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나한테 왜 그랬어요 (3)
고상윤이 고백하듯 이야기했다. 목소리 끝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힘이 없는 것도 이유지만 그것 보다는 두려움이 더욱 컸다.
“그 여고생이라니?”
“7년 전에 우리한테······.”
“이 새끼가······!”
고상윤이 7년 전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윤경식, 한태민 할 것 없이 모두가 매섭게 노려보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은 사모회의 불문율이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꺼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7년 전 그때의 사건을 적나라하게 언급하는 것만큼은 금지였다.
하지만 고상윤은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여고생이 귀신이 돼서 나한테 나타났다니까.”
“정신 차려 새끼야. 이 새끼는 밤이나 낮이나 만날 귀신 타령이야?”
“어디서 이상한 꿈꾸고 웬 헛소리야?”
“헛것이라도 봤어? 하여튼 문제라니까.”
다들 고상윤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고상윤은 답답했다. 그건 절대 꿈이 아니었다. 헛것을 본 것도 아니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어. 꿈이었다고. 헛것을 보았다고. 하지만 꿈도 아니고 헛것을 본 것도 아냐. 내가 지하주차장에서······.”
고상윤이 간밤에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해주었다.
지하주차장에서 기절한 일.
공원에서 눈을 뜬 일.
여고생 귀신이 물로 변해서 자신을 덮친 일.
그리고 이틀 만에 깨어나 보니 온몸이 흠뻑 젖어있던 일까지.
“진짜 옷이 젖어있었어?”
“그렇다니까.”
고상윤이 제발 믿어달라는 듯 눈에 없는 힘을 잔뜩 주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헛웃음만 놓았다.
“하여튼 자나 깨나 귀신 타령이라니까.”
“왜 그렇게 귀신을 무서워해? 진짜 귀신이 있었으면 우리가 지금까지 멀쩡했겠냐? 제발 정신 좀 차려라.”
고상윤도 그러고 싶었다.
사실 고상윤도 원래부터 귀신을 무서워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깜깜한 어둠 속을 혼자서 얼마든지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날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여고생을 강간살인한 후부터 그 여고생이 이따금 꿈에 나타난 것이다.
그때부터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왜 다른 친구들은 멀쩡하고 자신만 그렇게 귀신을 무서워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무서운 걸 어쩌란 말인가?
그런데 그때 고상윤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날아왔다.
고상윤이 휴대폰을 잡고 문자를 확인했다. 힘이 없어서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런데 문자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고상윤의 손이 더욱 심하게 떨렸다.
“헉! 이, 이건······.”
“왜 또? 무슨 문자인데?”
친구들이 고상윤의 휴대폰을 빼앗아서 문자를 확인했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 억울해요. 자수하세요. 안 그러면 죽여 버릴 거야.]
“또 어떤 새끼가 장난질이야?”
윤경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찜찜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하지만, 누군가가 그때의 일을 알고 협박한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이, 씨발. 가서 술이나 마시자.”
사모회 친구들이 우르르 병실을 빠져나갔다.
고상윤이 화들짝 놀라서 손을 뻗었다.
“야, 어디가? 나 혼자 두고 가면 어떻게 해?”
하지만 친구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병실을 빠져나갔다.
고상윤도 따라 나서고 싶었지만, 걷기는커녕 혼자 몸을 일으킬 힘도 없었다. 그저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엄마! 엄마!”
하지만 힘이 없어서 목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덩그러니 혼자 남은 병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2인실이나 4인실을 쓸걸. 괜히 특실을 써서.
혼자 남은 고상윤이 몸을 잔뜩 웅크렸다.
“엄마······. 흐흑.”
조금 늦은 저녁.
한태민이 사무실을 나왔다.
“아, 씨발. 비 오네!”
가을비 치고는 양이 제법 많았다. 이 정도면 장맛비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를 지하주차장에 세워둘걸.
우산을 쓰고 승용차에 탔다.
한태민은 운전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도 고급 스포츠카의 머플러를 뚫어서 탱크 같은 굉음을 내며 고속으로 질주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기사에게 맞기지 않고 스스로 운전했다.
