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궁극적인 목표 (1)
다음날.
고상윤이 휠체어를 타고 교회로 향했다.
한태민이 미리 와서 목사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한태민은 어느새 여유를 되찾은 상태였다. 목사의 안수기도만 받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자신하는 듯했다.
그만큼 목사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뜻이겠지.
고상윤이 봐도 목사가 어딘가 모르게 기품이 있어보였다. 머리카락도 하얗고, 길게 늘어뜨린 수염도 하얀 것이 마치 산신령 목사 같았다.
그 모습을 보니 고상윤도 벌써 마음의 안정이 찾아오는 듯했다.
“빨리빨리 좀 다녀라.”
“미안. 차가 좀 밀려서. 그런데 정말······ 안수기도 받으면 문제 해결되는 거 맞아?”
“허허, 걱정하시 마세요.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깟 악귀 따위는 하나님의 자녀 근처에도 오지 못할 겁니다.”
목사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말투도 무척 여유로웠다.
믿음이 팍팍 꽂혔다.
“그럼 바로 해주십시오.”
“진심을 다해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고상윤과 한태민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다 함께 할렐루야 하세요. 할렐루야!”
귀신만 쫓아낼 수 있다면 뭔들 못하겠는가? 고상윤과 한태민이 귀신을 내쫓는다는 마음가짐으로 크게 소리쳤다.
“할렐루야!”
“다시 한 번 할렐루야!”
“할렐루야!”
“더 크게. 할렐루야!”
고상윤은 벌써 귀신이 도망가는 느낌이었다. 할렐루야라는 소리를 외칠 때마다 어깨를 짓누르던 어떤 알 수 없는 무게감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굳이 목사의 주문이 아니어도 목청이 터지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할렐루야!”
“좋습니다. 그럼 다 함께 기도합시다.”
목사가 두 손을 각각 고상윤과 한태민의 머리에 얹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는 무려 20분이나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찾더니 나중에는 알아듣기 힘든 외계어 같은 말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게 뭔지는 안다. 정말 종교에 깊이 심취한 사람은 방언기도라는 것을 한다고 들었다.
목사가 그만큼 신통하다는 뜻이겠지.
“······아멘!”
목사가 안수기도를 마쳤다.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켜주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고상윤이 한태민과 함께 교회를 나왔다.
왠지 모르게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마치 어깨에 들러붙었던 여고생 귀신이 목사의 안수기도 한 방으로 멀리 달아난 것 같았다.
진작에 안수기도 받을 걸.
“진짜 효과가 있는 것 같은데.”
고상윤의 말에 한태민이 가슴을 뿌듯하게 내밀었다.
“당연하지, 인마. 이 안수기도가 얼마짜리인지나 아냐? 한 방에 1천만 원짜리야, 인마.”
겨우 20분에 1천만 원이라니. 제법 값이 나가긴 했다.
하지만 그깟 2천만 원이 문제이겠는가? 여고생 귀신만 쫓아낸다면 1억 원이라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 목사한테 한 돈천만 원 찔러줄 걸 그랬나? 그래야 효과가 더 좋았을 텐데.”
“됐어. 대신 나한테 술이나 한 잔 사.”
“하하, 알았다.”
고상윤이 휠체어를 밀고 교회를 빠져나갔다. 차량을 타고 이번에는 병원이 아닌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휴대폰으로 문자가 날아왔다.
순간 고상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하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에이, 아니겠지.’
그러면서 휴대폰 문자를 확인했다.
[나한테 왜 그랬어? 자수해. 안 그러면 내가 죽일 거야.]
고상윤은 순간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다. 안수기도 받고 몇 분이나 지났다고 벌써 귀신이 지랄을 한단 말인가?
“아, 씨발! 대체 나한테 왜 그래?”
혹시 목사에게 1천만 원을 안 줘서 그런가? 그래서 한태민에게 해준 안수기도만 효과를 발휘한 건가?
곧장 한태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태민이 기다렸다는 듯 받았다.
- 너도 문자 받았냐?
젠장, 한태민도 같은 문자를 받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안수기도 자체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 아닌가?
“귀신이 목사보다 더 센가보다. 이제 어쩌지? 아무래도 그냥 자수하는 게 좋겠다.”
- 씨발, 자수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하려면 너 혼자 해. 나는 끌어들이지 말고.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어쩔 건데?”
- 원래 이런 건 목사보다는 무당이 훨씬 잘하지. 그쪽은 네가 전문가잖아. 용한 무당 불러서 굿 한번 벌여보자.
순간 고상윤의 눈이 커졌다.
‘그래!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마침 아주 용하다는 무당도 알고 있었다. 몸값이 조금 비싸긴 하지만, 그래봐야 고상윤이게는 껌 값도 못 되었다.
“알겠어. 그건 나한테 맡겨.”
