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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친 잠재력-171화 (171/196)

# 171

당신의 수호천사 (1)

서유림은 조금 서둘러서 출발했다. 이왕 마음을 사로잡기로 했으니 할 수 있는 한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약속시각보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자리는 서유림의 이름으로 예약되어있었다. 미리 자리에 가서 채순실을 기다렸다.

채순실은 약속시각보다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고영대가 채순실과 동행했다. 채순실의 개인비서에 경호원까지 포함하면 일행은 총 네 명이었다.

그런데 네 명 모두 인물이 훤했다. 몸도 강인해보였다. 딱 봐도 밝히는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었다.

반면 채순실은······.

오늘 저녁은 식사시간이 좀 고역스러울 것 같다. 저 얼굴을 보면서 밥을 먹어야 하다니.

그렇다고 눈 감고 먹을 수도 없고.

아, 오해는 하지 마. 이건 예쁘고 안 예쁘고의 문제가 아니니까. 그리고 채순실의 외모가 그리 보기 흉한 정도는 아니니까.

오히려 그 나이 치고는 예쁜 얼굴에 속한다.

하지만 나이가 60살이다. 그러면 60살에 맞는 옷을 입고 치장을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채순실의 치장을 보면 마치 자신을 20대 초반의 소녀로 생각하는 듯하다. 화장도 지나칠 정도로 짙고 화사했으며, 옷차림도 너무 안 어울린다.

무엇보다도 역겨운 것은 서유림을 바라보는 눈빛이다.

“반가워요. 어머! TV에서 보는 것보다 실물이 훨씬 낫다. 몸도 훨씬 더 좋아보이는 것 같고.”

“감사합니다.”

“오늘 체면 차리지 말고 많이 먹어요. 남자는 무조건 잘 먹어야 힘을 잘 쓴다니까. 호호.”

함께 저녁을 먹었다. 당연히 술이 빠지지 않았다.

“여기 무똥로쉴드 한 잔하고 발렌타인 30년 한 병 주세용.”

무똥로쉴드가 뭐지?

종업원이 가져오는 것을 보니 붉은색 와인이었다. 자신은 와인을 마시고 나머지는 독한 위스키를 마셔라 그거였다.

채순실은 와인을 홀짝홀짝 마시면서 서유림에게는 그 독한 위스키를 거의 말술로 들이붓게 했다.

“내가 주는 잔은 무조건 원샷이에요! 바닥까지 한 번에 다 비우면 그럴 때마다 10만 원씩 줄게요. 호호.”

제길, 완전 남창 취급이군. 그렇게 놀면 재미있나?

재미 좋을 때 실컷 즐겨라. 그 재미도 오래 못 갈 테니까.

채순실은 작정한 듯했다. 서유림에게 계속 술을 권했다.

위스키 한 병을 거의 혼자서 다 비우고, 두 번째 병까지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채순실이 좋다며 연신 박수를 쳤다.

“꺄아! 역시 내 스타일이라니까.”

“감솨합니다, 대모뉨!”

서유림이 슬쩍 취한 척을 했다. 이제 작업을 시작해도 되겠다.

채순실의 와인 잔도 다시 채워진 상태였다. 와인 색깔이 붉은 것이 제법 예뻤다.

하지만 얼핏 보면 피와 비슷한 느낌도 있다.

채순실이 서유림과 눈을 마주치며 와인 잔을 들어올렸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것을 느끼고는 와인 잔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채순실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대로 와인 잔을 집어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꺄약! 이게 뭐야?”

“왜 그러십니까, 대모님?”

“무슨 일 있으세요? 갑자기 왜······?”

고영대, 비서, 경호원, 서유림 할 것 없이 모두가 채순실에게 다가갔다.

채순실의 얼굴은 이미 창백하게 변해있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입술마저도 창백해져 있었다.

간덩이 하고는. 겨우 고만한 간덩이로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고 있었던 거야?

채순실이 두려워서 벌벌 떠는 꼴을 보니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았다.

채순실은 여전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바닥만 바라보았다. 붉은 포도주가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그런데 채순실이 또다시 깜짝 놀라며 손가락을 뻗었다.

“꺄약! 저, 저것 좀 봐. 저게 뭐야?”

“예? 거기 뭐가······? 헉!”

고영대도 비서도 경호원도 서유림도 모두 깜짝 놀랐다. 바닥을 적신 포도주가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도주는 뭔가 글자를 만들고 있었다.

글자는 곧 완성되었다.

