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광명회, 움직이다. (3)
이틀 후.
시각은 어느새 자정을 넘어 새벽이 되었다.
하노이파의 가장 핵심으로 보이는 자가 인천에 있다고 했다.
부다다당-
서유림이 오토바이를 타고 인천으로 향했다. 복잡한 도심의 골목골목을 빠르게 누비기에는 승용차보다는 오토바이가 훨씬 편했다.
광명회 회원들이 이미 곳곳의 사전답사를 마무리한 상태였다. 주요 건물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고했기 때문에 척 봐도 어디가 어딘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저쪽이군!’
서유림이 허름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인근에 승합차 한 대가 오래전에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었다.
서유림은 곧장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승합차에서 다섯 명의 광명회 회원이 나와 서유림을 뒤따랐다.
입구를 지키는 놈들이 보였다. 서유림이 다가가자 알아듣지 못할 말로 시끄럽게 떠들며 막아섰다.
하지만 서유림이 휘두른 삼단봉 한 방에 그대로 조용해졌다.
서유림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서도 문을 두 번 더 통과해야 했다. 그때마다 문을 지키던 조직원들을 때려눕혀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문을 열자마자 얼굴이 찌푸려졌다.
‘와! 너구리 잡겠네!’
담배연기가 어찌나 심하던지 무슨 화생방 훈련장 같았다.
정보가 정확했다. 이곳은 도박장이었다.
동남아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도박을 하고 있었다. 다들 도박에만 정신이 팔려서 서유림이 들어와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 신경 쓰는 사람이 있구나.
못 알아들을 말로 목소리를 높이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이들이 보였다.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노려보는 모습을 보니 대충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알 것 같다.
‘뭐 하는 새끼야?’ 아니면 ‘너 누구야?’ 하는 정도겠지.
얼굴을 보니 사진 속 인물은 아니었다.
한바탕 소란을 떨면 우르르 나오겠지? 그대로 삼단봉을 휘둘러서 놈을 쓰러뜨렸다. 단 두 방에 손목뼈와 발목뼈가 하나씩 부러졌다.
“끄아아······.”
조직원의 비명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에서 기다리던 비명이 마구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저 깊은 안쪽에서 문이 벌컥 열리더니 젊은 동남아 사내들도 튀어나왔다. 그중에는 사진으로 본 얼굴도 있었다.
‘저놈이군!’
기억력은 물론이고 감각마저 뛰어나서 사람을 잘못 알아볼 리는 없었다. 쌍둥이만 아니라면.
조직원들이 서유림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들 손에 칼이나 송곳 같은 흉기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겨우 5m가량을 넘겨두고는 바나나라도 밟은 것처럼 주르르 미끄러져서 쓰러졌다.
서유림이 삼단봉을 휘둘렀다.
인정사정 볼 것 없었다. 죽지만 안으면 되니까.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손목뼈나 발목뼈, 갈비뼈가 두둑두둑 부러져나갈 것이다.
사방에서 다른 조직원들이 튀어나왔지만, 하나같이 같은 꼴을 면치 못했다. 쓰러지고 맞고 부러지고 기절하고.
뒤따라 들어온 광명회 회원들도 이따금 손을 거들었다.
더는 서유림을 향해 달려드는 놈이 없었다.
서유림은 놈들이 튀어나왔던 방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도박장에 진입하고 겨우 2분도 안 지난 시점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
두 놈이 남아서 커다란 배낭에 돈을 마구 쓸어 담고 있었다. 그러다가 서유림을 발견하고는 칼을 빼들었다.
“아악!”
서유림이 놈들을 간단하게 기절시켰다.
<< 뒤져라. >>
회원들이 방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한 명은 놈들이 쓸어담다 만 돈을 가방 안에 챙겨 넣었다.
대충 봐도 10억 원은 될 것 같았다.
“대충 다 쓸어 담은 것 같습니다. 마약도 이곳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 철수한다. 1장로가 책임지고 저놈과 물건을 간수하도록. >>
“예, 주군.”
1장로가 돈 가방과 함께 하노이파의 핵심 조직원을 승합차로 옮겼다. 그리고는 빠르게 출발했다.
감히 돈을 들고 도망치거나 빼돌리거나 배신할 생각은 못할 것이다. 장로들에게 침투시킨 정령들은 하나같이 레벨이 높아서 서유림과 강한 교감을 이룰 수 있으니까.
이상한 마음을 먹는 순간 서유림이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디로 숨는지 까지도.
