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
아리아나는 찾았지만 (1)
대전시 오정동의 큐티모텔.
띵동.
초인종이 울리자 강세중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누구요?”
“저 신영범입니다.”
신영범이라면 마령의 계약자였다.
강세중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처지가 비참했다. 누가 찾아올 때마다 카리스의 정령검을 휘두르던 그놈은 아닐까 싶어서 덜컥덜컥 겁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니.
강세중이 문을 열어주었다.
“무슨 일이냐?”
“아주 특별한 여자를 찾았습니다.”
“특별한 여자?”
“아무래도 정령의 계약자인 듯싶습니다. 움직임이 보통 사람과는 다릅니다.”
순간 강세중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여자라면 카리스의 정령검을 휘두르던 그놈은 아닌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강세중에게는 맛있는 먹잇감이라는 얘기지.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게다가 무지하게 예쁩니다.”
“예뻐?”
이런 위중한 상황에서 여자 얼굴을 탐하면 안 되는데.
하지만 그게 마령과 마왕의 본능인 것을 어쩌겠는가? 예쁜 여자라는 말에 절로 음심이 솟구쳤다.
“예쁜 정도가 아닙니다. 제 생전에 그렇게 예쁜 여자는 처음 봅니다. 사진 한 번 보시겠습니까?”
“오, 사진이 있어?”
어느새 위중한 상황 따위는 뒷전이었다.
어차피 둘 뿐인 상황 아닌가? 그냥 숨어있으나 여자를 탐하며 숨어있으나 뭐가 다르단 말인가?
아무리 위중한 상황이라도 즐길 건 즐겨야지.
신영범이 사진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웬 여자가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강세중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미모였다. 강세중도 TV를 통해서 숫하게 많은 연예인들을 보았고, 나름대로 이상형으로 꼽은 연예인들도 있었지만, 이 여자와 비교한다면 하나같이 오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벌써부터 아랫도리가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년 지금 어디에 있지?”
“움직임이 신출귀몰합니다. 몰래 뒤따라갔는데 감쪽같이 사라져서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강세중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네가 지금 나와 장난하겠다는 거냐?”
“그럴 리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수일 내로 다시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주기적이지는 않지만, 아주 가끔 이 여자가 꼭 들르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을 지키고 있으면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강세중의 입꼬리가 씰룩 말려 올라갔다.
그렇다면 이미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아닌가? 마령의 계약자들은 잡을 수 없을지 몰라도 마왕의 계약자인 자신은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천상의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어디냐? 가보자.”
* * *
서유림이 집으로 들어왔다.
영등포구에 있는 원래의 집이었다. 이사를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집기류는 거의 그대로 있었다.
다만 가족 모두가 집을 비웠기 때문에 분위기가 썰렁했다.
불은 온통 환하게 켜져 있었다. 서유림이 며칠 전부터 이곳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는데, 집을 나설 때마다 불을 켜놓고 나갔기 때문이다.
집안에 가족들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잠을 잘 때만 불을 껐다.
어느새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서유림이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휴우, 역시 쉽게 풀리는 일이 없군.’
아리아나 찾는 일도 그렇고, 마령들을 유인하는 일도 그렇다. 계속 공을 들이는데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오늘도 조용히 넘어가려나?’
서유림이 눈을 감았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차가운 물방울이 서유림의 볼을 톡톡 때렸다.
서유림이 눈을 번쩍 떴다.
옆에 놓아둔 물 컵에 물이 절반쯤 들어있었는데, 그 안의 물이 서유림을 향해 물방울을 계속 날리고 있었다.
정령 블루였다. 서유림을 대신해서 보초를 세워두었었다.
물론 힘이 약해서 먼 곳까지 살피지는 못한다. 하지만 서유림이 잠든 방문 근처의 상황은 살필 수 있었다.
서유림이 오감을 바짝 세워서 밖의 기척을 살폈다.
살금- 살금-
누군가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무척 여러 명이었다.
서유림의 입술이 씰룩 말려 올라갔다.
‘왔구나!’
이게 대체 며칠 만이던가? 역시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서유림은 조금 더 기다렸다.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이들이 집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야 한 놈이라도 더 잡을 수 있을 테니까.
