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실습 끝. 휴식
* * *
"아린아."
나를 부르는 귓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니 눈앞에 백발의 미소녀가 하늘을 대부분 가리는 나무들 사이에서 흘러나온 햇빛을 받으며. 마치 영화에서 나올 법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영화에서 보던 엘프와 같은 그 찬란한 아름다움에.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런 착각을 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진...희?"
갈라지는 목소리에 가까스로 목소리를 내자. 목구멍을 낚싯바늘로 긁어낸 것처럼 싸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 통증에 내 목을 부러트릴려던 소니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순간 잊고 있던 두려움이 기다렸다는 듯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소니아가 내 목숨을 쉽게 뺏을 정도로 위험하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다. 만약 김성현이 소니아와 관계를 맺어 능력을 각성한다면 특정 방법으로 입학식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는 있지만, 변수가 너무 많았다.
김성현이 각성하면 입학식 날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정확한 조건을 모르는 상태에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지금 회귀의 조건으로 알고 있는 것은 김성현의 죽음과 내가 아카데미 재학생 신분을 유지 못 하는 것이다.
여기서 최근까지 가장 고민하던 가설.
내가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저 평범한 죽음처럼 그대로 내 이야기는 끝이 나는 걸까.
아니면 김성현의 죽음 때처럼 다시 입학식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는 걸까.
그렇다고 그걸 확인하기 위해 자살을 한다는 건 정말로 멍청한 짓이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
김성현을 죽였을 때는 어느 정도 내 가설에 확신이 있었다. 김성현이 그대로 죽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은 흐름이 아닐까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도 있었고.
당시에는 몇 번이나 입학식으로 회귀했기에 정신적으로 몰려있었기도 했다.
김성현과 소니아의 행위를 보고 당장 달려들어 막아서지 못한 것도 단순히 내 안전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소니아를 막을 수 있는 교사들과 상비 영웅들이 있는 초월 아카데미와는 다르게. 이곳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
결국, 머리를 쥐어짜 생각 끝에 떠올린 방법은. 비상용 신호탄을 쏴. 교관을 부르는 것.
소니아가 허튼짓을 하지 못하게 방지하고 도망치는 방법이 내게는 최선이라는 결론 이었다.
그런데 소니아의 위에서 탐욕적인 시선으로 자지를 세우고 있는 김성현의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이성을 잃었다.
나와의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해 화가 났던 걸까? 아니면 나와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는 김성현의 말에 참아왔던 짜증이 폭발했던 걸까. 머릿속을 가득 채운 분노는 이성적인 판단을 무시하고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소니아와 김성현이 누워있던 덩굴을 검으로 잘라냈다. 반쯤은 김성현이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 무책임한 행동.
잘못되더라도 김성현이 죽는다면 다시 되돌아가 상황을 바꾸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에 한 행동이었다.
나중에서야 이성을 찾고 계획대로 비상용 신호탄을 쐈지만. 분노에 빠진 나는 이성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 자리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소니아에게 다가가 도발을 하다 죽을 뻔했다.
글자로 쓰여 있는 죽음의 공포에 대한 설명과. 실제로 소니아에게 목이 잡혀 거의 죽을 뻔한 경험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수백의 책을 읽는 것보다. 단 한 번의 경험이 큰 차이를 만든다는 말이 왜 있는지 몸으로 깨달았다.
몸 안을 가득 채우는 죽음의 공포에 심장이 크게 뛰었고 머릿속은 정리하지 못한 생각들에 터질 것 같아 아파져 왔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몸을 일으키려 했는데.
진희가 손으로 막아섰다.
몸을 일으키려던 어정쩡한 자세로 굳은 나를. 진희가 손으로 어깨를 눌러 다시 눕혔다.
"조금 더 누워 있어. 몸은 괜찮아?"
"...어떻게 된 거야? 김성현은 어떻게 됐어?"
내 질문에 진희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내 앞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마. 잘 해결됐어. 성현이는 소니아랑 함께 교관들한테 조사받고 있어."
진희의 말에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죽을 뻔 했지만. 어떻게든 잘 풀린 것 같다.
