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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친 잠재력-181화 (181/196)

# 181

지금 네게 필요한 것은 (3)

그 말에 서유림도 눈을 떴다.

하지만 민경도나 민자영처럼 흥분하지 않았다. 호흡을 갈무리하듯 차분하게 기도를 갈무리했다. 그러자 대접 위에서 춤을 추던 물로 만들어진 여자도 슬그머니 대접 아래로 사라졌다.

‘후훗, 이제 아무 말 못 하겠지? 이건 내 책임이 아니라 당신들 책임이라고. 당신들이 소리를 질러서 일이 악화된 거라고.’

서유림이 민석주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조금 전의 일 때문에 이마는 물론이고 얼굴 전체에 옷까지 흠뻑 젖어있었다.

서유림이 마치 진맥을 하듯 눈을 감았다. 그러면서 그레이 포이즌을 조금 더 강하게 침투시켰다.

마음 같아서는 레드 포이즌이나 블루 포이즌을 침투시켜서 더욱 심한 고통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다. 두 가지 포이즌을 동시에 사용하면 서로 배척하는 힘 때문에 오히려 해독 작용을 할 수가 있다.

서유림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

“왜 그러나? 뭐가 잘못 된 건가?”

“왜 믿지 못하신 겁니까? 왜 의심하신 겁니까?”

민경도와 민자영이 동시에 난처한 표정을 했다. 의식 도중에 소리를 지른 건 자신들이니까.

특히 민경도가 안절부절못했다.

“너무도 황당한 일이라서······.”

민자영도 이제는 서유림의 말을 믿는 듯했다. 사실 아까는 서유림을 전혀 믿지 않았지만, 민경도 때문에 억지로 의식에 참여한 느낌이 강했었다.

“이제······ 어찌 하면 좋은가? 더는 방법이 없는 건가?”

“똑같은 의식을 다시 치르는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우주의 기운이 노하였으니 먼저 그 노여움이 가라안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럼······ 얼마를 바치면 되겠는가?”

이놈들은 무조건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네. 생각해봐. 귀신이나 우주의 기운에게 그깟 돈이 무슨 소용이겠느냐고?

그런 건 마음이고 정성이라니까.

한마디로 나에 대한 믿음만 강하게 키우면 돼. 그래서 마인드컨트롤에 홀딱 빠져주면 돼.

아무래도 내가 좀 도와줘야겠다.

이들에게 더욱 강한 믿음을 얻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이들이 신봉하는 돈에 초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의식에 돈은 아무런 도움도 못 됩니다. 오직 정성과 믿음만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다해서 우주의 기운에게 사과하고 기도하세요.”

“알겠네. 그러면 언제쯤······ 다시 시작할 수 있겠나?”

“그야 어르신들 정성 나름이겠죠. 빠르면 사나흘 안에도 노여움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겁니다.”

“알겠네. 그리고 이거······ 얼마 안 되지만······.”

민경도가 돈 가방을 내밀었다.

대충 보니 못해도 수천만 원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서유림은 돈 가방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서유림이 원하는 것은 그깟 푼돈이 아니니까.

‘그리 조급해할 것 없어. 조만간 당신네 재산을 바닥까지 모조리 긁어줄 테니까. 그 돈은 일단 넣어둬.’

“말씀드렸다시피 돈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오히려 부정만 탈 뿐입니다. 저 역시 돈에 욕심을 내면 우주의 기운을 잃을 겁니다. 그러니 다시는 제게 돈을 주려 하지 마십시오.”

“오! 알겠네!”

민경도가 감탄하는 표정을 했다. 돈을 거절하는 모습을 보니 믿음이 팍팍 생기는 거겠지.

오늘 할 일은 여기까지.

서유림이 가방을 집어 들었다.

잘 찍혔겠지? 다른 건 다 필요없고 민경도가 권혁진의 얼굴을 난도질하는 장면만 제대로 찍히면 오늘 일은 대 성공이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런 일을 하면 쉽게 지치거든요. 들어가서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시게. 김 기사!”

김 기사 덕분에 집까지 편하게 올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어느새 자정에 가까웠다. 대충 씻고 방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 * *

“오셨어요?”

서유림이 밖으로 나오자 정령신의 후보들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계약자들도 어색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쟁자로만 보였던 서유림에게서 이제는 범접할 수 없는 강맹한 기세가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발할라 의식을 받고 싶겠지.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을 거다. 정령신의 후보들이 자신을 완전히 희생해야만 가능한 일이니까.

“상황은 어떻죠?”

