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165화 (165/196)

# 165

보통 놈이 아니다. (2)

“황국회는 철저하게 감추어진 존재에요. 정치인들도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아니라면 황국회의 실체를 잘 모르죠.”

김영자의 설명에 서유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로소 한국의 금권정치가 어떤 형태로 돌아가는지 이해가 갔다.

“늘 얼굴마담을 내세운다는 얘기군요. 지금의 얼굴마담은 채순실이라는 여자고.”

“정확히 봤어요.”

결국 황국회가 뒤에서 모든 것을 조정하고, 채순실이 그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한다. 그러면 국회의원이나 장관, 대통령, 청와대 비서실장 같은 사람들이 꼭두각시처럼 움직인다는 것이다.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다. 황국회가 밀어준다고 모두가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의 대통령은 확실하게 황국회의 사람이었다. 비서실의 핵심인사들도 그렇고 정치계 어른들 중에도 황국회 사람이 많았다.

대한민국 정치가 이렇게나 심각하게 썩어있다니.

“고영대를 통하면 채순실로 연결될 수 있을 거예요. 채순실의 믿음만 확실하게 얻는다면 황국회와도 선이 닿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거의 다 된 밥이었다. 고영대가 조만간 서유림을 채순실에게 소개해준다고 했으니까.

“아마 조만간 채순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유림의 말에 김영자와 채희라가 눈을 크게 떴다.

“어머! 벌써요? 고영대가 웬만큼 믿는 사람이 아니면 채순실에게 소개해주지 않을 텐데.”

“고영대의 신뢰는 확실하게 얻었습니다.”

“대단해요. 고영대는 의심이 워낙 많은 사람이라서 사람을 잘 안 믿거든요.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마음을 사로잡았죠?”

다 방법이 있단다.

물론 누구에게도 이야기해줄 수 없는 비밀이지만.

“제가 원래 사교성이 괜찮은 편입니다.”

“그래도 조심하세요. 고영대가 덫을 놓고 시험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물론 그런 상황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마인드컨트롤이 그리 허접한 마법이 아니거든.

고영대는 이미 확실하게 넘어왔다니까.

“알겠습니다.”

서유림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런데 채희라가 TV를 보다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했다.

“어머! 또 움직였나 보네. 정말 정체가 뭐지?”

서유림과 김영자도 TV로 눈을 돌렸다.

채희라가 볼륨을 높여주었다.

조폭간의 싸움이 벌어졌다는 뉴스였다.

말이 싸움이지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정체 모를 조폭이 제법 알려진 오성파를 기습해서 초토화시킨 것이다.

“광명회는 아니죠?”

김영자의 물음에 서유림이 고개를 흔들었다.

“광명회는 아닙니다. 회주님도 장로님도 최근에 다른 조직을 공격한다는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김영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했다.

“그럼 대체 누구지? 요즘 저치들 때문에 뒷골목이 무척 어수선해요.”

서유림도 알고 있다.

요즘 들어서 조폭들을 공격하지 않는 이유도 저 정체 모를 단체 때문이었다. 광명회 못지않은 파워를 보이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마령의 계약자들로 구성된 조직 같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저건 마령의 계약자들이 파놓은 함정이 분명했다. 서유림에게 당한 걸 그대로 되갚아주겠다는 거다.

그 함정으로 뛰어들려면 그만한 준비와 자신감이 필요하다.

하지만 저놈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무슨 준비와 자신감을 갖출 수 있겠는가?

그래서 손을 못 쓰고 수수방관만 하고 있는 것이다.

채희라도 한숨을 내쉬었다.

“저 사람들 때문에 우리 민들레도 타격이 커.”

“민들레가 왜?”

“저 사람들이 활동하면서부터 이상하게 민들레 손님들이 크게 줄었어. 게다가 이상한 사람들도 나타나고. 그 사람들한테 걸리기만 하면 텐프로들이 반은 죽어서 와.”

“그게 무슨 말이야?”

서유림의 말에 채희라가 대답을 살짝 망설였다.

왜 그러나 싶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해가 갔다.

“정력이 너무 세. 어떤 손님은 한 번에 두세 명의 텐프로를 동시에 불러서 전부 다 녹초로 만들 정도야. 그런 손님들한테 한번 걸리면 사나흘은 끙끙 알아야 해.”

말만 들어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유림처럼 정령의 힘이라고 가졌다면 모를까, 일반인이 그 정도 정력을 가졌다니.

문득 장로들의 짓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하지만 장로들이 그랬다면 서유림이 벌써 느꼈을 것이다. 장로들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러자 갑자기 눈이 번쩍 떠졌다.

