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160화 (160/196)

# 160

나에게 부족했던 것은 (1)

물론 그렇지. 하지만 출연료를 안 주겠다고 한 적도 없잖아.

즉, 아직 결정된 사안이 아니라는 거지. 이제부터 결정하면 될 거야.

“상관없습니다. 얼마가 되었건 전액을 기부하겠다는 의지의 발표니까요. 막말로 UFC가 1억 원을 주면 1억 원을 그대로 기부하는 거고, UFC가 출연료를 한 푼도 못 주겠다면 어쩔 수 없이 한 푼의 기부도 못 하는 게 되겠죠. 물론 그 때문에 UFC 이미지가 조금 깎일 수는 있겠지만요.”

무슨 말인지 대충 이해했지?

UFC 스스로 이미지 값을 하라 그 말이야.

- 꼭 그런 발표를 하셔야만 하겠습니까?

당연하지. 왜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고 그래.

물론 조금 당황스럽긴 하겠지.

하지만 잘 들어보면 UFC도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걸.

서유림이 조금은 길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알렉스도 알겠지만 모든 상황은 스토리가 중요합니다. 똑같은 상황도 어떻게 홍보하느냐에 따라서 흥행이 천지차이로 갈리잖아요.”

- 그렇긴 하죠.

“그래서 이렇게 할 생각입니다. YJY가 저와 함께 입장한다고 발표하지 않고, 어쩌면 함께 입장할 수도 있다고 발표하는 거죠. 그러면 그 자체가 화제가 될 겁니다. 이번에 함께 입장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말이죠.”

-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이 사람 참 감 없네.

“그 자체로 엄청나게 많은 추측성 기사가 나오지 않겠어요? 그것에 의한 홍보효과 생각 못 해봤어요?”

- 흐음. 그렇긴 하겠군요.

그렇긴 하겠군요? 내가 UFC 대표라면 넌 벌써 해고다. 이 정도만 들어도 눈이 번쩍 떠져야지.

“그런 다음 깜짝쇼처럼 함께 입장해서 가면을 벗는 거죠. 관중들도 언론들도 시청자들도 ‘과연 YJY가 함께 입장했을까?’ 하고 관심을 집중하는 그 순간에 말이죠.”

- 호오!

알렉스가 짧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제야 그 효과가 몸으로 느껴지는 모양이군.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고.

“그런 상황에서 YJY가 저와 함께 발표하는 겁니다. 대전료와 출연료 전액을 유니세프에 기부하겠다고요. 그러자 UFC 대표가 좋은 일에 동참하는 의미로 통 크게 출연료를 팍 올려주는 겁니다. 그럼 어떻겠어요? YJY는 물론이고 UFC의 이미지도 단숨에 하늘로 치솟지 않겠어요?”

- 오! 정말 그렇겠군요.

“데이먼 대표에게 그렇게 말씀해보세요. 뭐,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저야 다음에도 경기 가질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알렉스는 더는 할 이야기가 없었다. 자신의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서유림이 한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고 결과를 받아오는 수밖에.

- 알겠습니다. 데이먼 대표님께 그대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렉스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결론은 OK였다.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았지만, 중국에서의 인기를 목적으로 하는 만큼 통 큰 투자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세계 최고의 격투기단체 아닌가? 게다가 YJY의 이름값도 있고.

뭐, 막말로 출연료가 0원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YJY도 마루 엔터테인먼트도 출연료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으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주는 선물일 뿐이니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못 받는다고 서운해 할 것도 없지.

* * *

아리아나가 걸음을 멈추었다.

요정 군단은 마치 아리아나와 한 몸이라도 된 것처럼 아리아나만 따라 움직였다. 아리아나가 달리면 함께 달리고, 아리아나가 멈추면 함께 멈추고.

서유림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아리아나와 생각이라도 공유하는 것처럼.

“왜? 또 마계 군단이야?”

“네. 이번에도 규모가 제법 커요. 1만은 될 것 같아요.”

“거리는?”

“1km 이내에요.”

시간이 갈수록 마계군단을 만나는 빈도수가 높아지는 것 같다. 이제는 이틀에 한 번씩은 만난다.

