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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친 잠재력-183화 (183/196)

# 183

마왕 잡는 무기는 따로 있지 (2)

사흘 후.

“갈까요, 유림씨?”

“네, 대모님.”

서유림이 채순실과 함께 승용차에 올랐다.

승용차는 서울시 외곽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황국회 모임은 같은 장소에서 연속해서 두 번 열리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모임 장소를 사전에 알리는 일도 없었다.

하루 전에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통보하면 참석할 수 있는 자만 참석하는 식이었다.

이번 모임도 처음 가보는 식당이었다.

지난번처럼 건물 전체를 예약한 듯했다. 한복 차림의 종업원을 제외하면 건물 주변으로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어서 오시게.”

나름대로 일찍 출발했는데도 벌써 두 사람이나 와있었다. 이경도와 권오산이었다. 다들 나이가 80에 가깝거나 80이 넘은 노인들이었다.

수행원을 포함하면 네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채순실을 포함해서 이렇게 세 사람이 전부인 건가? 약속시간이 지났는데도 더는 사람이 오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 회장님. 저와 잠시 이야기 좀 나눌까요?”

“그럽시다. 바깥바람도 쐴 겸 밖으로 나가시죠.”

이경도와 권오산이 슬그머니 식당 밖으로 향했다.

사실 이상할 것 없는 일이긴 하다. 모임에 참석하다 보면 이렇게 본의아니게 혼자만 자리를 지키는 경우도 가끔 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뭔가 모르게 분위기가 이상했다.

서유림이 밖으로 나간 이경도와 권오산의 기척에 집중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어디로 향하는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오감이 극도로 발달한 상태라서 웬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런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다. 그저 뚜벅뚜벅 식당 건물에서 멀어지기만 했다.

그때 채순실에게 문자가 날아왔다.

채순실이 문자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서 얼른 일어섰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금방 다녀올게.”

채순실마저 밖으로 나갔다. 식당 안에 서유림 혼자만 남은 상황이었다.

‘뭔가 이상해.’

서유림이 더욱 바짝 긴장했다. 오감을 더욱 폭발시켜서 바깥의 기척을 살폈다.

잠시 후 식당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서유림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낯선 발걸음 소리다.’

이경도의 것도 권오산의 것도 채순실의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수행원들의 것도 아니었다.

몸무게도 달랐고, 보폭도 달랐고, 걷는 스타일도 달랐다. 완전히 다른 사람의 출연이었다.

게다가 두 사람이었다.

걸음걸이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마치 전쟁터로 행군하는 군인의 발걸음 같았다.

서유림이 더욱 바짝 긴장했다. 어쩌면 오늘 황국회의 모임이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내 문이 열렸다.

서유림이 얼른 고개를 돌렸다.

순간 서유림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다름 아닌 권혁진이었기 때문이다.

마왕의 계약자였다.

‘설마 내 존재를 눈치 챈 건가?’

그러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황국회원들 중에는 권혁진의 아버지 권오산도 있으니까.

게다가 황국회원 전체를 상대로 마인드컨트롤을 펼치지 않았는가? 이제는 다들 서유림의 추종자가 되어버렸다.

비록 정식 횡국회원은 아니지만, 권혁진이 그 사실을 모르겠는가?

게다가 권혁진의 표정을 보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서유림을 바라보는데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권혁진 뒤에 또 다른 중년인이 서있었다.

처음 보는 중년인이었다. 하지만 권혁진의 아래는 아니었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그것을 증명했다.

존댓말이 아닌 동급에게 사용하는 반말이었다.

“이자가 그 자인가?”

권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서유림을 향해 몸을 날렸다.

“잡았다, 이놈!”

서유림도 예상하던 상황이었다. 잔뜩 긴장한 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잡히지는 않았다.

재빨리 식탁 아래를 통과해서 반대편으로 빠져나갔다.

“혼세. 놈을 잡아!”

권혁진이 소리를 지르며 다시 서유림에게 달려들었다.

“내 이름은 혼세가 아니라 강세중이라고!”

강세중이 불만스럽게 소리쳤다. 하지만 권혁진과의 호흡은 잘 맞았다. 마치 한 몸으로 움직이듯 서유림을 양쪽에서 압박했다.