"다행이네……."
"뭐가 다행이야. 이렇게 다치고."
잘못을 혼내려는 듯 꿀밤을 먹이는 할 말이 없어 웃자. 진희도 마주 웃었다.
"묻고 싶은 건 많은 데. 너도 마음이 복잡할 것 같으니까. 묻지 않을게."
"고마워…."
나를 배려하는 진희의 마음씨에 진심으로 고마웠다.
"기다려봐. 이러면 조금은 나을 거야."
내 목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는 진희의 손길에 조금 통증을 느껴 몸을 움찔하자. 진희가 내 불안을 덜어내려는 듯. 다른 한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아줬다.
"시원할 거야~ 붓기 좀 가라앉히자."
목에 얼음을 가져다 댄 것 마냥 차가운 촉감이 느껴져 놀라자. 괜찮다는 듯 미소를 보여주는 진희의 모습에 불안함을 지우고 편안한 자세로 목에 힘을 뺐다.
"빙결이 내 능력이거든. 시원하지? 여름에 얼마나 좋은 데. 조절만 잘하면 이 정도로 좋은 능력은 없어. 에어컨이 필요 없다니까?"
진희의 말대로 목에 닿은 손은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영또플에서 보던 백진희의 빙결능력을 실제로 본다는 것이 신기했다.
실제로 능력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고개를 내리자. 진희가 손가락으로 내 턱을 치켜세웠다.
"어허. 환자는 가만히 있어야죠?"
진희의 장난기 섞인 목소리에 결국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진희는 이토록 남을 편안하게 만들 수 있을까. 타고난 걸까? 돈을 주고 배우고 싶을 정도로 대단한 능력 같았다.
나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진희는 영또플에 진히로인이라고 불릴만한 그런 매력을 가진 여자였다.
역시 내가 코인을 탄 여자.
"고마워 진희야."
"...내가 더 고맙지."
"응? 뭐가?"
진희의 대답에 궁금함이 들었지만.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려는 지. 아무 말 않고 진희는 나를 바라보며 자애로운 미소만 지었다.
내 목을 어루만지는 진희의 부드러우면서도 차가운 손길에 마사지를 받는 것처럼 노곤해져 눈이 저절로 스르르 감길때쯤. 진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보다. 구슬은 다 모았어?"
"아. 청구슬 하나랑 백구슬 하나 남았어."
"다행이다. 백구슬은 어제 `우연히` 두 개 구해서 하나 남거든. 남은 거는 너 줄게. 청구슬만 얼른 찾아보자."
손을 잡아 몸을 일으켜준 진희는 생존 가방에서 백구슬 하나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정말 고마워 진희야."
"고맙긴. 얼른 찾자. 내가 도와줄게! 곧 실습 끝날 시간이야."
진희의 말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남은시간 00:26:34]이 보였다.
26분 안에 청구슬을 찾을 수 있을까? 괜히 나 때문에 진희가 고생하는 거 아닐까 싶어. 미안한 마음에 넌지시 포기하자고 말하자 진희가 조금은 무섭게 정색하며 말했다.
"포기하면 그냥 끝나는 거야. 마지막까지 노력해야지 따라와."
처음 보는 조금 무서운. 서늘한 표정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보는 진희의 모습에 내 잘못을 느꼈다. 내 모습에 실망했을까? 눈치를 보느라. 조금은 대화가 없어진 어색해진 분위기로 진희의 뒤를 따라 길을 걸었다.
"아마도 이 근처에 하나 있을 것 같아. 어제 이런 비슷한 곳에서 청구슬을 많이 찾았거든."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탐색하던 나무들과 다르게 열매들이 높은 곳까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저쪽으로 가면 김성현이랑 소니아 있으니까. 괜히 엮이지 말고 여기서부터 찾자. 내가 아래 위주로 볼 테니까. 아린이가 위쪽을 보면 될 것 같아."
김성현이라는 말에 조금 몸이 떨렸다. 분노인지. 실망감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차오르는걸. 애써 무시했다.
"알았어. 고마워 도와줘서."
"고마우면 나중에 밥이라도 사~ 재벌이 사주는 밥 한번 먹어보자."
