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공략 플래그가 세워졌다-1화 (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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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영웅은 또 플래그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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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던 소설이 있었다.

19금 소설임에도 잘 짜인 스토리와 독자를 소설 속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처럼 몰입시키는 필력.

야한 장면을 제외하더라도 풀어놨던 떡밥들의 계산적인 회수와. 복잡하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논리적으로 짜인 복선.

거기에 이야기에 매운 양념을 더 하는 적절한 맥거핀까지.

잠들기 전 딸치러 왔다가. 싸지는 못하고 밤새 정주행 했다는 평을 받을 정도의 소설.

권선징악과 주인공의 활약이 잘 어우러져. 독자들에게 명작소리를 들으며 다른 소설들을 월등히 제치고. 항상 조회 수 1등 자리를 굳건히 지키던 인터넷 웹 소설.

[영웅은 또 플래그를 세웠다]

독자들은 영또플이라 줄여 부르던 연재 한 달만에 밀리언 뷰를 달성한 웹 소설.

그런 소설이 돌연 연재중지를 했다.

당연히 매일 같이 언제 글이 올라오나 새로 고침만 하며 기다리던 독자들은 난리가 났고 각 커뮤니티에서도 작가를 욕하는 상황이었다.

연재중지를 한 타이밍이 독자들이 진히로인이라고 밀던 백진희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백진희 본인의 의지로. 주인공을 자신의 침대로 끌고 온 다음이었기 때문에. 화력은 더욱 셌다.

나도 백진희 코인을 탔었기에. 앞으로 닥칠 일을 모른 채. 신이나 마지막으로 올라온 글에 다른 히로인을 밀던. 흑우들을 비웃으며 댓글로 놀리고 있었다.

백진희 코인이 드디어 떡상하는 화였기에. 평소보다 몇 배는 많은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비웃기라도 하듯 작가는 어떠한 말도 없이 잠수를 탔다.

3일 뒤, 돌연 [연재중지]라는 제목의 공지와 `ㅈㄱㄴ`라는 단순한 3글자만 적힌 내용이 올라왔을 뿐.

이 소설에 푹 빠져있던 나는 매일 마지막으로 업로드된 화에 들어가 댓글로 출석체크를 하며 작가의 복귀를 기대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소설을 기다리는 독자들은 하나둘 떠났고. 영또플은 연중작품 중 1탑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뉴비유입금지 소설이 되었다.

작가를 기다리던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복귀 염원 댓글을 남기고. 수십 번을 다시 정주행 하며 작가의 복귀를 기다렸다.

심지어 작가의 복귀를 기다리며 파이어 위키라는 곳에 여태까지의 영또플 안에서 있었던 스토리에 대한 분석 글들까지 정리해서 올렸다.

원작을 분석하고 등장인물들이 언급된 부분을 따로 편집하고 지나가는 식으로 언급만 되거나 비중 없는 엑스트라 인물들까지 모조리 하나하나 분류해 작성했다.

이 소설을 사랑했기에. 알지 못하는 결말을 기다리며. 의미 없는 열정을 불태웠다.

그리고 오늘. 변함없이 작가의 복귀 염원 댓글을 작성하려 웹 소설 사이트에 로그인했지만, 소설이 선호작 목록에서 사라져 있었다.

서비스가 중지된 것인지, 작가가 글을 내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버릇처럼 [작가님 복귀하세요! 367일 차!]라는 댓글을 매일 출석체크하듯. 반복해서 하던 하루의 루틴 같은 것이었기에. 갑자기 동력을 잃은 장난감이 된 것 같은. 상실감이 들었다.

멍한 머릿속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바탕화면에서 마우스만 이리저리 휘두르며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봤다.

한 마디라도. 한 번이라도 작가가 글을 남겨줬다면…

기다려줘서 고맙다. 다시 연재 재개하겠다.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연재를 못 했다.

그런 말이라도 해줬다면 지금 느끼는 이 상실감보다. 괜찮았을까?

적응하기 힘들었던 4년간의 대학 생활의 내 버팀목. 짬짬이 시간 내서 분석하고. 다른 독자들이 다른 소설로 떠날 때. 배신이라 생각하며 기다리던 날들, 영또플을 욕하는 사람들과 키배를 뜨던 헛된 날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허탈해졌다.

이런 결말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반전엔딩을 경험한 것처럼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

몸의 피곤함에 정신의 피로함까지 더해지니 더는 하루를 버티지 못하겠다.

노트북을 끄고 침대에 누워 빈 천장만 바라보다 멍하니 잠에 빠졌다.

***

"...야!"

누군가의 외침에 눈이 뜨였다.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직 앳된 티를 벗어나지 못한 처음 보는 남자가 짜증이 난 표정으로 바라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굴리며 머리를 긁적인다.

"아니…. 다 했으면 나도 작성해야 하니까…."

