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167화 (167/196)

# 167

최강의 계약자 (1)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라면 자신의 일격을 절대 막아낼 수 없다.

상황이 심각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면 엄청난 기회였다. 놈에게 당했다면 마계에 엄청난 타격이 되겠지만, 이렇게 살아났으니 놈의 정체를 알아낸 것 아니겠는가?

‘정령왕이라.’

만약 놈만 잡을 수 있다면 그 힘을 바탕으로 인간계를 마계의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령계에도 제법 큰 타격을 줄 수 있고.

권혁진이 눈을 감았다. 그의 계약자인 히로마왕이 마계와의 소통을 위해 집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마신이시여. 인간계에 정령왕이 있습니다.

<< 확실한가? >>

>> 확실합니다. 정령왕을 잡을 군대를 파견해주십시오.

<< 알겠다. 혼세마왕과 암흑마왕을 파견하겠다. 셋이면 충분하겠는가? >>

권혁진이 몸을 움찔했다.

자신은 단순히 마령들을 더 파견해주기를 원했을 뿐이다.

그런데 혼세마왕이라니. 만약 그가 온다면 놈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당할 것이다.

>> 충분합니다. 반드시 정령왕을 잡고 인간계를 마신님의 세상으로 만들겠습니다.

<< 지금은 정령계를 공격하느라 마기의 소모가 크다. 마기를 회복하는 대로 혼세마왕을 투입할 것이니 그동안 준비하고 있도록. >>

>> 알겠습니다. 마신이시여.

권혁진이 다시 눈을 떴다.

권혁진의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이제 놈이 누구인지만 알아내면 된다. 아니면 놈을 위한 함정을 만들거나. 그러면 놈은 죽은 목숨이지.

하지만 지금은 위기상태다. 권혁진이 마령의 계약자라는 걸 놈이 눈치 챘기 때문이다. 어쩌면 마왕의 계약자라는 것까지 눈치 챘을 수도 있다.

놈은 반드시 다시 기회를 노릴 것이다.

혼세마왕이 오기 전에 놈에게 걸린다면 각개격파당하는 꼴이 될 것이다. 혼세마왕이 올 때까지는 조용히 숨어 지내야만 한다.

‘어디로 숨는 게 좋을까?’

* * *

타닥. 타닥.

바싹 마른 나뭇가지 타오르는 소리가 무척이나 정겨웠다. 그 위에서 가일크랩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아리아나 단둘이서 모닥불을 쬐고 있으니 더욱 정겨운 느낌이다. 정령계의 모닥불도 인간계의 그것만큼이나 운치가 있다.

사실 모닥불을 피울 필요는 없었다. 마법을 사용하면 가일크랩 익히는 것쯤은 쉬운 일이니까.

하지만 이런 운치 때문에 서유림이 굳이 모닥불을 피워놓았다.

다른 곳에서도 몇몇 요정들이 서유림을 따라서 모닥불을 피워놓았다. 그 주변으로 요정들이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된 여정이지만 누구도 불만을 품거나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다 익은 것 같아.”

서유림이 가일크랩의 껍질을 까서 아리아나에게 먼저 주었다. 그리고 서유림도 큰 놈 하나를 잡아서 껍질을 벗겨 먹었다.

“흐음. 역시 불맛이 최고라니까. 어때? 향이 훨씬 좋지?”

“그러네요.”

아리아나가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 마왕을 이길 수 있는 거야?”

“자신감을 가지세요. 유림씨는 이미 그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요.”

“그런데 왜 말도 안 되게 밀리는 거지? 아리안의 도움이 없었으면 내가 당했을 거야.”

그 질문에는 아리아나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깨달음과 관련한 질문이니까.

깨달음에 정답이 있겠는가? 사람마다 요정마다 다를 텐데.

게다가 아리아나는 그런 깨달음을 경험해본 적도 없고, 깨달음을 얻은 자를 만나본 경험도 없다.

그러니 무슨 이야기를 하건 근거 없는 헛소리밖에 안 될 것이다.

“다른 확실한 방법은 없을까? 깨달음 없이 지금의 상태로 마왕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

“카리스의 정령검을 이용하면 되긴 한데······.”

“그건 말이 안 되잖아. 정령검을 인간계로 가져갈 수가 없는데······.”

물론 차원이동마법을 익히면 된다.

하지만 그건 마인드컨트롤 마법보다 익히기가 더욱 어렵다. 마법의 서가 워낙 귀해서다.

때문에 선천적으로 차원이동마법을 타고 나는 정령신의 후보가 아니면 차원이동을 할 수 있는 요정이 거의 없는 것이다.

