이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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