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칠격(?)
* * *
초록의 눈을 가진 미남은 카페에 앉아 맞은 편에 누군가 앉기를 기다렸다.
카페 안의 여자들은 자연스럽게 홀로 앉아 있는 미남에게 관심을 주었지만. 주위 여성들의 뜨거운 구애에 가까운 시선에도 남자는.
입을 다물고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외국의 고위 귀족 같아 보일 정도로 카페 안에서 홀로 고고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 고고한 귀족 같은 모습에 카페 안의 여자들이 자신들만의 망상 속으로 이름 모를 미남을 끼워 넣을 때. 카페 알바생의 목소리가 카페 안을 울렸다.
띵동
"147번 손님. 주문하신 딸기 스무디 나왔습니다."
"..."
"147번 손님~!"
"아."
생각에 잠겨 있던 알펜시아는 영수증의 번호를 확인하고 냉큼 계산대로 달려갔다. 기다리던 여자 알바생이 미소와 함께 알펜시아의 외모를 훔쳐보고는. 딸기 스무디가 담긴 쟁반을 넘겨주었다.
그것을 들고 자리로 돌아온 알펜시아는 딸기 스무디를 마시며 시간을 확인했다.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까지 약 1분 전.
그 시간까지 상대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냥 스무디를 들고 나갈 생각이었다. 갑작스럽게 당일에 잡힌 약속이었고 대장의 명에 억지로 자리에 나와. 좋은 감정은 아니었으니까.
딸기 스무디를 빨며 오른손의 시계를 다시 확인했다. 약속 시간까지 30초 남았다. 이대로 맞은편의 상대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필이면 오늘 한정판으로 나온 게임의 프리미엄 박스가 긴 기다림 끝에 배송 오는 날이었다.
몇 주 동안 오늘만을 기다리며 택배 아저씨의 얼굴을 보기만을 기대했는데….
알펜시아의 기대를 저버리듯 누군가 들어오며 알바생의 환영을 받는소리가 들렸다.
딸랑
"어서 오세요! 원두원츄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자는 어깨까지 오는 단발의 머리를 했다. 생기 있는 검은 눈동자는 흑요석과 같이 빛나고 있었다. 필시 지금보다 몇 년이 지나면 더욱더 성숙해져 빛을 낼 아름다운 외모.
고객과 자주 만나는 미팅담당인 알펜시아는 한눈에 미녀가 부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회색 투피스 옷을 입고 있는 미녀의 옷은 일반인의 기준으로는 상당히 비싼 고급 브랜드였다.
그 미녀는 주위를 둘러보다 알펜시아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몸을 뒤로 빼며 움찔하더니. 긴장한 듯 입술에 침을 바르며 다가왔다.
"알펜시아 맞…. 죠?"
"네. 오늘 갑자기 만나기로 약속한 신아린씨 맞으십니까?"
"맞아요. 신아린이에요."
대뜸 손을 내밀며 자연스럽게 악수를 청하는 신아린의 모습에 알펜시아는 오지 말라고 빌었던 속마음을 숨기고 영업용 미소와 함께 손을 맞잡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 나올 줄 몰랐네요. 향수라도 뿌리고 올걸. 예의가 부족했네요."
"아, 크흡…. 그러시구나."
자신의 말에 웃음을 참듯 입꼬리를 씰룩대는 신아린의 모습에 무언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여태까지 여자들에게 능글맞은 목소리로 영업용 멘트를 날릴 때 보던. 흔한 웃음이 아닌.
진짜로 웃겨서 무언가가 웃겨서 참는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신아린의 검은 눈에 담긴 호기심과 즐거운 듯 보이는 표정에 알펜시아는 입술을 만지며 눈앞의 여자를 어떻게 상대할까. 그 방법을 고민했다.
"...똑같네 진짜. 크큭."
"네?"
"아, 아니에요. 혼잣말 혼잣말."
무어라 중얼거리며 혼자 웃길래 되물어보자. 손사래 치며 당황하는 모습에 알펜시아는 그냥 고개를 끄덕여줬다.
조금은 어색해진 분위기에 알펜시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뭐 주문부터 할까요? 저는 기다리면서 미리 딸기 스무디 하나 시켜서."
"아. 제가 주문하고 올게요. 그럼."
주문하고 영수증을 가지고 돌아온 신아린이 자리에 앉자. 알펜시아는 늘 그렇듯 영업용 대사를 말하려 했지만 신아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의뢰가 있어요."
"아. 저희 오펀스에 의뢰를 주시는 건가요? 자랑일지 모르지만, 저희 오펀스 길드는 3명의 A+급의 영웅과"
"아, 오펀스가 아니라. 칠격이요."
자신의 말을 끊고 칠격(?)을 입에 올린 신아린의 행동에. 일순간 알펜시아는 잠시 멈칫했다. 이곳에서 나올 단어가 아니었기에.
