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186화 (186/196)

# 186

마지막 전투 (2)

“저기가 가온 성이에요.”

그리 큰 성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드시 구출해야 하는 성이었다. 정령신의 후보가 무려 세 명이나 모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가온 성 주변을 무려 100만에 달하는 마계군단이 포위하고 있었기다. 마신의 성물을 보유한 약 5천 명에 달하는 마족군단도 있었다.

가온 성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상황이었다.

시간도 많지 않았다.

폭스 성에서 무려 닷새를 달려왔다. 서유림도 이제 인간계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물론 하루 이틀 더 머무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그러면 육체적으로 문제가 생길 것이다. 능력도 100% 발휘하지 못할 것이고.

조금 지친 상황이지만 지금 공격해야 했다.

“곧장 마신의 성물부터 정화시키죠.”

“괜찮을까요?”

후아니스가 근심스러운 표정을 했다.

서유림이 씩 웃어보였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겁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그리고는 선두에 서서 마신의 성물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다섯 명의 정령신 후보가 축복을 걸어주기 위해서 서유림을 바짝 뒤따랐다. 3만 명에 달하는 요정 군단이 함께 달렸다.

먼저 마계군단이 앞을 가로막았다.

이제 이 정도는 식전운동 감이다. 서유림은 무인지경으로 달렸다.

10분 정도 지나자 마족군단과 맞닥뜨렸다.

하지만 마신의 성물에서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건 서유림이 아닌 마족군단에게 불행이었다. 마신의 성물이 힘을 주지 않은 상태라면 마족군단도 그리 대수롭지 않은 상대였다.

서유림의 돌파 속도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서유림을 비롯한 요정군단은 마치 물러터진 두부를 찔러 들어가는 송곳처럼 마신의 성물을 향해 곧장 들어갔다.

비로소 마신의 성물 영향권에 들었다. 마족군단의 저항이 확연할 정도로 강해졌다.

“축복!”

서유림의 외침과 동시에 정령신의 후보들이 번갈아가며 서유림에게 힘을 주었다.

정령왕 아리안도 비로소 서유림 주변에 방어막을 형성해주었다.

“크아아!”

서유림이 마족군단의 목을 베면서 거침없이 달려들어갔다. 그러자 마족 군단이 크게 혼란스러워했다.

이미 익숙한 상황이다. 아리아나를 떠나보낸 후로 얻은 마신의 성물만 벌써 세 개니까. 그리고 이번이 네 개째.

그때마다 마족군단은 똑같은 반응을 보였었다.

‘어떻게 이렇게 강할 수가.’

그러는 사이 서유림이 마신의 성물 탑에 도착했다.

아직도 마족군단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서유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신의 탑 주변을 호위하는 마족군단을 베어 넘기고 탑 안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정령신의 후보와 계약자는 마신의 성물에 손을 대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아주 작은 물건이었다.

꺼내보니 반지였다.

그대로 후아니스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후아니스 주변으로 몰려드는 마족군단을 향해 카리스의 정령검을 휘둘렀다.

후아니스는 이 순간만을 위해서 축복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채 마력을 아껴두고 있었다.

후아니스가 얼른 마신의 성물을 가슴에 품고 정화시켰다.

약 10초 정도 지나자 주변의 기운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살갗을 찌르는 것 같은 기운이 말끔하게 가시고, 대신 레몬향을 뿌려놓은 것 같은 상쾌한 느낌이 가득 들었다.

성물의 정화가 끝난 것이다.

마족군단의 위세도 크게 꺾였다. 성물의 힘이 사라지자 마치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학살의 시간이 된 것이다.

서유림과 요정군단이 마족군단을 쓰러뜨리며 가온 성을 향해 돌격했다.

때에 맞추어 가온 성 성문이 열렸다.

서유림은 요정군단이 모두 성문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밖에서 마족군단을 상대했다. 그리고 모두가 안전하게 들어간 후에야 성유림도 성문 안으로 몸을 피했다.

