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나비효과
* * *
"거짓말 아닌데~?"
얼굴에 드러난 생각을 읽었는지. 얄밉게 말하는 소니아의 모습에 화가 났지만. 독보적인 큰 가슴으로 교실 안의 남자들의 시선을 전부 끌어당긴 소니아 때문에. 화를 참을수 밖에 없었다.
"어제 경고했을 텐데요?"
소니아에게 다가가 작게 말하자.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입술에 손을 올리는. 어린애나 할 것 같은 귀여운 척을 하며 나를 올려다봤다.
"근데~ 너랑 성현이랑 사귀는 것도 아니잖아?"
"..."
"그럼, 성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거 아니야?"
소니아는 심술궂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며 허리를 의자 뒤로 제쳐. 내 뒤에 있던 김성현에게 말을 했다.
"성현아~ 나랑 친구 하기 싫어?"
"어? 아니, 나는 뭐…."
몸을 돌려 김성현에게 대답을 잘 선택하라는 의미로. 무섭게 노려보니. 내 시선에 담긴 뜻을 느낀건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이더니 시무룩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친구 정도는 괜찮지 않나?"
위험하다. 소니아는 자신의 성적 매력을 너무 잘 안다. 나와는 다르게 김성현에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성적인 매력을 어필하며 다가간다. 순수한 모쏠아다인 김성현이 100년 묵은 여우. 아니, 마인인 소니아의 능숙한 유혹을 버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김성현의 멍청한 얼굴을 보고.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졌다. 전략을 바꿔야겠다. 내 방식이 아닌. 김성현에게 잘 통하는 소니아의 방식대로.
이성으로 접근하자.
"...나랑 친구해."
"어?"
"나랑 친구 하자고!"
멍청하게 대답하는 김성현의 모습에 화가 나.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목소리가 커졌다. 내 말에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김성현과. 내 얼굴에 꽂히는 시선들에 제정신이 들었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져 시선들을 애써 모른척 무시하고 몸을 돌리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자리에 앉아.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백진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 이게 아닌데.
*
이곳이 자신의 반이라는. 소니아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자신을 기한신이라고 부르라던 선생 하기 아까운 외모를 가진. 미남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 출석체크를 할 때. 내 이름뿐만이 아니라. 소니아의 이름도 나왔으니까.
생각해보니 기한신이라는 이름을 소설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큰 비중 있는 역할은 아니었기에 바로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원작과 같이 A반의 담임교사였다.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소니아는 나와 같이. A반의 동급생이 되었다. 그것도 김성현의 옆자리. 지금 김성현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인물인 소니아가.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에 있는 것이다. 버튼을 누르면 터지는 폭탄 옆에 정신이 나간 테러리스트를 놔둔 상황.
그 폭탄은 테러리스트의 겉 모습만 보고 좋다고 헤벌쭉대는 답답한 상황이기도 했다.
B반이었을 소니아가 A반으로 온 이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소니아가 무슨 짓을 한 것이 분명하다. 김성현의 각성 여부에. 소니아의 반 배정이 바뀔 이유는 전혀 없었으니까.
거기에 지금 나를 도발하듯. 노골적으로 티를 내며. 김성현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모습에. 머리가 아파왔다.
지금 김성현은 각성 전. 초월 아카데미에 정말로 운 좋게 입학한 열등생 중에 하나일 뿐이다. 초월 아카데미를 자신의 엉덩이 밑에 두려는 계획을 하고 있는 100살이 넘는 마인. 추정 마인등급 A.
S급 마인은 이 세계관에서 거의 재앙이나 다름 없는 수준이기에. 추정 등급A의 소니아가 얼마나 강한 마인인지 알 수 있다.