말끝을 흐리며 내 얼굴을 몰래 흘낏흘낏 훔쳐보는 모습이 무언가 불쾌하게 느껴졌다.

남자의 반응은. 경험해보지 못했던 처음 겪는 상황이기에 알 수 없는 기분에 미간이 좁혀졌다.

내 지속되는 시선에 부담을 느낀 것인지. 남자의 얼굴이 눈에 보일 정도로 점점 빨개져 갔다.

현재 상황파악이 우선이기에 남자에 대한 불쾌함은 일단 뒤로하고 자리를 비켜섰다.

주위를 둘러보니 남자와 같은 디자인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전문 영웅 육성 초월 아카데미 제9회 입학식]

"어…?"

시야에 들어온 강당 위 거대한 현수막에 적힌 글.

초월?

영또플의 초반. 주인공이 입학식에서 초반 빌런인 소니아를 만나. 동정을 따여 능력을 각성하게 되는 곳이. 초월 아카데미의 입학식이다.

꿈인가? 하지만 꿈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이 너무 생생하다. 고가의 VR 기술로도 따라갈 수 없는 현실적인 모습에 볼을 꼬집어 봤지만 보드라운 볼의 감촉과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들뜬 말소리. 코를 파고드는 새로 칠한듯한 강당의 페인트 냄새.

분주하게 어디론 가로 향해 걸음을 옮기는 다급한 표정의 선생님들까지. 하지만 육체로 느껴지는 오감에서 느껴지는 현실감에도 머리는 강렬히 현실일 리가 없다고 부정한다.

눈앞의 현수막이 말해주듯 이 공간은 소설이 아니면 현실에서는 존재하면 안 되는 곳이니까.

"30분 뒤, 입학식이 시작됩니다. 접수를 끝낸 학생은 팸플릿을 확인해주시고 배정된 좌석에 앉아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곧 입학식이…"

강당 안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소리에 멍했던 정신을 차리고 언제부터 손에 들고 있었는지 모를 팸플릿을 보려 고개를 숙이다 그 자세로 굳어버렸다.

"...치마?"

시야에 들어온 것은 회색의 치마다. 치마 밑으로 여리여리한 다리가 검은 스타킹으로 감싸져 있는 게 보인다.

부정하고 싶어도 내 머리의 반응에 따라. 움직이는 다리에 절망감이 생긴다.

모태솔로 26년.

남자로 태어나 남중, 남고 병장 만기제대.

이후, 4년간의 공대생활 동안 비굴하게. 동기와 선배들에게 여자 한 번만 소개해달라고 무릎까지 꿇으며 노력했다.

잘생긴 동기들과 함께 헌팅포차도 가보고. 길가는 여자의 번호를 얻어보기도 했지만. 내 노력에도 결과는 모태 솔로다.

여자와 잠자리를 갖는걸. 고등학생 때부터 목표로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바지도 아니고 스코틀랜드의 남자들이 입는 치마인 킬트도 아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복 치마를 입고 있다는 것에. 절망감이 생겼다.

결국, 나는 동정을 탈출하지 못했구나. 여자에게 박는다는 느낌을. 이제는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절망감이 상실감으로 변했다.

고개를 내려치마 밑 스타킹의 감촉을 확인해봤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에 나도 모르게. 한동안 허벅지를 만지작대고 있자 주변 남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나를 쳐다보던 남자들이 팸플릿에 고개를 박고 모른 척하는 것이. 너무 연기처럼 대놓고 보여서 오히려 부끄러워졌다.

괜스레 뒷머리가 간지러워져 뒤통수에 손이 갔다. 그제야 귀를 덮고 있는 긴 머리가 느껴졌다.

손을 들어 뒷머리를 만져보니 어깨까지 오는 단발이다.

남자였을 때도 장발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갑자기 어깨에 닿아있는 머리카락들이 무척이나 신경 쓰이기 시작했지만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눈을 감고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로 변하기 전 나의 버릇. 몸은 변했어도 행동은 그대로인가 보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행동에 껍데기는 변했어도 알맹이는 그대로라는 생각에 어지러웠던 머리가 조금은 나아졌다.

냉정하게 나 자신의 상황을 돌아봤다. 지금의 나는 누구인지 기억도 없는 여자로 변해 소설에 존재하는 아카데미의 입학식에서 입학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그리고 이날은 주인공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날.

설마, 주인공한테 공략당해 육변기 노릇을 하는 등장인물 중의 하나일까?

갑작스레 가슴을 답답하게 차오르는 불안함에 급히 내 몸을 뒤적였다.

뭐라도 이 상황을 타개할 것이 필요했다.

치마를 만져보니 주머니가 있었다. 허벅지 위로 느껴지는 묵직함에 주머니 안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인지했다. 여태까지 허벅지에 닿고 있었으면서도 멍청하게.

