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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친 잠재력-170화 (170/196)

# 170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이? (2)

서유림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인드컨트롤을 강하게 걸었다.

마인드컨트롤도 이제 제법 익숙해진 모양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걸었는데도 체력 소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동생이?”

“꼭 제가 아니라도 괜찮아요. 가족은 그렇고 친척이나 가장 친한 친구 분께 맡기세요. 그래야 채순실이나 황국회로부터 독립할 수 있죠. 막말로 놈들이 재산만 꽉 움켜쥐면 꼼짝도 못할 것 아닙니까?”

“오, 듣고 보니 그러네.”

“최대한 빨리 정리해서 재산을 숨기세요. 제게 맡기실 거면 제가 확인서 써드릴게요. 이건 제 재산이 아닌 형님 자산이라고요. 그러면 안전하잖아요.”

안전하긴 개뿔이. 그깟 확인서야 태워버리면 그만인 것을.

하지만 마인드컨트롤에 빠진 고영대는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그게 좋겠군. 사실 장지환 전 대통령과 오대수 전 대통령도 그런 식으로 재산을 관리했더군.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재산을 모두 넘기고 자신은 빈털터리인 것처럼 굴었던 거야.”

“그래요? 전혀 몰랐네요. 하긴, 그런 사람들이 재산이 그렇게 없을 리가 없죠.”

“그 재산을 누가 관리해주고 있는지 알아?”

서유림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거 잘하면 뜻밖의 수확을 얻을 수도 있겠다.

“형님은 아세요?”

“당연하지. 장지환 전 대통령의 재산은 박철민 당시 민정수석이, 오대수 전 대통령의 재산은 고등학교 절친이자 애인이었던 이미경 일가가 관리하고 있지. 그 사람들은 아직도 관계가 돈독한 것 같아. 역시 의리가 최고라니까.”

오호, 그래? 그렇다면 그놈들 재산도 그냥 둬서는 안 되겠군. 모두 국민의 세금을 도둑질한 거잖아.

하지만 지금은 피라미를 사냥할 때가 아니다. 일단은 황국회부터 처단하자. 놈들은 그다음이다.

“형님께는 제가 있잖아요. 형님과 제 사이가 보통 사이입니까?”

사실 보통 사이도 못 돼지. 만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하지만 마인드컨트롤에 빠진 고영대는 서유림을 형제보다도 가깝게 느끼고 있었다.

“좋았어. 놈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재산을 조금씩 숨겨둬야겠어. 동생이 좀 관리해주겠어? 대신 수익의 20%는 동생이 먹어도 돼.”

“아휴, 20%씩이나요? 감사합니다. 대신 안전하게 불려드릴게요. 일단 동산부터 모두 넘기시고 부동산도 차근차근 정리해서 넘기세요. 자금 필요하시면 그때그때 말씀하시고요.”

“그래그래. 역시 동생밖에 없다니까. 그런데 동생 시합이 언제였더라? 요 며칠 사이였던 것 같은데.”

“사흘 후에 계체행사하고 나흘 후에 경기 치러집니다. 중국 상해에서 열리고요.”

“파이팅해. 꼭 이겨서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도록 해.”

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번 UFC 상해 대회는 왠지 모르게 긴장감이 넘친다. 상대 선수의 정체 때문이다.

세르게이 이고노프.

진짜 마령의 계약자일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면 놈을 시작점으로 다시 한 번 마령의 세력을 쓸어담을 수 있을 테니까.

“물론이죠, 형님. 이번 경기는 무조건 제가 이깁니다. 하하.”

* * *

나흘 후.

상해 인민체육관 주변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사람과 자동차와 오토바이, 자전거가 한데 뒤섞여서 교통지옥을 방불케 했다.

오늘 치러질 UFC 상해대회 때문이었다.

교통만 혼잡한 것이 아니었다. 귀도 시끄러웠다.

특히 중국인들인 성조 때문인지 목소리가 유달리 컸다. 서너 사람만 모여서 떠들어도 대여섯 사람이 떠들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인민체육관 주변은 왁자지껄했다.

그런데 남자 못지않게 여자도 많았다. 그것도 20대에서 30대의 비교적 젊은 여성들이 무척 많았다.

그녀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오늘 정말 YJY가 나올까?”

“확실히는 모르겠어. 소문만 무성하고.”

“아마 나올 거야. 한국의 서유림 선수가 YJY에게 직접 출연을 요청했잖아. YJY가 얼마나 의리의 사나이들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몸값 비싼 사람들이 이런 대회에 나올까?”

“지난번엔 더 작은 무대에도 나왔었잖아.”