소니아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학생 중에는 없다.현역 영웅 등급을 유지하고 있는 교사라면. 소니아와 동귀어진을 각오하면 비슷하게 싸울 수 있지만. 교사가 학생과 목숨을 걸고 싸울 일은 상식적으로 없을 것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대상으로 마인, 마수임을 구분하는 방법이 없는 현재 상황에서. 증거도 없이 소니아가 마인 이라는 나의 주장에 소니아를 죽여. 그 시체를 해부한 뒤, 마인 임을 증명해줄 교사는 없다.
애초에 현역영웅 등급을 유지하면서 아카데미에서 교사 생활을 하는 영웅은 일선에서 물러나. 공무원같이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사람들뿐이니까.
"...죽일 수 있을까?"
순수한 호기심이 들었다. 소설이기 때문에 아카데미생임에도 불구하고 현역영웅들과 비슷한 전투력을 가진. 먼치킨들이 많은 상황이었다.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게 바로 나였고. 하지만 내 능력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마인 상태로 변한 소니아와 1:1로 싸워 이길 수 있을까? 고개를 저었다.
신아린의 기억을 갖고 있다해도 동귀어진을 생각하지 않는 이상은 1%의 확률도 없을 것이다. 하물며 지금 상태라면 백이면 백. 소니아에게 질 수밖에 없다. 소니아의 마인화는 김성현의 아카데미 라이벌. 세계관 최강의 마법사 포텐을 지니고 있다는 `푸른 마나 살인귀` 조민성조차도 무릎 꿇린 강함이었으니까.
상대방이 입힌 공격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괴랄 한 `권능`을 가진 마인화 소니아를 무력으로 이길 수 있는 영웅은 상성상 거의 전무했으니까. 김성현처럼 정신을 공략하여 육변기로 떨구지 않는 이상. 전투에 있어서 소니아는 100년이 넘는 경험이 있는 `괴물`이니까.
고개를 돌려 김성현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목에 겨누어진 칼을 모르는지. 태평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며 무언가 생각에 빠진듯한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김성현의 동정을 막는 것이 맞을까? 불안함에 입술을 뜯었다. 소니아는 분명히 김성현의 동정을 노릴 것이다. 내가 방심한 틈에 소니아와 김성현이 관계를 맺는다면?
내가 걱정하는 것은 각성 뒤의 김성현의 모습. 원작에서 소니아에게 동정을 따인 뒤. 다른 반이 되어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김성현에게 관심이 떨어진 소니아가. 다른 동정남들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고. NTR당했다고 생각해 혼자 분노에 빠져. 소니아에게 복수의 칼을 갈던 김성현이 아닌.
계속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 같은 반 동급생. 금발태닝빗치와 관계를 맺고 각성한 김성현. 소니아의 엉덩이 밑에 깔려 소니아를 추종하던 아카데미의 다른 남자들처럼. 소니아를 열렬히 추종한다면? 반대로 성욕에 불이 붙어 A반의 여학생들을 공략하기 시작한다면?
온갖 부정적인 가정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계속해서 머리를 써서 그런가?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져 왔다. 앞자리에 앉아 있는 백진희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새로 사귄 친구를 위해서라도. 내 안위를 위해서라도 소니아를 처리해야 한다. 변수를 막기 위해서는. 변수를 끌어오는 수밖에 없다. 소설의 후반부에나 등장하는 마인 사냥집단. 차성의 재력이라면.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죽여야 해."
뇌까리듯 중얼거렸다.
***
머피의 법칙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는 걸까? 김성현은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오늘 아침부터 일어난 일 때문이다.
집과 아카데미의 거리가 멀었기에 기숙사 생활을 위해 새벽부터 케리어를 끌고 집을 나왔다.
지하철에 도착해서야 지갑을 책상 위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무거운 케리어를 질질 끌고 집으로 돌아와 지갑을 챙긴 일부터. 머피의 법칙이 발동된 것 같다.
기숙사에 배정된 방에 짐을 풀고 교실로 올라가니 교실 안. 첫 등교 날의 설렘에 떠들썩한 분위기임에도. 홀로 고고한 분위기를 풍기며 휴대폰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흑발의 미녀. 신아린이 보였다.