주머니 안에 있는 얇은 카드 지갑을 꺼내 내 것이라고 추측되는 신분증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미소녀라고 말하기 손색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찍은 증명사진이 있었다. 그 밑으로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소설 속이지만. 주민등록증의 디자인은 익숙하게 사용하던 디자인과 같았다.

"신아린…."

복잡한 머릿속을 뒤져 소설의 등장인물을 떠올리자. 그제야 신아린에 대한 것이 떠올랐다….

세계 3위 기업 차성(?成)의 공식적인 유일한 후계자.

주인공이 노리는 히로인 리스트에 들어 있는 같은 반 학생.

내가 진히로인이라고 밀어붙이던 백진희와 비공식적인 라이벌이라는 소설 속 묘사가 있다.

백진희가 백이라는 성(?)처럼 눈처럼 하얀 백안과. 백발의 머리를 가진 고요하게 눈이 쌓인 설산과 같이. 순백(?白)의 미녀라는 것과 대비되게

신아린은. 우윳빛 같은 하얀 피부와 다르게. 흑요석과 같이 밝게 빛나는 검은 눈과. 검은 머리를 가진 흑(?)의 미녀.

상반되는 매력을 가진 그 둘은. 작가가 백진희의 성장을 위해 반대되는 존재로 만들어 낸 거 아니냐고. 내 뇌피셜로 추정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이 백진희를 공략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설 속에서는 상대적으로 신아린의 분량은 적었다.

하지만 작은 분량에도 꾸준히 백진희와 여자부 1, 2위 자리를 두고 다투며. 신아린이라는 이름을 독자들에게 새겨놓을 정도로 매력 있는 캐릭터로 나온다.

영또플이 여태까지 진행했던 스토리대로 흘러간다면. 백진희의 공략을 마무리한 김성현이 그 라이벌인 신아린까지 공략하여 "와 보지가 두 개!"라고 말하며 그 둘과 쓰리썸을 즐기는 주인공을 떠올리는 건 영또플을 봐왔던 독자들이라면 당연히 추론할 수 있을 정도이다.

흑장미와 백장미를 양손에 쥘 수 있는 상황을 성욕의 화신, 아카데미의 S급 히로인 공략자 김성현이 가만히 둘리가 없다.

권선징악.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과는 별개로. 김성현은 성욕에서도. 아카데미에서 특출났다. 아카데미를 벗어나 세계관에서조차 탑 급에 들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한다.

특히, 소니아에게서 동정을 따인 뒤 각성한 능력.

[공략 플래그의 달인]은 그 성욕에 끊이지 않는 기름을 쏟아 붓고 있다. 불붙었던 성욕이 꺼지지 않고 아카데미의 미소녀들을 전부 공략 대상으로 삼을 정도니까.

세계관 최고의 외모. 중저음의 호감 있는 동굴 목소리. 조각상같이 완벽한 근육의 몸을 비롯하여 첫인상에 대한 편파적일 정도의 호감도. 그것만으로 모자랐는지. 투신의 가호라는 사기적인 능력까지 얻게 되는 김성현은. 일순간에 D급 영웅에서 S급 영웅으로 올라갈 수 있는 무력까지 얻게 된다.

거기에 소설 속 공략당한 히로인의 묘사를 기반으로 내 뇌피셜이지만 자박꼼 능력과 질내사정시 호감도와 민감도가 증가하는 것 같다.

딱 한 번 공략하는 대상에 매력을 못 느껴. 공략에 귀찮음을 느낀 김성현이. 공략도 50% 미만의 여자를 강간한 적이 있는 데. 관계 도중에도 공략도가 점점 상승하는 스토리가 있다.

물론, 그 뒤로 김성현이 강제로 여자를 공략한 적은 없었다. 작가가 재미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그 뒤에 공략하던 대상들이 완전 공략 직전이기도 했고. 굳이 강간하지 않아도 넘치는 육변기들 때문인지는 모른다.

김성현은 자기 생각대로 히로인이 차츰차츰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흰 종이 위로 검은 잉크를 한 방울씩 떨어트려. 종이 전체를 검게 물들이듯.

느긋하게 상대가 스스로 안달 나게 하여. 자신에게 매달리는 히로인을 보며 승자의 미소를 짓는 걸 선호하는. 전형적인 사디스트적 성향도 있었다.

길게 이야기한 글을 단순히 요약하자면. [아다를 떼면 세계관 최강이 되는 먼 치킨] 인 것이다.

성욕과 거리가 멀었고. 항시 도도한 자세를 유지하며. 이성과 항상 거리를 벌리며. 이 정도면 레즈 아니냐? 라는. 독자들의 의문을 들게 할 정도로 철벽을 치던 백진희조차. 김성현의 능력에 차츰차츰 공략당해 마지막에는 결국, 자신의 처녀를 주기 위해. 자신의 침대로 김성현을 끌고 왔으니까.