세 명의 정령신 후보가 가온 성 안에서 그 모습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서유림까지 모두 성 안으로 대피하자 재빨리 뛰어 내려갔다.

“이렇게 구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감사받을 일은 아니다. 모두가 자신의 목적과 이익에 맞아서 한 일이니까.

다른 정령신의 후보들은 정령신을 옹립하기 위한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서, 서유림은 아리아나를 다시 만났을 때 ‘난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데 아리아나에게 그런 말을 한다고 알아듣기나 할까? 발할라 의식 때 모든 기억을 잃는다고 했는데.

하긴, 서유림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 텐데 정령계의 일을 기억할 리가 없겠지.

상관없다. 어차피 자기만족이니까. 나 스스로 떳떳하면 아리아나 앞에서 떳떳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쨌건 이번에 세 명의 정령신 후보를 구출하면서 드디어 33명이라는 머릿수를 채웠다. 이제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요나스 성으로 복귀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상황이 그리 여유롭지가 못했다. 새롭게 합류한 정령신의 후보가 좋지 않은 소식을 갖고 있었다.

“마왕의 군단이 저희를 바짝 뒤쫓고 있었어요.”

“이런! 벌써 여기까지 왔군요. 얼마나 가까이까지 쫓아온 거죠?”

“닷새 거리에요. 마왕군단의 속도가 조금 더 빠르니 더 일찍 따라잡힐 수도 있어요.”

이곳에서 요나스 성까지는 열흘 거리.

설마 그 안에 따라잡히는 것은 아니겠지?

인간계를 다녀오자마자 바로 요나스 성으로 출발해야겠다.

다음날.

서유림이 눈을 떴다. 인간계로 복귀했다가 다시 정령계로 들어온 것이다.

전에는 정령계로 들어올 때마다 늘 가슴이 설렜었다. 정령계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아리아나의 모습부터 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감흥도 없다.

마치 아무도 없는 썰렁한 집에 혼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빨리 끝내자.’

서유림이 성문으로 향했다.

성벽을 사이에 두고 성벽을 넘으려는 마계군단과 지키려는 요정군단 사이에 전투가 치열했다.

성벽이 10m 정도로 비교적 낮다 보니 요정군단의 희생도 제법 컸다.

서유림이 모습을 보이자 후아니스를 비롯한 정령신 후보들이 얼른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

“오셨군요.”

“네. 이제 출발할까요?”

“저희는 언제라도 준비됐어요.”

그건 서유림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카리스의 정령검 한 자루만 있으면 준비는 끝이니까.

“그럼 바로 가죠.”

서유림을 선두로 성문을 나섰다.

마계군단의 규모가 100만이라고 하지만, 마신의 성물이 없으니 그다지 위력적이 않았다. 서유림이 길을 열고 요정군단이 정령신의 후보들을 보호하며 요나스 성을 향해 무작정 달렸다.

성물들로 강화된 계약자들이 주변을 보호했는데도 요정군단의 희생이 제법 컸다. 3만 명이었던 요정군단이 요나스 성에 도착할 즈음에는 2만 명가량으로 줄어있었다.

마족군단의 추격이 집요했었다.

그렇다고 요정군단을 보호하겠답시고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고.

그런데도 마왕의 군단이 거리를 더욱 좁혀놓았다. 이제는 사흘 거리도 채 안 되는 듯했다.

마왕의 군단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정령신의 후보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쩌죠? 이런 상태라면 정령신을 옹립한다고 해도 암흑기를 종식시킬 수는 없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서유림이 가만히 들어보니 시간이 훨씬 더 많이 필요했다.

이유는 정령신을 옹립해도 마왕과 맞설 정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정령신으로 옹립되어도 번데기 과정을 거치기 전까지는 제대로 힘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마왕의 군단이라면 요나스 성이 하루도 버틸 수 없을 거예요. 이대로라면 정령신을 옹립해도 마왕의 먹이밖에 못 될 거예요.”