“죄송해요. 별 도움이 못 되어드려서.”

아리아나의 목소리가 풀이 죽었다.

그렇다고 아리아나가 그럴 필요는 없는데. 이건 해결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고민상담일 뿐이잖아.

그리고 사실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요정 군단의 최종 목적지인 요나스 성이 드디어 코앞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틀 정도만 더 가면 요나스 성이다. 정령신의 보금자리이자 정령계 최후의 보루라는 거대한 성.

그 안에만 들어간다면 정령계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물론 그곳이라고 해도 100% 안전한 것은 아니다. 정령계 최후의 보루인 만큼 마계 군단도 요나스 성 함락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으니까.

때문에 요나스 성 인근은 마계군단으로 득실득실했다. 그놈들을 뚫고 요나스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그래도 무조건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것도 빨리. 시간을 지체할수록 마계군단의 포위망은 더욱 두터워질 테니까.

“오늘은 일찍 잘까? 내일부터는 요나스 성을 포위한 마계군단과 싸워야 할 테니까.”

“그게 좋겠어요.”

아리아나와 함께 작은 움막으로 들어갔다.

함께 바짝 끌어안았다. 요정망토까지 덮고 나니 서로의 체온 덕분에 무척이나 포근한 잠자리가 되었다.

“잘 자.”

“안녕히 주무세요.”

이틀 후.

아리아나와 오르테나가 언덕 위에서 요나스 성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웅장하기 짝이 없는 성이었다. 리니스 성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요나스 성과 비교한다면 궁궐과 초가집 수준이었다.

일단 성벽의 높이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거의 50m를 넘는 듯했다.

성벽의 길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저 정도 규모의 성이라면 그 안에 100만 명도 넘는 인구가 거뜬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저런 성이 인간계에 존재한다면 당장 세계 7대 불가사의에 꼽힐 것이다.

“과연 될까요?”

세상에 100%가 어디 있어? 그나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을 찾아서 모험을 거는 거지.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얘기해줘. 없으면 강행하고.”

서유림의 말에 아리아나도 오르테나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시간이 없어. 결정은 아리아나가 해.”

결국 아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죠. 시작해요.”

서유림이 쿤타를 바라보았다.

“준비 됐나?”

“됐다!”

저 자식은 계속 반말이네. 다시 붙어서 자신이 패하면 형님이라고 불러준다고 해놓고.

약속도 안 지키는 놈.

그래도 밉상은 아니다. 자존심이 지나치게 센 게 문제이긴 하지만, 전우애도 있고 인정도 있는 놈이었다.

무엇보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전투가 벌어지면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싸울 것이다.

“절대 죽지 마라. 이건 명령이야!”

쿤타가 입술을 씰룩 말아 올렸다.

“너나 죽지 마라. 빨리 시작하지 않고 뭘 꾸물거려?”

그래야지. 시작해야지.

서유림이 카리스의 정령검을 뽑아들고 크게 외쳤다. 마치 천둥소리처럼 큰 목소리였다.

“돌격 앞으로!”

서유림의 명령과 동시에 붉은색 깃발이 솟구치면서 앞으로 숙여졌다.

그러자 어느새 3만 명으로 불어난 요정 군단이 요나스 성을 향해 맹렬하게 돌격했다.

요나스 성 주변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마계군단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숫자만 수만 마리였고, 전체의 수를 헤아린다면 수백만 마리도 넘을 것이다.

요정군단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쪽은 정령왕 아리안이, 다른 한 쪽은 쿤타가 선두에 섰다.

마계군단이 기다렸다는 듯 요정군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서유림이 아리아나 등과 함께 언덕 위에서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 과연 저들 중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분기!”

서유림의 외침에 기수들이 붉은색 깃발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러자 요정군단이 깃발 모양처럼 좌우로 갈려서 달리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전투가 이미 벌어졌고, 다른 한쪽에서는 마계군단을 유인하듯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후퇴!”

붉은 색 깃발이 세워졌다가 다시 뒤로 넘어졌다.

요정군단이 마계군단을 당해낼 수 없다는 듯 빠르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역시 좌우로 갈라지듯.

마계군단이 요정군단을 맹렬하게 뒤쫓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 가운데가 텅 비다시피 했다.

리니스 성을 들어갈 때와 같은 작전이었다.

“지금이야! 가자!”

서유림의 외침과 동시에 아리아나와 오르테나가 동시에 달리기 시작했다. 3천여 명의 정예 요정군단이 주변을 철통처럼 호위했다.

선두는 서유림이 섰다.

