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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친 잠재력-179화 (179/196)

# 179

지금 네게 필요한 것은 (1)

똑.똑.

“대모님. 저 왔습니다.”

채순실이 직접 오피스텔 문을 열어주었다.

서유림은 깔끔한 슈트차림이었다. 한 벌에 수백만 원이나 하는 고가의 옷이었다.

채순실이 맞춤으로 선물한 옷이었다. 때문에 무척 비싸다는 것만 알지 정확히 얼마인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채순실이 서유림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오늘 멋지네.”

“감사합니다.”

“그럼 출발할까?”

“예, 대모님.”

서유림이 채순실을 뒤따랐다.

조금은 긴장되었다. 지금껏 기다려왔던 순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따지고 보면 적의 소굴로 들어가는 셈이니까.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내게는 마인드컨트롤이 있잖아.’

게다가 오늘을 대비해서 어제 미리 손을 써놓은 일도 있다. 비록 오늘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겠지만, 다음 만남에서는 울며불며 서유림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채순실을 따라 도착한 곳은 서울 외곽의 고급 식당이었다.

식당이라기보다는 누군가의 별장 같았다. 건물은 소담하면서도 멋들어졌고, 제법 넓게 조성된 정원은 연못도 소나무 다른 정원수도 디딤돌도 하나같이 정성을 가득 쏟아 부은 티가 역력했다.

주변에 사람도 없었다. 이 건물과 정원 전체를 통째로 예약한 듯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가 채순실을 안내했다.

한옥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미 여덟 명의 사람들이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채순실이 활짝 웃으며 먼저 인사했다.

“죄송해요. 제가 조금 늦었죠?”

“아닙니다. 아직 약속시각까지 5분이나 남았어요.”

“우리 대모님은 언제 봐도 그대로시군요. 아직도 20대처럼 고우십니다.”

“오호호, 감사해요.”

채순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있었다. 그 옆으로 서유림의 자리도 있었다.

서유림은 채순실의 의자를 빼주는 등의 매너를 한껏 갖춰준 후에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미리 와있던 사람들이 그런 서유림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뭔가 모르게 의심과 경계가 가득한 눈빛이었다.

“대모님이 말씀하신 그 청년인가요?”

“맞아요. 어때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인상 아닌가요?”

“인물이 훤하긴 하군요.”

“TV에서 몇 번 보긴 했습니다. 격투기 실력도 상당하더군요.”

서유림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갖추었다. 그러면서 모여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슬쩍 살폈다.

그런데 모두가 쌍쌍인 듯했다. 50대 이상의 나이 많은 사람 네 명에 그 사이사이로 20대에서 30대로 보이는 젊은이들 네 명이었다.

황국회원과 그 수행원들이겠지.

꼭 정령신의 후보들과 계약자들의 모습 같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저 사람이 민경도로군.’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민영휘의 손자다.

민영휘는 명성황후의 조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친일행위를 하여 당시 조선 최고의 갑부가 되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서 일제로부터 자작과 은사금을 받았을 정도다.

귀족출신 중에서 유일하게 대자본가로 성공해서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손꼽혔던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민경도에게 집중한 이유는 그 때문만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이곳에 온 사람들은 물론이고 참여하지 못한 황국회원 모두가 똑같은 사람들이니까.

모든 황국회 조상들이 일제시대 대표적인 친일파들이었고, 그때 쌓은 재물을 지금까지 계속 부풀려가며 대한민국을 쥐락펴락 하고 있었다.

서유림과 김영자가 그중에서도 민경도에게 집중하는 이유는 민경도가 권오산과 함께 황국회를 이끌어가는 핵심 중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권오산은 을사오적의 한 사람인 권중현의 증손자다.

권오산은 이제 나이가 많아서 거의 뒷전에 물러나있고, 그의 아들 권혁진이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권혁진 역시 얼마 전에 서유림에게 호되게 당한 후로 종적을 감춘 상태였다. 서유림이 마왕의 계약자로 확신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권오산의 아들인 권혁진이었다.

또한 민경도는 현재도 온갖 지저분한 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특히 의욕 넘치는 새싹 정치인을 밟아버리는 일이 그의 주특기였다. 조금 두각을 나타낸다 싶은 인물이 보이면 먼저 시험을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충성할 인물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만약 충성하면 이런저런 방법으로 올가미를 씌워서 평생 꼭두각시처럼 휘두르고, 반항할 것 같다 싶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짓밟아버린다.

물론 민경도가 사라지면 다른 인물이 그 일을 대신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인물임에는 틀림없었다.

“듣자 하니 우주의 기운을 다룰 수 있다고?”

민경도의 물음이었다. 서유림을 바라보는 눈빛이 다른 누구보다도 날카로웠다.

“그렇습니다.”

서유림이 마인드컨트롤을 한껏 사용하며 대답했다.

하지만 아직 효과는 없었다. 마인드컨트롤이 효력을 발휘할 만큼의 신뢰가 쌓이지 않은 때문이었다.

“미안하지만 난 사람을 쉽게 믿지 않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나?”

증명할 방법? 물론 있지.

하지만 서유림은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입술을 달싹달싹 하면서 뭔가 할 이야기는 있는 것처럼 보이게는 했지만, 결국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민경도가 한쪽 입술 끝으로만 웃었다.

“왜 말을 못 하나? 증명할 방법은 없는 건가? 자네도 숫한 아첨꾼들처럼 입으로만 충성을 다짐하는 사람인가?”

그제야 서유림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민경도가 어서 말해보라는 듯 시선을 주었다.

하지만 서유림의 말투는 더욱 조심스러웠다.

“사실 어르신께서 듣기 거북하실 수도 있는 이야기라서······. 듣고 재수 없는 이야기라 생각하셔서 저를 벌하시면······.”