서유림이 두 번째 장소로 향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움직이니 빠른 이동이 가능했다.
이번에는 술집이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2장로가 광명회 회원들과 함께 미리 와서 승합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똑같은 방식으로 쳐들어가서 핵심 조직원을 붙잡고 금품 같은 것들을 쓸어 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있었다.
“찾았습니다.”
서유림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 경찰에 신고하고 철수한다. >>
광명회 회원 하나가 하노이파 조직원의 휴대폰으로 경찰에 연락했다. 그리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서유림은 뒷일을 2장로에게 맡기고 세 번째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3장로가 대포폰으로 연락을 해왔다.
- 놈들이 눈치 챈 것 같습니다.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주군 오실 때까지 기다릴까요? 아니면 제가 그냥 단독으로 처리할까요?
살짝 고민되었다.
물론 장로의 능력은 믿는다. 제아무리 조폭들이라고 해도 정령의 힘까지 가진 자가 일반인을 상대로 패하진 않겠지.
하지만 문제는 마령의 계약자였다.
만약 저쪽에 마령의 계약자라도 숨어있다면 오히려 이쪽이 당할 것이다.
그래서 귀찮더라도 서유림이 직접 나서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불필요한 걱정이었다. 만약 마령의 계약자가 놈들 사이에 끼어있다면 그런 식으로 도망치지는 않을 테니까.
오히려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이쪽을 제압하려 할 것이다.
<< 3장로가 처리하도록. 만약 처리하기 힘든 능력자가 보이면 재빨리 철수한다. >>
- 옛, 주군!
그런데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5장로였다. 그리고 잠시 후 4장로에게서도 전화가 걸려왔다.
하나같이 같은 내용이었다. 하노이파가 연락을 듣고 모두 종적을 감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서유림은 이번에는 고민하지 않았다.
<< 그대가 책임지고 처리하도록. 일을 마치치자마자 철마산 집회소로 집결한다. >>
* * *
‘아, 씨발. 어떻게 하지? 그냥 튈까?’
김석균은 엉덩이가 들썩들썩했다.
빨리 결정해야 한다. 승합차는 어느새 계양산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조금 더 지체하면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주군이 모를까?’
주군 생각을 하니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전 재산을 모두 빼앗겼다. 동산 부동산 할 것 없이 모두 다.
아내에게도 이혼 당했다. 말 그대로 남은 것은 거시기 두 쪽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 모든 게 주군 때문이었다. 충성심 어쩌고 하면서 야금야금 돈을 요구하더니 이렇게 바닥까지 긁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다시 돈이 들어왔다.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커다란 배낭 두 개에는 10억 원에 가까운 돈이 있었다.
이 돈이면 어딜 가더라도 조용히 편하게 살 수 있으리라.
게다가 엄청난 육체능력도 얻지 않았는가?
‘그래. 튀자. 씨발 알면 어때? 내가 숨어버리면 어디 있는지 알게 뭐야? 그런데 이놈들은 어쩌지?’
승합차에는 총 여섯 명의 회원들이 타고 있었다.
이놈들을 설득해서 돈을 나눠야 하나?
어림없는 일이다. 설득하기도 힘들 것이고, 설령 설득한다고 해도 여섯 명과 돈을 나누면 겨우 2억 원도 못 될 것이다.
‘그냥 혼자 먹자.’
이놈들이야 그냥 때려눕히면 된다. 막말로 이 자리에서 자신은 독보적인 육체능력을 지니지 않았는가?
드디어 결정이 섰다.
“차 멈춰.”
“예?”
“여기에서 잠깐 멈춰. 주군의 지시다.”
“옛, 장로님.”
주군의 지시를 들먹이니 곧바로 차량이 멈춰 섰다.
“너희 다섯. 저기 보이는 파란색 건물 보이지? 빨리 가봐라. 주군께서 너희를 부르신다.”
“알겠습니다.”
회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김석균은 이때다 싶었다. 회원들이 적당히 멀어지자 느닷없이 운전자의 뒤통수를 때려서 기절시켰다. 그대로 차량 밖으로 버려두고는 스스로 운전대를 잡고 승합차를 출발시켰다.
회원들이 깜짝 놀라서 되돌아왔지만, 승합차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 * *
어느새 새벽 네 시가 되었다.
서유림이 철마산 집회소 안으로 들어갔다.