오늘도 기분 좀 내며 운전할까 했는데, 빗길이라 자중하는 게 좋겠다.
스마트키 버튼을 누르자 쿠두두둥- 하는 강력한 엔진소음이 울림과 함께 몸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차량을 부드럽게 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빗길에 왜 저렇게 거칠게 몰아?’ 할 정도로 빠르고 거친 핸들링이겠지만, 한태민에게는 이 정도는 요조숙녀 급 얌전한 운전이었다.
거리에 차량이 제법 많았다.
오토바이도 제법 있었다. 배달 오토바이, 퀵 오토바이들이 차량 사이사이를 묘기 부리듯 파고들며 속력을 냈다. 빗길인데도 불구하고 목숨 걸고 잘도 달린다.
반면 얌전한 오토바이도 있었다. 제법 묵직한 오토바이 한 태가 한태민의 차량 뒤쪽으로 조용히 따라붙었다.
하지만 한태민은 상관하지 않았다. 고막을 터뜨릴 정도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빗속의 운전만을 즐겼다.
신호등에 걸렸다. 기어를 중립에 놓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잠시 휴식을 즐겼다. 와이퍼가 빠르게 움직일 때마다 빗줄기가 강물처럼 모여져서 차 유리 양쪽으로 흩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와이퍼가 빗물을 몰아내는 데 그 자리에 갑자기 웬 사람의 얼굴이 떡 하니 나타났다. 마치 와이퍼가 사람 얼굴을 앞 유리에 프린트한 느낌이었다.
“으악! 씨발, 이게 뭐야?”
한태민이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와이퍼가 빠르게 움직이면서 다시 얼굴을 지웠다.
하지만 한태민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내가 헛것을 봤나?’
하지만 너무도 생생했다. 지금도 그 얼굴이 똑똑히 기억났다. 흐릿하긴 하지만 여고생의 얼굴이 분명했다.
그런데 또다시 그 얼굴이 나타났다. 와이퍼가 빗물을 지우면서 그 자리에 여고생 얼굴을 프린트한 것이다.
“으악! 뭐야?”
한태민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하듯 도망쳤다. 하지만 차량 안에서 어디로 도망치겠는가? 그저 그 자리에서 몸만 바르르 떨 뿐이었다.
와이퍼가 움직이면서 다시 여고생 얼굴이 지워졌다. 그런데 또다시 뭔가를 프린트했다. 이번에는 얼굴이 아닌 글자였다.
[나한테 왜 그랬어?]
이게 대체 무슨 조화일까? 빗물이 글자를 만들다니.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누군가가 꾸밀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귀신의 짓이 아니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태민은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와이퍼는 계속 움직이면서 글자를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마치 한태민을 향해 이야기하는 듯했다.
[억울해]
[복수할거야]
[너도 죽여 버릴 거야]
[나한테 왜 그랬어?]
“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한태민이 결국 울먹이듯 사과했다.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와이퍼는 멈추지 않았고, 앞 유리의 글자 역시 계속 반복되었다.
[억울해]
[죽여 버릴 거야]
그리고 다시 여고생의 얼굴이 보였다. 아까는 슬픈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무척이나 화가 난 표정이었다. 마치 차 앞 유리를 깨고 한태민을 덮칠 것 같은 기세였다.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제발······.”
그것으로 끝이었다. 여고생의 화난 얼굴을 마지막으로 앞 유리의 귀신 쇼(?)는 끝이 났다.
하지만 한태민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온몸이 얼어버린 듯했다.
신호등은 어느새 초록불로 바뀌어있었다. 뒤에서 차량들이 왜 안 가느냐고 신경질 적으로 경적을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태민은 여전히 차량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태민의 뒤에 붙어있던 오토바이만이 슬그머니 옆으로 우회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서유림이 집으로 들어왔다.
밖은 가을비가 계속 쏟아지고 있었지만, 서유림의 몸 어디에도 빗물 한 방울 묻지 않았다.
“아들 왔어? 저녁은?”
“먹었습니다.”
서유림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컴퓨터를 켜고는 문자전송 서비스에 접속했다.
한태민과 고상윤의 휴대폰 번호를 수신자로 설정하고 똑같은 문자를 보냈다. 연속으로.
