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
이제 더는 참지 않겠다. (3) - 완결
알고 보니 민경도도 드러나 보이는 성격만 괄괄할 뿐이지 내면적으로는 두려움이 무척 많은 사람이었다. 그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 더 괄괄하게 행동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민웅지가 왜 그렇게 소심하고 겁 많은가 했는데, 알고 보니 민경도의 성격을 그대로 빼닮은 듯했다.
통화를 마친 서유림이 옷을 챙겨 입었다.
마침 아리아나가 외출에서 돌아왔다. 발싸심을 하고 있는 서유림을 보고는 물었다.
“어디 가요?”
“양평에 좀 다녀올게.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아리아나는 서유림과 한집에서 살고 있었다.
아직 한 방 한 침대는 쓰지 못했다. 서유림이 몇 번 시도는 해봤지만, 그때마다 아리아나가 거절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교감을 통해서 아리아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까.
아리아나도 사실은 서유림을 원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서유림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정령신의 후보’라는 과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예전의 기억은 모두 잃었지만, 순결을 잃는 순간 모든 것을 잃고 비참하게 죽어야만 한다는 운명을 본능이 기억하고 있는 거겠지.
서유림은 기다리기로 했다. 아리아나가 본능의 기억이 주는 두려움을 이겨낼 때까지.
사실 이렇게 매일 얼굴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 아닌가?
“오늘 들어와요?”
“웬만하면 와야지. 못 들어오면 전화할게.”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말로만?”
서유림이 입술을 쭉 내밀었다.
입맞춤을 시작한지는 제법 되었다. 이제는 아리아나도 입맞춤에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좋아하는 듯했다.
아리아나가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는 슬며시 다가와서 입술을 맞춰주었다.
서유림이 이때다 싶어서 팔로 아리아나의 허리와 어깨를 꼭 안아주었다. 아리아나의 몸이 훅 당겨져서 들어왔다.
“읍!”
아리아나가 놀라서 소리를 냈다. 하지만 서유림의 입술에 막혀서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
서유림은 아리아나를 구속하듯 힘껏 끌어안았다. 품안에 쏙 들어온 아리아나의 몸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아리아나를 꼭 끌어안은 채 입술을 마음껏 탐했다.
아리아나도 거부하지 않았다. 서유림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자신이 싫어하는 내색을 하면 언제 어느 때라도 그 선에서 멈춰줄 거라는 믿음.
짙은 입맞춤을 마치고도 부족해서 아리아나의 얼굴 곳곳에 도장 찍듯 입술을 찍어주었다.
쪽쪽쪽······.
아리아나가 징그럽다는 듯 어깨를 움츠렸다.
“후훗, 다녀올게.”
“다녀오세요.”
양평군 산기슭의 외딴 건물.
장로들이 번갈아가며 건물을 지키고 있었다.
서유림이 복면을 쓰고 나타나자 얼른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주군!”
서유림은 손을 한 번 들어주는 것으로 인사를 받고는 지하실로 들어갔다.
지하실에는 두 명이 묶여있었다. 민경도와 그의 아들 민웅지다.
지하실에 다른 방도 있었다. 그곳에도 두 명이 있었다. 민경도의 재산을 대신 관리해주고 있는 친척 두 명이었다.
서유림이 복면을 쓰고 나타나자 민경도와 민웅지가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서유림이 민경도에게 다가갔다.
민경도는 거의 석 달 간을 갇혀있으면서 온갖 고생을 다 겪었다. 뼈가 부러지는 경험을 수백 번도 넘게 했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민웅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민경도도 민웅지도 모두 멀쩡했다. 오히려 지난날보다 훨씬 더 쌩쌩해보였다.
정령 덕분이었다. 서유림이 정령을 침투시킨 것이다.
때문에 마음껏 뼈를 부러뜨리고 살을 찢어도 일주일이면 말끔히 나았다. 한마디로 일주일마다 끔찍한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는 뜻이지.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런 회복능력이 엄청난 축복이겠지만, 민경도 민웅지 부자에게는 그보다 큰 재앙도 없었다.
<< 후훗, 상처가 모두 회복되었군. 그럼 또 시작해볼까? >>
“우웁! 우웁!”
민경도가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며 뭔가를 이야기하려는 듯 애썼다.
서유림이 원하는 것을 주겠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서유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한두 번 속는 것도 아닌데 또 속을까?
