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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친 잠재력-155화 (155/196)

# 155

나한테 왜 그랬어요 (2)

저녁 아홉 시.

한태민이 보물섬으로 향했다.

다들 먼저 도착해있었다. 한태민이 가장 늦었다.

“태민이 왔네. 축하해.”

한태민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상윤을 노려보았다.

친형 한상민의 마약사건 때문에 그룹 전체가 최악의 분위기였다. 그 때문에 총회장인 한유진마저도 한국으로 들어와서 동분서주했다.

이런 마당에 축하라니.

“뭘?”

“상민이형 일은 안 됐지만, 그 덕분에 네가 그룹 후계자가 되게 생겼잖아. 이게 축하할 일이 아니고 뭐야?”

“이 새끼. 그게 지금 할 말이냐?”

한태민아 고상윤을 더욱 매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고상윤은 그냥 피식 웃기만 했다. 한태민의 눈빛 따위는 전혀 두렵지 않다는 식이었다.

하긴, 집안 재력도 훨씬 더 좋고, 능력도 한태민보다 월등하다. 고상윤과 비교한다면 한태민은 공부로도 싸움으로도 외모로도 쭉정이에 불과하다.

그리고 고상윤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한상민은 이번 사건 때문에 그룹 후계자 자리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그러면 다음으로 가장 유력한 사람은 당연히 자신이 되겠지.

물론 한유진의 자식이 여럿 더 있긴 하지만, 본처가 나은 아들은 한상민과 한태민 둘뿐이니까.

그래서 한태민도 심경이 조금 복잡하다. 좋아하면 안 되는 상황인데 자꾸만 좋은 감정이 고개를 든단 말이야.

그래서 고상윤에게 더욱 화를 내는 것이다. 이러다가 표정관리 잘못해서 웃음이라도 나오면 그 얼마나 쪽팔린 일인가?

“너 씨발, 말 가려서 해. 아무리 그래도 내 형이야.”

“알았어, 인마. 앉아서 술이나 받아라. 근데 상민이형 몸이 안 좋아서 어떻게 하냐? 그 상태로는 교도소도 못 들어갈 것 아냐?”

그제야 한태민이 화를 누그러뜨리고 자리에 앉았다.

“구속집행정지신청 냈다. 그러면 몸 다 나을 때까지 구속 안 당하고 병원에 있을 수 있어.”

“아, 맞다. 그런 제도가 있었지? 그냥 병원에서 계속 누워있으라고 해. 그러면 되지 뭐.”

자꾸 한상민 이야기를 묻네.

한태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런 곳에서 이야기 꺼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빨리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리고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할 생각이다. 그런데 도상국은 어떻게 됐냐? 아직도 못 찾은 거지?”

“그 새끼 죽었다니까.”

한태민의 물음에 윤경식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블랙박스를 통해 확인한 영상을 보면 절대로 살아날 수 없는 대형 사고였다.

하지만 한태민은 여전히 찜찜했다.

“그럼 그때 그 문자는 뭔데? 진짜로 도상국이 귀신이 돼서 문자 보낸 건 아닐 것 아냐?”

“아, 씨발. 술맛 떨어지게. 왜 또 귀신 얘기야?”

이번에는 고상윤이 짜증을 냈다. 세상에 무서울 것 하나 없는 고상윤이지만 귀신은 정말이지 싫었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공포영화고, 그중에서도 귀신 나오는 공포영화가 제일 싫었다.

귀신 이야기도 당연히 싫었다.

그런데 이건 그런 꾸며낸 이야기도 아니었다. 실제로 한태민이 도상국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죽었다는 도상국으로부터 말이다.

그러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꾸 소름이 돋을 수밖에. 왠지 도상국의 귀신이 찾아와서 뒷덜미를 잡아챌 것만 같았다.

한태민이 그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

아까 한상민 이야기에 대한 복수였다.

“그깟 귀신이 뭐가 무섭다고 그러냐? 애새끼도 아니고. 에라이, 오늘 집에 가다가 도상국 귀신이나 만나라.”

“이 새끼가 진짜······.”

고상윤이 한태민을 노려보았다. 한태민은 장난으로 한 이야기겠지만, 고상윤은 그런 게 정말 싫었다.