[하렘 아카데미물]에 걸맞게. 이 세계가 아다를 뗀 김성현의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 사실에 등허리에서 뒷머리까지 짜릿한 전기가 통했다. 뒷목으로 닭살이 돋았다.

`나도 공략당할 수 있다!`

그럴 리 없을 거라는 희망적인 생각보다. 오히려 백진희보다 먼저 공략당해 몸과 마음마저 공략당하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인 불안감이 들었다.

김성현의 의도대로. 성욕에 눈을 떠 매일 달아오른 몸을 주체못하고. 김성현에게 매달려 평소라면 시도조차 하지 않을 애교 섞인 신음을 내며. 스스로 허리를 흔드는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26년을 남자로 산 내가 여자로 변했다 해도 남자, 그것도 갓 아카데미에 올라온 고등학생에게 처녀를 따인다고 생각하니. 야동사이트에서 실수로 게이 동영상을 튼 것과 같은 느낌의 불쾌감이 들어. 괜히 엉덩이에 힘을 주게 된다.

"...좌석에 앉아주시길 바랍니다. 곧 입학식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노이즈에 머릿속이 엉클어짐을 느끼며 지정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앞으로 내게 일어날 불상사를 대비해야 했다.

입안이 말라갔다..

***

"에고, 뭔 입학식이 이리 기냐?"

서류는 이미 작성했고 팸플릿을 확인하니 머리가 벗겨진 교장의 아카데미 역사와 설명이라는 한 시간짜리 입학 연설이 남았다. 진지한것과 지루한 것에 병적인 알레르기가 있는 김성현은 눈치를 보다 화장실의 대변기로 쏜살같이 도망쳤다.

미리 의자도 창고로 치워놔 빈자리가 드러나지 않게 신경을 썼다. 땡땡이에서는 김성현은 자신이 프로라고 느꼈다.

"적당히 시간 때우다 끝날 때 합류하자."

휴대전화를 들어 최근에 즐기는 [거지 영웅 키우기]를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FFF등급의 거지 영웅을 SSS등급의 재벌 영웅으로 키우는 게임인데 요즘 이것에 푹 빠져 있었다.

자신과 같은 영웅인 점이 자신의 현재 상황과 맞아 떨어져. 성장하는 거지 영웅에 대리만 족을 느껴 과한 몰입감이 생겼다.

혹시 숨어있는 학생을 찾을까 계단을 타고 한층 더 올라가 숨었다. 경험에 비춰봤을 때 위쪽까지 확인은 잘 안 한다. 교사들도 딱히 자발적 아싸짓을 하는 학생을 구제하는 것에 있어서. 열정적이지 않다. 공무원이나 다름없는 안정적인 고용조건인데 굳이? 자신과 관련 없는 것에 열정을 붓는 것은 비효율적이니까. 그렇게 안심하고 콧노래까지 부르며 김성현은 게임에 몰두했다.

끼익­

한창 게임에 집중하고 있을 때. 돌연 들리는 문을 여는 소리에 냉큼 게임 소리를 줄이고 기척을 없앴지만. 반응이 느렸던 건지 누군가의 발소리가 다가왔다. 대변기 문이 잠가놨던 자물쇠에 걸려 조금 흔들리며 소음을 냈다.

똑­똑­

똑­똑­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사람이 있음을 알리고. 그냥 가라고 속으로 빌고 있자. 문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응, 누구야?"

여자 목소리.

그것도 꽤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목소리만으로 `오 좀 예쁠 것 같은 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지, 이곳이 남자 화장실이었기에 이곳에 여자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문제였다.

`선생인가? 그래도 남자화장실인데?`

목을 가다듬고 힘을 주고 있는 것처럼 목소리를 냈다.

"아, 저 배가 너무 아파서…."

"일단 문 좀 열어줄래?"

"네?"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

보통은 일을 보고 있다고 그러면 얼른 나와라. 아니면 다하고 돌아가라는 말이 정상일 텐데

이 여자 선생님은 포기가 없었다. 하필이면 열정적인 교사에게 걸린 걸까? 운도 없지.

`아씨, 좆 됐네! 진짜`

뒤늦은 후회와 함께 자책이 섞인 한숨이 흘러 나왔다.

찰칵­

초반부터 여선생한테 찍히면 아카데미 생활이 힘들어지지 않겠냐는 걱정이 들었다.

"안녕?"

문을 열자 게슴츠레한 눈으로 위아래를 훑으며 낯선 여자가 친근한 척 인사를 걸었다.

외국인 처럼보이는 여자는 높은 콧대와 날카로운 이목구비. 선탠을 한 것인지 건강해 보이는 구릿빛 피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금발에 밝은 적색의 눈은 매력적이었다. 심지어 여자는 옷 위로 몸매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뛰어났고 남자의 본능적인 시선을 끌 정도로 가슴이 컸다.