저렇게 해놓고는 막상 물으면 거짓 정보를 늘어놓았다. 블랙 포이즌으로 환각상태에 빠뜨렸는데도 그랬다.
그만큼 정신력만큼은 엄청나다는 뜻이겠지. 아니면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거나.
그 때문에 김영자가 여러 차례 허탕을 치기도 했다. 어찌나 쪽팔리고 미안하던지.
그에 대한 대가는 확실하게 치러야 하겠지.
서유림은 민경도가 보는 앞에서 아들 민웅지의 온몸을 잘근잘근 짓밟았다. 부러뜨리고 찢고.
벌써 한 달째 이러고 있다. 민경도는 말하겠다며 발버둥 쳤지만, 서유림은 듣고 싶지 않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통만 주었다.
한 시간 정도 작업하자 민웅지가 지쳐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역시 정령의 힘 덕분에 제법 오래 버틴다.
이제 민경도 차례다. 민경도가 더욱 거세게 몸부림쳤다.
하지만 서유림은 민경도에게는 고통을 주지 않았다. 대신 민경도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순간적으로 블랙 포이즌을 강하게 주입했다.
민경도가 순식간에 몸을 늘어뜨렸다.
서유림이 민경도의 재갈을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마치 최면을 걸 듯 조용히 이야기했다.
“너는 물론이고 네 아들도 평생 이렇게 고통 받을 것이다. 죽고 싶어도 죽지도 못하지.”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민경도가 몽롱한 목소리로 애원하듯 이야기했다.
“조만간 네 손자도 잡아올 것이다. 그리고 너와 네 아들에게 한 것처럼 고통을 줄 것이다. 평생. 죽을 때까지.”
민경도의 손자 민석주는 건강을 회복했다. 서유림이 늦지 않게 해독시켜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개과천선의 여지가 있는 고등학생을 평생 폐인으로 살게 하는 건 좀 그랬다.
민경도도 그런 상황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유림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죽은 목숨이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민경도가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었다. 마인드컨트롤에 의해 공포심이 극대화대고 있는 것이다.
“말해라. 통장의 비밀번호가 무엇이냐? 말하지 않으면 당장 네 손자를 잡아오겠다.”
그러자 민경도가 입을 열었다.
“7369”
이번에는 진짜일까? 확인해보면 알겠지.
“인감도장을 숨겨둔 금고의 비밀번호는 뭐냐?”
“4290”
서유림은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내용을 김영자에게 전달해주었다.
‘이번에는 진실이기를······ 아니면 너나 나나 몇 달 더 고생하는 거다.’
서유림이 지하실을 나섰다. 그리고는 누워서 책을 보며 김영자에게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김영자가 전화를 걸어온 것은 그로부터 약 두 시간쯤 후였다.
김영자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 됐어요. 비밀번호가 일치해요. 이제부터 민경도의 재산도 빼앗을 수 있겠어요.
서유림의 입술이 쭉 찢어졌다.
‘결국 이렇게 될 걸, 왜 그렇게 개고생을 했던 거야?’
더는 양평에서 할 일이 없겠군. 나머지는 김영자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럼 이제 뭘 해야 하나?
할 일은 당연히 하나뿐이다.
서유림이 얼른 휴대폰을 꺼내서 아리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내려갈게. 저녁 함께 먹자.]
[네. 저녁 준비해놓을게요.]
아리아나의 답장을 보니 괜히 마음이 들떴다. 이럴 때 보면 꼭 아내 같단 말이야.
오늘 다시 시도해볼까?
해보자. 손해 볼 것 없잖아. 자꾸 문을 두드려줘야 아리아나도 자꾸만 문을 열어줄 용기를 낼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다가 아리아나가 싫다고 하면 그때 멈추면 되잖아.
서유림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대전으로 차를 몰았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가끔 과속도 했다.
덕분에 조금 이른 시각에 대전 아파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된장찌개 냄새가 구수하게 났다.
“어머! 벌써 왔어요?”
“우리 아리아나 보고 싶어서 빨리 달려왔지.”
“앉으세요. 그렇지 않아도 준비 다 됐어요.”
아리아나가 밥상을 차렸다.
함께 수저를 놀리며 음식을 먹었다.
“와! 어제보다 더 맛있네.”
아리아나가 행복한 표정을 했다.
“정말요?”
농담이 아니었다. 아리아나는 음식솜씨도 좋았다. 매일 할머니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요리를 전수받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아리아나와 함께 음식을 먹으니 맛이 배가 되는 듯했다.