게다가 지난번처럼 사방에서 벌레가 마구 몰려들기 시작했다. 바퀴벌레, 개미, 벌, 나방, 개미, 노래기 할 것 없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벌레가 마왕의 명령을 따라서 서유림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호군!’

서유림의 불음에 호군이 불꽃으로 변하여 모습을 드러냈다.

호군은 일반 정령과 달리 여러 정령이 통합된 정령이다. 때문에 자신의 성격을 물, 바람, 불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다.

호군의 힘이 발현되자 주변의 벌레들이 불길에 타죽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은 서유림의 편이 아니었다. 호군의 힘 역시 서유림의 체력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시간이 지체될수록 서유림의 체력은 약해질 것이다.

빨리 선택해야 한다.

이곳에서 승부를 하던가, 아니면 체력이 빠지기 전에 도망치던가.

도망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다. 이미 서유림의 정체가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상태에서 달아난다면 놈들은 그때부터 서유림 주변을 노릴 것이다. 그러면 서유림은 물론이고 가족들이나 친구들조차도 위험해질 것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황국회를 노리기 위해서 너무 무리한 듯싶었다.

하지만 두 놈만 말끔하게 처리하면 된다. 나머지 황국회 회원들이나 수행원들은 마인드컨트롤이 강하게 걸려있으니 서유림이 마음껏 조정할 수 있을 테니까.

‘아리안! 도와줘!’

서유림이 아리안을 다급히 호출했다. 그러면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놈들의 공격을 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난번보다 권혁진의 능력이 다소 약해진 듯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문득 정령계에서 치렀던 발할라 의식이 생각났다. 그때 잠재력의 각성을 이루지 않았던가?

그 효과가 인간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자신감이 생겼다. 아리안의 도움만 받으면 두 놈을 말끔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리안이 왜 이렇게 안 와?’

응답도 없었다.

서유림이 아리안과의 교감을 위해서 조금 더 신경을 집중했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다. 왼쪽에서는 강세중이, 오른쪽에서는 권혁진이 서유림을 잡기 위해서 날뛰고 있었다.

강세중은 쇠파이프까지 들고 있었다.

‘이크!’

강세중이 휘두른 쇠파이프가 서유림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강세중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긴 무기를 사용하는 놈에게는 근접전이 약점이거든.

그대로 강세중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강세중의 입에서 헛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윽!”

하지만 역시 마왕의 계약자였다. 그 한 방으로 쓰러질 놈이 아니었다. 고통을 참으며 오히려 팔꿈치로 서유림의 등을 찍었다.

서유림이 재빨리 피했지만, 충격이 제법 있었다.

권혁진이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날렸다. 그대로 서유림과 부딪쳤다. 마치 교통사고라도 내듯 몸과 몸을 부딪친 것이다.

강세중 때문에 잠시 중심을 잃었던 서유림이었다. 권혁진의 돌격을 피할 여유가 없었다. 그대로 몸으로 받아냈다.

순간 쿵! 하는 느낌과 함께 숨이 턱 멎었다. 그대로 밀리며 벽에 심하게 부딪쳤다.

꾸궁!

얼마나 강하게 부딪쳤던지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강한 충격으로 호흡이 멎은 듯했다. 귀에서도 띠이- 하는 이명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위험하다! 충격을 너무 크게 받았어.’

강세중이 다시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한 방은 몸을 숙여서 피했지만, 두 방째는 피할 수가 없었다. 그대로 서유림의 등 위로 떨어졌다.

서유림이 강한 통증을 각오하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익!”

파앗!

그런데 소리만 요란할 뿐이지 충격이나 통증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오히려 막혔던 숨통을 열어주었다. 갑자기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서유림이 재빨리 몸을 굴리며 권혁진과 강세중의 포위망을 벗어났다.

> 죄송해요. 조금 늦었어요.

아리안이었다.

서유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는 줄 알았잖아. 와줘서 고마워.’

하지만 아리안과 잡담을 나누며 노닥거릴 때가 아니었다. 권혁진과 강세중은 지금을 놓칠 수 없는 기회로 생각하고 더욱 거칠게 공격해왔다.