서유림이 피식 웃었다. 김영자로부터 고상윤과 한태민이 용한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할 거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쓸데없는 발악들을 하고 있는 거지. 이게 무당 불러서 굿판 벌인다고 해결될 일인 것 같아?
하여튼 반성을 모르는 놈들이라니까.
이참에 제대로 혼을 내줘야겠다.
굿판이 언제라고 했더라?
며칠 후.
촹촹촹-
둥둥둥.
바라, 징, 쇠가 장단을 놓으며 요란하게 울렸다. 고깔 쓴 무당이 칼을 들고 장단에 맞추어 펄쩍펄쩍 뛰며 춤을 추었다.
한쪽에서는 고상윤과 한태민이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구경꾼이 제법 있었지만, 창피한 줄도 모른 채 계속 치성을 드렸다.
그 앞에는 잘 차려진 제사상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한태민의 승용차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굿판 한쪽에는 살아있는 하얀 닭과 하얀 염소도 보였다.
굿판은 어느새 절정으로 치달았다. 무당의 춤사위가 갈수록 격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무당과 비슷한 옷차림을 한 여자가 칼을 들고 닭의 목을 잘라버렸다.
이어서 훨씬 더 큰 칼을 들고 염소의 목도 잘라버렸다. 닭과 염소의 피가 땅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그런 뒤에도 잘려진 목에서는 피가 철철 뿜어졌다.
잔뜩 모여든 구경꾼들이 끔찍한 광경에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고상윤이나 한태민은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여고생 귀신 좀 없애주세요. 제발.’
그때였다. 굿판을 구경하던 몇몇 사람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어, 저거 뭐야? 저거 왜 저래?”
순간 고상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
뭐가 잘못되고 있는 걸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철철 흐르던 피가 갑자기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일정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꼭 사람 같았다. 그것도 여고생.
피의 양이 적어서 크기는 토끼보다도 작았지만, 형태만큼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저거 언젠가 본 적이 있다. 공원에서 연못의 물이 저런 식으로 형태를 갖추었었다.
“으악! 씨발, 또 나타났다.”
한태민도 보았다. 고상윤만큼이나 놀랍고 두려웠다. 자신도 모르게 슬금슬금 뒷걸음질 하고 있었다.
무당도 어느새 굿판을 멈추었다. 믿기지 않는 광경에 그저 입을 떨 벌릴 뿐이었다.
여고생 형태의 핏덩이는 천천히 움직였다. 고상윤과 한태민을 향해.
점점 속도를 올리더니 그대로 두 사람의 얼굴을 덮쳤다.
“으아악!”
고상윤과 한태민이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핏덩이가 두 사람의 온몸을 붉게 적셨다.
고상윤과 한태민이 자신의 손과 옷을 붉게 적신 시뻘건 피를 보며 다시 비명을 질렀다.
“으악! 씨발, 이 귀신 대체 뭐야?”
“왜 안 없어져?”
그런데 구경꾼들의 표정이 더욱 가관이었다. 고상윤과 한태민의 얼굴을 보고는 다들 입을 떡 벌렸다.
무당도 마찬가지였다. 두려워서 벌벌 떨었다.
고상윤은 너무 무서워서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저 이제는 자수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한태민은 달랐다. 어떻게든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바락바락 화를 냈다. 분노가 두려움을 지워내기를 바라며.
“왜? 뭐가 문제인데? 이 씨발놈들아!”
“어······ 얼굴! 피!”
한태민의 비서가 손가락으로 한태민과 고상윤의 얼굴을 가리켰다.
“내 얼굴이 뭐!”
한태민이 다시 악을 썼다. 그러면서 고상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놀라서 심장이 그대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고상윤의 얼굴에 피로 글자가 적혀있었다.
[살인마. 죽일 거야.]
“설마······ 내 얼굴에도······?”
한태민의 물음에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서의 얼굴에도 두려움이 가득했다.
서유림은 거기까지만 확인하고 고개를 돌렸다.
설마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버티는 건 아니겠지?
물론 서유림 본인의 힘으로 징벌할 수도 있다. 체력을 잔뜩 빨아주고 포이즌 마법으로 평생 불구로 살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알 것 아닌가? 도상국은 억울한 누명을 썼던 것이고, 사실은 저놈들이 파렴치한 범인이었다고.
그래야 모든 것에 제자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물론 아무리 해도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정령계의 힘을 사용해야 하겠지만.
제발 그렇게 되지 않게 해다오. 그래야 일데 제대로 풀리고 너희도 덜 고생한다.
다음날.
“흐흑.”
고상윤이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
경찰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자수하겠다며 제 발로 찾아온 사람이 벌써 10분 째 저러고 있었다.
그렇다고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자수하기에 앞서 ‘내 인생 X됐구나!’ 하는 생각에 저렇게 슬피 울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냥 계속 기다려주었다.
고상윤이 비로소 마음을 진정하고 고개를 들었다.
