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187화 (187/196)

# 187

마지막 전투 (3)

이틀 후.

요나스 성은 초긴장상태였다. 정령신의 후보들은 대충이나마 마력을 회복시켜놓은 채 대기했고, 계약자들도 딱딱해진 표정으로 북쪽을 바라보았다.

70만 명도 넘는 요정 군단도 모두 완전무장한 상태로 성벽마다 잔뜩 달라붙어있었다.

서유림은 후아니스와 함께 북쪽 성문 망루 위에 올라 있었다.

후아니스가 눈을 감고 바람의 정령을 느꼈다. 아리아나가 종종 했었던 일이었기에 서유림은 그냥 조용히 기다리기만 했다.

“이제 보일 때가 되었어요.”

그러고 보니 북쪽 지평선 언저리에서 뭔가 뽀얀 먼지 같은 것이 이는 게 느껴졌다.

가물가물하게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형태가 또렷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제는 먼지를 일으키는 주체들도 보였다.

“엄청난 속도로군요.”

“그러게요. 사흘은 걸릴 줄 알았는데 이틀 만에 도착하다니. 이곳에 정령신의 후보들이 잔뜩 모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거예요.”

한마디로 정령신이 옹립되기 전에 쓸어버리기 위해서 서두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서유림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상대가 그토록 서둘렀다면 제아무리 마왕의 군단이라고 해도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정령신의 후보들이 아직 마력을 충분히 채우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이쪽과 저쪽 모두 지친 상태라면 이쪽이 조금은 더 유리할 거라고 판단했다.

“우리도 준비하죠.”

“네.”

함께 망루를 내려왔다. 대신 기수 세 명이 서유림과 후아니스를 대신해서 망루로 올라갔다.

기수들이 깃발을 움직여서 마왕군단과의 거리를 알려주었다.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요나스 성 1km 앞까지 접근했다.

“우리도 밖으로 나가죠.”

서유림이 먼저 제안했다.

그러자 후아니스를 비롯한 정령신의 후보들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했다.

“밖으로 나가자고요?”

“든든한 성벽을 버리고 밖에서 싸우자는 말씀이신가요?”

“그건 좀 무모한 일 같은데.”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군.

“마왕군단은 지금 지쳐있는 상태입니다. 쉴 시간을 주지 않고 덮치는 게 우리에게 유리해요. 게다가 이쪽에서 성문을 열고 선제공격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나름대로 허를 찌르는 의미도 있고요.”

“하지만······.”

“무리하지는 않을 겁니다.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후퇴해서 성벽에 의지해 싸워도 됩니다. 그래도 일단 시도는 해봐야 합니다.”

서유림이 물러서지 않고 이야기했다.

그제야 정령신의 후보들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작전은 오로지 서유림에 의지한 작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니까.

하긴, 언제는 안 그랬나?

북쪽으로 향해있는 네 개의 성문이 모두 열렸다. 서유림을 선두로 10만 명에 가까운 요정군단이 물밀 듯이 빠져나갔다.

정령신의 후보들과 계약자들도 함께 했다.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마왕 군단은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요정군단을 보고는 다시 속도를 올렸다. 적당한 거리에서 휴식을 취하려다가 요정군단의 선제공격을 확인하고는 전면전을 결정한 듯했다.

그런데 마왕은 어디에 있지?

아! 저기에 있는 모양이군!

성물의 탑 두 개가 모여 있는 게 보였다. 그 주변으로 마족군단의 붉은 물결이 넘실대고 있었다.

마신의 성물이 두 개라.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군.

하지만 서유림에게도 성물이 무려 다섯 개나 있었다. 목걸이, 팔찌, 벨트에 반지 두 개까지. 모든 성물을 서유림에게 몰아준 것이다.

한 번의 싸움으로 끝내버리겠다.

서유림이 더욱 속력을 올렸다.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고, 어느새 마왕군단과 요정군단이 하나의 무리고 맞닥뜨렸다.

마치 거대한 쓰나미가 서로를 향해 덮치는 듯했다.

서유림은 일단 힘을 아꼈다. 마왕과 마주치기도 전에 힘이 빠지면 곤란할 테니까. 그저 평소의 힘만으로 카리스의 정령검을 휘두르며 마족군단 안쪽 깊숙이 파고들었다.

‘어디 있니? 마왕! 나와! 아, 저놈이로군!’