저런 이야기 듣고 자면 가위를 눌리는 경우도 많았다.

‘젠장, 오늘은 엄마랑 함께 자야겠네.’

“귀신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술이나 마셔. 도상국이는 무조건 죽었다니까. 이제 아가씨들 들이자.”

윤경식이 상황을 정리하듯 큰소리쳤다.

무게를 잡고 앉아있던 민웅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그제야 밖에서 대기하던 아가씨들이 룸 안으로 들어왔다.

“이리 와, 이년아!”

“어머! 술이라도 한 잔 주고 시작하던가요. 다짜고짜 이러는 게 어디 있어요? 어머! 호호호.”

고상윤도 아가씨들 옷 속을 파고들었다. 평소보다 더욱 짓궂게 아가씨들을 밝혔다.

귀신 이야기를 잊기 위해서였다. 다른 곳에 정신을 쏟아야만 이 찜찜한 기분을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술자리는 두 시간이 넘게 이어졌고, 술자리가 파하자 고상윤은 가까운 호텔로 들어가서 실컷 욕정을 풀었다.

그제야 찜찜했던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술도 알딸딸하게 취하고. 이제 들어가서 푹 자고 일어나면 개운해지겠지.

대리운전을 불러서 집으로 향했다.

기사가 차량을 지하주차장에 주차했다. 고상윤 차량의 고정석이나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그래. 수고했어.”

기사를 돌려보내고 지하주차장을 걸었다. 차량만 가득하고 사람은 전혀 없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게다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뚜벅! 뚜벅! 하는 자신의 발걸음 소리가 사방으로 울리면서 분위기를 더욱 음침하게 만들었다.

아까 도상국 귀신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절로 목이 움츠러들었다.

“아, 씨발! 오늘 분위기 왜 이러냐?”

고상윤이 얼른 지하주차장 계단으로 뛰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뒤쪽에서 뭔가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서 뒤 돌아보려는 순간 누군가가 뒷덜미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헉! 누구······.”

더는 물어볼 수 없었다. 갑자기 온몸의 힘이 쭉 빠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고상윤이 눈을 떴다.

지하주차장이 아니었다. 웬 숲속이었다. 저쪽에 가로등 불빛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공원 같기도 했다.

하지만 외진 곳이었다. 주변이 깜깜해서 보이는 게 별로 없었다.

‘여기가 어디지? 내가 왜 여기에 있지?’

몸을 움직여보았다. 온몸이 뻐근했다. 으슬으슬 춥기도 하고 힘이 하나도 없기도 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기력을 잔뜩 빨린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이렇게 어두운 숲속에 혼자 있으려니 너무도 무서웠다.

‘씨발, 귀신이야 뭐야?’

뭐가 됐건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얼른 일어나서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고상윤의 뒷덜미를 낚아채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왜 그랬어요? >>

여자 목소리였다. 그것도 공간을 우렁우렁 울리는 목소리였다. 사방에서 수십 명의 여자가 동시에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헉! 누······ 누구야?”

<< 왜 그랬어요? >>

도대체 누가 어디에서 이야기하는 건지 모르겠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여자의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 나한테 왜 그랬어요? 나 왜 죽였어요? >>

“으악!”

비로소 알 것 같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7년 전 3월 5일.

고상윤을 비롯한 사모회 회원들에 의해 죽은 여고생이었다. 그것도 강간을 당한 상태로.

그 여자가 귀신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너무 무서웠다. 다리 힘이 풀렸다. 고상윤이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사, 살려줘. 잘못했어. 살려줘.”

그런데 대체 어딜 보고 이야기해야 하는 거야? 그저 아무 곳이나 대고 용서를 구했다.

그때였다. 가까운 곳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옆에 아주 작은 연못이 있었다.

그 연못의 물이 출렁출렁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연못의 물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일정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고상윤은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저 혼이 빠진 듯한 눈으로 연못의 물만 바라보았다.

물은 어느새 사람의 형상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도 교복을 입은 긴 생머리의 여고생이었다.

7년 전에 자신들의 손에 죽은 바로 그 여고생이었다.

그 후로 이따금 고상윤의 꿈속에 나타났던 바로 그 여고생이었다.