요정군단도 가면 갈수록 규모가 커졌다. 마계군단과 마주칠 때마다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천여 명 이상의 요정이 죽어나갔지만, 곳곳에 숨어있던 요정들이 새롭게 합류했기 때문이다.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주변이 온통 평지라서 나무 위로 올라간다면 마계군단을 제법 자세히 살필 수 있을 것 같았다.

“잠깐 살피고 올게.”

서유림이 재빨리 뛰어서 나무 위로 올라갔다. 육체능력이 엄청나다보니 다람쥐보다도 빠르게 나무를 오를 수 있었다.

목책은 없었다. 그냥 평지에서 진형만 갖추고 있었다.

특별한 작전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정면으로 돌파하면 되겠군.

그런데 저쪽에서 오르테나의 정령군단이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여튼 제멋대로라니까. 큰 싸움이건 작은 싸움이건 두 무리가 합심해서 싸워야 희생이 적은데.

어쩔 수 없다. 이쪽이 보조를 맞춰주는 수밖에.

아리아나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벌써 요정군단을 움직이고 있었다. 서유림도 재빨리 합류했다.

“이거요.”

아리아나가 목걸이를 벗어서 서류임에게 주었다.

정화된 마신의 성물이었다.

“아리아나가 가지고 있어.”

“아뇨. 어차피 축복 마법도 사용하지 않을 거잖아요. 유림씨가 사용하는 게 훨씬 낫겠어요. 그래야 요정군단의 희생도 줄어들 거예요.”

그건 그렇다.

서유림이 성물 목걸이를 받아서 목에 걸었다.

요정군단과 마계군단이 충돌했다.

‘저놈이 또······.’

쿤타는 서유림을 사랑하는 것일까? 마계군단과 전투만 벌이면 서유림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서 근처로 다가온다.

그렇다고 팀으로 싸우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가끔은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정령신 후보의 계약자라는 놈이 사냥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서유림의 목에 성물 목걸이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서유림이 마계군단 사이를 바람처럼 헤집고 다녔다. 스피드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 쿤타의 철봉보다 훨씬 작은 무기를 가지고도 오히려 더 빠른 사냥속도를 자랑했다.

쿤타가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뜰 정도였다.

쿤타도 분발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서유림보다는 빠르게 사냥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거대한 철봉이 붕- 붕- 바람소리를 내며 마구 휘둘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유림의 사냥속도가 훨씬 빨랐다. 차이가 확연할 정도로.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쿤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 후부터는 아무 이야기 없이 묵묵히 사냥하기만 했다. 대신 이따금 서유림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폈다.

후훗, 앞으로는 조용해지겠군.

전투는 제법 빨리 끝났다.

서유림이 그렇게 열심히 활약했는데도 요정군단의 희생은 제법 컸다.

하지만 뒤쫓아 오는 마계군단과의 거리가 크게 좁혀지지 않았다는 점은 위안거리였다.

그런데 왜 아직도 출발하지 않지? 한시가 급한 이때에.

전투가 끝났는데도 오르테나의 군단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서 정령군단을 멈춰놓고는 쿤타와 함께 아리아나에게 다가왔다.

오르타나의 표정은 늘 차갑고 딱딱했다. 위압적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표정으로 ‘내가 네 위다.’를 강조하는 듯했다.

아리아나가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오르테나님.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오르테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리아나 대신 서유림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서유림의 목에 걸린 성물 목걸이였다. 아직 아리아나에게 넘기지 않고 있었다.

오르타나가 성물 목걸이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그건 뭐지?”

순간 아리아나가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웬만해서는 잘 놀라지 않는 아리아나인데.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겠지.

서유림도 당황스러웠다. 오르테나가 갑자기 성물 목걸이를 언급한다는 것은 그것을 탐낸다는 뜻이 되니까.

아니, 정확하게는 쿤타가 탐내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서유림이 아리아나의 눈치를 보았다. 일단은 아리아나가 상황을 정리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아리아나는 금방 차분함을 되찾았다.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

“리니스 성에서 마성의 성물을 취했습니다. 제가 정화시켜서 제 계약자에게 사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역시 그렇군. 그럼 이제부터 나의 계약자가 사용하는 게 좋겠다. 그걸 쿤타님께 넘겨라.”