조금 전 슬쩍 확인했던 아카데미 여자 중에서도.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가장 가슴이 컸다. 이 정도면 H컵은 아니냐는 잡생각이 들어. 얼른 눈앞의 사람에게 집중했다.

"어…? 여…. 여기 남자 화장실인데…."

당연히 선생님일 줄 알고 걱정했지만, 교복에 적힌 노란 명찰을 보고 오늘같이 입학하는 1학년 학생인 걸 알았다. 그래서 말끝을 흐리자 여자는 새하얀 치아가 보일 정도로 미소를 지었다.

"알아, 기다려봐. 잠깐 확인 할 게 있어."

거침없이 김성현의 가슴을 손으로 밀어 벽으로 내몬 뒤. 안으로 들어온 여자는 김성현의 몸에 안기듯 밀착하고는. 머리 하나는 차이 나는 키였기에. 유혹하듯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찰칵­

시선은 김성현에게 고정한 채 보지도 않고 단번에 손을 뒤로 해 문을 잠갔다.

유난히 크게 난 자물쇠 소리가 화장실 안을 울렸지만, 김성현은 눈치채지 못한 채. 자신의 배에 닿아있는 여자의 부드러운 가슴 감촉에 발기하면 좆된다는 생각만으로 마인드 컨트롤 하고 있다.

"안녕, 나는 소니아야!"

쾌활하게 말하며 뜨거울 정도의 체온이 느껴질 정도로. 도망가는 김성현에게 더욱더 몸을 밀착하는 소니아의 거침없는 행동에. 최대한 허리를 소니아에게 멀리 뒤로 뺐다. 엉덩이로 변기가 느껴져 더는 뺄 곳도 없었기에 결국, 소니아의 배가 꾸욱하고 바지를 눌렀다.

바지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흠칫 놀라 몸을 한 차례 움찔했다. 밀착한 소니아의 가슴에서 느껴지는 심장박동에 김성현은 자신의 심장이 세게 뛰는 걸 느끼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 나는 김성현이야."

마치 귀여운 고양이를 보는 듯 자신을 해맑은 눈동자로 바라보는 소니아에 묘한 부담감이 느껴졌다. 손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며 허둥지둥하자. 부드러운 손을 내밀어 손을 포근하게 감싸 쥐었다.

소니아의 행동에 놀란 김성현이 시선을 마주치자.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눈웃음을 지으며 소니아가 붉은 입술을 침으로 적셨다.

"너 동정이지?"

"뭐, 뭐…?"

"킁킁, 동정 냄새가 난단 말이야."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올려다보는 소니아의 모습에. 결국, 이성은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딱딱하게 발기해버렸다.

`졸라 예쁘다`

이 상황이 머리로 이해가 되진 않지만 이렇게 예쁜 여자와 이런 밀착 스킨쉽을 한것은 김성현의 인생에서 처음이다.

심지어 교복 너머로 느껴지는 몰캉한 가슴의 감촉은 사춘기의 소년에게는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시킬 정도로 치명적인 공격이다.

"내가 때줄까? 동정?"

마치 밥이라도 한 끼같이 먹자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소니아의 모습에 김성현의 이성은 벼락 맞은 듯 사고가 멈춰버렸다.

"뭐, 뭐…. 머를? 동정? 나?"

흥분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카데미 입학 첫날부터 이런 금발태닝빗치와 관계를 갖다니.

이 맥락 없는 상황에. 당장에라도 화장실 문을 열고 누군가 카메라를 들이밀 것 같았다.

"몰래카메라였습니다!"라고 외치면서 자신의 멍청한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거지.

당황한 김성현을 보며 예쁜 미소를 짓던 소니아는. 짓궂은 생각이 났는지 하얗고 긴 손을 일부러. 느리게 내려 김성현의 텐트가 서 있는 바지로 향했다.

바지를 뚫을 듯. 풀발기하여 텐트 친 자지에서 느껴지는 손길에.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자지가 생전 느끼지 못한 경험에 더욱더 흥분해 팬티를 뚫고 앞으로 나오려 기를 썼다.

"아니, 잠깐만!!! 멈춰!! 이거 진짜야?"

생각지 못한 경험에 이대로면 뭔가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는지. 머리에서 급히 이성적인 사고가 정신을 차리라며 막아섰다. 당황하여 일단은 소니아의 어깨를 잡았다.

이 정도의 외모를 가진 미녀가 생판 처음 보는 남자에게. 그것도 아카데미 화장실에서 동정을 떼준다니. 혹시 아카데미에 자신도 모르는 처녀 귀신 괴담 같은 게 있나 고민이 들었다.

솔직히 맥락도 개연성도 없는 상황이잖아?여태까지 히토미에서 봤던 것들이 실화 기반인가? 라는 잡다한 생각을 하며 당황한 김성현의 모습에. 소니아가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며. 매혹적인 눈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얼굴을 김성현의 귀에 가져다 댔다.

