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149화 (149/196)

# 149

마인드 컨트롤 (1)

비슷한 시각.

“이사님. 최신 기사 스크랩 자료입니다.”

“수고했어.”

권혁진이 여비서로부터 스크랩 자료를 건네받았다.

여비서가 방을 나가려고 하자 권혁진이 다시 불렀다.

“커피 좀 한 잔 타주겠어?”

“네, 이사님.”

여비서가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권혁진이 그런 여비서의 뒷모습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특히 짤록한 허리 아래로 탄탄하게 솟은 엉덩이와 그 아래로 미끈하게 뻗은 다리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미칠 것만 같았다.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요즘은 치마 아래로 드러난 다리만 보아도 사타구니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헙!’

여비서가 몸을 돌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얼른 시선을 피해서 기사 스크랩을 보는 척했다.

여비서가 커피잔을 조심스럽게 놓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그 행동 하나하나가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여비서가 나간 후에도 씰룩씰룩 움직이는 엉덩이와 매끈하게 교차하는 하얀 다리가 계속 머릿속에 잔상으로 보였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답답한 인간이로군. 그냥 덮쳐버리면 끝날 것을.

‘그러면 안 된다니까. 당신네 세상은 어떤지 몰라도 이곳 세상은 그렇게 무턱대고 강간하면 제아무리 나라고 해도 무사하지 못해.’

> 그러면 지난번처럼 돈을 주고 사던가.

아무래도 그래야 하겠다. 도저히 성욕을 참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때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다른 마령의 계약자였다.

“무슨 일인가?”

- 이사님. 혹시 광명회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글쎄. 처음 듣는 이름이군.”

- 최근에 조폭들을 휩쓸고 다니는 놈들 있지 않습니까?

그건 신문과 같은 언론을 통해서 접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움직임이 너무 이상해서 비서에게 관련 기사를 스크랩해달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그게 뭐?”

- 그게 광명회 짓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뒷골목에서는 거의 확실하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돌고 있더라고요.

“그래?”

- 어떻게 할까요? 제가 계약자들을 이끌고 광명회를 덮여볼까요?

“아니다. 지난번 계약자들이 실패한 이유가 그렇게 준비도 없이 서둘러서였다.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수는 없지. 건들지 말고 계속 정보를 수집해라. 확실해지면 힘을 더 모아서 단번에 덮칠 것이다.”

- 알겠습니다, 이사님. 그럼 임채모는 어떻게 할까요?

임채모는 왠지 모르게 놈들이 쳐놓은 덫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마령의 계약자들이 노린다는 걸 빤히 알면서도 저렇게 자신을 노출시킬 수가 없다.

“임채모도 건들지 마. 당분간은 아예 근처에도 가지 마라.”

- 그러겠습니다. 그런데 저기······.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천만 원만 더 보내주십시오.

권혁진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 많은 돈을 벌써 다 썼단 말이냐?”

- 조폭 떨거지들 모아서 힘을 키우라면서요. 그거 하는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아십니까?

하긴, 힘을 키우자면 투자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아니, 힘을 키우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정령의 계약자를 잡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령의 계약자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그래서 지금 덫을 놓고 있는 것이다.

권혁진은 조폭들을 정리하고 광명회를 조직한 게 정령의 계약자라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조폭들을 들쑤시고 다니면 틀림없이 나타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놈을 덮친다면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잡지는 못한다고 해도 정체는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마왕에게는 마신의 인장이 있으니까.

그 인장만 찍어놓으면 놈이 어디에 있건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깟 돈은 중요치 않다.

어차피 돈은 넘치고 넘쳤다. 매일매일 들어오는 돈도 엄청났고. 하루에 1억 원씩 평생을 써도 돈은 오히려 계속 불어날 것이다.

게다가 다른 계약자들이 자신에게 충성하는 이유도 돈 때문이었다.

물론 마령과 마왕이라는 위치 자체의 힘도 있지만, 인간들에게 그런 위치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인간들이 마령의 뜻에 따라서 마왕의 계약자에게 복종하는 것은 돈의 힘이었다.

“알겠다. 돈은 필요한 만큼 주겠다. 대신 절대 놈들에게 발각될 행동은 하지 마라. 자칫 우리의 위치가 노출되면 역으로 당할 수도 있으니까.”