잠시 후, 서유림의 방문 문고리가 아주 조심스럽게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기다릴 만큼 기다린 거겠지?
‘지금이다!’
서유림은 방문이 살짝 열리는 순간 벼락처럼 문을 열 며 문 밖에 있는 놈의 면상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악!”
한 방이면 충분했다. 놈이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다.
‘마령의 계약자는 아니로군.’
하지만 분명 마령의 계약자도 있을 것이다.
서유림이 벼락처럼 방문을 나서며 빠르게 집안 상황을 살폈다.
방문 앞에 쓰러진 놈을 포함해서 모두 여섯 명이었다. 서유림이 방에서 튀어나오자 다들 화들짝 놀라서 밖으로 달아나려고 했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을지 몰라도 나갈 때는 그렇게 못 나가지.
‘어딜 도망가? 슬립다운!’
서유림이 마법을 펼치자마자 침입자들이 풀썩풀썩 쓰러지기 시작했다. 집기들에 걸려 넘어지면서 소음도 냈다.
우당탕탕-
그럴 때마다 서유림이 다가가서 차례차례 주먹을 꽂아 넣었다.
‘이놈도 마령의 계약자는 아니고.’
침입자들은 완전히 겁에 질린 듯했다. 어떻게든 서유림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슬립다운 효과는 더욱 커졌다. 마치 스케이트를 신고 얼음판에서 미끄러지는 연습이라도 하는 듯했다.
그렇게 여섯 놈을 모조리 쓰러뜨렸다.
서유림은 마지막 놈을 쓰러뜨릴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미소가 지어졌다.
‘잡았다! 마령의 계약자!’
서유림이 이마에 손을 대고는 마령의 힘을 흡수했다.
하지만 체력은 흡수하지 않았다. 이놈에게는 따로 물어볼 게 있거든.
놈은 체력을 흡수당하지 않았는데도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마령의 힘을 갑자기 잃게 되자 정신적으로 충격이 큰 듯했다.
“네놈의 우두머리는 어디에 있지?”
“모······ 모릅니다.”
“저런! 안 됐군! 모르면 몸이 고생일 텐데.”
서유림이 놈의 몸에 블루 포이즌을 주입시켰다.
레드 포이즌과 함께 극심한 고통을 주는 포이즌이다. 다만 레드 포이즌은 고통이 쉬지 않고 지속되는 반면 블루 포이즌은 일정시간마다 주기적으로 고통이 반복된다.
얼마나 강하게 주입하느냐에 따라서 고통의 강도와 주기는 달라진다.
“으악!”
놈이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는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서유림이 놈의 옷을 재빨리 물려서 비명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았다.
“우우욱!”
아마 참기 힘든 고통일 것이다. 블루 포이즌을 잔뜩 주입했거든.
이렇게 하면 괜히 뼈를 부러뜨리는 식의 수고를 할 필요도 없다.
“대답할 생각이 있으면 고개를 끄덕여라. 여전히 모르면 평생 그런 고통에 시달리면서 살던가.”
그러자 놈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우웁! 우웁!”
“너희 우두머리가 어디 있는지 생각이 난 거냐?”
“우웁! 우웁!”
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대답해봐라. 어디 있지?”
서유림이 재갈을 빼주었다.
“대전에 있습니다. 지금은 으윽······! 오정동 큐티모텔 602호······ 끄으으······! 계속 장소를 바꿔서······.”
놈이 고통으로 신음하면서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과연 사실일까? 아니면 거짓일까?
그거야 확인해보면 알겠지.
“확인해봐서 만약 거짓이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정말입니다. 크윽! 제발······ 살려주세요.”
물론 그렇게 쉽게 해독시켜줄 수야 없지. 고통스럽다고 해서 죽는 것은 아니니까.
너 같은 놈은 고생을 좀 해봐야 한다니까.
“대전에서 놈을 찾으면 그때 고통을 없애주마.”
서유림이 광명회 장로들에게 연락해서 침입자들을 모조리 가둬두도록 했다.
서유림은 아침이 될 때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곧장 대전으로 내려갔다. 하루를 허비하는 사이 놈이 모텔을 옮길 수도 있으니까.