[친일매국노]

사실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 구름이 사람의 얼굴 모양을 띠기도 하고, 불꽃에서 귀신의 형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얼마든지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다. 불꽃이 타오르다 보면 귀신과 비슷한 모양이 될 수도 있으니까. 물론 확률은 낮지만.

물이 쏟아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연의 일치로 이상한 모양을 할 수도 있다. 오줌으로 지도를 그리듯이 말이다.

하지만 지금 바닥의 포도주는 그런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글자가 지나칠 정도로 선명했다. 누군가가 포도주를 붓으로 찍어서 글자를 쓴 듯했다.

그러니 채순실이 무서워서 자지러질 수밖에.

“꺄아악! 저거······ 지워버려. 어서!”

서유림이 얼른 나섰다. 테이블에 있던 물을 집어서 포도주 위에 확 뿌려버렸다.

하지만 그냥 뿌리면 섭섭하지. 이런 상황 만들려고 무려 정령왕씩이나 불러냈는데.

“우주의 기운이시여. 사악한 악령을 물리쳐주소서!”

서유림이 주문과 함께 물을 뿌리자 글자 모양을 했던 포도주가 단숨에 지워졌다.

물에 씻겨나가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물의 기운에 의해 알아서 흩어지는 듯했다.

채순실도 그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이번에는 놀란 눈빛으로 서유림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한 거죠?”

“별 것 아닙니다. 제가 최근에 갑자기 우주의 기운을 느끼고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악령의 기운을 쫓아낸 것뿐입니다.”

“우주의 기운? 악령이라고요?”

당연히 믿기지 않겠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거짓말이니까.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너무 완벽한 거짓말이니까. 증거도 있고, 게다가 도우미까지 있잖아.

고영대가 얼른 서유림의 말을 거들었다.

“맞습니다, 대모님. 서유림군은 우주의 기운을 다룰 수 있습니다. 저도 몇 번 체험해봤습니다.”

“오! 그래요?”

채순실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서유림이 마인드컨트롤까지 사용하고 있으니 그 말에 대한 믿음은 자꾸만 굳어졌다.

이 상태에서 조금만 더 작업하면 채순실도 금방 넘어올 것 같다.

“대모님 혹시······ 최근에 누군가에게 원한을 산 적이 있습니까?”

“글쎄요. 모르겠어요.”

모르긴 뭘 몰라. 너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이 한둘이겠냐? 아마 너를 아는 주변사람 대부분이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겠지.

다만 워낙 위세가 등등하니 면전에서는 아부를 떠는 것뿐이고.

당장 고영대만 해도 그랬다.

채순실도 어느 정도는 눈치 채고 있겠지. 물론 고영대 조차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건 모르겠지만.

“이건 누군가가 대모님께 저주를 퍼부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자가 부른 악령이 대모님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으으······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무서워요.”

채순실이 무서워서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자 비서가 당장 눈에 힘을 주며 서유림을 나무랐다.

“말을 가려서 해! 죽고 싶어?”

후훗, 뭘 어떻게 가려서 하라는 거야? 내가 입을 다물면 당장 좀 더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할 놈들이.

서유림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이런 때는 그냥 조용히 있어야 하는데. 대모님을 위한다는 마음에 그만 불필요한 말을 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괜찮아요. 그런데 악령이라니? 지금도 제 주변에 악령이 있나요?”

“아닙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주십시오.”

그러자 채순실이 비서를 노려보았다.

“왜 쓸데없는 말로 사람을 면박주고 그래? 앞으로 내 허락 없이는 입 다물고 있어. 알겠어?”

“알겠습니다, 대모님. 죄송합니다.”

이런 분위기까지 바란 것은 아닌데.

어쨌건 채순실의 눈에 들 기회는 확실하게 잡은 듯했다.

채순실이 다시 서유림을 바라보았다.

“내가 대신 사과하죠. 이제 말해 봐요. 사실대로. 솔직하게.”

사실대로 솔직하게는 좀 그렇고, 대신 화끈하고 무시무시하게 이야기해주지.

“사실 아까 대모님의 어깨 위에 앉아있는 악령을 보았습니다. 혹시 아까 포도주 보고 놀라신 것도 악령의 모습을 보신 것 아닙니까? 제 눈에는 갓을 쓴 선비의 모습이 보였는데.”

“꺄악!”

아우, 깜짝이야! 지금은 비명을 지를 타이밍이 아니잖아.

채순실이 느닷없이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고영대나 비서, 경호원은 물론이고 서유림조차도 어깨를 움찔했다.

하여튼 귀신보다 더 무서운 여자라니까.

채순실은 다시 오들오들 떨었다.