‘그때처럼 부탁해.’

> 알겠어요.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서유림이 수비를 포기한 때 권혁진에게 달려들었다. 권혁진의 한 방은 아리안의 도움으로 막아내고, 대신 자신의 일격으로 권혁진을 쓰러뜨리겠다는 식이었다.

지난번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성공할 것이다. 발할라 의식으로 잠재력을 각성했으니까.

그때보다 훨씬 강한 파워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서유림이 이를 악물고 주먹에 온 힘을 다 쏟아 넣었다. 기합소리도 힘껏 넣었다.

“이야압!”

하지만 서유림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서유림의 기세에 권혁진이 깜짝 놀라서 몸을 비틀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받았던 충격이 아직도 두려움으로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강세중에게도 주의를 주었다.

“조심해! 놈은 정령왕의 도움을 받고 있다. 놈이 한방을 노리고 있어.”

‘이놈이 아리안의 존재까지 알고 있구나.’

강세중도 아까와 달리 조심하는 느낌이었다.

그제야 서유림이 상황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오감을 열고 주변의 기척까지 모두 살폈다.

서유림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대체 몇 놈이 몰려온 거야?’

방안에는 권혁진과 강세중 두 명뿐이지만 건물 밖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이놈들이 마왕의 계약자들이니 밖에 있는 놈들은 마령의 계약자들이겠지? 서유림이 건물 밖으로 나오면 한꺼번에 덮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방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고 있었다. 방이 그리 넓지 않아서 그 많은 인원이 들어오면 자기들끼리 손발이 얽힐 수도 있으니까.

상황이 암울했다. 아리안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이놈들을 모조리 이기고 빠져나가는 것은 어려울 듯싶었다.

하지만 희망은 있었다.

놈들의 조심성이 바로 그 희망이었다. 그것이 서유림에게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서유림이 손가락 모양을 기묘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권혁진과 강세중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권혁진은 가벼운 미소까지 지었다.

“흥! 마법을 쓰려는 것이냐? 마령의 계약자들에게는 통할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건 서류림도 알고 있다. 지난번에 이어서 이번에도 슬립다운 같은 마법을 사용해보았지만, 어쩐 일인지 전혀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유림이 지금 하려는 것은 놈들에게 마법을 쓰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 뭘 하는 거냐고?

후훗, 그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게 완성되는 순간 놈들은 죽은 목숨이 될 테니까.

제발 놈들이 그때까지만 방해를 하지 말아야 할 텐데.

하지만 역시 모든 일이 서유림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았다. 놈들이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다시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아리안! 조금만 버텨줘.’

> 알겠어요. 하지만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저들의 능력이 너무 강해요.

‘딱 20초만 부탁해!’

> 해볼게요.

서유림은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자신의 마법을 구현시키는 데만 몰두했다.

그러자 권혁진과 강세중이 다급해졌다. 정령왕 아리안의 힘 때문에 주춤했지만, 더는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이놈!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것이냐?”

그대로 서유림의 몸을 향해 주먹과 쇠파이프를 날렸다.

따앙!

정령왕 아리안이 온 힘을 다해서 권혁진과 강세중의 공격을 튕겨냈다.

하지만 아리안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공격이 너무 강했다.

> 흐읍! 유림씨······. 20초는 무리일 것 같아요.

서유림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이 세상에 자기 혼자만 있는 듯 마법의 구현에만 집중했다.

권혁진고 강세중은 더욱 다급해졌다. 다시 서유림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따앙!

이번에도 정령왕 아리안이 충격을 튕겨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 죄송해요. 더는······ 불가능해요.

아리안의 느낌이 희미해져갔다.

하지만 서유림은 불안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꼬리를 말아 웃었다. 드디어 마법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차원이동마법이었다.

서유림이 재빨리 몸을 굴리며 권혁진과 강세중의 포위를 피했다. 덕분에 세 번째 공격은 헛방으로 끝나버렸다.

서유림이 몸을 일으켰다.

순간 권혁진과 강세중의 눈썹이 꿈틀했다. 서유림의 손에 전에는 보지 못했던 무엇인가가 들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랗게 빛나는 빛의 검이었다. 형태는 없고 빛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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