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174화 (174/196)

# 174

아리아나의 결심 (2)

나야 뭐 이것저것 생각할 것 있나? 그냥 아리아나가 하자는 대로만 할 뿐인데.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그러지 뭐.”

“그래도 마신의 성물은 웬만하면 우리가 차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혼란을 최소화하며 정령신을 옹립할 수 있어요. 물론 그렇다고 목숨을 걸 필요까진 없어요. 아시겠죠?”

내가 시키는 건 잘한다고 했잖아.

“그러지 뭐. 그럼 여기에서 쉬고 있어. 난 한바탕 놀고 올 테니까.”

“그날이 멀지 않았어요. 몸조심 하셔야 해요.”

“그날?”

“때가 되면 아실 거예요. 아무튼 몸조심 하세요.”

서유림이 가볍게 웃어주었다.

언제는 몸조심 안 했나?

“다녀올 테니까 푹 쉬고 있어.”

밖으로 나간 서유림은 계약자들을 불러 모았다.

서유림의 호출을 받고 모여든 계약자들이 툴툴거렸다.

“자기가 뭐라고 오라가라야?”

“아주 왕 노릇을 하려 하는군.”

“그깟 싸움 한 번 이겼다고 너무 잰 체 하는 것 아냐?”

하지만 서유림 앞에서는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불만 있는 놈 덤벼.’가 서유림의 아침인사였으니까.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나한테 도전할 놈 있어?”

다들 조용했다.

“좋아, 그럼 용건만 이야기하지. 정령신의 후보들은 이틀 더 휴식을 취한다. 마신의 성물을 공격할 때 모든 힘을 동원해야 하니까 그때까지 다들 마력을 충분히 비축해놓고 있으라고 해.”

“그러지 뭐.”

“우리도 알고 있다니까.”

어차피 명령에 따를 거면서 꼭 저렇게 까칠하게 굴어야 하나? 하여튼 쓸데없는 자존심 하고는.

이게 다 너희들 목숨 계속 붙어있게 하려는 거란다.

“그렇다고 우리까지 놀고 있을 수는 없잖아? 우리끼리 성문 밖으로 나가서 하던 일을 계속한다.”

“축복 마법도 없이?”

“상황에 맞게 무리하지 않으면 돼. 자신 없는 자는 빠지고.”

“누가 자신 없다고 그래? 물어볼 수는 있는 거잖아.”

그렇게 간단하게 의견이 모아졌다. 아니, 사실은 일방적인 통보였다.

서유림은 다른 계약자들과 함께 곧바로 움직였다. 계약자들을 두 패로 나눈 뒤에 서문과 북문으로 번갈아 치고 나갔다.

그러다가 남은 마신의 성물이 가까이 다가오면 재빨리 성문 안으로 달아나는 방식의 반복이었다.

축복 마법이 없으니 확실히 효율성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한 번 나갈 때마다 마계군단 1만 마리 이상을 꼬박꼬박 사냥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마력을 온전하게 회복한 아리아나가 서쪽 2번 성문으로 향했다.

성벽 주변으로 수천 명의 요정들이 감시하고 있었다. 마족이 수상한 움직임이라도 보이면 여지없이 마법을 펼쳤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족군단의 수는 여전이 200명 가까이 되었다. 요정들이 나흘 동안 공격했는데도 겨우 서너 명 밖에는 죽이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를 것이다. 정령신의 후보가 무려 열둘 이나 되었고, 계약자도 아홉 명이나 되었다.

서유림과 아리아나 둘만의 힘으로도 가질 수 있었던 성물을 이렇게 많은 힘으로 가질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하지만 그 말이 안 되는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아니, 머릿수가 많으면 오히려 일이 더 꼬이는 경우가 많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처럼.

문제는 욕심이다. 서로 마신의 성물을 차지하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손발이 따로 놀 듯 자중지란이 일어날 수 있다.

결국 오늘의 전투는 마족군단과의 싸움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욕심을 누르면 성공하고, 누르지 못하면 실패하는 전투였다.

그래서 이틀간 곰곰이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욕심을 누를 수 있을까?

방법은 있었다.