“세 명의 요정이 마귀로 변했어요. 간밤에 일곱 명이나 죽었고요.”

그래도 다행히 정령신의 후보들은 피해가 없었던 모양이다.

하긴, 계약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켰을 테니까.

“어서 마신의 성물을 정화시켜야 하겠군요. 갈까요?”

“예.”

정령신의 후보들이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 서유림과 함께 움직였다.

보조성벽에 오르자 안에 갇혀있는 마족군단과 마신의 성물이 보였다.

전에는 그토록 힘들게만 느껴졌던 상대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왠지 가볍게 보였다. 손만 뻗으면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겠지.

모든 정령신의 후보들과 계약자들, 그리고 정예의 요정군단 1만 명을 동원하도록 했다.

준비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사실은 미리 준비해놓고 서유림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돌격!”

서유림의 명령과 함께 보조성벽의 성문이 열렸다.

“축복!”

정령신의 후보들이 차례로 축복 마법을 걸어주기 시작했다. 정령신의 후보가 워낙 많다 보니 짧고 강한 축복을 번갈아가며 오랫동안 걸어줄 수 있었다.

축복으로 강화된 서유림이 마족군단을 향해 돌격했다.

계약자들이 서유림을 뒤따랐다. 전에 둘이나 되는 계약자가 이런 전투에서 죽어나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절대 무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유림은 달랐다.

축복 없이도 마신의 성물로 강화된 마족들을 상대했었다. 축복까지 받았으니 더욱 자신감이 넘쳤다.

실제로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카리스의 정령검을 휘두를 때마다 마족군단의 목이 뎅강뎅강 잘려나갔다.

무려 200명이 넘는 마족 군단이 들어와 있었지만, 서유림이 1초에 1명씩 베어버리니 그 수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계약자들과 요정군단도 힘껏 도왔다.

덕분에 전투는 5분도 지나지 않아서 끝났다.

마족을 모두 베어 넘긴 서유림이 카리스의 정령검을 거두었다.

마신의 성물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욕심낼 물건이 아니니까.

나머지는 알아서들 처리하겠지.

서유림이 할 일은 따로 있다. 성 밖에 있는 마계군단을 정리하는 일이다.

마신의 성물로 강화된 마족도 가볍게 물리친 서유림이다. 그런데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는 마계군단이나 마족군단이 상대가 되겠는가?

계약자들과 함께 성 밖으로 나섰다. 그때부터 마계군단의 학살이 시작되었다.

서유림은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모두가 마물과 마귀, 마족이 흘린 피였다.

그 때문에 마치 혈귀가 된 느낌이었다.

서유림이 긴 한숨을 내쉬자 입술 위로 흘러내리던 피가 바람에 날리듯 산개하여 뿜어졌다.

계약자들이 서유림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모두 정리된 것 같다.”

서유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달아나는 마족군단을 바라보았다.

대충 1천 명쯤 되었다. 10만 마리에 가까운 마계군단도 함께 달아나고 있었다.

거의 모든 마계군단이 전멸하자 더는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하고 달아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뒤쫓을 것 까지는 없다. 어차피 정령계에서 마계군단의 씨를 말린다는 것은 당분간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런 것 같군. 그만 들어가서 쉴까?”

서유림을 선두로 계약자와 요정군단이 요나스 성 안으로 들어갔다.

정령신의 후보들이 얼른 다가와서 치료 마법을 걸어주었다.

후아네스도 서유림에게 다가와서 다친 곳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서유림은 다친 곳이 전혀 없었다.

“저는 됐으니까 다른 요정을 치료해주세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한 번만 더 수고해주시면 안 될까요?”

마계군단도 모조리 물러간 마당에 수고할 일이 또 있단 말인가?

“무슨 일 있습니까?”

“북쪽에서 정령신의 후보들이 달려오고 있습니다. 무려 세 명이나 돼요. 그런데 엄청난 군세의 마계군단에게 쫓기고 있어요.”

거기까지만 들어도 알 것 같다.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나흘 거리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후보 두 명이 동행하겠습니다.”

정령신의 후보 두 명이라. 당연히 계약자도 함께 가겠지. 그러면 큰 힘이 될 것이다.

나흘 거리라면 갔다 온 후에 인간계로 복귀해도 충분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출발하죠.”

곧바로 요정군단과 함께 북쪽을 향해 출발했다. 이틀이 못 돼서 한 무리의 요정군단을 만났다.

마계군단은 비록 규모는 컸지만 마신의 성물은 없는 놈들이었다. 마족의 규모도 채 1천 명이 못 되었다.