두 개 성물의 탑 사이였다.

딱 봐도 마왕으로 보이는 놈이 있었다. 덩치는 다른 마족과 비슷한데 머리에 대여섯 개나 되는 뿔이 불쑥불쑥 솟아있었다.

게다가 피부는 마치 가뭄에 말라서 쩍쩍 갈라진 논밭 같았다. 붉은 소나무껍질 같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리려나?

그놈이 거대한 창을 들어 올리며 마족군단을 지휘하고 있었다.

마왕은 한 놈뿐이라고 했다. 저 놈만 해치우고 나면 이번 마왕군단은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요나스 성의 위세만 강해질 것이다. 성물을 두 개나 더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이제 힘 좀 써볼까?’

서유림이 드디어 잠재력을 터뜨렸다. 성물의 힘까지 동원해서 카리스의 정령검에 쏟아부었다.

그러자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던 카리스의 정령검의 검날이 긴 채찍처럼 쭉쭉 뻗어나갔다.

그 길이가 10m도 넘었다. 게다가 하나가 아닌 수십 개의 채찍으로 변했다. 그 채찍에 닿을 때마다 마족군단은 얼음으로 변해서 깨져나갔다.

쩌저적-

쩌저적-

서유림의 주변에서 마족들이 얼음으로 변하여 깨져나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러자 마왕도 창을 멈추고 서유림을 노려보았다. 비로소 서유림의 존재를 확인한 것이다.

마왕이 두 손을 하늘을 향해 쭉 뻗었다.

구오오-

마왕의 포효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마왕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덩치가 두세 배는 커졌고, 소나무 껍질 같았던 피부 사이사이에서는 엄청난 불길이 뿜어졌다.

망왕의 몸 자체가 거대한 불덩이가 된 듯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족히 7m는 될 듯했다.

쿵! 쿵!

마왕이 걸음을 옮기자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식하게 강하긴 한가 보군!

서유림은 아리아나가 해준 말을 믿었다. 서유림은 2차 성장판을 연 그 순간부터 이미 마왕을 물리칠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다만 서유림 본인이 그것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땐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그것은 자신감이다. 과감함이고 조금은 무모함이다.

‘제까짓 게 그래봐야 마왕이지.’

생각해보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이곳에서 죽어봤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다시는 정령계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어차피 이번 일만 마무리 지으면 정령계로 들어올 일도 없지 않은가? 오늘이야말로 모든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을 가장 좋은 기회다.

‘가자!’

서유림도 마왕을 향해 몸을 날렸다. 마치 바위를 향해 날아가는 계란 같았다. 하지만 두부보다 무른 바위가 될 것이고, 금강석보다 강한 계란이 될 것이다.

서유림이 카리스의 정령검을 마왕을 향해 휘둘렀다.

슈슈슈-

어느새 수십 가닥으로 늘어난 정령검의 검날이 긴 채찍이 되어 마왕의 온몸을 휘감았다.

그러자 마왕의 몸이 쩍쩍 갈라지면서 부셔졌다. 마치 피의 안개가 된 것처럼 몸이 흩어졌다.

카리스의 정령검에 의해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몸이 훼손된 것이다.

‘뭐야? 벌써 끝난 거야?’

그럴 리가 없었다. 피의 안개처럼 흩어진 마왕의 몸이 다시 하나로 모아졌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창을 서유림을 향해 던졌다.

흩어졌다가 모이고 창을 던지는 그 일련의 과정이 너무도 순식간이었다. 마치 정령검을 피하기 위해서 스스로 의도한 듯했다.

파팟!

“흡!”

마왕의 창이 서유림이 있던 자리에 깊이 꽂혔다. 재빨리 피했기 망정이니 그대로 있었다면 산 채로 꼬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창은 여전히 마왕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실제 창이 아닌 창의 기세만을 던진 듯했다.

마왕이 다시 창을 던졌다.

서유림이 다시 몸을 굴려 피하며 카리스의 정령검을 휘둘렀다.

슈슈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마왕의 몸이 피의 안개로 변했다가 뭉치면서 정령검의 힘을 가볍게 흘려보냈다.

“젠장,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 거야? 약점이 뭐야?”

“심장이에요. 아래를 보세요.”

후아니스의 목소리였다. 서유림의 뒤쪽 10m쯤에서 서유림을 위해 축복마법을 걸어주고 있었다.