"괜찮아~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단 말이야. 요즘 섹스는 인사 같은 거야."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달콤했다. 기분 좋은 소름에 몸을 움찔한 김성현은 결국. 본능에 무릎 꿇고 연신 비상벨을 울리는 이성 사고를 잠재웠다. 소니아를 막아서기 위해 어깨에 올렸던 손을 슬며시 내렸다.

기다렸다는 듯 소니아가 시선을 유지한 채 자신의 교복의 단추를 느긋하게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애태우듯 하나하나 느긋하게 풀면서 살짝 손으로 블라우스의 틈을 벌려. 안의 살을 보여주는 것이 김성현의 입안을 더 마르게 했다.

"어때?"

단추를 풀기만 했을 뿐인데 구릿빛 속살에서 흰 비키니 자국이 드러난 속살이 보였다. 그 모습이 더욱더 에로 하여 바지가 터질 것 같았다. 이미 팬티 앞부분은 내 자지에서 나온 애액에 젖었다.

속옷을 입지 않은 건지 단추를 벗자 보이는 틈으로 살짝 보이는 유륜에 침을 꼴깍 삼켰다.

`아카데미에 오길 정말 잘했어!`

부모님과 훈련하기 싫다고. 일반 학교에 가겠다고 다투었던 일들이 떠올라 자책이 들었다.

부모님 말씀은 역시 틀린 게 없다.

***

입학식이 시작하기 전이었기에 눈치를 보고 슬쩍 빠져나와 계단을 타고 한층 더 올라갔다.

이곳이 정말 내가 아는 영또플이고 소설의 흐름대로 흘러간다면. 김성현은 지금 있는 이 층의 화장실에서 지루한 입학식을 때우려 숨어있다가. 초반 빌런인 소니아에게 동정을 따인다.

자리에 앉아 계속해서 어지러운 머리로 생각했다. 내가 그 일을 막는다면?

김성현의 동정이 오늘 무사하다면 능력을 각성하여. 아카데미 미소녀들을 공략하고 다닐 일도 없을 것이다.

그 뜻은 내 처녀와 정신도 안전해진다는 것.

물론, 그것이 가져올 나비효과는 나중에 생각해야 하지만.

지금 막지 않으면. 각성한 김성현을 내 힘만으로는 이길 확률이 상당히 낮아진다. 애초에 대항할 마음이 들지도 않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남에게 긍정적인 호감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니까. 자퇴하든, 다른 곳으로 멀리 도망을 가든. 김성현의 각성은 오늘이 아닌 다음으로 미뤄두는 게 좋았다.

소니아는 어차피 마인 이다. 초반 빌런인 이유도 그 때문이고.

김성현에게 공략당하여 멈추기 전까지 아카데미의 많은 남자의 정기를 빼앗아 자신의 힘으로 이용했다.

승승장구하며 아카데미의 여왕으로 추앙받던 소니아는. 각성한 김성현에게 결국 공략당하여. 김성현의 충실한 육변기가 된다.

그런 소니아따위에게 죄책감 같은 건 들지 않는다. 소니아가 죽든 육변기가 되든. 내 일만 아니면 상관없다. 제 3자의 시선으로 안전하게 지켜볼 수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만족스러울 지도?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시끌벅적한 소리와 비교되게 고요한 복도를 둘러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이 맞는 행동인지. 불안감이 발걸음을 멈췄다.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 될지.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고 축배를 들지. 전혀 예상되지 않는다.

단지,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일 뿐.

후회는 미래의 나에게 맡기는 편이다.

마음을 다잡고 남자화장실이라는 표시가 돼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익­

생각보다 큰 소리에 놀라 잠깐 걸음을 멈췄다. 잠시 멈춰 귀를 기울이니 별안간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찔꺽­찔꺽­

귀를 괴롭히는 날카로운 문을 여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들려오는 규칙적인 끈적거리는 소리.

들뜬 신음도 벽을 타고 자그맣게 울려왔다. 직접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다양한 매체를 통해 경험해온 익숙한 소리.

설마 벌써 섹스를 시작한 건가? 덜컥 불안감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애초에 화장실에서 만나지 못하게 해야했는 데!

내 예상과는 너무 빠른 진도에 다급히 달려가 유일하게 닫혀 있는 대변기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거기 뭐하는 거야! 당장 문 열어!!!"

"잠, 잠깐!"

내 비명에 가까운 고함에 당황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다급히 안쪽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났지만, 변함없이 규칙적인 속도로 질꺽­질꺽­소리가 화장실 안을 채워갔다.

"당장 문 안 열면 부술 거야!"

내 외침에도 찔걱­소리는 멈춤이 없었다. 오히려 내 말에 저항하듯. 속도를 올려 살이 부딪치는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영또플의 세계관 속 영웅의 신체는 일반인보다 몇 배는 강했다. 거기에 그들 중에서도 특출난 고등학생들이 초월 아카데미에 진학하게 된다.