‘혹시 그놈들의 짓인가?’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마령은 기본적으로 본능에 충실한 존재니까.

그 본능이라는 것이 첫째가 요정과 정령을 찾아서 힘을 흡수하는 것이고 둘째가 바로 여자를 잡아서 겁탈하는 것이다.

“어떤 손님은 더 악질이야. 그치한테 한 번 걸렸다 하면 얼마나 괴롭힘을 당하는지 일주일은 끙끙 앓아누워야 해.”

여기서 괴롭힘이라는 것은 변태 짓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엄청난 정력을 바탕으로 밤새 쉬지 않고 섹스를 한다는 뜻이었다.

서유림의 눈빛이 더욱 날카롭게 빛났다.

‘확실해! 마령의 계약자야.’

“희라야.”

“응?”

“그 손님들. 다음에 텐프로 찾으면 나한테도 알려줄 수 있어? 내가 꼭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그거야 어렵지 않지 뭐, 알았어.”

며칠 후.

“꺼억! 어, 배부르다.”

권혁진이 뿌듯한 포만감을 느끼며 허리를 폈다. 다들 권혁진의 엄청난 식사량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감히 권혁진 앞에서 그런 내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권혁진에게 아부 떨기에만 바빴다.

아부도 타이밍이 중요한 법이다.

대머리 중년인이 다른 이들보다 먼저 선수를 쳤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사장님. 혼자서 장어를 5인분이나 드시다니.”

“아무래도 오늘은 그냥 못 주무실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제가 예쁜 아가씨들 몇 명 소개시켜드릴까요?”

그러자 권혁진의 눈빛이 순식간에 색욕으로 물들었다.

“그거 좋지. 그런데 난 한두 명으로는 성이 안 차.”

대머리 중년인은 기회다 싶었다.

원래 아부라는 것이 잘못하면 본전도 못 찾지만, 제대로만 하면 나중에 몇 배로 커져서 돌아오는 법이다.

이왕 쓰는 거라면 통 크게 써야 할 것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특급 아가씨로 세 명을 불러드리겠습니다.”

“역시 백 사장이 내 마음을 가장 잘 안다니까. 하하.”

비슷한 시각, 민들레.

“어머, 하룻밤에 1천만 원짜리 콜 들어왔어.”

“와, 뭐가 그리 비싸?”

“대신 내일 아침까지 함께 있어줘야 한 대. 고객이 원하면 몇 번이건 허락해줘야 하고. 게다가 무려 세 명이나 원한대.”

그러자 텐프로들의 이맛살이 곱게 일그러졌다.

“혹시 그치들 아냐?”

“냄새가 나는걸. 잘못 걸리면 사나흘 식물인간처럼 누워있어야 해.”

“그래도 1천만 원이나 되잖아.”

텐프로들이 쉽게 답을 못했다.

그러자 콜을 요청한 자가 금액을 올렸다. 하룻밤에 1천2백만 원이었다. 그것도 한 사람당.

그제야 용감하게 도전하는 텐프로들이 나타났다.

“난 갈래. 잘못 걸리면 사나흘 푹 쉬는 거지 뭐.”

“나도 갈래.”

“나도 함께 가.”

그렇게 세 명의 텐프로가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약속장소는 JOIN이라는 고급 술집이었다.

텐프로들이 술집 안의 룸으로 들어갔다.

룸에는 중년인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은 대머리 사내였고, 다른 한 명은 40대 중반쯤 되는 굵은 인상의 사내였다.

그런데 텐프로 한 명이 굵은 인상의 사내를 보고는 경기라도 일으키듯 몸을 심하게 움찔했다.

그 사내도 텐프로의 얼굴을 기억했다.

“또 보는구나. 우리 구면 맞지? 후훗.”

하지만 텐프로는 너무 두려워서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

그러자 다른 텐프로들이 그녀에게 조용히 물었다.

“왜? 그래 언니? 아는 사람이야?”

텐프로가 떠듬떠듬 이야기했다.

“저 사람······ 사나흘짜리가 아니라······ 일주일짜리야.”

“일주일짜리라니?”

텐프로가 다시 물었지만, 그에 대한 답은 쉽게 할 수 없었다. 중년인이 바로 옆에서 모두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속으로만 이야기할 뿐이었다.

‘저 남자한테 걸리면 사나흘이 아니라 일주일은 앓아누워야 한다고. 우리 오늘 똥 밟은 거야.’

이름도 알고 있었다. 너무 끔찍한 기억이라서 다시는 걸리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이름을 기억해두고 있었다.

권혁진.

하지만 인제 와서 약속을 파기하고 도망갈 수는 없다.