투명한 물로 만들어져서 얼굴도 흐릿하고 윤곽도 분명치 않았지만, 그 여고생이 분명했다.

여고생이 귀신이 되어서 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로 환생한 여고생이 고상윤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 나 왜 죽였어요? 나 억울해요. 너무 억울해요. >>

“미안해. 잘못했어. 미안해. 살려줘.”

고상윤은 어느새 울먹이고 있었다.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어떻게든 달아나고 싶었지만, 마치 살모사의 기세에 갇힌 개구리처럼 온몸을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 나도 아저씨 죽여 버릴 거야. 복수할 거야. >>

여고생은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고상윤을 향해 다가왔다. 어느새 열 걸음 가까이까지 다가왔다.

“제발······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게. 제발 살려만 줘. 미안해.”

<< 그럼 자수해요. 날 강간하고 죽인 그 사람들 전부 다. >>

“그럴게. 자수할게. 제발 목숨만······.”

<< 자수해. 안 그러면 나한테 죽어. 자수해. >>

여고생은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계속해서 다가왔다.

고상윤도 바들바들 떨며 같은 말만 계속했다. 고상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자수할게. 자수한다니까. 정말이야. 제발······ 자수할게.”

하지만 여고생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거리를 좁혀왔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러더니 온몸으로 고상윤을 덮쳤다.

“으악!”

고상윤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여고생 귀신의 몸을 형성하던 물이 고상윤의 온몸을 흠뻑 적셨다. 허상이 아닌 진짜 물이었다.

고상윤은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다시 뒤쪽에서 발자국소리와 함께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고상윤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고상윤은 감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저 온몸을 웅크린 채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억!”

뒤통수에 묵직한 충격이 느껴졌다. 온몸의 기운이 다시 쭉 빠지면서 그대로 몸을 늘어뜨렸다.

그 자리에 서유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혹시 몰라서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고상윤은 아예 고개를 들 용기도 없었다.

“수고했어, 아리안!”

> 더 필요한 건 없나요? 아직 힘은 충분해요.

그렇겠지. 이젠 아기 정령왕이 아니라 완전히 성숙한 정령왕의 모습을 갖추었으니까. 이런 식으로 1시간도 넘게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힘을 쓰게 할 필요 있을까? 도움을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할 수도 있으니 최소한의 도움만 받는 게 좋겠지.

“또 필요하면 부탁할게.”

> 그럼 가볼게요.

아리안의 기척이 사라졌다.

서유림이 고상윤의 상태를 살폈다. 체력을 바닥까지 빨려서 기력은 없었지만, 맥박은 정상적으로 뛰고 있었다.

서유림이 피식 웃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어머니가 고상윤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고상윤이 너무 겁에 질려있어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잠시 손을 놓으면 금방이라도 어떻게 될 것처럼 바들바들 떨었기 때문이다.

“아휴,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디가 딱히 아픈 것도 아니었다. 의사 말로는 갑자기 기력이 뚝 떨어지긴 했지만 특별히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냥 푹 쉬면 기력이 회복될 거란다.

그러니 답답할 수밖에.

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 한태민과 윤경식을 포함한 사모회 회원 세 명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셨어요?”

“그래. 너희들 왔구나!”

어머니가 어느 때보다도 반겼다. 고상윤이 유독 사모회 친구들과 친했기 때문이다. 어제 정신을 차리고 부터도 계속 친구들을 찾았다.

“엄마는 잠깐 나가있어.”

어머니도 그러고 싶었다. 어제부터 24시간이 넘도록 고상윤 곁을 잠시도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화장실 가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고상윤이 혼자 있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간호조무사도 싫고 다 싫다니 이거야말로 감옥살이였다.

그러니 나가달라는 말이 반가울 수밖에.

“그래. 천천히 얘기 나눠.”

“멀리 가지 마, 엄마.”

어머니는 대답도 하지 않고 얼른 병실 밖으로 달아났다. 이참에 몸이라도 씻고 와야 할 것 같았다.

어머니가 사라지자 윤경식이 툭 던지듯 물었다.

“무슨 일이냐? 어떻게 된 거야?”

고상윤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였다.

목소리에도 힘이 하나도 없었다.

“나······ 그 여고생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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