단지 옆 모습을 보았을 뿐인데 쌔 차게 뛰는 심장에 놀란 김성현이 심호흡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모쏠처럼 굴어봤자 마이너스다. 당당하게 굴자.
'옆자리에 앉으면. 금방 친해질 수 있겠지?'
아직 빈자리가 많은 교실이었지만 따로 정해진 자리가 없었기에 마치 결계라도 쳐진거 마냥. 주변이 텅 비어있는 신아린의 옆자리를 차지하기로 했다.
의자 끄는 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돌린 신아린은. 시선이 마주치자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꼭 다물고는 말없이 시선을 마주했다.
'오늘도 이쁘네.'
화장이라도 한 건가? 어느 사랑 노래가사처럼 어제보다 오늘이 더 예뻐 보였다. 그때.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신아린에게서 흘러나오는 매혹적인 향기를 싣고 넘어왔다. 이성에게 느껴지는 향기는 이리도. 남자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걸까?
사과같이 빨간 입술이 시선을 끌어당겼다. 갑작스럽게 망상이 불쑥 찾아왔다. 저 입술에 뽀뽀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어떤 느낌일까? 아직 첫 키스도 떼지 않은 김성현이었기에 호기심이 들었다.
그러다 망상은 꼬리를 물어. 어제 소니아의 펠라가 갑자기 떠올랐다. 자지를 아이스크림이라도 되는 것처럼. 녹일 듯 열심히 입술과 혀로 괴롭히던 행복했던 경험. 망상 속 소니아의 모습에서 눈앞의 신아린의 모습이 덧대어진다.
차가운 표정으로 자신의 자지를 핥는 것에 집중하는 신아린. 부드러운 입술로 귀두를 자극하는 신아린이 자신의 사정을 바라며 열심히 혀를 놀리는 모습. 더 했다가는 완전히 발기할 것 같아 망상을 멈췄다.
"...그, 안녕?"
그때까지도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신아린의 모습에 겁이 났다. 마음을 들여다보듯. 흑요석 같은 눈에 비친 자신의 멍청해 보이는 모습. 자신의 속마음이 들킨듯한 기분이 들어 참지 못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가벼운 인사에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지. 살짝 미간을 좁힌 채 입술을 침으로 적시는 신아린의 모습에 김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한 번만 저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댈 수 있다면….
"좋은 아침이야."
"어, 어 응. 좋은 아침이지~"
눈앞의 미녀에 이성을 잃고 폭주하는 망상에 삼켜질 뻔한 김성현은 몰래 자신의 허벅지를 쌔게 꼬집어. 폭주하는 망상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렸다. 급히 대화 주제를 생각했다. 어젯밤 잠들기 전. 오늘 신아린을 만나면 어제 소니아와 있었던 일에 대해서. 해명하기로 했기에 입을 열었다.
"아, 큼. 어제 일은…."
"그 얘기는 하지 말자."
차가운 표정으로 곧장 말을 끊는 신아린의 태도에. 대화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하기도 싫겠지. 짝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한테 펠라를 받는 모습…. 스스로 생각해도 신아린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이런 병신 같으니….
아침부터 시작이 꼬이더니. 머피의 법칙이 진짜 있는 건가 보다.
자신에게 한심함을 느끼며 김성현은 고개를 떨궜다. 방금까지 친근하게 아침 인사를 나누며 좋았던 분위기가. 자신의 말실수로 딱딱하게 굳어 냉기가 풀풀 풍기고 있었으니.
슬쩍 눈을 돌려 신아린을 훔쳐보니. 차갑게 얼어붙은 표정으로 교실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발….'
[신아린의 호감도가 1 하락하였습니다] 라는 문구가 눈앞에 뜨는 것 같다. 이게 게임이었다면 백 프로 호감도 하락이었을 것이다. 심하면 배드앤딩.