자신들은 텐프로들이니까.

물론 민들레에 소속된 텐프로들은 손님을 가려 받을 수 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약속이 정해지면 그 약속을 파기할 수는 없다. 손님이 이상한 짓거리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안타깝게도 하룻밤에 여러 차례 섹스를 하는 것은 그런 이상한 짓거리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니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제발 저 대머리 아저씨에게 걸리기를.’

다른 텐프로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일단은 나부터 살고 봐야 할 일이다.

“다들 앉아.”

일행은 가볍게 맥주로 목을 축였다.

술은 많이 마시지 않았다. 대신 다음 행보를 서둘렀다.

그런데 젠장.

대머리 중년인은 더는 일행과 함께하지 않았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고마워요, 백 사장. 다음에 신세 갚지.”

“아휴, 신세라니요.”

백 사장이 자리를 떠났다.

권혁진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우리도 자리를 옮길까? 내 별장으로 가지.”

별장은 무슨. 아마도 신길동의 이상한 단독주택을 말하는 것이리라. 지난번에도 그곳으로 갔으니까.

‘드디어 지옥으로 가는구나.’

텐프로가 벌벌 떨며 권혁진을 따라나섰다.

권혁진은 지난번처럼 SUV를 타고 이동했다. 운전기사에게 운전을 시키고 자신은 뒷자리에 앉아서 얌전히 눈을 감았다.

지금의 모습만 보면 얌전한 샌님처럼만 보였다.

하지만 단독주택에 도착하는 순간 돌변하겠지. 발정 난 수캐처럼 말이다.

SUV가 움직이는 방향을 보니 신길동의 단독주택이 분명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먹는 음식이며, 입는 옷이며, 타고 다니는 자동차며, 온몸을 치장한 액세서리며 하나하나 명품 중의 명품이었다. 돈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분명하다.

그런 사람이라면 당연히 최소 5성급 호텔이나 고급스러운 오피스텔처럼 깨끗하면서도 분위기 좋은 이용할 것이다.

하지만 권혁진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정 반대 분위기의 장소를 이용했다.

신길동의 단독주택이 바로 그랬다.

무척이나 낙후된 곳이었다. 단독주택 자체도 비록 규모는 제법 컸지만, 건물이 무척 낡았고, 주변에 허름한 식당도 많아서 바퀴벌레 같은 것들이 득실득실했다.

왜 그런 곳을 이용하는 걸까?

오늘 정말 재수 옴 붙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민들레 사장 채희라의 부탁이었다.

[영업 나가서 그치들 만나게 되면 꼭 연락해줘.]

‘맞아! 어쩌면 사장님이 우리를 구해주려는 것일 수도 있어.’

텐프로가 기대감을 갖고 휴대폰을 들어서 몰래 문자를 보냈다.

“훅. 훅.”

“꺄악!”

실길동 단독주택에서 거친 숨소리와 비명소리가 난무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권혁진은 단독주택에 도착하자마자 운전기사를 돌려보내고는 바로 힘을 쓰기 시작했다.

정말 무시무시했다. 벌써 한 시간이 넘게 지났는데 잠시도 쉬지 않고 허리를 움직였다.

덕분에 이미 두 명의 텐프로가 녹다운이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텐프로가 권혁진에게 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허리를 힘차게 움직이던 권혁진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뭔가를 느끼듯 고개를 들고 밖의 기척에 집중했다.

덕분에 세 번째 텐프로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난 아무런 소리도 못 들었는데.’

하지만 권혁진은 뭔가를 느낀 듯했다. 그답지 않게 섹스를 중단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쉬잇!”

손가락을 세워서 텐프로들을 조용히 시켰다. 그리고는 팬티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다시 사방의 기척에 집중했다.

덕분에 텐프로들도 덩달아서 사방의 기척을 살폈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권혁진은 다른 모양이다. 뭔가를 확신한 표정이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못 알아들을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숨어있지 말고 나와라!”

‘누구한테 이야기하는 거지?’

텐프로들은 어느새 자신의 옷을 들고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을 가리며 구석으로 피했다.

“나오라니까.”

권혁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거실문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쪽에 누군가가 있는 모양이다. 텐프로들도 덩달아 거실문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때였다. 거실문 슬그머니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텐프로들은 하나같이 헛숨을 삼켜야만 했다. 거실문을 통해 들어온 사람은 검은색 옷과 복면으로 자신을 완전히 감추고 있었다.

게다가 거실로 들어오는데 신발을 신은 채였다.

하지만 권혁진은 담담했다. 오히려 자신감이 넘쳤다. 복면인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깊게 말아 올렸다.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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