서유림이 선두에 서서 간단하게 쓸어버렸다. 그러자 힘의 열세를 느낀 마계군단이 곧 지리멸렬해서 달아났다.

새롭게 합류한 정령신의 후보들이 서유림의 실력에 깜짝 놀랐다.

“혹시······.”

“맞아요. 발할라 의식을 받으신 분입니다.”

후아니스가 서유림을 대신해서 대답해주었다.

그러자 정령신의 후보들이 눈을 감고 아리아나를 위해 기도해주었다.

“당신의 위대한 희생을 정령계가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그 기도를 들으니 괜히 울쩍해졌다.

사실 기도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차라리 아리아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봐주면 좋을 텐데.

하지만 부질없는 욕심이겠지.

함께 요나스성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새로운 정령신의 후보들이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드디어 마왕이 정령계로 들어왔습니다.”

‘들어온 것 같다.’가 아니었다. ‘들어왔다.’였다.

무려 정령신의 후보가 단정적으로 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100% 확실한 소식이겠지.

후아니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했다.

“그럼 곧 이곳 요나스로 오겠군요.”

“당연히 그렇겠죠. 가장 많은 정령신의 후보들이 이곳에 모여 있으니까요. 그리고 많은 정령신의 후보들이 모두들 이곳으로 모여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하아. 마왕이라. 그렇다면 서유림님의 능력으로도 쉽지 않을 텐데.”

“어쩔 수 없죠. 그게 늘 반복되어왔던 정령계의 운명이잖아요. 우리들의 힘으로 정령신을 옹립할 수 없다면,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싸우는 수밖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령신이 탄생하는 방법이 두 가지였다.

일정 수 이상의 후보들이 모여서 정령신을 옹립하거나, 아니면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아서 자연스럽게 정령신이 되거나.

두 번째 방법은 너무도 비참했다. 마계의 힘에 눌려서 억지로 정령신이 되는 것 아닌가?

웬만하면 첫 번째 방법으로 정령신을 옹립해야 할 것이다.

물론 서유림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아리아나도 없는 정령계는 아무런 매력이 없으니까.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도와줄 것이다.

그게 아리아나와의 약속이니까. 그래야 아리아나를 만났을 때 떳떳하게 ‘나는 최선을 다했고, 임무를 완수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마왕이 요나스 성까지 도착하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가만히 듣기만 하던 서유림이 불쑥 나섰다.

하지만 누구도 서유림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요나스 성에서 실질적인 무력의 중심 역할을 해주고 있으니까.

서유림이 없다면 설령 마왕이 정령계로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도 정령신들이 요나스 성으로 모여들 수는 없을 것이다. 중간 중간 마족군단을 물리칠 무력이 없으니까.

“시간적인 여유는 있어요. 아무리 빨라도 3개월 이상은 걸릴 거예요.”

차타니아의 대답이었다. 이번에 서유림에 의해 구원을 받은 세 명의 정령신 후보 중 한 명이었다.

마왕과 관련한 소식은 차타니아가 그나마 가장 자세히 알고 있었다.

“마왕은 몇 명이나 되죠.”

“일단은 한 명만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곧 두 번째, 세 번째 마왕도 들어오겠지. 어쩌면 다섯 이상의 마왕이 들어올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다섯 명 내외라는 이야기군.

하지만 차타니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섯 명의 마왕이 한꺼번에 몰려오지는 않을 듯했다. 마신이 다섯 명의 마왕을 동시에 정령계로 밀어넣을 수는 없으니까.

한 명 한 명 들어오는 데 한두 달 이상의 텀이 있을 것이다.

그 말은 운만 좋으면 각개격파가 가능하다는 뜻이리라.

제발 그렇게 되어야 할 텐데.

그런데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 걸까?

“정령신을 옹립하려면 몇 명의 후보가 모여야 하는 건가요?”

“최소 서른세 명입니다.”

지금까지 모인 정령신의 후보는 열일곱 명. 정령왕 아리안까지 포함하면 열여덟 명.

그렇다면 열다섯 명만 더 모이면 된다는 뜻이다.

운만 좋으면 마왕이 요나스 성에 도착하기 전에 일을 끝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이곳에 웅크리고 있어서는 안 되겠군요.”

서유림의 말에 정령신 후보들은 조금은 근심스러운 표정을 했다. 요나스 성만큼 안전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요나스 성을 버려두고 정령신의 후보들을 찾아서 들판으로 나선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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