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살인청부 (2)
공항파의 장문석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누군가를 죽여 달라는 살인청부를 하노이파에게 의뢰했다고 했었다.
그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설마 벌써 죽인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서유림이 막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냥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이놈 꼴을 보니 그 일까지 털어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거야 공항파의 장문석에게 물어보면 되겠군.’
일단 그 일이 먼저일 것 같다. 이놈들을 신문해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은 급한 일이 아니니까.
단상 왼쪽에는 다른 흑사파나 가디언스파 등 다른 조직에서 잡아온 놈들이 20명가량 있었다.
그놈들도 일단은 처분을 보류했다.
힘들게 잡아왔는데 아무런 소득도 없이 그냥 놓아주면 아깝잖아. 이놈들이 소유한 부동산도 처분하고, 또 숨겨놓은 재산이 있으면 그런 것들도 모조리 압수해야지.
그렇게 뽑아먹을 수 있는 건 모두 뽑아먹은 후에 처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일단 오늘 집회는 여기까지만 해도 되겠군.
* * *
“그건······ 말씀드리기가 좀······ 악!”
공항파 장문석이 몸을 새우처럼 웅크리며 고통으로 바들바들 떨었다.
아무래도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숨을 쉬는 것조차도 힘이 들 정도다.
하지만 서유림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목소리도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 너 말고도 물어볼 놈은 많이 있다. 버텨봤자 너만 고생이지. 살인청부 내용을 이야기해라. >>
서유림이 다시 장문석의 무릎을 걷어찼다.
한 번 걷어찰 때마다 장문석은 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아아악!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장문석이 결국 항복했다. 버틴다고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얻어맞으며 버틴 게 억울할 지경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것, 그냥 일찍 털어놓을걸.
“썬푸드의 황상규 대리라는 자를 죽여 달라는 의뢰였습니다. 선입금 2천만 원에 완료하고 나면 2천만 원 받기로 했습니다. 하노이파에는 3천만 원 주기로 했습니다.”
돈 얘기는 물은 적 없는데.
그런데 사람 목숨 거래하는데 겨우 4천만 원이라니. 참 더러운 세상이다.
그나저나 썬푸드의 황상규 대리라고?
들어보지도 못한 회사였다. 이름도 없는 작은 중소기업이 틀림없다.
겨우 그런 회사의 대리를 죽여 달라고 의뢰하다니. 사랑과 관련한 건가? 아니면 사기?
<< 의뢰인은 누구냐? >>
장문석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어쩐지 그걸 물을 것 같더라니.
하지만 그건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엉뚱한 거짓말 했다가 발각되면 더 큰 고역을 치를 테고.
미칠 것만 같았다.
“크으윽. 그건 정말 모릅니다. 그냥 돈만 받으면 일을 처리해주는 방식이라서······. 전화번호도 가짜고 계좌도 가짜입니다. 의뢰인을 알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이건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리고는 눈을 꼭 감았다. 틀림없이 어디 한 군데를 걷어차서 다시 고문할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에 조용했다.
눈을 슬쩍 떠서 바라보니 서유림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썬푸드의 황상규 대리에 대한 인적사항은 가지고 있겠지? >>
장문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거라면 대충은 알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 * *
서유림이 4장로인 백철민에게 자료를 건네주었다. 장문석으로부터 건네받은 황상규 대리의 인적사항이었다.
<< 4장로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특이사항이 있으면 문자로 보고해라. >>
“예, 주군.”
서유림은 그렇게 황상규와 관련한 일을 떠넘기고 임채모와 관련한 일에 집중했다. 임채모가 대부분 프로그램에서는 하차했지만, 드라마 하차를 위해서는 몇 장면의 촬영을 더 해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 틈을 마령이 노린다면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4장로에게서 곧바로 연락이 왔다.
- 주군. 드디어 의뢰인을 알아냈습니다. 유진그룹 감찰실장이자 푸르름 엔터테인먼트 대표로 있는 한상민 실장입니다.
순간 서유림의 눈이 번쩍 떠졌다. 전혀 뜻밖의 인물이었다. 대체 황상규와 한상민 사이에 무슨 연결고리가 있다고?
혹시 한상민이 황상규의 여자 친구에게도 관심이 있는 건가?
혹시 4장로가 잘못 조사한 것은 아닐까?