서유림이 전투를 치르기에 앞서 정령신의 후보와 계약자, 성주를 모두 모이게 했다.

아리아나와 서유림은 이미 요나스 성에서 모든 일의 중심에 있었다. 성물 목걸이의 힘도 있지만, 그보다는 서유림이 다른 계약자들을 힘으로 압도한 게 가장 컸다.

게다가 최소한의 희생으로 성 밖의 마계군단을 물리친 것도 모두 서유림의 작전 덕분이었다.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유림이 말문을 열었다.

정령신의 후보들이나 성주는 별 불만이 없었다. 역시 모두가 자신의 이익보다는 정령계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약자들의 얼굴에는 불만이 많았다. 계속해서 서유림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는 느낌 때문이었다.

이러다가 마신의 성물마저 빼앗기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래서 오늘 모이라고 한 거잖아.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저도 마신의 성물이 탐납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가 마찬가지겠죠.”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서유림이 무슨 얄팍한 수를 쓰지는 않나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서로 욕심을 내다가는 자중지란으로 모두 죽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성물의 주인을 정하고자 합니다.”

“어떻게?”

“설마 네 마음대로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계약자들이 경계하듯 물었다. 각각의 정령신 후보들이 손을 잡으며 만류해준 덕분에 분위기는 다시 차분해졌다.

서유림이 요나스의 성주를 가리켰다.

“성물의 주인은 성주님께서 판단하고 정해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기준은 마신의 성물을 취하는 과정에서 가장 공헌도가 높은 사람입니다.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다들 성주를 바라보았다.

성주가 깜짝 놀라서 몸을 움찔했다. 어찌나 놀랐는지 가뜩이나 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

“예? 제······ 제가요?”

하긴, 부담스럽겠지. 그냥 마을 촌장을 정하는 것도 아니고, 성주의 후임자를 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왕을 정하는 것도 아니고, 무려 정령신이 아닌가?

즉, 성주의 말 한 마디에 이 후보가 정령신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저 후보가 정령신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성주가 구원을 바라듯 다른 정령신의 후보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큰일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서유림의 제안에 반대의견을 내지 않았다.

사실 표현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다들 서유림과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서로 욕심만 가지고 경쟁하면 공멸한다.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대안이 필요하다.’

그런데 서유림이 내세운 제안을 보니 가장 현명했다. 그 제안대로라면 다들 마신의 성물을 차지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고, 자기 욕심만 차리겠다고 팀워크를 깨뜨리지도 않을 테니까.

“다들 이견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성주님이라면 목숨을 걸고 공정한 평가를 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자 성주도 결국 입술을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막중한 임무를 맡겨주신다면 목숨을 걸고 공정한 평가를 하겠습니다. 정령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서유림이 다시 다른 정령신의 후보들을 바라보았다.

“혹시 이보다 더 좋은 안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모두가 동의한다면 따르겠습니다.”

“아리아나님은 이미 성물의 목걸이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걸 계약자에게 준다면 누구보다 큰 활약을 펼칠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그건 너무 불공평한 것 같군요.”

정령신의 후보 하나가 얼른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아리아나가 예상했던 일이라는 듯 곧바로 대답했다.

“성물의 목걸이는 제가 갖고 있겠어요. 모든 이들이게 공평하게 축복을 걸어주는 데 활용하겠습니다. 만약 제가 성물 목걸이를 공평하지 못하게 사용한다면 성주님께서 수훈갑을 선정할 때 저를 배제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성주가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아나가 그렇게까지 이야기하고 나니 문제제기를 했던 후보가 더는 할 말이 없는 모양이다. 다른 후보들의 눈치를 보았다.

다른 후보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견을 물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무언의 긍정이었다. 다들 서유림이 내놓은 안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누가 마신의 성물을 먼저 잡건 상관없이 성주님께 넘기도록 하죠. 저 역시 그러겠습니다.”

“그게 좋겠습니다. 저는 따르겠어요.”

“저도 따르겠습니다.”

정령신의 후보들이 모두 찬성했다.

계약자들 역시 별 이견은 없었다. 서유림을 향한 불만의 눈빛도 없었다. 다들 정령신의 후보에게 마인드컨트롤 당한 상태인 듯했다.