광명회 회원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다들 검은 복면을 착용하고 있어서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한쪽에는 하노이파에서 잡아온 핵심 조직원 다섯 명이 웅크리고 있었다. 다들 다리뼈가 부러지고 팔목뼈가 부러지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런데 서유림이 자리에 앉기에 무섭게 회원 하나가 얼른 일어서서보고했다.
“주군! 큰일 났습니다. 1장로가 광명회를 배신하고 돈 가방을 들고 도주했습니다.”
<< 알고 있다. >>
서유림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출입문 쪽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대장로와 2장로가 1장로를 양쪽에서 붙잡고 집회소 안으로 들어왔다. 1장로는 손이 뒤로 묶인 상태였다.
단상 위로 올라왔다. 대장로가 복면을 벗겨주었다.
복면 안에서 1장로 김석균의 얼굴이 드러났다.
회원들이 다들 깜짝 놀라서 중얼거렸다.
“아! 1장로님이다.”
“어떻게······?”
그러는 사이 대장로와 2장로는 아래로 내려가서 자리에 착석했다.
<<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너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나는 다 보고 들을 수 있다고. 너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나는 다 알 수 있다. >>
회원들이 웅성웅성했다.
물론 그런 말을 듣긴 했다.
하지만 누가 그 말을 믿었겠는가? 그냥 딴 생각 하지 말라는 차원에서 협박성 거짓말을 한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장로들은 반신반의했다. 이따금 서유림이 정령의 교감을 통해서 생각만으로 지시를 내린 적도 있으니까.
조금만 나쁜 짓을 하려고 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몸에 한기를 느끼게 하면서 문자를 보내오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정말 지켜보고 있나?’ 하면서도 ‘혹시 주변에 첩자를 숨겨놓았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 말에 조금도 거짓이 없었다.
사실 집회소에 오자마자 김석균의 도주와 관련한 소식을 들었다. 함께 움직였던 회원들이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마음먹고 도주한 셈이다. 그것도 회원 한 명 대동하지 않고 혼자서. 그렇다고 김석균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놓은 것도 아니고.
그러니 광명회 회원 전체가 나선다고 해도 당연히 잡기 어려웠겠지.
김석균이 제대로 숨기만 한다면 평생을 뒤쫓아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도주하고 1시간도 못 돼서 이렇게 붙잡혀오지 않았는가?
그건 김석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거나 아니면 머릿속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내가 돈을 들고 도망쳤다면······ 어휴!’
생각할수록 두려움에 몸서리가 쳐졌다.
서유림이 그 모습을 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사실 운이 좋았다. 아니, 김석균이 바보 같은 선택을 했다고 봐야겠지.
만약 고속도로 같은 것을 타고 한 방향으로만 계속 도망쳤다면 잡는 데 시간이 조금 거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놈이 미련하게 서울의 은신처에 몸을 숨겼다.
딴에는 자신만이 아는 은신처라고 생각했겠지.
그러니 그냥 가서 잡아오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 너희 모두는 이미 벌을 받아 마땅한 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이다. 이중에 스스로 죄가 없다고 할 수 있는 자 손들어보라. >>
누가 감히 손을 들 수 있겠는가? 하나같이 조폭 활동을 하다가 광명회에 들어온 자들이다.
나중에 의욕을 가지고 스스로 장로의 길을 선택한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의로운 마음을 가졌다고 해서 과거의 죄가 씻기는 것은 아니니까.
<< 그런데도 내가 너희를 벌하지 않고 그냥 두는 것은 너희들의 죄를 모두 용서했다는 뜻이 아니다. 속죄의 기회를 주고자 함이다.
나는 옥살이를 하거나 육체적 고통을 받는 것만 속죄의 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정의로운 일을 행하여 사람을 돕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속죄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아니한가? >>
“그렇습니다.”
회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 헌데 만약 그런 방식의 속죄를 거부한다면 나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바라는 방식은 아니지만, 다른 방식으로 죗값을 치르게 하는 수밖에.
그렇다고 너희를 경찰에 넘기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나만의 벌하는 방식이 있으니까.
전에 이미 한 번 보았겠지만, 오늘 다시 똑똑히 보아두어라. 자신의 책무를 회피하고 다시 사회의 악으로 되돌아가려는 자가 어찌 되는지를 말이다. >>
말을 마친 서유림이 김석균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김석균의 머리가 마치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 서유림의 손을 향해 돌진했다.
이번에 정령계에서 새롭게 익힌 다크핸드 마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