짧은 시간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 의뢰인은 어떻게 알아냈지? >>
- 황상규 대리가 자신의 입으로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누군가가 조폭을 시켜서 당신을 청부살인하려 한다고 알려주자마자 곧바로 한상민 실장의 짓이라며 이야기했습니다. 100% 확실하답니다.
<< 그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뭐지? >>
- 저도 그걸 묻긴 했는데 그거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상민의 짓이라고만 합니다. 게다가 이상한 점이 또 있습니다.
4장로 백철민이 며칠간 조사한 내용을 모두 이야기했다.
핵심은 황상규 대리 주변에 경찰이 잔뜩 깔려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황상류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황상규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황상규 주변사람 치고 경찰의 탐문수사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수사하는 목적은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 알겠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해라. 단 우리의 존재를 경찰이 눈치 채지 않도록 조심해라. 일이 시끄러워질 것 같으면 차라리 조사를 중단하도록. >>
“예, 주군!”
통화를 마친 서유림은 곧장 김영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영자를 통한다면 이런 일쯤은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 썬푸드의 황상규 대리라고요?
“얼마 전에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경찰이 황상규 대리와 관련해서 뭔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 흐음. 알겠어요. 서둘러서 알아보도록 할게요.
통화를 마친 서유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 보니 요즘 한상민 실장과 너무 격조했다. 아직도 병원에 입원해있을 텐데 병문안도 못 가고.
이참에 찾아가서 슬쩍 떠볼까?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군!
서유림이 피식 웃으며 병원으로 향했다.
“조심······.”
새로운 비서 윤장호가 안절부절 못하며 한상민을 뒤따랐다. 두 명의 경호원이 그 앞뒤에 서서 한상민을 철통같이 경호했다.
혹시 작은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라는 듯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한상민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걷고 있었다. 보행보조기를 의지한 채 걷는데도 어기적어기적 하는 것이 모양새가 영 나지 않았다.
“조금만 더 힘내십시오.”
“시끄러. 너 때문에 자꾸 힘이 빠지잖아.”
한상민이 비서를 향해 버럭 화를 냈다. 그리고는 다시 보조기에 의지해서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디뎠다.
허리와 다리 통증이 여전했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재활을 해야만 한다니 이를 악물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장님, 오랜만에 뵙네요.”
서유림이었다. 가뜩이나 재활운동으로 일그러졌던 얼굴이 힘도 쓰지 않는데 더욱 일그러졌다.
“씨발, 저 새끼는 왜 또 왔어?”
역시 인성은 쉽게 안 변한다니까. 일부러 병원까지 찾아온 손님한테 저따위로 말하는 놈이 어디 있어?
그래도 한상민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저렇게 열심히 재활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도 절로 나오네.
“와! 좋아 보이시네요.”
“이게 좋아 보여? 사람 성질 북돋으려고 찾아온 거냐?”
한상민이 더욱 화를 냈다. 이를 부득부득 가는 모습까지 보였다.
혹시 저렇게 된 게 나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아니겠지.
서유림이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지 않았다.
“에이, 그럴 리가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죠.”
“난 할 말 없으니까 그만 가봐. 바쁜 거 안 보여?”
과연 그럴까? 이 말을 듣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보자고.
“요즘 경찰이 자꾸 찾아와서 실장님 관련해서 캐묻고 있는데도요?”
“뭐? 경찰?”
예상대로다. 한상민이 불에 덴 것처럼 움찔하며 눈을 크게 떴다.
“여기서 그냥 얘기해도 되나요? 조용히 말씀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서유림이 비서나 경호원의 눈치를 보았다.
그제야 한상민도 표정을 풀었다.
“잠깐 저기 휴게실로 가자. 야, 이거 치우고 부축해.”
한상민이 재활보조기를 벗어나서 경호원의 도움으로 휴게실로 옮겨갔다. 그런데도 움직임이 무척 느렸다.
“너희는 잠깐 나가있어.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예, 실장님.”
다들 나가고 휴게실은 서유림과 한상민 둘만 남았다.
“그게 갑자기 무슨 얘기야? 경찰이 나에 대해서 캐묻는다니?”
“뜬금없이 알지도 못하는 회사 이름을 물으면서 실장님이 관련된 곳이냐고 묻더라고요.”