자신은 오펀스의 의뢰를 받기 위해 나왔다. 오펀스는 칠격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 길드.
칠격의 존재는 어떻게든 알아냈을 수 있다. 그런데 오펀스가 사실은 칠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건 얘기가 달라진다.
일이 틀어진다면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다 죽여야 했으니까.
"칠격이라…."
혼잣말하는 척 상대방의 반응을 살펴봤지만. 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칠격이라는 이름을 입 밖으로 꺼냈을 때의 위험성에 대해 전혀 모르는 건지. 단순히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알펜시아는 심한 갈등을 느꼈다.
"죄송하지만 저희는 오펀스라는"
"아,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저는 차성의 후계자. 신아린이에요. 초월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어요."
자꾸 말을 끊는 무례한 행동이 거슬렸지만. 차성이라는 단어에 알펜시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 차성기업의 후계자라고 말한 거 맞습니까?"
조금 의심하는 말투로 물어보자.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자신이 사진이 나온 뉴스를 보여주었다.
[차성의 후계자. 초월 아카데미에 입학하다!]
"확실하네요."
차성의 후계자에 대한 홍보성이 짙은 기사였지만. 그렇기에 더 믿음이 갔다. 거기에 사진에 나온 후계자의 모습은 확실히 눈앞의 신아린과 똑같았으니까.
물론 후계자로 변장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배경과 동화돼있는 카라에프가 조용한 거 보면. 그냥 평범한 영웅지망생이 맞나 보다. 아니지. 재벌후계자인 영웅지망생으로 고치자.
칠격과 관련된 얘기였기에 주변의 공간에 마력을 둘러 다른 사람이 대화 내용을 듣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칠격에 맡길 의뢰는 어떤 것일까요?"
흥미롭다. 칠격 같은 불법적인 자경단을 아는 것조차 놀라운데. 그 상대가 차성의 후계자. 거기에 아직 소녀티를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
간만에 무료한 삶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눈앞의 흥미로운 고객님에게 영업용 미소를 보여주며. 어떤 의뢰를 맡길까 흥분으로 조금 긴장하자. 밝은 미소를 지으며 신아린이 입을 열었다.
"149번 손님~!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일단은~ 커피가 나왔네요~"
알바생의 외침에 영수증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 악동 같은 모습에.
알펜시아는 긴장했던 몸을 풀며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
지하 깊숙이.
탐지 마법조차 닿지 않을 위치에 존재하는 자연동굴.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이 손꼽힐 정도 비밀스러운 공간.
칠격(?)의 비밀 아지트.
그곳은 자연동굴이라는 의미를 잊은 지 오래.
온갖 무기들과 개인 훈련장. 악인을 위한 감옥, 마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최첨단 장비들이 설치된 하나의 시설이었다.
옥색의 우는 듯한 표정의 가면을 쓴 남자는 자신의 의자에 앉아 자신 앞에 서 있는 초록색 눈동자를 응시했다.
자신의 명을 받아 나갈 때는 나가기 싫다는 표정으로 있는 티 없는 티 내며 발을 쿵쿵거리며 나가놓고는.
그 초록 눈동자에 생기가 가득한 것이. 무언가 재밌는 일을 가져온 듯 싶었다.
자신의 예상이 맞았는지. 조금 기쁜 목소리의 알펜시아가 입을 열었다.
"한림. 일이 들어왔어."
"오펀스지? 이번엔 뭐야? 준비 없이 던전에 들어간 멍청한 놈들 구하기?"
"아니, 칠격 쪽이야. 그것도 한림. 당신 지명으로."
깜짝 놀랐지? 라는 표정으로 자신을 관찰하는 알펜시아의 모습에 조금 불쾌함을 느낀 한림이 의자에 파묻힌 몸을 뒤척였다.
"...나를 지명했다고?"
칠격에서 가려진 우두머리. 0번의 신한림.
자신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은 칠격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고 오늘까지 믿어왔다.
"그래, 그것도 차성쪽."
차성(?成).
그 이름이 주는 무게감에 한림도 알펜시아처럼 흥미를 느꼈다.
"차성쪽이 어떻게 우리를 알고 있는 거지? 그것도 나에 대한 것도?"
"글쎄, 아마도 차성이니까?"
"확 이해되네."
돈을 복사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최근 엄청난 기세로 부를 축적하고 있는 기업. 차성정도라면 아무리 비밀 자경단인 칠격의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쉬웠을 것이다.
비밀이라고 해도. 활동하는 집단이기에. 정보와 관련된 것에 독보적일 정도의 기업이었으니까.
"그래서, 의뢰 내용은? 호위? 감시?"
재벌이나 중요인사를 보호하기 위해 불법 자경단인 칠격을 불법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S급 영웅들에게 호위를 받는 것만큼 안전한 것이 없지만.