원래의 나라면 불가능했겠지만. 여리여리한 다리로도 이 정도의 문은 가볍게 부실 수 있을 것이다.

"부신다고 했어!"

다시 경고의 말을 던지고 오른발을 뒤로 뺀 뒤. 온 힘을 집중해 문을 발로 걷어차자 자물쇠가 뜯겨 나가며 거친 소음을 냈다.

열린 문틈으로 상의를 탈의한 허리까지 오는 금발의 구릿빛 등이 보였다. 등 가운데 태닝 되지 않은 흰 피부가 시선을 끌었다.

흉터 하나 없이 매끈한 구릿빛 피부와 비키니의 자국으로 의심되는 흰 피부에 묘한 섹시함이 느껴졌다. 깊게 파고든 척추기립근이 재차 눈길을 끌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문을 열었다.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아 비 오듯 땀을 흘리는 남자의 다리 사이로 무릎을 꿇고 규칙적으로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뒷모습만 보았는데도 옆으로 삐져나와 있는 가슴에 야겜에서 보던 거유의 금발 태닝 빗치가 떠올랐다.

내가 저기 앉아 있는 남자로 빙의했다면 한없이 부러운 상황이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남자를 노려보았다.

소설에서 묘사되던 인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

늑대같이 날카로운 인상에 만인의 여자를 홀리게 하는 미소는커녕.

시골강아지 같은 맹한 쌍꺼풀의 눈에 쾌락에 함락돼. 땀범벅에 턱까지 질질 흘린 침이. 누구라도 호감을 느낀다는 각성 후의 김성현과는 다르게. 그저 갓 성욕에 눈뜬 사춘기 소년처럼 멍청해 보여. 한심하게만 보였다.

겨우 저런 게 김성현인가?

실망스러웠다.

그토록 좋아하던 사람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괴리감과 실망감은 상당히 타격이 컸다.

각성전의 모습은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라는 글은 읽어서 알고 있다. 소설에서 워낙 빠르게 각성하여 그 모습에 대한 묘사는 기억의 저편에 묻혀 있었기에. 내가 생각했던 만남과의 차이는. 심지어 무언가 알 수 없는 상실감까지 들게 한다. 입안을 맴도는 씁쓸함에 위가 아플 정도.

김성현은 내 차가운 시선에 놀랐는지 눈이 커지더니 허둥지둥 그때까지. 자신의 자지에 집중하여 위아래로 머리를 흔드는 소니아의 머리를. 억지로 밀어내며 소리를 질렀다.

"잠, 잠깐!! 멈, 멈춰봐!! 누구 왔다고!!"

끝까지 입에서 놓지 않으려는 듯 김성현을 따라가는 소니아의 뒤통수에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김성현에 대한 실망감과 이 상황에 대한 분노가 더는 억제가 불가능했으니.

"아! 씨발 뭐야? 이거 안놔?"

나도 26년 동안 여자한테 당해본 적 없는 것을 겨우 17살. 그것도 어렸을 적 나랑 비교했을 때 별 차이 없는 김성현의 모습에 열등감이 났다. 그렇게 피나는 노력을 한 나도 못해본걸. 너 따위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화를 다스리기 어려웠지만, 한숨과 함께 이성을 찾았다.

"둘이 여기서 뭐 한 거죠?"

내 말에 얼굴이 빨개진 김성현이 무어라 변명하려는 듯하다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몸을 움츠리더니 바지를 올렸다.

발기한 게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크게 텐트를 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며 시선이 갔고 그 시선을 느낀 김성현이 손으로 바지를 감추며 나와 소니아를 밀치고 허둥지둥 밖으로 도망쳤다.

"야! 어디가!!! 아다 떼고 가!!!!"

그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던 소니아가 황급히 몸을 일으켜 도망치는 김성현의 등에 대고 소리쳤지만 부끄러움을 아는지 화장실 문을 열고 쏜살같이 도망친 후였다.

"하, 학기 첫날부터 싱싱한 아다 하나 건지나 했는데 씨발..."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던 소니아는. 헝클어진 머리를 거칠게 정리하고는 나에게 몸을 돌렸다. 턱과 가슴 위가 침으로 번들거렸다. 몸을 돌리는 행위에 크게 흔들리는 가슴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겼다.

소니아의 작은 머리보다 조금 더 큰듯한 가슴. 머리 두 개가 더 가슴에 붙어 있다. 거기에 태운 피부와 비키니를 경계로 하얀 피부의 젖가슴. 핑크빛 유륜에 툭 튀어나와 한입 물고 싶은 젖꼭지는 사라진 내 자지를 세워 환상 통을 일으킬 정도다.

"근데 니년은 누군데 방해하고 지랄이니?"