“그럼 이제 시작할까요?”

모두 서쪽 2번 성문으로 향했다.

성문 주변은 온통 아비규환이었다. 마계군단의 공격 때문이었다. 마신의 성물이 보조성벽 안에 갇혀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자 그걸 구출하겠다고 무식하게 공격해대는 것이다. 또 다른 마신의 성물까지 서쪽 2번 성문 인근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마계군단의 수를 크게 줄여놓긴 했지만, 요정군단의 피해도 제법 컸다.

“준비 되셨죠?”

다들 준비가 되었다고 눈빛으로 대답했다.

“공격!”

서유림의 명령과 동시에 기수들이 깃발로 명령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열두 명의 정령신 후보와 아홉 명의 계약자들이 선두에 섰다. 1만여 명의 최정예 요정군단이 뒤를 받쳤다.

역시 마신의 성물은 강했다. 마족의 능력을 어마어마하게 폭주시켰다. 축복 마법을 강하게 받고 있는데도 상대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게다가 재생능력이 어찌나 좋은지 1백 명의 마족군단이 마치 1만 명의 마족군단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요정군단의 편이었다. 많은 수의 요정군단이 희생되었지만, 계속해서 인원이 보충되었다.

특히 계약자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드라크 종족은 거대한 철봉을 꼬챙이처럼 휘두르며 마족군단이 재생할 틈도 없이 머리통을 짓이겨버렸다.

하지만 역시 압권은 서유림이었다.

사실 덩치가 작을 뿐이지 힘조차 약한 것은 아니었다. 서유림도 마음만 먹으면 드라크 종족처럼 거대한 철봉을 휘두를 수 있었다.

하지만 서유림은 철봉을 잡지 않았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싸운다.’

서유림의 특기는 발군의 스피드와 몸놀림이었다.

게다가 정령의 힘이 깃들어있는 카리스의 정령검도 위력적이었다. 일반 무기와 달리 카리스의 정령검에 상처를 입으면 재생 속도가 훨씬 느려졌다.

서유림은 마치 나뭇가지를 헤집는 바람 같았다. 마족군단의 사이사이를 빠른 속도로 누볐다.

당연히 사방이 온통 적일 수밖에 없었다. 카리스의 정령검을 휘두를 때마다 마족군단이 상처를 입었다.

그러면 주변에 있단 계약자들이나 요정군단이 상처 입고 느려진 마족군단을 정리했다. 말하자면 서유림이 첫타를 날리고 나머지가 막타를 때리는 식이었다.

마족군단도 서유림을 잡기 위해서 애를 썼다.

하지만 서유림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서유림에게 신경을 쓸라 치면 주변에 있는 계약자들이나 요정군단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여기 있다가 순식간에 저쪽으로 옮겨가버리니 공격할 타이밍을 잡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정령왕 아리안의 도움도 있었다. 아까부터 서유림을 위해 방어막을 형성해주고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마음 놓고 마족군단 사이를 누빌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다른 정령신의 후보들이나 계약자들은 모르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반칙은 아니다. 다른 계약자들도 저마다 계약된 정령이 있고, 저마다 그 정령의 힘을 활용하고 있으니까.

다만 서유림의 정령인 아리안이 정령왕으로 무식하게 강하다는 차이 외에는 없다.

서유림과 계약자들의 활약 덕분에 마족군단의 수가 차츰 줄기 시작했다.

1백 명보다는 90명이, 90명보다는 50명이 훨씬 상대하기 쉬웠다. 마족군단의 수가 줄수록 적의 기세는 훨씬 빠르게 꺾였다.

‘이 정도면 큰 피해 없이 끝낼 수 있겠군.’

비로소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역시 시작할 때 5분과 끝날 때 5분이 가장 문제였다.

몇몇 계약자들이 갑자기 마족군단의 무리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성물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큰 공을 세워야 성물을 차지할 수 있다는 마음에 무리하는 것이다.

서유림이 해냈으니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겠지.

‘그건 오해라고. 나는 정령왕 아리안의 도움을 받고 있단 말이다.’

“위험해!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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