- 알겠습니다, 이사님!

통화를 마친 권혁수가 눈빛을 빛냈다.

‘광명회라. 이번에는 확실하게 놈들을 제압하겠다.’

그런데 이놈의 아랫도리는 좀처럼 누그러질 줄을 모른다. 바지가 터질 것만 같았다.

도저히 못 참겠다.

권혁수가 컴퓨터를 조작해서 민들레 홈페이지를 접속했다. 로그인하고 들어가 보니 꽃처럼 예쁜 아가씨들이 열심히 운동하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권혁수의 눈빛이 어느새 색심을 가득 물들었다.

* * *

임채모를 태운 승합차가 관악산으로 향했다.

서유림이 길 중간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기다렸다. 혹시 승합차를 미행하는 놈이 있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조용했다.

‘이놈들이 포기한 건가?’

그럴 리는 없다.

단지 잠깐만 숨죽이고 있는 것뿐이다. 임채모 주변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지.

이 정도면 경계가 느슨해지겠다 싶은 순간 다시 임채모를 노릴 것이다.

어쨌건 이제는 안심해도 될 것이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계양산 은거지로 향했다.

계양산 은거지에서는 아직도 작업이 한창이었다. 장로들이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서 흑사파, 가디언스파 등 핵심 조직원들을 고문하고 있었다.

서유림이 도착하자 다들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주군 오셨습니까?”

<< 오늘은 뭐 좀 털어놓은 게 있나? >>

“드디어 하나씩 털어놓고 있습니다. 감추어진 본거지 몇 군데와 금품 숨겨놓은 곳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래도 실적이 조금 있었군.

하지만 서유림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놈들의 눈빛을 보니 아직도 번들번들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그 눈빛을 보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것들이 뭘 잘했다고.

이런 놈들은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서 바닥까지 탈탈 털어줘야 한다. 조금이라도 힘을 남겨놓으면 그 힘을 바탕으로 온갖 더러운 짓을 할 놈들이니까.

“사나흘만 더 고생하면 웬만큼은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아무리 지옥 같은 상황도 쉼 없이 계속 반복되면 참을성이 길러진다.

그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그런 적응을 적당히 무너뜨려주는 거지.

어떻게?

그건 아주 간단하다.

<< 아니다. 이놈들에게 사나흘 생각할 시간을 줘라. 그래도 불지 않으면 그때 다시 시작하면 된다. 한 달이 걸려도 좋고 두 달이 걸려도 좋으니까 남김없이 모두 알아내라. >>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이따금 사나흘씩 생각할 시간을 주면서 캐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이해가 빠르군. 하여튼 이런 쪽으로는 다들 도가 튼 놈들이라니까. 믿고 맡겨도 될 것 같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만 슬쩍 나서주면 되겠지?

서유림이 비로소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은신처를 빠져나왔다.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갈까 하는데 채희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서 채희라와의 만남이 무척 뜸했다. 임채모의 일도 그렇고, 하노이파 등 외국계 조직을 청소하는 일도 그렇고, 요즘 워낙 바빴다.

채희라와 주로 데이트하던 저녁부터 새벽까지가 특히 그랬다.

다행히 오늘은 시간이 좀 나네.

반가운 목소리로 채희라의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이네.”

- 오빠! 남 심심해 죽겠어. 이제 나하고는 안 놀아줄 거야?

장난기가 가득 섞인 투정이다. 귀엽네.

“놀아야지. 마침 오늘 한가한데.”

- 어머, 그래? 나도 오늘 시간 무지 많이 남는데. 내가 오빠한테 갈까?

“아냐. 내가 갈게. 어디에서 볼까?”

- 민들레 옥탑방에서 볼까?

“좋지.”

곧장 신사동 민들레 건물로 향했다.

옥탑방 문을 두드리자 채희라가 방문을 열어주었다.

순간 서유림의 눈도 함께 열렸다. 채희라가 커다란 탱크톱 티셔츠를 입고 있는데, 아래가 훤했다. 혹시 핫팬츠를 입었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얘가 미쳤나봐! 그러다가 다른 사람하고 함께 왔으면 어쩌려고?

“모기 들어와. 얼른 문 닫아.”

채희라가 서유림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굶주렸다는 듯 팔로 목을 휘감으며 엉겨 붙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서로 내숭 떠는 사이도 아닌데 뭐.

