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마왕 잡는 무기는 따로 있지 (3)
서유림이 씨익 웃었다.
“이게 뭔지 모르지?”
“그게······ 뭐냐?”
“후훗, 카리스의 정령검이라고 들어봤나 모르겠군. 일명 마왕 잡는 검이라고 하면 될까?”
“헉! 카······ 카리스의 정령검!”
비록 자신들의 세대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무기였지만, 소문은 익히 들었었다. 정령계와의 전투에서 마왕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바로 그 검이었다.
“그게 어떻게······?”
그건 몰라도 된다. 너희는 딱 하나만 알아두면 돼.
너희는 이제 죽은 목숨이라는 것!
쓸데없는 잡담으로 시간을 줄 필요는 없다. 항복을 받아낼 일도 아니잖아.
지금 할 일은 오직 하나.
카리스의 정령검으로 마왕을 끝장내는 것이다. 놈들이 잔머리를 굴릴 틈도 주지 않고 단숨에.
이제부터는 서유림의 시간이다.
서유림은 먼저 권혁진부터 노렸다. 강세중보다는 권혁진의 능력이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권혁진이 먼저 마왕의 계약자가 되면서 교감이 훨씬 잘 이루어지고 있는 듯했다.
권혁진은 감히 맞서지 못했다. 그저 좁은 방안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정령검의 검 끝을 피하는 데만 바빴다.
강세중도 권혁진을 따라서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방이 그리 넓지 않아서 둘이 함께 몰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얼마나 도망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서유림은 주먹보다는 검에 더욱 자신이 있었다.
권혁진이 구석에 몰리는가 싶은 순간 몸을 날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권혁진 등 뒤로 숨었던 강세중이 갑자기 서유림을 향해 권혁진을 힘껏 떠밀었다.
권혁진을 암기처럼 사용한 것이다.
서유림이 날아오는 권혁진을 향해 카리스의 정령검을 휘둘렀다.
권혁진은 피하지 못했다. 정령검의 검날이 그대로 권혁진의 몸을 베었다.
하지만 권혁진의 육체는 베어지지 않았다.
정령검의 검날은 물리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 정령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육체는 상하게 하지 않고 오직 그 안에 숨어있는 마왕의 영혼만을 베었다.
물론 권혁진은 고통스러워했다. 마왕과 권혁진은 강력한 교감에 의해서 영혼이 하나로 묶인 상태니까.
“크아아!”
권혁진의 눈이 풀렸다.
하지만 서유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잃은 권혁진의 몸이 그대로 서유림을 향해 무너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권혁진을 집어던진 강세중이 문 밖으로 달아났다.
‘놓치면 안 돼!’
서유림이 재빨리 권혁진을 쫓아 밖으로 나갔다.
물론 무턱대고 나가지는 않았다. 밖이 어떤 상황인지는 진즉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마왕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인 서유림 본인이 놈들에게 사냥당하지 않는 것이다.
서유림은 밖으로 나가자마자 그대로 낙법을 하듯 땅바닥으로 몸을 두 바퀴 굴렸다. 재빨리 일서서서 땅을 박차며 뛰었다.
그러자 밖에서 대기하던 마령의 계약자들이 일제히 손을 휘둘렀다.
저마다의 손에는 날이 시퍼렇게 서있는 칼이 쥐어져 있었다.
‘윽!’
역시 온전히 다 피할 수는 없었다. 어깨와 등, 허벅지에서 불에 데인 것 같은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물론 통증은 잠깐이었다. 정령들이 재빨리 통증도 막아주고 지혈도 해주었다.
서유림은 멈추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카리스의 정령검을 휘두르며 강세중이 달아난 방향을 확인했다.
‘저쪽이군! 흑!’
다시 허벅지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마령의 계약자들이 기를 쓰고 달려들었다. 마왕의 계약자를 지켜야 한다는 본능이 있는 듯했다.
정령검을 휘두를 때마다 한두 명씩 힘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여덟 명을 해치우고 나서야 마령의 계약자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다시 강세중을 확인했다.
보이지 않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젠장, 놓쳤군.’
게다가 카리스 정령검의 힘도 약해졌다. 원래 정령계에서만 사용되도록 만들어진 검이라서 인간계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 힘이 계속 약해지고 있었다.