“맞아요. 포도주가 귀신 모양을 만들었는데 정확히 갓을 쓴 선비의 모습이었어요. 으으······ 나 어쩌면 좋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은 보이지 않으니까. 아까 우주의 기운을 불러냈을 때 이 방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채순실은 두려움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서유림이 한참을 다독여준 뒤에야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그럼 그 악령이 또 올까요?”

“당분간은 오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우주의 기운이 희미해지면 다시 찾아오겠죠.”

채순실이 다시 어깨를 움츠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우주의 기운으로 계속 악령을 몰아내야죠. 하지만 그건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누군가가 대모님께 계속 저주를 퍼붓는다면 악령은 다시 올 테니까요. 그놈을 찾아서 제압하는 게 유일한 방법입니다.”

“유림씨가 그걸 해줄 수 있나요?”

당연하지. 그걸 하겠다고 지금까지 이 쇼를 하고 있었던 거잖아.

하지만 너무 쉽게 되면 얻는 게 없지. 마인드컨트롤을 펼칠 시간을 적당히 벌어줘야 할 것이다.

“쉽진 않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악령의 기운을 역추적하면 저주를 퍼부은 놈의 위치를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채순실이 서유림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럼 부탁드려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

돈이야 네가 주지 않아도 내가 빼앗아갈 거다. 그러니 넌 내게 마음만 줘라. 마인드컨트롤에 쉽게 당해주기만 하면 돼.

“대모님도 참. 제가 돈을 바라고 이러겠습니까? 대신 절 대모님의 사람으로 받아주십시오. 우리 영대 형님도 든든하게 밀어주시고요. 그러면 저도 대모님께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고영대가 고맙다는 듯 서유림을 향해 눈짓을 주었다.

짜식, 고마워할 것 없다. 넌 태뢰의 소가 되어있으니까. 조만간 널 잡아서 미끼로 사용할 거거든.

채순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물론이죠. 앞으로 자주 만나요. 그 우주의 기운이라는 것, 자주 받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대모님.”

채순실은 감히 서유림을 침실로 끌어들일 꿈도 꾸지 못했다. 우주의 기운을 강하게 사용하려면 몸과 마음을 모두 정갈하게 유지해야 하거든.

그렇게 밥만 대충 얻어먹고 호텔 식당을 나섰다.

며칠 후.

똑. 똑.

서유림이 노크를 했다. 그러자 채순실이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서유림을 보자마자 손부터 덥썩 잡았다.

“제발 부탁이에요. 우주의 기운을 더 강하게 주세요. 무서워서 미치겠어요.”

정말 간덩이가 콩알만 한 여자군. 겨우 두 번 귀신소동 일으켜준 것에 불과한데.

그래도 시간을 투자한 보람은 있다.

사실 서유림도 고생을 많이 했다. 채순실의 위치와 이동경로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제 어디로 움직일지를 알 수가 없어서 귀신 소동을 위해 두 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다.

그 덕분에 채순실이 저 모양 저 꼴이 되었지만.

“알겠습니다. 그런데 우주의 기운을 강하게 받으면 잠깐의 환각증세와 함께 체력이 심하게 소모될 수 있습니다.”

“괜찮아요. 난 그냥 악령만 안 보이면 돼요.”

그렇다면 준비 끝났군.

오피스텔에는 채순실과 서유림 둘뿐이었다. 비서도 경호원도 없었다. 서유림이 우주의 기운 타령하며 특별히 부탁한 일이었다.

아마 감시카메라나 도청장치도 없을 것이다.

물론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별 효과를 볼 수 없을 테니까.

서유림이 맞잡고 있던 채순실의 손을 더욱 힘껏 잡았다. 그리고는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블랙 포이즌을 강하게 투입시켰다.

그러자 채순실이 순식간에 몽롱한 상태가 되었다. 환각 작용이 심해서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그리고 나중에 깨어나서도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서유림이 지금부터 주입하는 잠재의식만 강하게 남겠지.

서유림이 채순실의 귀에 입술을 바짝 대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서유림은 당신에게 생명의 빛이요 구원의 빛이다. 오직 서유림의 말만을 믿어야 하고, 서유림의 말만을 따라야 한다.”

서유림은 마인드컨트롤을 강하게 사용하면서 그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아마 채순실이 느끼는 부작용이 상당할 것이다. 마치 강진 후의 여전처럼 약한 환각증세가 주기적으로 반복될 것이고, 꿈속에서도 서유림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하지만 죄책감이나 불쌍한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런 년은 당해도 싸다니까. 아니, 죗값을 치르려면 아직 멀었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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