‘아래쪽? 심장?’

지금 상태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방법을 알 것도 같았다.

세 번째 마왕의 창을 피하면서 다시 카리스의 정령검을 휘둘렀다.

마왕의 몸이 이번에도 피의 안개로 변했다.

순산 서유림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저것이로구나. 마왕의 심장!’

그런데 심장이 어떻게 저런 곳에 위치해있지? 사람으로 치면 방광쯤에 위치해 있었다. 온몸이 안개처럼 흩어지는 와중에도 그것만큼은 형체를 갖춘 채 벌컥벌컥 뛰고 있었다.

‘됐어!’

서유림이 다시 심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마왕이 이번만큼은 몸을 분해하지 않았다. 정령검이 자신의 심장을 정확히 노리고 있음을 눈치 챈 듯했다.

대신 창을 휘둘러서 정령검을 막으려 했다.

정령검의 가닥이 워낙 많았지만, 정확히 심장을 향한 것은 서너 가닥에 불과했다.

꾸구궁-

마왕의 창과 정령검이 부딪치면서 폭발음이 뿜어졌다.

쿠오오-

마왕도 동굴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막지 못한 정령검의 가닥들이 마왕의 몸을 통타했기 때문이다.

‘됐다! 이렇게만 하면 돼!’

비록 심장을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효과는 있었다. 계속 공격하다 보면 언젠가는 심장을 찌르는 때도 오겠지.

서유림이 정령검을 마구 휘둘렀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엄청난 양의 마력이 소모되었지만, 무려 다섯 개나 되는 성물에서 어마어마한 마력이 제공되고 있었기 때문에 끄떡없었다.

후아니스도 계속해서 축복마법을 걸어주었다. 후아니스가 지쳐 쓰러지면 다른 정령신의 후보가 그 자리를 대신해주었다.

열 대, 열한 대······.

카리스의 정령검이 마왕의 온몸을 계속해서 난도질했다.

마족군단이 마왕을 보호하기 위해서 기를 쓰고 달려들었지만, 그들은 계약자들과 요정군단이 막아주었다. 마족군단과 부딪치는 족족 죽어나갔지만, 요정군단은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 서유림을 지켰다.

얼마나 많은 요정군단이 희생되었는지 모르겠다.

계약자들도 벌써 두 명 정도가 희생된 듯했다.

하지만 시간은 요정군단의 편이었다. 마왕의 기세가 눈에 보일 정도로 약해졌기 때문이다. 용광로처럼 활활 타오르던 불길도 약해졌고, 움직임도 현격하게 느려졌다.

서유림이 다시 카리스의 정령검을 휘둘렀다.

카리스의 정령검은 매번 검로를 바꾸었다. 옆으로, 세로로, 대각선으로. 그리고 이따금 기습적으로 찌르기도 했다.

이번에는 찌르기였다. 온 신경을 집중하여 모든 검의 가닥들이 마왕의 심장을 노리도록 했다.

꾸궁-

마왕이 휘두른 창이 정령검과 부딪치며 다시 폭발음을 내뿜었다.

하지만 겨우 두세 개에 불과했다. 나머지 정령검의 가닥들이 드디어 마왕의 몸을 뚫었다.

“크아아.”

마왕의 입에서 고통의 비명소리가 뿜어졌다.

하지만 서유림이 정령검을 회수하여 다시 뿌리자 그 비명소리조차도 잦아들었다.

“크르르······.”

마왕은 창을 휘두르지도 못한 채 정령검의 가닥들이 자신의 아랫배를 꿰뚫는 장면을 지켜봐야만 했다.

마왕의 그 눈빛조차도 점점 힘을 잃었다.

푸스스-

거대해졌던 마왕의 몸이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점점 줄었다.

이제 끝을 볼 때다.

서유림이 그대로 달려가서 마왕의 허리를 베어버렸다. 몸통과 함께 심장을 반으로 갈라버리는 검로였다.

쿵!

마왕이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주변을 가득 메웠던 마족 군단이 일순간 멈칫했다. 마왕군단의 핵심이자 정신적 중심이었던 마왕의 죽음은 그만큼 큰 충격이었다.

아직 마신의 성물이 두 개씩이나 멀쩡하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손발이 어지러워져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다.

반대로 요정군단은 힘을 냈다.

“와아!”