서유림의 체력도 카리스의 정령검을 유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실망할 일은 아니었다. 놈들이야 언젠가는 다시 잡을 기회가 올 테니까.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권혁진을 잡았다는 것이다. 권혁진의 입만 확실하게 틀어막으면 황국회에게 서유림의 정체를 감출 수 있을 것이다.
서유림이 카리스 정령검을 놓아주었다.
그러자 검의 형상을 하던 푸른빛의 불꽃이 파시시 흩어졌다.
일단 방안으로 들어갔다.
“으으······.”
권혁진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과연 마왕은 어떻게 되었을까?
권혁진의 머리에 손을 얹고 마왕을 느껴보았다. 희미하게 마왕의 존재가 느껴졌다. 소멸하기 일보직전인 듯했다.
그대로 소멸하게 놓아둘 수는 없다. 서유림이 흡수하면 아주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정령이 될 테니까.
서유림이 정령의 힘을 불어넣었다. 그리고는 마왕의 힘을 강제로 추출해냈다. 마왕이 권혁진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텼지만, 이미 힘을 잃은 상태라서 그다지 의미 없는 저항이었다.
‘됐군!’
권혁진도 그냥 두면 안 될 것이다. 마왕이 추출되었다고 해도 그간의 기억은 모두 남아있을 테니까.
체력을 바닥까지 흡수해주었다. 동시에 강한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블랙 포이즌을 잔뜩 불어넣어주었다. 쉽게 깨어날 수 없을 정도로.
그러자 권혁진이 몸을 축 늘어뜨렸다.
이제 밖에 쓰러진 마령의 계약자들 차례이다.
서유림이 얼른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저쪽에서 민경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게 어찌된 일인가?”
무척이나 떨리는 목소리였다. 뭔가를 보고 잔뜩 겁에 질려있는 게 분명했다.
서유림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저자들이 카리스의 정령검을 본 건 아니겠지?’
아마 못 보았을 것이다. 카리스의 정령검은 순수하게 정령의 힘으로만 만들어졌다. 때문에 정령의 계약자나 마령, 또는 마왕의 계약자는 그것을 보고 느낄 수 있지만, 인간계의 존재는 그럴 수 없으니까.
그보다는 주변 환경을 보고 놀란 것이리라. 주변은 온통 벌레들 천지였으니까. 마왕의 힘이 모두 사라지자 갈 곳을 잃은 벌레들이 갈팡질팡 허공을 날거나 땅바닥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마 태어나서 이런 광경은 처음일 것이다.
서유림도 지난 번이 처음이었으니까.
게다가 땅바닥에는 마령의 계약자들이 널브러져있었다.
민경도 일행의 시선이 계약자들을 향해 있었다.
어찌된 일이긴. 당신들이 꾸며놓고도 모른 체하는 거야?
이번에는 서유림이 모른 체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악령의 기운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보니 이상한 사람 둘이서 저를 공격했습니다. 그때 제 몸에서 우주의 기운이 강하게 폭발했습니다.”
그러면서 마령의 계약자들 머리에 손을 얹었다. 마치 이마의 열을 체크해주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나하나 마령의 힘을 흡수하면서 동시에 체력도 잔뜩 빨아주었다.
아, 그러고 보니 칼에 베인 상처가 너무 멀쩡하군.
‘지혈은 하지 마라. 피가 흘러내리게 놔둬.’
서유림이 정령들에게 명령하자마자 상처에서 붉은 피가 마구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서유림이 태연한 척하며 민경도와 채순실에게 이야기했다.
“이 사람들도 상태가 이상합니다. 그래도 절망적인 상태는 아니군요. 목숨은 살아있습니다.”
민경도와 채순실이 벌레를 피해서 조심조심 다가왔다. 이따금 허공을 날던 벌레가 얼굴에 부딪치면 채순실이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꺄악!”