서유림도 채희라를 번쩍 안아들고는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는 몸이 나른해질 때까지 회포를 풀었다.

그러다 보니 아직 자정도 안 된 시간인데 잠이 솔솔 왔다.

* * *

서유림이 눈을 떴다.

어? 그런데 아리아나는 어디에 있지?

정령계로 들어와서 눈을 뜨면 늘 아리아나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리아나는 항상 서유림이 소환되는 장소 옆에 있어주었거든.

그런데 오늘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빈 방에 서유림 혼자뿐이었다.

그래도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리니스 성이 워낙 안정적으로 돌아가서 문제가 생길 일이 전혀 없었으니까.

서유림이 방을 나섰다.

요정들이 건물 곳곳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아리아나는 어디에 있죠?”

“아까 서쪽 망루로 가셨습니다.”

서유림이 서쪽 망루로 향했다.

리니스성의 망루는 무척이나 높게 만들어졌다. 망루 위에 나무로 세운 탑까지 포함하면 높이가 대충 100m는 되는 듯했다.

아리아나는 그 탑의 꼭대기에 올라가 있었다.

서유림도 사다리를 잡고 탑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아리아나가 서유림을 향해 환하게 웃어주었다.

“오셨어요?”

“여기에서 혼자 뭐해?”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어요. 바람에는 정령의 기운이 담겨있거든요. 정령신의 후보는 그 기운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그건 전에도 들은 기억이 있다. 정령신의 후보가 비록 전투력은 일반 요정보다 크게 떨어졌지만, 잠재력이나 다른 특수능력은 뛰어난 게 많았다.

바람이나 물, 풀, 새들이 실어오는 정령의 기운을 읽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무슨 정보가 있는데?”

“동료 요정들이 마계 군단에게 쫓겨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어요.”

그놈의 마계 군단. 이제 지겨울 정도다.

지난번에 수 십 만에 달하는 마계 군단을 물리치지 않았던가? 보조성벽을 쌓아서 그 안으로 유인하는 수법으로 말이다.

그것으로 큰 전투는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커다란 착각이었다. 마계 군단은 끝도 없이 계속 나타났다. 그곳도 대규모로.

한 번에 수천의 무리가 몰려오는 것은 일상적이었고, 많게는 한 번에 2만이 넘는 무리가 몰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어렵지 않게 물리쳤다.

물론 그럴 때마다 전투의 선봉은 늘 서유림의 몫이었다.

이번도 마찬가지겠지. 끽해야 1만에서 2만의 무리가 몰려올 것이다. 그러면 서유림이 요정 군단을 이끌고 나가서 전멸시켜버릴 것이다.

그런데 아리아나가 조금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마계 군단은 규모가 엄청난 것 같아요. 어쩌면 백만 군세도 넘을 것 같아요.”

서유림의 입이 떡 벌어졌다.

“백만?”

“쫓겨 오는 요정들의 수만도 10만 명이 넘어요. 아무래도 마계 군단의 느낌을 읽은 누군가가 미리 성을 버리고 이쪽으로 도주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거 정확한 정보일까? 아무리 아리아나라고 해도 그렇게 머릿수까지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거 맞아?

하지만 아리아나가 언제 실없는 소리 한 적이 있던가?

아리아나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젠장, 정령계에서 만큼은 이제 안정을 찾나 싶었는데, 또다시 이런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가야 하다니.

하긴, 암흑기라지 않는가? 평화가 오래 지속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그나저나 이제 어째야 하나?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이곳에서 맞서 싸우거나, 아니면 이곳을 버리고 더욱 크고 튼튼한 성으로 달아나거나.

아리아나가 길을 제시해주었다.

“떠나야 해요. 그게 우리들의 운명인 것 같아요.”

“내 생각도 그래.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내일이라도 당장 떠나도록 하지.”

그런데 아리아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사흘만 기다려요. 서쪽에서 오는 요정들과 합류해서 그들과 함께 움직여야 해요.”

너무 위험한 결정이다. 사흘이 늦어지면 마계 군단에게 추격당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질 테니까.

“그래야 하는 이유라도 있어?”

“그곳에 또 다른 정령신의 후보가 있어요. 그녀를 마계 군단의 손에 넘어가게 해서는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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