다시 장난기 섞인 진희의 목소리에 조금 어색했던 분위기가 풀려 나도 불편한 마음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 위로 올라가 청구슬을 찾기 위해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남은 시간이 촉박했고 예상치 못한 김성현과 소니아의 상황에 시간을 소비했기에 파툴가의 마법 장갑을 찾는 것은 이대로 포기해야 했다.
"아쉽긴 하네…."
파툴가의 마법 장갑이 있다면 그 효용성은 나에게는 상당히 컸다. 신아린의 기억이 없으므로 기본 전투력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상대의 마나 운용을 멈추는 사기적인 유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1인분은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런저런 아쉬움을 뒤로하며. (자꾸 떠오르는 김성현의 멍청한 얼굴을 무시하고) 남은 시간이 10분도 채 되지 않아 조금 축 처진 어깨로 자포자기하며 밑에 있는 진희를 내려다보자.
내가 잘 찾고 있는지. 바라보고 있었는지. 서늘한 백안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를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닌. 내 뼛속까지 들여다보는 듯한 서늘한 시선.
그 시선에 뒷목을 누군가 바늘로 긁는 듯한 소름 돋는 감각이 느껴졌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감각에 어리둥절할 때 진희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린아. 거기 없다고 가만히 있지 말고. 저쪽을 찾아보는 건 어때?"
"어, 어엉."
생소한 감각에 무언가 껄끄러운 감정이 가슴에 남았지만. 날 위해 고생해주는 진희의 말을 거부할 수 없어서 진희가 지목한 나무로 옮겨가 열매들을 만지작대었다.
한참을 만지작거리다. 무심코 열매를 만지려 덩굴을 치우다 눈에 들어온 장갑의 모습에 얼어붙은 듯 그대로 멈춰 섰다.
"이게 왜…."
사람의 손길을 전혀 받지 않았는지. 자라난 덩굴이 한 몸인 것처럼 장갑을 둘러싸며 자라있어 겉으로 봐선 알아볼 수 없었지만. 덩굴을 치우자 둘러쌓은 덩굴의 사이로 붉은빛을 발하는 장갑의 손등에 각인된 룬문자의 모습은 숨길 수가 없었다.
하늘도 내가 불쌍해 보였던 걸까. 아니면 내가 운이 좋은 걸까? 파툴가의 마법 장갑이 이렇게 내 손안에 들어오다니. 심장이 떨려왔다.
진희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찾는 것을 포기했을 텐데. 포기하지 않게 도와준 진희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앞으로 진희 말은 잘 들어야지.
진희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그리고.
"찾았어 아린아!"
진희도 기다렸다는 듯이. 실습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에. 타이밍 좋게 마지막 청구슬을 찾았다.
***
실습의 종료되고 다음 날. 초월 아카데미의 1학년생 전부는 휴식의 날을 갖게 되었다. 처음으로 1박 2일이라는 실습을 한 병아리들을 위한 일종의 보상이랄까.
목에 남은 상처가 오래갈까 걱정했는데. 비싼 포션으로 치료하니 흉하나 없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역시 돈이 최고야.
오전의 수업만 진행했기에. 진희에게 약속했던 대로 저녁밥을 사주기로 했다.
뭘 사줘야 할지 고민하다 진희에게 먹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자기도 고민된다며 차라리 만나서 먹을 것을 정하기로 했다.
진희와 처음으로 단둘이. 밖에서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은 떨렸다. 오늘은 특별히 조금 더 꾸미기로 해. 임유모에게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말했더니.
직접 화장까지 해주셨다. 나이가 있으시기에 조금 걱정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잘하시길래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더니. 웃으시며 과거에 메이크업 일을 했다고 하셨다.
임유모의 추천을 받아 하늘색 테니스 치마와 오프 숄더 티를 입고 약속 장소로 나가자. 기다리고 있는 진희의 모습이 보였다.
청바지와 티셔츠. 간단한 조합인데도 정말 잘 어울렸다. 검을 쓰는 검사였기에 옷태도 상당히 좋았다. 거기에 진희도 화장한 것인지. 평소보다 더 예뻐 보였다.