어쩔 수 없다.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교도소에 들어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7년 전 참사랑 보육원의 여고생 김미연 강간살인사건. 제가 진범입니다.”
“예? 7년 전이라고요?”
“제가 친구들 여섯 명과 함께 한 짓입니다.”
“고마워요. 이렇게 자주 시간 내줘서.”
김영자가 서유림을 향해 환하게 미소지어주었다.
함께 앉은 채희라도 서유림을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별말씀을요.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죠.”
“진심이에요. 저는 사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가 많지 않거든요. 전 이런 자리가 너무 행복해요.”
사실 나도 그렇다.
처음에는 김영자의 호의를 경계했었다. 나한테 도움을 줘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거든.
세상일이라는 것이 받는 게 있으면 그만큼 주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김영자도 언젠가는 그런 식으로 뭔가를 요구해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영자는 변하지 않았다. 처음에 자신이 약속했던 것처럼 무조건적인 도움만 주었다.
그러니 조금씩 마음이 열릴 수밖에.
물론 그렇다고 김영자를 100% 믿는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어머, 뉴스 나오고 있어요.”
채희라의 말에 다들 TV로 고개를 돌렸다. 음량을 최소한으로 줄여놔서 화면만 보이고 있었다.
채희라의 말대로 고상윤의 자수와 관련한 뉴스였다.
“볼륨 좀 키워봐.”
채희라가 얼른 리모콘을 조작했다.
TV가 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K씨는 7년 전의 일을 이와 같이 자수하면서 공범 여덟 명을 지목했습니다. 공범 중에는 사회적 저명인사도 다수 포함되어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K씨의 자수와 관련한 진술이 무척 구체적이고 자세하므로 거짓일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빠른 시간 안에 공범으로 지목된 이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정말 놀랄 노자로군요. 사모회의 이름에 그런 의미가 있었다니. 유림씨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죠?”
서유림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김미연씨의 기일이 3월 5일이라는 말을 듣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태민 휴대폰으로 문자 보내서 확인한 거고?”
채희라가 오랜만에 말을 집어넣었다.
하긴, 그 일은 채희라가 도와준 거였다.
“맞아.”
“그런데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무려 아홉 명이나 된다니. 그 많은 놈들이 여고생 하나를 집단으로······. 으으······.”
김영자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몸서리를 쳤다.
서유림도 자신의 동생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해보니 김영자처럼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끔찍했다.
한편으로는 김영자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영자가 사모회의 초창기 멤버를 조사해서 가르쳐주었는데 정확도가 놀라울 정도로 높았기 때문이다.
딱 여덟 명의 명단을 확보해서 주었는데, 아홉 명 안에 그 이름이 모두 포함되어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계획은 뭔가요?”
그거야 굳이 묻고 대답할 것도 없는 간단한 일이다.
“모두 자수하도록 만들어야죠.”
“과연 다른 사람들도 자수할까요? 무려 7년이나 지난 일이고, 증거도 전혀 남아있지 않아서 버티기만 하면 무죄판결이 날 텐데.”
그거야 하기 나름이지.
만약 끝가지 버틴다면?
뭐, 그 상황까지 김영자에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자수하도록 유도해볼 생각입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물론이죠. 모든 이들의 정보를 최대한 자세하게 조사해서 드릴게요.”
김영자가 굳이 듣지 않아도 뭘 요구할지 알겠다며 선수 치듯 대답했다.
역시 통하는 구석이 있다니까.
“그런데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말씀하세요.”
“이유가 뭐에요? 돈도 안 되는 이런 힘든 일을 찾아서 하는 이유. 아! 대답하기 곤란하면 하지 않아도 돼요.”
이유?
사실 간단하다.
그게 내 능력에 맞는 역할 같아서.
그렇게 해야 나중에 인생을 뒤돌아보며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
보람이 느껴지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미있습니다. 이런 일이.”
서유림이 앞의 이유는 모두 생략하고 간단하게 정리해주었다. 사실 그것도 틀린 이유는 아니니까.
김영자가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번에는 나한테 물어봐주시겠어요? 나는 왜 그러는지.”
옆구리 찔러서 절 받는군.
찔러주지 뭐.
“여사님은 이유가 뭡니까?”
김영자가 서유림을 바라보았다. 눈빛을 보니 뭔가 모르게 조금 긴 이야기를 할 것 같았다.
“난 어려서부터 무협소설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서론이 조금은 엉뚱하네. 이 시점에서 무협소설 이야기가 왜 나와?
들어보면 알겠지.
“무협소설에는 참 많은 문파가 등장해요. 문파마다 무공도 다르고 특징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죠. 그중에서도 특히 제 마음을 움직인 문파가 있어요. 그래서 언젠가 다짐했죠. 21세기 한국에 그 문파를 재건하자. 유림씨는 그 문파가 뭐일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