목청이 찢어지도록 함성을 내지르며 불나방처럼 마족군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원래 요정은 마족보다 훨씬 약한 존재다. 요정 두세 명이 달라붙어야 마족 하나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랄까?

거기에 마신의 성물까지 있으니 열 명이 달라붙어도 마족 하나를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마치 그 상성이 역전된 듯했다. 오히려 요정이 호랑이가 되어 토끼를 사냥하듯 마족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참에 마신의 성물까지 모두 끝내버리자.’

시간은 충분했다. 아직 쌩쌩한 정령신의 후보들도 여럿 대기중이었다.

서유림이 성물의 탑을 향해 돌격했다.

카리스의 정령검에서 뻗어 나온 검기의 가닥들이 주변의 마족들을 빗자루로 쓸어내듯 베어버렸다.

성물의 탑으로 향하는 길이 뻥뻥 뚫렸다.

“이쪽으로!”

서유림이 외치며 달렸다. 요정군단이 정령신의 후보들을 보호하며 서유림을 뒤따랐다.

카리스의 정령검은 성물의 탑을 보호하던 마족군단을 단숨에 베어버렸다.

서유림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부러지지 않은 완전한 정령검의 위력이 이토록 대단할 줄이야.

서유림은 지체 없이 마신의 성물을 꺼내서 정령신의 후보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반대쪽에 있던 마신의 성물도 같은 식으로 취했다.

“이제 후퇴해야 합니다.”

시간을 너무 끌었던 모양이다. 정령신의 후보들이 대부분 마력을 소비하고 기절한 상태였다. 겨우 두 명 남았다.

“후퇴!”

서유림이 외치며 요나스 성을 향해 달렸다.

아직도 마족군단의 규모가 엄청났지만, 마신의 성물이 없으니 검을 휘두르는 족족 쓰러졌다. 길이 뻥뻥 뚫렸다.

마족군단 사이를 누비는 서유림의 모습은 마치 벼를 추수하는 트랙터 같았다.

요정군단은 성문을 뛰쳐나올 때만큼이나 신속하게 요나스 성으로 후퇴했다.

서유림이 마지막까지 남아서 후퇴를 도왔다. 요정군단이 모두 후퇴하고 나서야 서유림도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일부 마족군단이 따라 들어왔지만, 그건 자살행위였다. 요나스 성의 모든 성문에는 보조성문이 만들어져있으니까.

“내려!”

서유림의 외침과 동시에 요나스 성으로 들어온 마족군단은 순식간에 독 안에 갇힌 쥐 꼴이 되었다.

금빛 갑옷으로 치장한 성주가 서유림에게 달려왔다.

“성공하셨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에는 일렀다.

서유림이 다급히 물었다.

“정령신의 후보들은요? 희생자는 없죠?”

사실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거든. 만약 한 명이라도 희생되었다면, 그 한 명의 머릿수가 다시 채워질 때까지 시간을 허비해야 하니까.

그러면 또 다른 마왕이 요나스 성을 공격해올 것이다.

다행히 성주의 표정이 밝았다.

“모두 무사하십니다.”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요정군단의 희생은 제법 컸다. 10만 명이 요나스 성을 나섰는데 살아 돌아온 요정군단은 겨우 3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어쩔 수 없지. 그게 그들의 운명이니까.

‘이제 내가 할 일은 모두 끝났군.’

또 다른 마왕이 도착할 때까지는 최소 보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정도면 정령신을 옹립하고 마왕과 대적할 힘을 갖추기에 충분한 시간일 것이다.

“전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벌써요? 예. 다녀오세요.”

성주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서유림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이번에 가면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제 도움 없이도 암흑기를 끝낼 수 있을 테니까요.”

“······아!”

성주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딴에는 폭탄선언으로 들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틀리지 않은 말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성물이 무려 일곱 개나 된다. 반면 마족군단은 성물이 전혀 없다.

시간적으로도 여유는 충분했다. 다른 마왕이 이곳으로 오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안에 정령신을 옹립하고 마왕에 대항할 힘을 충분히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정말 위급한 상황이 된다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정령왕 아리안과는 아직도 교감이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정령계의 위기를 두고 아리안이 그냥 있을 리는 없다.

서유림도 인간계에서 아리안을 부를 일이 있을 것이고.

“그럼 안녕히.”

서유림이 성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서유림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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