무표정한 모습으로 휴대폰을 만지는 모습은 조금은 차가워 보였지만. 그 모습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나에게는 잘 웃어줘서 그런가?
"진희야~!"
"왔어?"
진희의 무표정했던 얼굴에 미소가 걸리자. 더욱 예뻐 보였다. 진희는 웃는 상은 아니었지만. 워낙 외모가 예쁘기도 했고 웃을 때 짓는 눈웃음이 사람을 기분 좋게 했다.
진희와 단둘이 밥 먹는 게 왜인지. 1대1 데이트 같아서. 조금은 가슴이 떨렸다. 아무리 여자로 변했다 해도 나는 아직도 자신을 남자라고 의식하고 있었고.
이런 미녀와 데이트하고 싶다고 항상 꿈꿔왔기에 눈앞 진희의 모습에 혼자 설렘을 느꼈다.
"오래 기다렸어?"
"나도 금방 왔어."
무언가 연인 사이에나 나눌법한 대화 같아 보여 마음을 숨기고 웃자. 진희도 웃어주며 팔짱을 꼈다.
"배고파? 앞에 팝업 스토어 있던데 구경하고 갈까?"
"어, 어어…. 구경하자."
팝업 스토어가 뭐지. 화장품 가게 같은 건가? 남자일 때 친구를 만나면 피시방 아니면 술이었기에. 생소한 단어에 그냥 좋은 곳이겠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희와 함께 길을 걷자. 지나치는 남자들이 나와 진희를 멍청히 바라보는 모습이 자꾸 보여 눈에 거슬렸다.
진희는 타인의 시선에 익숙한 듯 무관심했지만. 평범에서 조금 모자랐던 나는 이런 시선이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지금은 많이 보이지 않지만. 아카데미 입학식 날부터 사심 섞인 시선들이 내 몸을 위아래로 훑는 것이 마치 촉감처럼 느껴져 불쾌했던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길거리에서는 오히려 노골적으로 음흉한 시선을 보내는 남자들이 많았다. 심지어 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내 팔목을 잡기도 했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조금 양아치같이 생긴 남자가 음흉한 시선을 숨기지 못하고. 싸구려 향수냄새를 풍기며 추파를 던졌다.
"저기, 우리도 둘인데 같이 놀래요?"
"아니요. 선약이 있어서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혀가 굳은 나와는 다르게. 진희는 내 팔목을 잡은 손을 치우고 단호한 목소리로 거절을 표했다.
"아이, 그러지 말고. 같이 놀아요. 4명이 놀면 더 재밌어요. 술도 살게요."
"미성년자라서요. 죄송합니다."
"에이! 거짓말이죠?"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진희는 팔을 끌어당겨 나를 데려갔다. 포기하지 않고 뒤따라오며 뭐라 말하던 남자는 우리의 무대응에 결국 뒤통수에 대고 무어라 욕을 하고는 사라졌다.
" 이상한 사람이네."
"그러게…."
"됐어. 신경 쓰지 말자. 도착했으니까!"
진희를 따라 들어간 팝업 스토어는 디퓨저를 파는 곳이었다. 입구에서부터 나는 기분 좋은 향기에 첫인상이 좋았다.
"이거 봐!"
진희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유명한 과자의 포장지가 그려진 디퓨저들이 있었다.
앞에 있는 샘플의 냄새를 맡자 겉에 그려진 과자의 맛있는 냄새가 났다.
"와, 신기하다."
"인터넷에 보니까 일주일만 한대! 몇 개 살까?"
여러 디퓨저들의 냄새를 비교하는 밝은 진희의 모습에 진희도 여고생은 여고생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남고를 나와서 여고생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그런 청순한 여고생 느낌이랄까.
한참을 고민하며 다양하게 디퓨저의 냄새를 비교하고 마음에 드는 디퓨저를 여러 개 산 진희와는 다르게. 나는 입구에서부터 나던 좋은 향기의 디퓨저를 찾아내 하나 샀다.
알고 보니 유명한 과자인 꿀감자칩의 향기를 내는 디퓨저였다.