이 분위기를 어떻게 깨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하얀 머리카락이 자신을 지나쳐 신아린에게 조심히 다가가는 것이 곁눈질에 들어왔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마치 백금으로 한가닥씩 장인이 노력 끝에 만들어 낸 것 같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동화 속의 백설공주같이. 백색의 인형과 같은. 아름다운 외모의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흑발의 신아린과 대비되는 매력을 가진. 그렇다고 신아린에게 부족한 외모도 절대로 아닌. 침이 삼켜졌다. 학교에 이런 미녀가 또 있다고…?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아카데미기에. 소니아 같이 외국인 출신도 많았다. 백발의 머리카락인 것을 보면 아마도 혼혈일 거라고 생각했다. 신아린과 저 백발의 소녀와 한 번에 잘 수 있다면. 마인 이라도 될 남자가 이 반에 한둘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쓰리썸에 대한 망상이 떠올라 급히 머리를 흔들고 정신을 차렸다. 바지 밑에 벌써 반 정도 커진 분신이 언제라도 완벽한 출격을 대비하고 있었다. 애국가를 외우며 고개를 돌리자 이름 모를 백발의 미녀가. 자신의 체중을 실어 앉아 있는 신아린의 등을 누르며 장난치는 것이 보였다.
"아린아~! 안녕!"
옥구슬이 굴러가는 목소리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사실 옥구슬 소리는 들어 본 적 없지만. 그정도로 표현할만큼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백발의 소녀를 반갑게 맞이한 신아린이. 여태까지 본 적 없던 밝은 미소를 보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자신의 말실수에 냉기를 풍기며 차가운 표정을 짓던 신아린이. 언제 그랬냐는 듯. 저리 밝은 모습으로 친구와 대화하는 모습이 잘 삐지던 동생이 떠올라. 조금 귀엽게 보였다.
흐뭇한 표정으로 신아린을 지켜보다 백발의 소녀와 눈이 마주쳐 슬쩍 시선을 회피했다. 조금 지나 다시 신아린을 보려 고개를 돌리다 때마침 고개를 돌린 신아린과 눈이 마주쳤다. 곧장 고개를 내려 시선을 피했다. 몰래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들켜 부끄러웠다.
다시 신아린과 이름 모를 미소녀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기에 김성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 얼핏 들린 신아린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크게 몸을 움찔했다.
"바지에 뭐가 묻어…."
어제 있었던 일을 친구한테 얘기하는 건가? 여자들의 우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야겜에서 여자들이 서로 관심 있는 남자들을 주제로.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나마 다행인걸까?
점점 교실안을 채우는 사람들이 내는 소음과. 이름 모를 미소녀의 경계섞인 시선에. 더는 신아린의 대화를 엿들을 수가 없었다.
아는 사람도 없었고. 먼저 다가가서 말걸정도로 살가운 성격도 아니었기에. 김성현은 평소처럼 휴대폰으로 [거지 영웅 키우기]를 켰다.
일일 퀘스트를 돌리며 시간을 보내던 김성현은 비어있는 오른쪽 옆자리에 누군가 앉자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김성현의 눈 앞. 그 곳에는 가슴골이 있었다.
"안녕!"
단추 하나를 풀어 노골적으로 보일정도로 훤히 보이는 가슴골이. 소니아의 상체 움직임에 출렁거리며 가슴골이 좁아지며 양쪽 가슴이 맞닿는 것이 보였다.
그 관능적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히죽하는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며 소니아와 인사했다.
시끌벅적 했던 주변의 남학생들의 시선이 김성현과 소니아에게 자연스럽게 모였다. 찐따 같아 보이는 김성현과 금발태닝빗치 소니아의 조합은 시선을 끌기 좋은 조합이었으니까.