이건 완전히 명령조네. 아리아나의 물건은 자기의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런 상태에서도 참아야 하는 거야?

하지만 서유림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리아나의 마인드컨트롤 마법이 아직도 유효했기 때문이다.

아리아나의 허락 없이는 오르테나나 쿤타에 저항할 수 없었다.

서유림이 다시 아리아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아리아나의 눈빛이 무척 당당하게 느껴졌다. 오르테나를 똑바로 바라보는데 뭔가 모르게 기대감을 품게 하는 눈빛이었다.

서유림의 심장이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이 흥분!

익숙한 느낌이다. 전투를 앞둘 때마다 느껴왔던 가벼운 흥분이거든.

‘그래, 아리아나! 이 정도면 정말 많이 참은 거야.’

서유림이 속으로 아리아나를 응원했다.

그리고 아리아나는 그런 서유림의 응원에 화답해주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뭐라고?”

오르테나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감히 네가······.’ 라고 말하는 듯했다.

“제가 오르테나님을 존경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오르테나님의 신하는 아닙니다. 오르테나님께 제 물건을 이래라저래라 하실 권한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르테나의 입술이 씰룩 말려 올라갔다.

“권한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권한을 만들면 되겠군.”

결국 이렇게 되었군.

사실 예정된 순서였다. 다만 그 시기가 문제였을 뿐이지.

아리아나도 더는 피하지 않았다. 한 번 대차게 나가기 시작하자 저 밑바닥에 감춰두었던 카리스마까지 폭발시켰다.

“원하시는 게 그거라면 어쩔 수 없군요. 오르테나님을 신하로 대할 생각은 없었지만 오르테나님의 선택이 그렇다면······.”

“호호호. 재미있군.”

오르테나가 밝게 웃었다. 자신감 넘치는 웃음이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계약자인 쿤타를 바라보았다.

“쿤타님께서 선택하세요. 정령신의 이름 앞에서 결투에 임하시겠어요?”

정령계에서 결투란 서로가 같은 무게의 무엇인가를 내놓고 벌이는 싸움을 의미했다.

대상은 정하기 나름이었다. 목숨을 걸고 싸울 수도 있고, 물건을 걸고 싸울 수도 있고.

지금은 후자에 속하겠지.

쿤타는 생각보다 신중한 자였다. 오르테나의 설명을 듣고도 부족한 점이 느껴졌는지 추가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저자는 성물의 목걸이를 걸고 싸우는 건가?”

“아니요. 정령신 앞에서의 결투는 공정합니다. 특별한 힘이 담긴 성물도 무기도 사용할 수 없어요. 오직 맨손으로 싸웁니다.”

쿤타가 커다란 입술을 씰룩 말아 올렸다.

“그렇다면 해보나마나한 싸움이 되겠군. 하겠다.”

오르테나가 다시 아리아나를 바라보았다.

“들었지? 성물의 목걸이를 걸어라.”

“좋아요. 그렇다면 오르테나님은 뭘 걸겠습니까? 성물의 목걸이와 비견될만한 것이 있나요?”

오르테나가 자신의 배낭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양피지 몇 장을 꺼냈다.

“마법의 서들이다. 보면 알겠지만, 하나같이 구하기 힘든 것들이지. 쿤타님의 마력이 999가 되는 순간 익히려도 아껴두던 것이다.”

아리아나가 마법의 서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이 정도면 균형이 맞겠어요.”

서유림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저따위 마법의 서 몇 장이 성물 목걸이와 균형이 맞는다고? 얼마나 대단한 마법의 서들이기에?

“유림씨. 부탁해요. 꼭 이기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됐어. 뒷말은 하지 마. 나도 오르테나가 쿤타에게 설명할 때 함께 이야기 들었다고.

젠장. 부담스럽네.

사실 이번 결투는 성물의 목걸이와 마법의 서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결투의 결과에 따라서 군신의 관계가 갈리게 된다.

즉 서유림이 진다면 그때부터는 오르테나와 그의 계약자 쿤타를 군주로 섬겨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깟 성물의 목걸이가 문제가 아니라 아예 그들의 노예처럼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절대 그렇게 될 수는 없지.

그런데 정말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저 괴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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