여러 향이 섞여 조금 코가 아팠기에 먼저 팝업 스토어에 나와 있자. 진희가 가게에서 나와 안기듯 몸을 달라붙었다.
디퓨저들이 있는 곳에 있어서일까. 날 껴안듯 매달려있는 진희에게서 좋은 향이 났다.
"고기 먹을까! 아니면 떡볶이? 난 뭐든 좋은 데."
"나도 아무거나 좋아."
"사는 사람이 골라야지!"
"그럼, 고기 먹을까?"
"좋아!"
고깃집이 많았기에 어디로 갈까 고민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매달려있던 진희가 몸을 떼고 휴대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여기 어때? 스테이크집! 리뷰도 많아!"
화면을 보니 커플들이 많이 갈 것 같아 보이는 곳이었다. 리뷰의 반응도 좋았고 별점도 높았기에 진희와 함께 그곳으로 갔다.
내 예상이 맞았는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커플 아니면 우리처럼 여자끼리 있었다. 하긴 남자끼리 칙칙하게 이런 곳 오면 뭔가 이상하긴 하다.
진희와 토론 끝에 커플용 2인 디너세트를 시켰다. 비싼 거 시켜도 된다고 해도. 진희는 "가성비가 이게 좋잖아?"라고 말하며 고집을 부렸다. 그래도 나 차성 후계자인데. 비싼 거 사주고 싶었지만, 진희의 고집은 이길 수가 없었다.
"고기를 앞에 있는 개인 스톤에 직접 올려서 익혀 드시면 되요! 앞에 나와 있는 설명서대로 하시면은 레어에서 웰던까지 취향대로 드실 수 있어요."
신기하게도 조리돼서 나오는 게 아닌 사각형의 달궈진 스톤에 직접 고기를 올려 자기 취향에 따라 익혀 먹는 곳이었다.
신기해하며 음식 사진을 찍어대는 진희의 모습에 나도 따라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어차피 먹을 건데. 찍을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진희가 하기에 나도 그냥 따라 했다.
화력을 조절 못 해 겉이 검게 탄 것처럼 보기 흉한 내 것과는 다르게 진희는 육즙이 가득한 게 보일 정도로 맛있게 구웠다.
"너 여기 와본 적 있어? 엄청 잘하네."
"설명서 보고 하니까 잘되던데?"
요리도 재능인가? 조금 부러움을 느끼며 내가 구운 고기를 먹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탄 맛도 그렇게 많이 나지 않았고 고기 자체가 맛있었기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아린아. 너는 SNS 안 해?"
"응? 나는 친구 없어서 그런 거 안 해."
"그러면 더 해야지! SNS를 해야 반에 있는 애들이랑도 금방 친해질 수 있어."
"으, 응."
무언가 열정적인 진희의 설명에 거절하면 안될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며 라임 음료의 빨대를 빨자. 내 얼굴에 자신의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봐! 나도 SNS 하는 데. 우리 반에 SNS 안 하는 애는 너밖에 없어! 나머지랑은 다 친구 맺었어."
진희가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넘겨주며 자신의 셀카와 음식 사진이 올라가 있는 자신의 SNS를 보여주었다.
"아린아 너도 얼른 SNS 만들어. 그래야 친구도 많이 사귀지. 아니다. 지금 당장 만들어! 나랑 같이 사진 찍어서 올려!"
열정적일 정도로 SNS를 하라는 진희의 말에 휴대폰을 꺼내 가입하자 진희가 곧장 친추를 걸었다.
"프로필 사진 설정해야 너인 거 알 거야. 사진은 내가 찍어줄게! 기다려봐. 필터해서…."
밥 먹다 갑자기 프로필 사진을 찍는다니? 원하진 않았지만, 진희가 저리 열정적으로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기에 내키진 않지만 한 손으로 V자를 그렸다.
"그런 거 말고 자연스러운 포즈!"
대충 사진 찍는 척하려다 혼났다.
나를 바라보는 진희의 눈에 마치 예술가의 그것과 같이. 눈에서 열정적인 불이 붙어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조금 겁이 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