‘큐티모텔이라고 했지?’
찾기 쉬웠다. 오정동에서 가장 크고 깔끔한 모텔이었다.
602호로 향했다.
방문 앞에 서니 잔뜩 긴장이 되었다. 마왕의 계약자는 마령의 계약자와 달리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놈이 있다면 당장 아리안을 불러오고, 카리스의 정령검도 차원이동 시켜 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없을 수도 있으니 일단 확인부터 해봐야겠지.
똑. 똑.
서유림이 조심스럽게 방문을 두드렸다.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노크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작은 기척이라도 있다면 서유림이 놓칠 리가 없는데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다시 카운터로 내려갔다.
깊은 새벽이라서 주인아저씨가 잠들어있었다. 서유림이 한참을 두드리고 나서야 눈을 비비며 문을 열어주었다.
602호를 물어볼까 하다가 참았다. 잘못하면 놈이 눈치 채고 도망갈 수도 있으니까.
“방 좀 주세요.”
“혼자 주무시게?”
“예. 혹시 602호 비어있나요? 난 그 방이 좋은데.”
“602호는 사람이 있는데.”
아직 있군!
“그럼 그 옆방이나 맞은편 방으로 주세요.”
“옆방은 다 찾고, 맞은편 방은 비어있네요.”
값을 치르고 열쇠를 받아왔다. 그리고는 602호의 맞은편 방인 6013호 방으로 들어갔다.
서유림이 문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눈을 감았다.
잠이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놈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
정령으로 보초를 세우는 것도 힘들다. 놈 외에 다른 사람들도 수시로 오가는 곳이니까.
이렇게 무작정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잡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창밖은 어느새 환해졌다.
하지만 놈은 여전히 기척이 없었다. 잘못하면 이곳에서 여러 날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상관없다. 어차피 황국회의 일과 아리아나의 일 외에는 급한 일이 없으니까.
황국회의 일이야 며칠 비운다고 해도 큰 문제없을 것이고, 아리아나는 김영자가 대신 열심히 알아봐주고 있을 것이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김영자였다.
처음에는 김영자의 이름이 뜰 때마다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혹시 아리아나의 소식을 전해오는 건 아닌가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실제로 김영자의 전화는 대부분 아리아나와 관련한 것이었다. TV 광고를 때리면서부터 여기저기에서 아리아나를 보았다는 제보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광고를 내보내고 겨우 닷새 지났는데 벌써 300통도 넘는 제보전화를 받았단다.
그럴 때마다 김영자가 사람들을 보내서 정확성 여부를 확인했다. 그리고 신빙성이 높은 제보만 골라서 서유림에게 전해주었다.
덕분에 서유림은 부산, 강릉, 목포, 광주, 전주를 수시로 돌아다녀야 했다. 물론 늘 허탕이었지만.
그러다 보니 조금은 지친 느낌이 들었다. 김영자가 전화를 걸어와도 처음만큼 흥분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지구 몇 바퀴를 도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찾아내고 말 것이다.
“예, 여사님!”
- 그 여자를 보았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사진을 찍어서 보내왔는데 몽타주하고 거의 똑같아요. 이번에는 신빙성이 꽤 있는 것 같아요.
신빙성이 있다는 말에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왔다고?
“어느 지역인가요?”
- 대전이에요.
마침 잘 되었다.
“사진하고 제보자 연락처 좀 주세요.”
- 지금 보낼게요.
통화를 마치자마자 김영자로부터 문자가 날아왔다.
서유림은 사진부터 확인했다.
조금 멀리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게다가 흐릿해서 얼굴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서유림은 사진을 보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모를 느낌이 가슴을 찔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옷차림!
완전 거지같았다. 척 봐도 예쁜 얼굴이 완벽할 정도로 아름다운 몸매인데 그 미모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누추했다.
아리아나가 인간계로 와서 행복하게 살고 있겠는가? 부유하게 살고 있겠는가?
당연히 온갖 고생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삶의 가장 기본이라는 의식주 자체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니까.
‘아리아나가 분명해.’
서유림이 얼른 제보자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