“하하하. 뭔데 그리 뜸을 드리나? 말해보라니까. 대한민국에서 내 말이면 안 되는 일이 없네. 재수 없는 일이 있으면 간단하게 해결하면 돼. 난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일세. 그러니 어서 말해보게.”

한마디로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다, 그것 아냐?

하지만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단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내가 그 중에 딱 하나만 보여주마.

“사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두 분의 얼굴에 액운이 가득 느껴지고 있습니다. 우주의 기운으로도 쉽게 치료가 안 될 정도로 짙습니다.”

“액운이라. 누구누구인가? 그중 한 명은 나인가?”

민경도가 여유만만 한 표정으로 물었다.

서유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좋아. 자네는 승부를 걸었네. 만약 그 말이 사실이고 자네가 증명해 보인다면 자네를 신뢰해주지. 하지만 만약 거짓이라면 어찌 될지는 알겠지?”

“그럼 숨김없이 보이는 대로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 가까운 분 중에 큰 액운을 경험하신 분이 계셨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액운이 말끔히 가셨고요.”

민경도의 웃음기가 살짝 건조해졌다. 순간적으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권혁진. 태어날 때부터 병약해서 평생 병원을 집처럼 생각하고 한약을 밥처럼 먹었던 사람이다.

그런데도 건강은 호전되지 않아서 오늘내일 하며 죽을 날만 기다렸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갑자기 건강이 회복되었다.

단순히 회복된 수준이 아니었다. 완전히 환골탈태를 했다. 하루아침에 격투기선수 뺨칠 정도의 강인한 몸으로 나타난 것이다.

다들 기적이라고 했다.

서유림이 말을 이었다.

“그 액운이 어르신의 가정으로 옮겨갔습니다. 아마 손자 분께서는 얼마 전부터 건강에 이상을 느끼셨을 겁니다. 지금쯤이면 상당히 많이 진행되었을 거고요.”

민경도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 말은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민경도의 손자 민석주는 이제 겨우 고등학생인데 누구보다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체격도 좋아서 누군가를 때리고 온 적은 있어도 맞고 온 적은 없다. 물론 감히 민경도의 손자를 때릴 놈도 없겠지만.

“우리 석주는 건강하네. 어려서부터 감기 한 번 앓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응?”

거기까지 말한 민경도가 갑자기 어깨를 움찔했다.

그러고 보니 손지 민석주가 어제부터 갑자기 감기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감기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 뿐이지 감기에 절대 걸리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금방 떨쳐내고 일어나겠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서유림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쩌면 감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경도의 눈치를 보던 서유림도 조금 놀란 표정을 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벌써 증세를 보였습니까?”

“증세는 무슨. 단순히 감기에 조금 걸린 것뿐이야. 액운 같은 것하고는 상관이 없어!”

민경도가 버럭 화를 냈다.

불안해서였다. 서유림의 말이 사실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그래서 격렬하게 저항한 것이다. 만약 액운 때문이라면 그런 의지로 물리치고 싶다는 본능의 행동이랄까?

민경도의 옆에 있던 자도 눈을 부릅뜨며 서유림을 노려보았다.

“네가 진짜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이분이 어떤 분인 줄 알고 그런 재수 없는 소리를 함부로 해?”

“죄송합니다. 그저 우주의 기운을 본 대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서유림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민경도는 뒷맛이 여전히 개운치 못했다. 손자 민석주의 감기증세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서유림은 민경도만 지목한 게 아니라 두 사람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아직 지목하지 않았다. 그 액운이 본인의 가정으로 찾아올 수도 있었다.

“그럼······ 다른 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 액운이 보인다는 사람 말이야.”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서유림이 조심스러운 표정을 했다. 괜히 이야기했다가 또 혼이 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다.

“괜찮아. 이야기해보게. 다들 어떠십니까? 한번 들어나 보는 게.”

“난 괜찮아요.”

“저도 괜찮습니다.”

나머지 두 사람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궁금한 것이다. 혹시 자신의 집안에 액운이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을 것이고.

‘우리 집은 아니다.’ 하는 확신이 서야만 비로소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물론 자신의 집을 지목한다면 민경도처럼 똑같이 화를 내겠지만.

“들었지? 어서 얘기해보게.”

서유림이 등 떠밀리듯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렸다.

서유림의 시선이 머문 곳은 박첨지라는 사람이었다. 그 역시 대표적인 친일파 박중양의 후손이었다.

박첨지가 깜짝 놀라서 어깨를 움찔했다.

“설마······?”

“죄송합니다. 선생님의 아드님께도 액운의 기운이 조금 전해진 것 같습니다.”

박첨지는 당황했다. 그리고는 민경도가 그랬던 것처럼 버럭 화를 냈다.

“이놈 이제 봤더니 순 사기꾼이구먼.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괜히 물었다가 재수 없는 소리만 들었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약속한 게 있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 서유림을 어쩔 수는 없었다. 그저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내 아들한테 별 일 없기만 해봐. 넌 죽은 목숨인 줄 알아?”

말이 웃기네. 아들한테 별 일이 있기라도 바라는 건가?

하지만 별 일이 곧 생길 것이다. 민경도의 손자에게 한 것 같은 조치는 아직 하지 않았지만, 이제부터 할 테니까.

“죄송합니다. 지금부터 조용히 있겠습니다.”

“에이, 재수 없어.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그래. 꺼져.”

다들 서유림을 내쫓으려고 혈안이었다.

채순실도 어쩔 수 없었다. 서유림을 아끼는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이 자리는 채순실로서도 조심스러운 자리였다.

“그만 나가봐. 내가 연락할게.”

“예, 대모님.”

서유림이 방을 나섰다.

무겁기만 했던 서유림의 얼굴이 활짝 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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