“그거야 데뷔무대였으니까 그렇고.”

“일단 들어가 보자. 안 나오면 그냥 격투기나 보고 오지 뭐.”

그렇게 수많은 인파가 인민체육관 안으로 꾸역꾸역 몰려 들어갔다.

인민체육관이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2만1천 명. 하지만 그보다 20%나 많은 2만5천 명이나 들어왔다.

덕분에 인민체육관 안은 마치 콩나물시루 같았다.

잠시 후 경기가 시작되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거의 마지막 순서인 코메인이벤트가 진행되었다. 바로 세르게이 이고노프와 서유림의 경기였다.

대부분 여성관중이 기다리던 순서이기도 했다.

장내가 벌써부터 술렁이기 시작했다.

먼저 입장하는 선수는 서유림이었다.

경쾌한 음악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여성팬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건 YJY의 음악이 아니잖아.”

“설마 입장곡을 바꾼 거야?”

“기다려봐. 어쩌면 YJY가 신곡을 발표한 것일 수도 있잖아. 어머, 저기 나온다. 이번에도 하회탈 썼어.”

여성 관객의 말대로 무려 아홉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퓨전하회탈을 쓰고 경기장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다들 음악에 맞춘 경쾌한 입장이었다. 중간쯤 입장한 후에 무대처럼 꾸며진 계단에 멈추더니 그곳에서 작정하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장내는 어느새 후끈 달아올랐다.

몇몇 여성팬들은 ‘벗어!’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여성팬들도 함께 외쳤다.

“벗어!”

“하회탈 벗어!”

그 외침은 순식간에 경기장 전체로 퍼져나갔다. 지금 하회탈을 벗지 않으면 폭동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계단에서 춤을 추던 세 명이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일제히 하회탈을 벗어 던졌다.

YJY 멤버들이었다.

그러자 장내를 가득 메운 여성팬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러댔다.

와아-

꺄약-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마치 천둥이라도 내려치는 듯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데이먼 UFC 대표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대회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중국 시장의 전망이 밝게 느껴졌다.

서유림 선수를 움켜쥐고 있는 한은 말이다.

어느새 서유림이 입장을 마쳤다.

다음으로 세르게이 선수가 입장했다.

이번에는 남성 팬들이 환호해주었다. 세르게이가 그동안 보여준 엄청난 파괴력 때문이었다. 게다가 서유림을 향한 여성팬들의 열광에 질투심이라도 느꼈다는 듯 더욱 열열히 환호해주었다.

하지만 앞선 서유림의 입장 때보다는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진 느낌이었다.

입장을 마치고 서로 마주 섰다.

이제부터 집중해야 한다. 만약 세르게이가 마령의 계약자라면 한 순간 방심으로 큰 화를 당할 수도 있다.

드디어 공이 울렸다.

세르게이는 무척이나 거친 사람이었다. 서유림을 상대로는 10초를 넘기는 것조차도 불명예라는 듯 빠른 승부를 걸어왔다.

역시 그라운드 승부였다. 타격을 하는 척하면서 재빨리 테이크다운을 노렸다.

하지만 서유림이 기다렸다는 듯 몸을 피하니 맨땅에 슬라이딩하는 꼴이 되었다. 누가 봐도 조금 민망한 모습이었다.

세르게이의 표정이 매서워졌다. 자신을 망신시킨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는 각오 같았다.

이후에도 몇 차례 테이크다운이 시도되었다.

그럴 때마다 서유림은 타이밍 좋게 빠져나왔다. 한 번 다리가 붙잡히긴 했지만, 크게 점프하면서 벗어났다.

그러다 보니 경기가 지지부진했다. 관중들이 우- 하는 야유를 보낼 정도였다.

세르게이를 향한 야유였다. 벌써 몇 번째 실패인데 아직도 그라운드만 고집하느냐 하는 야유였다.

서유림도 슬슬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별 것 아니군.’

인간의 능력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분명 빠르고 강했다. 하지만 마령의 계약자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는 속도와 빠르기였다.

물론 속단하기는 이르다. 놈이 일부러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서유림이 지금 그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맷집은 얼마나 되나 볼까?

세르게이도 더는 테이크다운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서유림이 테이크다운만 집중적으로 경계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지.

일단 타격으로 경계를 무너뜨린 후에 다시 테이크다운을 시도할 것이다.

덕분에 타격 기회가 많이 생겼다.

세리게이는 타격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MAN FC로 온다면 타격만으로도 미들급 탑3에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령의 계약자라고 하기에는 역시 약했다. 파워도 스피드가 너무 떨어졌다. 주먹을 뻗을 때마다 허점이 훤히 보였다.