조금의 우월감을 느낀 김성현은 어꺠를 쭉 피며 소니아에게 물었다. 개방적인 소니아라면 다른 반응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 어제는 잘 들어갔어?"
넌지시 어제 일을 언급하자 소니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지. 해맑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지?"
"응? 뭐가?"
"어제 끝까지 못했잖아~"
말꼬리를 늘리며 가슴을 출렁거리는 소니아의 모습에 김성현은 해벌쭉 웃으며 말했다.
"그, 그렇지. 아쉽지 상당히."
"그래? 그러면, 이따가 다시 화장실..."
화장실? 설마. 어제 있었던 일을 이어가려는 건가?! 행복회로가 풀가동하려는 차. 누군가 김성현과 소니아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어깨까지 오는 검은 머리. 성숙한 소니아의 몸에비해.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체형. 뒷 모습임에도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보이는 뒷모습에 신아린인 것을 알았다.
"이제 수업 시작할텐데. 반으로 돌아가야지 않나요?"
"응. 알아. 그래서 자리에 앉았잖아."
"자기 반으로 가야죠. 소니아."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는 신아린과 비교되게. 애교섞인 목소리로 대답하는 소니아의 서로 감정싸움을 하는 듯한 모습에. 김성현은 당황스러웠다. 설마. 소니아와 인사 했다고 질투하는 건가? 신아린이 소니아를 이리 싫어할줄은 생각하지 못했기에 뒷머리를 긁었다.
미소녀인 신아린과 금발태닝빗치 소니아의 모습에 자연스레 남자뿐만이 아니라 교실의 이목이 이 곳으로 집중됐다.
집중된 시선에 김성현은 본능적으로 몸을 최대한 작게 움크렸다.
"나 여기 A반 맞아."
"거짓말 아닌데~?"
신아린과 소니아가 무언가 대화를 나누더니. 갑자기 소니아가 신아린의 몸에 가려진 얼굴을 뒤로해 김성현에게 말을 걸었다.
"성현아~ 나랑 친구 하기 싫어?"
"어? 아니, 나는 뭐…."
갑자기 화살이 자신에게 날아오자 당황한 김성현이. 어정쩡하게 대답하자. 매서운 눈빛으로 신아린이 몸을 돌렸다. 차가운 시선으로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는 신아린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조금 억울하긴 하다.
"..친구 정도는 괜찮지 않나?"
아무리 짝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대화하는 게 싫다해도.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이건 조금 선넘는거 아닌가?
생각해보면 사귀는 사이라도. 같은 반. 여사친정도는 괜찮은거 아닌가?
'여사친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억울 했다. 솔직히 소니아는 입으로 해주기라도 했지. 신아린은 해준것도 없으면서 질투라니. 예쁜 외모 값을 하긴 하나보다.
조금 원망이 담긴 시선으로 고개를 들어 다시 신아린을 바라보자. 차갑게 노려보던 검은 눈동자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실려 있었다.
신아린이 자신의 양 손을 주먹쥐며.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이 조금 진지해보였다.
"...구해."
"어?"
너무 작은 목소리라 뒷목소리만 들려 되물었다. 신아린의 뒤에서. 소니아가 시선을 끌려는 지.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지만. 신아린의 한 말이 더 관심을 끌었기에 김성현은 신아린을 바라봤다.
"나랑 친구 하자고!"
갑자기 떠들석하던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럴 때 "귀신 지나갔다!"라고 소리치는게 국룰인데. 김성현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멍청한 생각을 지웠다.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웠는 지. 대리석 같이 잡티 하나 없는 흰 얼굴이. 토마토 같이 붉게 변했다.
그 모습이 워낙 귀여워보여. 김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웃을 뻔해. 가까스로 웃음을 삼켰다.
교실의 분위기를 느낀건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앞자리의 친구에게 변명하듯 무어라 크게 손을 움직이며 말하는 신아린의 그 모습에.
결국 참지 못하고.
작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