[나한테 왜 그랬어요?]
[복수할거야.]
[살고 싶으면 자수해.]
‘됐군!’
서유림이 비로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정보제공자가 있으니 일을 꾸미기가 너무 편하다.
닷새 전 고상윤을 상대로 일을 꾸밀 때도 김영자와 채희라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고상윤의 파트너였던 텐프로가 고상윤의 집 도착 예정시각을 정확하게 가르쳐준 것이다.
덕분에 겨우 20분 정도 기다리고 일을 완벽하게 꾸밀 수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한태민이 자신의 스포츠카를 타고 출근했다는 정보를 김영자로부터 받았다.
그렇다면 100% 자가운전이라고 확신했다.
게다가 밖은 비까지 오고.
가을비를 보자마자 좋은 작전이 떠올라서 일을 꾸민 것이다.
지금쯤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겠지? 이래도 계속 버틸래? 웬만하면 이쯤에서 자수하시지. 후훗.
고상윤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환자들은 물론이고 보호자나 간병인으로 병실이 가득했다.
역시 특실보다는 2인실이, 2인실보다는 4인실이, 그리고 4인실보다는 6인실이 훨씬 나았다. 병실 옮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읏······차!”
고상윤이 힘을 잔뜩 서서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의식을 되찾고도 벌써 닷새나 지났는데 아직도 기력이 제대로 안 돌아왔다. 이상하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하루하루 조금씩 회복은 됐지만, 그 속도가 너무 느렸다.
“엄마. 물 좀 줘.”
“너는 손이 없니, 발이 없니?”
어머니가 고상윤을 한차례 노려보았다. 자식이 아니라 웬수였다. 의사 말로는 아픈 곳도 전혀 없다는데 저렇게 계속 아픈 척만 하지 않는가?
그래도 자식이니 어쩔 수 없었다. 신경질적으로 물을 건네주었다.
고상윤이 손을 부들부들 떨며 물을 간신히 마셨다.
그때 고상윤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한태민이었다.
‘태민이가 웬일이지?’
고상윤이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한태민이 인사말도 생략하고 숨넘어갈 듯 이야기했다.
- 나도 봤다. 귀신! 여고생 귀신!
순간 고상윤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진짜? 너도? 확실히 봤어?”
- 어! 씨발, 돌겠네. 요즘 세상에 귀신이 왜 있어? 씨발, 씨발.
한태민이 복잡한 신경을 대변하듯 마구 욕설을 내뱉었다. 그럴 때마다 고상윤도 심장이 벌렁벌렁하는 것 같았다.
이제 더욱 확실해졌다. 그때 죽은 여고생이 귀신이 되어서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아주 무서운 악귀로 찾아온 것이다.
지금도 여고생 귀신은 고상윤의 휴대폰에 계속 문자를 보내오고 있었다. 자수하라고. 안 그러면 죽여 버리겠다고.
두세 시간 마다 한 번씩 같은 문자가 날아오니 미칠 것만 같았다.
“어쩌지?”
‘자수할까?’ 라고 물어보려다가 순간 어머니가 보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함부로 꺼낼 수는 없었다.
이럴 때는 특실이 좋긴 하다.
고상윤이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손으로 입을 감싸고 아주 조용히 통화하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애인과 비밀전화라도 하는 듯했다.
“우리 그냥 자수할까?”
- 씨발, 미쳤냐? 자수하면 최소 몇 년은 살아야 해. 너 그럴 수 있어?
“하지만 방법이 없잖아. 그냥 있으면 귀신이 찾아와서 죽일 것만 같다고. 나 진짜 미치겠어.”
- 방법이 없긴 왜 없어?
고상윤의 눈이 커졌다.
“방법이 있어? 어떻게 할 건데?”
- 내가 잘 아는 목사님이 있다. 교회 엄청 크게 해. 신도도 엄청나게 많고. 잡기 물리치는 데는 역시 종교가 최고 아니겠냐? 안수기도 받으련다. 너도 할래?
듣고 보니 그랬다.
고상윤도 빨리 목사에게 안수기도를 받고 싶었다.
“그래. 같이 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