순식간에 밥 두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정령의 힘 덕분에 소화 걱정은 전혀 없으니까.
아리아나가 밥상을 치웠다. 서유림이 그런 아리아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쩜 저렇게 완벽할 수가 있을까?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외모였다. 게다가 마음씨까지 곱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지만, 아리아나 만큼은 그 말에서 예외일 듯싶었다.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다.
아, 아리아나는 사람이 아니라 요정이었지?
어쨌건 이렇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설거지까지 마친 아리아나가 서유림 곁으로 다가왔다.
“뭘 그렇게 봐요? 사람 무안하게.”
“무안하긴 뭐가 무안해? 예뻐서 보는 건데.”
아리아나가 얼굴을 붉혔다.
도저히 못 참겠다. 이런 여자를 옆에 두고 어떻게 참아?
서유림이 그대로 아리아나를 덮쳤다. 무방비상태였던 아리아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고, 서유림이 몸을 포개듯 그 위로 올라갔다.
아리아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전에도 이런 경험은 많이 있었으니까.
내키지 않는다면 상황이 조금 더 격하게 진행된 후에 저항할 것이다.
“아리아나!”
“네.”
“우리 결혼할까?”
서유림의 물음에 아리아나가 눈을 크게 떴다.
아리안도 결혼의 의미는 당연히 알고 있다. 다른 여자들처럼 그것을 꿈꾸는지 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서유림은 ‘순간’ 아차 싶었다.
그러고 보니 ‘결혼’이라는 단어를 처음 꺼냈다. 따지고 보면 프로포즈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성의 없이 하다니.
따귀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하지만 아리아나는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서유림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요. 하고 싶어요.”
서유림의 눈이 커졌다.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 아니지?’
아리아나가 확인시켜주듯 말했다.
“우리······ 결혼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아이도 낳고.”
“고마워.”
“아뇨. 제가 감사해요. 이렇게 기다려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저도 잘 알아요.”
알고 있었구나.
하긴, 모를 리가 없지. 우린 교감으로 통하는 사이니까.
그러고 보니 아리아나의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묘한 흥분도 느껴졌다.
서유림을 원하는 듯했다. 마음뿐만이 아니라 몸까지.
그런 거라면 줄 수 있다. 얼마든지.
서유림이 아리아나의 입술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아리아나는 거부하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크고 맑은 눈으로 점점 다가오는 서유림을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눈을 감았다.
아리아나의 붉고 촉촉한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해주었다.
물론 단지 시작만 가벼울 뿐이었다. 너무 급하게 시작하면 아리아나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도 놀라서 거절할 수 있으니까.
아주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서유림은 손으로 아리아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어서 목으로, 그리고 어깨와 팔을 거쳐서 허리로.
여기까지는 전에도 이미 시도해보았다. 그리고 아리아나도 이따금 허락했던 부분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과연 아리아나가 어디까지 허락해줄 것인지.
서유림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가슴으로. 지금까지 여러 차례 시도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한 곳이다.
그런데 아리아나는 오늘따라 미동도 없었다. 서유림의 손이 어느새 옆구리를 지나 젖가슴 위에 가볍게 놓였는데도 전혀 거부하지 않았다.
그래. 이런 때는 과감해야 한다. 아리아나가 거부한다면 그때 멈춰도 늦지 않아.
서유림의 손이 더욱 과감해졌다. 노골적으로 아리아나의 몸을 만졌다. 가슴뿐만이 아니라 아리아나의 전신을 어루만졌다. 옷 속도 과감하게 파고들었다.
그런데도 아리아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이 움직이기 힘든 곳으로 향하면 몸을 움직여서 서유림의 손길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아리아나 자신도 서유림의 몸을 어루만졌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숨소리도 거칠어져 있었다. 서유림도 아리아나다.
이제 서로의 마음은 확실하게 확인한 셈이다.
서유림이 아리아나를 번쩍 안아서 침대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그동안 그토록 꿈꿔왔던 일들을 하나씩 풀어가기 시작했다.
아리아나는 어느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었다.
아리아나가 부끄러운 듯 몸을 살짝 움츠리며 서유림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사랑해요. 유림씨.”
“나도 사랑해.”
‘알지?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정령계에서 그리고 인간계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참아왔는지.’
이제 더는 참지 않겠다.
서유림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몸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니까.
아리아나도 온몸으로 서유림의 이야기를 경청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