“회사?”
“이름이 썬푸드였던가?”
한상민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니, 그러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다.
하지만 서유림은 관심 없는 척하면서 한상민의 표정이나 몸짓을 세심하게 살폈다. 때문에 순간적으로 얼굴이 살짝 창백해지는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움찔하는 느낌도 들었다.
“혹시 아는 회사세요?”
“응? 아, 알긴 개뿔이. 그게 뭐 하는 회사인데?”
모르면 모르는 거지 왜 갑자기 그렇게 시비 걸 듯 묻는 건데?
확실히 뭔가 구린 냄새가 나는군.
“게다가 황상규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묻던데요?”
이번에는 한상민의 눈도 살짝 커졌다. 얼굴은 아까보다 더욱 창백해진 느낌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분위기는 감이 오는 것 같다.
한상민과 황상규가 뭔가 불법적인 일을 함께 한 게 분명하다. 아마도 한상민이 황상규를 시킨 거겠지.
그런데 황상규 때문에 그게 탄로 날 것 같으니 살인청부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한 것이고.
대체 무슨 짓인데 ‘살인청부’라는 카드까지 꺼내든 것일까?
“그······ 그래서?”
한상민이 애써 태연한 척하려 했지만, 서유림은 예민해진 감각 덕분에 목소리의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뭐라도 짐작 가는 바가 있어야 한 번 더 찔러볼 것 같은데 그게 없으니 더는 이야기 진척이 어려울 것 같다.
“모른다고 했죠. 실제로도 모르고. 그러니까 혹시 생각나는 게 있으면 연락 달라고 하던데요.”
“그 경찰이 누군데?”
“그건 모르겠습니다. 아는 것도 없고 연락할 일도 없고 해서 명함 받은 거 그냥 버렸거든요.”
“병신새끼야. 그걸 버리면 어떻게 해?”
한상민이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정말 이해하기 어렵군. 원래 있는 집일수록 자식교육이 엄한 법 아닌가? 그런데 하는 짓을 보면 꼭 가정교육이라고는 전혀 안 받고 자란 놈 같단 말이야.
그럼 나라도 교육을 시켜줘야지.
“그럼 나중에 다시 찾아오면 명함 받아놓겠습니다.”
“알았어. 야, 윤 비서. 병실로 가자!”
한상민이 소리치자 밖에서 대기하던 비서가 경호원과 함께 얼른 달려왔다. 경호원들이 한상민을 양쪽에서 조심히 부축하고 병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유림이 뒤에서 손가락을 기묘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한상민이 경호원들과 함께 주르륵 미끄러져 넘어졌다. 경호원들이 깜짝 놀라서 한상민 밑으로 자신의 몸을 집어넣었다.
덕분에 한상민이 복도 바닥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충격은 컸다. 가뜩이나 아픈 허리를 부여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아이쿠!”
“실장님! 괜찮으세요? 이런 병신들! 똑바로 못해?”
윤 비서가 경호원들을 나무라며 한상민을 부축해 일으켰다. 윤 비서는 덩치가 제법 좋은 사람이었다. 몸무게가 90kg은 가뿐이 넘을 것 같았다.
힘도 좋아서 한상민을 아주 쉽게 일으켰다.
그런데 한상민이 반쯤 일어났을 때 이번에는 윤 비서가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것도 한상민을 덮치는 자세로.
“······으윽!”
이번에는 충격을 제대로 받은 듯했다.
서유림이 얼른 다가가서 한상민을 부축해줬다.
“실장님 괜찮으세요.”
한상민은 온전히 일어서지는 못했다. 그래도 바닥에 큰대자로 누워있을 수는 없어서 서유림의 도움을 받아서 간신히 앉기만 했다.
그제야 서유림의 손을 뿌리치면서 경호원들을 노려보았다.
“됐어. 넌 그만 가봐. 이 개새끼들!”
경호원들도 몸이 정상은 아니었다. 넘어지면서 타박상을 입은 듯했다.
하지만 한상민 앞에서 아프다는 표정은 할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실장님. 괜찮으십니까?”
“가서 휠체어나 가져와, 새끼야. 아, 씨발. 몸이 이상하네. 힘이 하나도 없네. 또 어디가 잘못된 거야?”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서유림이 몸을 돌려서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제야 참았던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피식피식 새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