그러면서도 서유림을 향해서는 잔뜩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반면 권오산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벌레가 신발에 짓밟혀서 투둑! 투둑! 소리를 내며 터지건, 날아다니는 벌레가 얼굴에 부딪치건 상관하지 않았다. 80이 넘은 노인이 저렇게 잘 뛸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아들 권혁진 때문이겠지. 강세중은 무사히 달아났지만, 권혁진은 안에 들어간 후로 감감무소식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서유림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마령의 힘과 체력을 흡수하는 데만 열중했다. 네 명의 것을 흡수할 즈음이 되어서야 권오산이 방안에서 비명을 내질렀다.
“혁진아~아!”
민경도와 채순실이 깜짝 놀라서 방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타이밍에 권오산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서유림을 향해 버럭 호통을 쳤다.
“이놈! 내 아들을 어떻게 한 것이냐?”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권혁진이 날 먼저 공격하려 했던 것은 당신이 먼저 알고 있었잖아.
하지만 황국회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상황을 잘 무마시켜야 한다.
서유림이 난처한 표정을 했다.
“제가 한 게 아닙니다. 우주의 기운이 폭발하는 순간 그렇게 기절했습니다. 악령이 깃든 자는 재빨리 달아나고요. 아무래도 안에 있는 분이 달아난 놈에게 이용당했던 것 같습니다.”
서유림이 마인드컨트롤을 강하게 사용했다. 체력을 흡수할 놈들이 아직 세 명이나 남았기 때문에 발휘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발휘했다.
“안에 계신 분이 어르신의 아드님이셨군요. 혹시 최근에 기적과 비슷한 일을 겪지 않으셨습니까? 아까 달아난 놈이 악령의 힘을 이용해서 아드님께 못된 짓을 한 게 분명합니다.”
“악령······이라고?”
역시 마인드컨트롤의 힘은 강력했다.
물론 그동안 황국회의 믿음을 산 것도 영향이 컸다.
그러는 사이 밖에 있는 놈들의 마령과 체력은 모두 흡수했다.
이제 마무리만 지으면 될 일이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그냥 놓아두면 사망하실 겁니다. 저를 어서 방안으로. 우주의 기운으로 아드님의 생명이라도 지켜드리겠습니다.”
서유림이 팔을 내밀었다.
그제야 민경도와 채순실 등이 서유림의 상처를 확인했다. 허벅지와 등, 어깨 등에서 붉은 피가 마구 새어나오고 있었다.
“자네 괜찮은가?”
서유림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했다.
“칼에 조금 다쳤습니다. 일단 방으로.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안에 계신 분이 위험합니다.”
“어서 이분을 방으로 모셔라. 어서!”
권오산이 다급히 명령했다. 그러자 두 명의 수행원들이 서유림을 부축해주었다.
물론 서유림은 멀쩡했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다. 가파른 산도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혼자 걷기 힘든 것처럼 수행원들에 의지해서 쩔뚝쩔뚝 방안으로 들어갔다.
“으으······. 이게 다 뭐야?”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방안은 온통 난장판이었다. 바닥에는 불에 타죽은 벌레가 수북하게 쌓여있었고, 방안 곳곳도 불에 그슬린 자국이 가득했다.
냄새도 지독했다. 서유림조차도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채순실과 민경도는 아예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포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권오산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오직 벌레더미 사이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권혁진만 보이는 듯했다.
서유림이 권혁진의 머리에 손을 대고 눈을 감았다. 중얼중얼 알지 못할 주문을 외웠다.
물론 쇼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권오산은 그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서유림이 하는 모습만 지켜보았다.
서유림은 대략 3분 정도 시간을 끌었다. 그러면서 정령을 시켜서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흐르도록 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어머! 유림씨. 괜찮아?”
밖에 안을 들여다보던 채순실이 깜짝 놀라서 얼른 방안으로 들어왔다.
서유림이 가물가물 힘없는 눈빛으로 채순실을 바라보았다.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다행입니다. 목숨은 살렸습니다. 전 좀······ 쉬었으면······.”
그리고는 그대로 눈을 감고 기절한 척했다.
권오산이 아들 권혁진의 상태를 확인했다. 서유림의 말대로 숨은 붙어있었다.
사실 아까는 맥박을 살피거나 하는 식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저 쓰러진 모습만 보고는 죽은 줄로만 알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있으니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채순실은 다른 수행원들에게 다급히 명령했다.
“어서 유림씨를 병원으로. 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