그럼 어쩌라고? 문제점만 이야기하지 말고 해결책을 이야기해야지.

하지만 누구도 해결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정령신의 후보들 중에서 리더 역할을 해왔던 후아니스도 그저 암울한 이야기만 계속했다.

“여기서 더 달아날 곳은 없어요. 그렇다고 마왕을 이길 힘도 없고.”

“그럼 힘을 만들어야죠.”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서유림이 불쑥 끼어들었다.

평소였다면 다들 서유림의 말에 호응하며 매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서유림에게조차도 그다지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만큼 마왕의 군단이 강하다는 뜻이겠지. 서유림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그저 암울한 이야기만 했다.

“방법이 없어요.”

무슨 정령신의 후보가 저따위야?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을 생각으로 매달려야지.

이런 자들을 위해서 힘을 보태줘야 하나?

아리아나와의 약속만 아니었다면 그냥 버려두고 인간계로 돌아갔을 것이다.

서유림이 오지랖인 것을 알면서도 다시 나섰다.

“제가 한번 막아보겠습니다.”

“서유림님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지만, 마왕의 군단과 맞서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여러분이 도와주시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자 정령신의 후보들이 희망의 눈빛을 했다.

“생각해둔 방법이라도······ 있나요?”

서유림이 카리스의 정령검을 꺼냈다.

부러진 정령검이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일곱 색깔을 가진 정령신의 후보들이 힘을 보태준다면 원래의 상태로 복원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걸 복원시켜주세요.”

그러자 정령신의 후보들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라고 그 방법을 생각해보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그걸 다시 이어붙이기 위해서는 일곱 색깔의 정령신의 후보가 모두 모여야만 해요. 하지만 지금은 여섯 색깔뿐이에요. 아리아나님만 계셨어도······.”

그건 서유림도 알고 있다. 발할라 의식을 치른 후로 정령신의 후보들 색깔이 눈에 보였거든.

후아니스의 말대로 지금은 딱 여섯 색깔뿐이었다.

그리고 딱 하나 비어있는 색깔이 아리아나의 것이었다.

그런데 정령신의 후보들이 하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잖아.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리아나와 똑같은 색깔을 가진 정령신의 후보가 하나 더 있거든.

“아리안!”

서유림이 부르자 정령왕 아리안이 안개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자 다른 정령신의 후보들이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아! 아리안님이 계셨구나!”

이제 알았어? 아리안은 아리아나와 똑같은 색깔을 가진 정령신의 후보라고.

서유림이 피식 웃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검을 이어붙이면 여러분들의 정령력을 모두 쏟아 부어야 한다고 들었어요. 빨리 진행해야 마왕의 군단이 도착하기 전에 다시 정령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요. 빨리 시작해요.”

서유림이 카리스의 정령검을 바닥에 놓았다.

아리안을 포함한 일곱 명의 정령신 후보들이 주변을 둘러쌌다.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정령신의 후보들이었다.

의식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모두가 힘을 합하여 카리스의 정령검을 향해 충복의 마법을 걸어주었다.

의식이 시작되고 10분 정도가 지나자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빛의 폭발이 일어났다.

서유림을 비롯한 모두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일곱 명의 정령신 후보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카리스의 정령검이 허공에 붕 떠 있었다.

서유림의 입술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카리스의 정령검이 전보다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색깔도 훨씬 짙어졌다.

계약자들이 정령신의 후보들을 각자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는 사이 서유림이 카리스의 정령검을 들어보았다.

손맛부터가 달랐다. 뭔가 찌릿찌릿한 전기가 흐르는 듯했다. 괜히 자신감도 폭발하는 느낌이었다.

카리스의 정령검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어서 빨리 시험해보고 싶었다.

‘됐어. 이제 승부를 보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