서유림이 기회를 노리다가 크로스카운터를 넣었다.

타앗!

순간 세르게이의 고개가 뒤로 크게 넘어갔다. 충격을 제대로 받았다.

다리도 살짝 풀린 느낌이다.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이런 기회를 그냥 보내면 누가 봐도 이상하겠지.

게다가 마령의 계약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연속 펀치를 맞고도 버텨낸다면······.

어디 보자!

서유림이 재빨리 다가가서 다시 펀치를 뻗었다.

세르게이가 흐느적거리면서도 화려한 위빙을 선보였다. 몸을 위아래, 좌우로 흔들며 서유림의 주먹을 흘려보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서유림의 주먹은 패트리어트미사일 같았다. 세르게이가 아무리 몸을 흔들어도 정확히 얼굴에 꽂혔다.

그리고 결국 네 방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세르게이가 누운 상태로 얼른 방어동작을 취했다. 차라리 이 상태로 그라운드 승부를 벌이자는 식이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서유림이 재빨리 옆으로 돌며 세르게이의 사이드를 점했다. 그리고는 다시 펀치를 내리꽂았다. 인간 평균 능력의 딱 120% 수준으로만.

그럴 때마다 세르게이의 머리는 크게 방아를 찌었고, 세 방을 버티지 못한 채 큰대자로 누워버렸다.

그제야 심판이 달려와서 경기 종료를 선언했다.

마령의 계약자가 아니었군.

조금은 아쉬웠다.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세르게이는 누가 봐도 훌륭한 선수였다. 그의 인성이야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격투기 세계에서는 떠오르는 신성이었다.

그런 신성을 서유림이 비정상적인 힘으로 눌러버린 꼴이 되지 않았는가?

물론 다른 사람들이야 모르겠지만, 서유림 본인은 마음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깟 승리가 뭐가 중요한데.

그깟 타이틀벨트가 뭐가 중요한데.

그깟 돈이 뭐가 중요한데.

사실 서유림의 능력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뭐든 원하는 만큼 취할 수 있다. 훔쳐도 되고 빼앗을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처음만큼의 욕심이 나지 않았다.

그래. 승리나 돈, 챔피언벨트는 생각하지 말자. 지금부터 UFC 경기는 마령의 계약자를 찾는 데에만 활용하자.

서유림이 제법 유창한 중국어로 인터뷰를 마무리하고는 옥타곤에서 내려왔다.

서유림은 경기를 마치고도 중국에서 이틀을 더 보내야 했다. 광고 촬영을 위해서였다.

한국에 돌아오니 서유림을 기다리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가족과 채희라는 물론이고 고영대도 서유림이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걸어왔다.

그런데 고영대의 용건이 조금은 뜻밖이었다.

- 축하해. 대모님이 동생 좀 만나고 싶다 하시는군.

대모님? 채순실 말하는 거잖아. 채순실이 갑자기 왜 나를······?

- 대모님이 동생 경기하는 모습을 본 모양이다. 완전히 반했어. 동생도 이제부터 대모님 사랑 좀 받을 수 있겠는걸. 하하.

채순실의 사랑?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정신적인 사랑이 아닐 것이다. 채순실이 고영대를 어떤 식으로 사랑했는지 잘 아니까.

갑자기 온몸이 소름이 돋았다. 립스틱과 마스카라를 떡칠한 돼지가 키스하자며 우- 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말 그대로 주먹을 부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거야 처신하기 나름인 거고.

사실 노리던 기회 아닌가? 고영대에게 접근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고영대의 재산이 아닌 채순실을 비롯한 황국회의 재산을 노린 것이었다.

다만 일정이 생각보다 많이 앞당겨진 것뿐이다.

고영대의 재산부터 확실하게 묶어놓고 만날까 생각했는데.

어쨌건 문제될 것은 없다. 채순실을 비롯한 황국회를 만난다고 해서 당장 놈들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고영대에게 그랬던 것처럼 놈들에게도 마인드컨트롤로 공을 들여야 서유림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형님!”

- 나에게 감사할 건 없어. 동생이 잘나서 그런 거지 뭐. 언제쯤 시간 나? 대모님은 오늘 당장 만나고 싶어 하시던데.

성격도 급하군.

“그렇다면 무조건 오늘 시간 내야죠.”

- 좋아 좋아. 약속장소와 시각 정해지면 문자로 보내줄게.

잠시 후 고영대로부터 문자가 날아왔다.

[저녁 7시, 파라다이스 호텔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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