금방이라도 손톱을 세우고 달려들 것 같이. 날카로운 눈으로 째려보는 소니아의 위협적인 모습. 그러나 우습게도 나에게는 야겜에서 미녀가 최면에 빠져. 자신이 상의를 벗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아무런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지. 큰 가슴을 여과 없이 자랑하듯 내밀고. 자신의 상황도 모르고 남을 비웃으며.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분위기를 깨는 웃음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내 웃음에 기분이 상한 듯 미간을 좁힌 소니아에게서 전과 다른 살기가 느껴진다.

"웃어? 이게 미쳤…."

"신아린. 차성의 후계자."

냉큼 정신을 차리고 소니아의 말을 끊었다.

"차성? 그 기업?"

내 대답을 들은 소니아의 눈이 커졌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대답이었을 터.

다행인지. 후계자라는 나의 말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초월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었다는 것만으로 어느정도 말에 신뢰성을 더 했으니.

차성이라는 세계 3위 기업을 등에 업은 신아린을 해친다는 건 마인 소니아에게도 상당한 부담으로 느껴질 것이다.

실제로도 그런지 내 웃음에 화가 난 소니아의 무섭도록 선명하게 보였던 팔의 핏줄이 내 대답이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것보다. 둘이서 뭐한 것인지 물어봤을 텐데?"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밀어붙여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는 걸 군대에서 경험으로 배웠다.

"뭐, 좋은 거 하고 있었지. 왜 관심 있어? 차성 같이 대단한 곳도 성교육은 따로 안 해주나 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 소니아는 내 가슴을 손가락으로 콕 찔렀다. 아직 나도 터치하지 않은 곳인데. 처음을 빼앗긴 조금 아쉬운 기분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미녀가 자신의 가슴을 출렁거리며 내 가슴을 (비록 옷 위로지만) 찌르는 행위에서 오는 배덕감은 몸이 찌르르 떨릴 정도로 야했다.

그동안 몇 번 망상해왔던 최면어플의 꿈을. 어느 정도 이뤄낸 것 같아 조금 기뻤다.

"아무리 차성의 후계자라 해도 오늘같이 선 넘으면 언니 화낸다?"

언니라니. 같은 1학년 생이라는 걸 까먹었나?. 실제로는 100살이 넘는 마인 이기 때문에 한 실수일 수도 있다.

이런 말실수를 붙잡고 늘어지는 거야말로 군 생활에서 배운 사회생활 팁이었다. 끝나지 않는 갈굼의 향연. 그것이 무료한 군 생활을 보내는 말년의 행복이지.

"언니라니? 같은 1학년 아닌가? 몇 살인데 언니지?"

내 말에 당황했는지 팔짱을 끼며 방어적인 모습을 취하며 나를 위아래로 노려봤다.

`역시 만만치 않네!`라는 생각을 하는 거 아닐까 싶은 경계 섞인 표정으로.

팔짱을 끼니 가슴이 더욱 부각 되며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 젖꼭지의 유혹에 치마를 양손으로 꽉 잡았지만, 시선은 도저히 뗄 수가 없었다.

"당연히 동갑이지! 장난으로 한 말에 되게 민감하네? 하…. 하하!"

"그쪽은 얼마나 둔감하기에 아직도 그 모습인지?"

내 말에 소니아는 자신의 모습을 자각했는지 조금 빨개진 얼굴로 변기 앞바닥에 떨어진 교복을 입었다.

미녀의 세미누드를 더는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조금 나중에 알려줘야 했나 하는 아쉬움이 생겼지만, 일단은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이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만약 소니아가 돌변해 나에게 달려든다면 나는 별다른 저항을 못 한다.

이 몸에 대한 기억조차 없으니 전투 기술도, 전투 능력도 없다. 단순히 주먹과 발을 내지르는 어린 애들이나 할 만한 쌈박질밖에 할 줄 모르는 상태였으니.

심지어 분노한 소니아가 이성을 잃고 아카데미임을 망각하고 마인화를 사용해 달려든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신아린, 오늘 일은 꼭 기억할게."

협박이라도 하듯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던 소니아가 뒤를 돌아 적의 어린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 이름은 소니아야. 너도 꼭 기억해."

내 대답은 들을 생각도 없는지 그대로 가버린 소니아의 모습에 깊은 한숨을 쉬며 벽에 등을 기댔다. 등에서 느껴지는 벽이 차갑게 느껴져 달궈졌던 체온이 식는다. 고개를 돌려 걸쇠가 박살이 난 문을 바라보았다.

김성현과 소니아의 흔적이 역력한 젖은 화장실 타일에 조금이나마 머리가 차가워졌다.

"다행이다."

내가 조금만 늦었다면 소니아는 김성현의 동정을 뗐을 것이고 각성한 김성현의 매력에 얼마 못 가 자퇴나 전학을 가기 전에 나도 공략당했을 확률이 있다.

내 베드엔딩루트를 시작도 전에 끝냈다는 생각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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