신의 대리자. 라는 거창한 호칭을 받는 S급 영웅은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항상 그 행보가 협회에 밝혀져야 했으니까.
마인과의 싸움에서 칠격은 S급 영웅과도 어느 정도 차이가 날 만큼. 마인전에 있어서는 특화된 집단이었다.
대부분의 그런 의뢰요청이 그들의 직감처럼. 마인과 접촉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마인을 멸(?)하기 위해 존재하는 칠격(?)의 존재가치와 맞아떨어지는 의뢰였고.
의뢰보상도 쏠쏠했기에 재력을 담당하는 오오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다.
"감시."
"제보자 쪽?"
"아니, 제보자 남자 친구라던데?"
"남자친구?"
"응. 남자친구를 마인이 노린다고 하던데?"
"마인? 어떻게 마인이 남자친구를 노린다는 걸 알았다고 하지?"
현재 마인임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시체의 심장을 갈라 마석을 확인하는 방법뿐이었다. 마인 전문인 칠격에서 조차. 약 70%에 가까운 확률로 마인을 사냥한다. 나머지는 그냥 마인같이 역겨운 악인이었을 뿐.
"그거까진 모르겠어. 좀 더 조사해봐야지~ 뭐, 그 소녀는 마인임을 확신하던데? 마인화 능력까지 알고 있다 하더라고."
"소녀?"
"응, 의뢰주가 소녀야. 그것도 미소녀이자. 차성의 후계자."
알펜시아의 말에 신한림은 더욱더 의문이 들었다. 마인화의 능력을 알 정도면 그 마인의 전투를 보았을 터. 그런데도 살아있다니. 점점 흥미롭다.
"마인화 능력이 뭐라는 데?"
"권능이래. 자신이 받은 공격을 되돌려주는 일종의 `저주`. 초 회복 능력도 있어서 엔간한 영웅들은 자기가 휘두른 검에 죽는다더군."
"카라에프의 능력이면 괜찮을까?"
"신살(??)의 능력이면 권능의 파훼가 가능할지도? 실패하면 자기 목이 따이겠지 뭐. 저 권능이 진짜니까. 대장을 지명한 거 아니겠어~? "
알펜시아의 책임감 없는 말에 신한림의 고민이 커졌다. 카라에프의 능력은 칠격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무기. 여기서 부러진다면 칠격이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상당한 지체가 된다.
그렇다고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기에는 좋은 미끼를 걸어놓은 함정일 수도 있다.
"확실하게 확인 될 때까지 움직이지 마. 렌지포한테도 연락해 정보를 교차 검증해보고. 우시오는 일 중인가?"
"린자이? 어디 호텔에 들어가 빈둥대고 있겠지."
상대의 기억을 읽을 수 있는 린자이 우시오의 능력이 있다면 정보의 신뢰성을 확인하기 편할 터. 가면을 쓰다듬으며 머릿속에서 계획을 세웠다.
"의뢰주를 불러. 계약서를 써야 한다고 둘러대고. 우시오에게 의뢰주를 확인해보라 해."
"그러지~ 근데, 추가 의뢰가 하나 더 있어."
조금 전 보다 더 장난기 섞인 눈동자에 정말로 물어보기 싫었지만.
얼른 물어보길 기대하는 듯한 눈빛이기에 신한림은 속으로 한숨을 쉬고 물었다.
"뭔데?"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던데? 그것도 출생부터 아주 자세하게. 자신이 숨기는 비밀까지 알아내 보라더군."
"...진짜 뭔데?"
이번 의뢰주는 괴짜인가? 하긴 차성 같은 재벌 집의 후계자면. 괴짜인 게 그다지 이상하진 않다. 그게 더 개연성있달까?
"우리를 시험하는 거 아니겠어?"
"뭐?"
"아무래도 `차성`이니까. 칠격에서 자신의 정보를 빼낼 수 있을지. 확인해보고 싶은 거 아닐까?"
알펜시아의 말은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일부러 칠격에 직접 찾아오지 않고. 오펀스의 길드 장으로 변장하고 있는 알펜시아를 만나 칠격에 의뢰를 하는 괴짜다운 인물이라면.
이 정도의 요구는 하겠지.
나는 너희가 숨기는 비밀까지 알고 있다.
너희는 내 비밀을 알 수 있을까?
그 오만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감히. 나의 칠격을 의심하다니.
차성이라 해도 건방지다.
"...그 시험 받아주지."
결연한 말을 뱉는 신한림의 모습을 보며 알펜시아는 놀릴 생각에 신나 입을 열려는 데.
신한림이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려 알펜시아를 바라봤다.
"아 맞다. 택배 왔는데 아무도 없어서 내일 다시 온다더라."
"...내가 곧 택배 온다고 말했잖아? 받아두라고! 그걸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어폰 끼고 게임을 하느라 못 들었다. 미안."
"이런 미친놈아!!!"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들며. 택배 영수증을 한손으로 내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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