그런데 리니스 성에서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주변에 마계군단이 너무 많았다. 3만여 명의 요정군단이 대부분의 마귀와 마물을 주변으로 유인했는데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마계군단의 어마어마했다.

순식간에 수천 마리의 마귀와 마물이 몰려들며 앞을 가로막았다.

마계군단의 어마어마한 규모와 비교한다면 적은 수였지만, 그래도 아리아나와 오르테나의 걸음을 늦추기에는 충분한 수였다.

그러는 사이 주변에 있던 마계군단도 꾸역꾸역 몰려들기 시작했다.

상황이 암담했다. 성벽 위에서 요정들이 화살을 마구 퍼붓는데도 마계군단이 끝도 없이 몰려왔다.

50m 정도만 더 가면 되는데.

‘아리안!’

서유림이 정령왕 아리안을 다급히 찾았다. 아리안이 이끌 고 있는 요정군단에게는 죽으라는 이야기와 다름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그들이 목숨을 거는 이유도 아리아나와 오르테나를 위한 거니까.

아리안이 곧장 모습을 드러냈다.

굳이 상황설명 따위는 필요 없었다. 아리안도 상황을 보고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무조건 길만 뚫어.”

“예.”

아리안이 합세하고 나니 비로소 전진 속도가 빨라졌다.

아리아나와 오르테나가 뒤에서 바짝 뒤따랐다.

사방에서 요정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들의 목숨을 살필 때가 아니었다.

서유림도 어느새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아리아나와 오르테나가 뒤에서 치료마법을 걸어주고는 있었지만, 치료되는 속도보다 상처를 얻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그래도 10m정도만 더 가면 돼!’

서유림이 이를 악물고 정령검을 휘둘렀다.

그때 성벽 위에서 밧줄들이 줄줄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서유림이 아리아나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다른 한 손은 엉덩이를 받쳤다.

조금 더 예의를 차리고 싶었지만, 그럴 경황이 아니었다.

“던져줄 테니까 뛰어!”

“알겠어요.”

아리아나가 힘껏 도약했다. 그와 동시에 서유림도 온 힘을 다해서 아리아나를 밧줄을 향해 집어던졌다.

아리아나가 입고 있는 그린루트는 워낙이 질긴 재질이라서 제아무리 힘껏 잡아당겨도 찢어지거나 끊어질 일이 없었다.

아리아나의 몸이 미사일처럼 솟구쳤다. 10m를 날아가더니 밧줄 하나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순간 다행이다 싶었다.

사실 조금 위험한 방법이긴 했다. 만약 밧줄을 못 잡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끝일 테니까.

하지만 위에서부터 내려온 밧줄이 워낙 많아서 그중 아무 것이나 잡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서 성공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무작정 돌파하는 방식은 너무 위험했다. 지금 상태로는 돌파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이번에는 오르테나 차례였다.

오르테나 역시 그린루트를 입고 있었다.

“뛰어요!”

외침과 동시에 오르테나도 도약했다. 서유림이 멱살을 잡고 집어던졌다.

오르테나도 미사일처럼 10m 이상을 날아가서 밧줄을 붙잡았다.

됐어! 이젠 내 차례다.

사실 아리아나와 오르테나 때문에 마음껏 행동하지 못했다. 적을 죽이고 길을 여는 것이 다가 아니라 뒤에 있는 아리아나와 오르테나도 보호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홀가분해졌다. 누구 신경 쓸 필요 없이 서유림 혼자의 몸만 빼내면 될 일이다.

그 정도야 간단하지.

“워리! 호군!”

서유림이 소리치자 워리와 호군이 각각 불과 바람으로 소환되었다. 서유림 주변에 순식간에 불 소용돌이가 만들어졌다.

마물이나 마귀를 죽일 정도의 위력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순간 시야를 어지럽히기에는 충분했다.

마귀와 마물들이 혼란스러워하는 틈에 서유림이 땅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서유림의 몸이 단숨에 허공으로 솟구쳤다. 근처에 있는 마물의 어깨를 밟으며 다시 도약했다.

그렇게 마물들의 머리와 어깨를 징검다리 삼듯 앞으로 달렸다. 워리와 호군이 서유림을 뒤따르며 마물들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10m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서유림도 밧줄 하나를 움켜쥐고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위에서도 서유림의 밧줄을 힘껏 당겨주었다. 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몸이 상승했다.

마귀들도 밧줄을 타고 성벽을 기어오르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살행위였다. 요정들은 마귀들이 적당한 지점까지 올라오면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러는 사이 서유림도 요나스 성벽 위에 안착했다.

서유림은 안전을 확보하자마자 성벽 아래를 확인했다.

“쿤타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