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광명회, 움직이다. (2)
장문석의 심장이 다시 한 번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거칠거칠하면서도 울림이 엄청난 목소리!
말로만 듣던 광명회의 회주가 분명했다.
“아닌데요!”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본능이었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 서유림이 장문석의 목을 움켜쥐고 번쩍 들었기 때문이다.
“······엑!”
장문석은 순식간에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 되었다. 가랑이 사이에서 그놈들도 함께 달랑거렸지만, 너무 두려워서 자신이 발가벗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잊었다.
하지만 서유림은 달랐다. 그놈이 눈앞에서 달랑거리는 게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
창고 구석에 잔뜩 웅크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베트남 아가씨의 모습 역시 보기 민망했다.
가만 보니 몇 놈이 캠코더를 들고 있었다. 그것만 봐도 지금이 어떤 분위기인지 대충 감이 왔다.
서유림이 장문석을 이불바닥 위로 집어던졌다.
장문석이 떨어지면서 쿵! 하는 충격음을 냈다. 충격이 생각보다 훨씬 컸다. 이불 위로 떨어졌는데 이렇게 충격이 크다니.
신음소리가 절로 새어나왔다.
“아이쿠!”
그제야 베트남 여성이 엄살로 비명 지르던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 옷을 입혀라. 이놈도. 저 여성도. >>
“예, 주군!”
장로들이 장문석과 여성에게 옷을 던져주었다.
장문석도 여성도 황급히 옷을 입었다. 늦게 입는 놈은 쳐 맞는다는 소리라도 들은 사람들처럼 서둘렀다.
서유림이 창고를 둘러보니 온갖 변태 성도구들이 가득했다. 보기만 해도 역겨울 정도였다.
서유림이 의자에 앉아서 천천히 기다렸다.
대신 장로가 서유림을 대신해서 잡일을 처리해줬다. 굳이 서유림이 시키지 않아도 아가씨는 친절하게 밖으로 안내해주었고, 장문석은 서유림 앞에 무릎 꿇게 만들었다.
캠코더를 들고 있던 놈들도 어느새 뒤통수를 얻어맞고 기절해 있었다.
이제 조용히 대화할 분위기가 갖추어졌군.
그런데 대화에 앞서서 정리하고 싶은 게 있다.
마침 옆에 적당한 놈이 있었다. 서유림이 가죽채찍을 집어 들고 장문석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적당한 세기로.
착! 착! 채찍 감기는 소리가 무척이나 차지게 들렸다.
“악! 윽! 끄윽! 살려주세요. 대체 왜······?”
대체 왜? 그걸 몰라서 물어? 넌 좀 더 맞아야겠다. 어차피 주둥이만 살려놓으면 되니까.
몇 번을 더 후려치자 비로소 제대로 말이 튀어나왔다.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그제야 서유림이 채찍질을 멈추었다.
<< 네가 뭘 잘못했지? >>
“그게······.”
장문석이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이유는 둘 중 하나겠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거나. 아니면 잘못한 게 너무 많아서 뭐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거나.
뭐가 되었건 좀 더 맞을 이유는 충분했다.
서유림이 다시 채찍으로 후려쳤다.
“제가 안 죽였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이놈이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오호! 누굴 죽인 모양이구나. 일단 무조건 패면 뭔가 나올 것 같다.
<< 그것뿐이라고? >>
채찍질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서유림은 이제 힘 조절의 달인이 되어있었다. 얼마만큼 힘을 줘야 죽이거나 기절시키지 않고 고통만 줄 수 있는지, 얼마만큼 힘을 줘야 뼈만 똑 부러뜨릴 수 있는지 정확히 알았다.
때문에 장문석은 벌써 100대를 넘게 맞고도 정신이 말짱한 채 계속 고통당해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 털어놓은 자백이 열 개도 넘었다.
그런데도 아직 서유림이 원하는 대답은 안 나왔다. 멀쩡한 베트남여성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한 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하여튼 맞아도 정신을 못 차리는 놈이 있다니까.
그런 놈 더 맞아야 한다.
서유림이 더 이야기해보라는 듯 채찍질을 계속했다.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흘렀다. 새하얀 옷들은 어느새 검붉게 물들었다.
지켜보는 장로들이 다 고개를 돌릴 지경이었다.
‘걱정할 것 없어. 절대 안 죽으니까.’
서유림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채찍을 휘둘렀다.
그런데 갑자기 관심을 돋우는 자백이 툭 튀어나왔다.
“혹시 황 대리를 죽여 달라는 의뢰 말씀이십니까? 그것은 하노이파에 넘겼습니다. 정말입니다.”
비로소 서유림이 채찍질을 멈추었다. 비록 원하던 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은 일이니까. 하노이파 이름이 튀어나왔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 이제야 이야기가 좀 통하겠군. 하노이파 핵심들이 어디에서 모이는지 말해라. >>
“그건 저도 잘······.”
<< 그럼 너는 둘 중 하나로군. 살기 싫은 놈이거나, 아니면 살려줄 이유가 없는 놈이거나. >>
서유림이 다시 채찍을 휘둘렀다.
겨우 두 대를 참지 못하고 장문석이 머리를 짜냈다.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알고 있습니다.”
<< 말해라. 한 번에 쭉. >>
“하노이파 핵심들 모두가 한꺼번에 모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다들 워낙에 점조직으로 운영이 되어서. 하지만 제법 서열이 높은 놈을 만날 방법은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하노이파 조직원 중에서 서열로 3위에 있는 놈이라고 했다. 이름이 응우옌인데 그놈이 자주 드나드는 술집이 있다고 했다. 본인이 직집 운영하는 술집이라고 했다.
사진도 있었다.
속 시원한 대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짙은 안개는 살짝 걷히는 듯했다.
<< 그건 그렇고 아직도 네가 왜 맞는지 모르겠나? 멀쩡한 여자를 상대로 강제로 저런 걸 촬영한 건 죄가 아니라는 거냐? >>
서유림이 비로소 장문석의 잘못을 깨우쳐주었다.
하지만 장문석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듯했다.
“아, 그건 오해이십니다. 그년은 제가 하노이파에서 돈 주고 사온 년입니다. 어차피 불법체류자에요. 그리고 이런 거 잘 찍어서 대박 한번 터뜨리면 저년도 스타 되고 좋죠.”
아 그래? 그런 거였구나. 진즉에 그렇게 말할 것이지.
서유림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는 장로 하나를 시켜서 캠코더로 장문석을 촬영하도록 했다.
장문석이 의아한 표정을 했다.
“갑자기 저는 왜······?”
<< 이제부터 너를 엽기적인 방법을 고문해볼까 한다. 그 영상이 화제가 되면 너도 스타 되고 좋잖아. 안 그래?
장로들이 재주껏 좋은 영상 만들어보도록.
단 죽이지는 말고. >>
“헉! 저······ 저는 그런 거에는 욕심이······ 아악!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아악! 거기만은 제발······ 아악! 꼬추는 안 돼!”
* * *
“저곳입니다.”
장문석이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서 유흥주점 하나를 가리켰다.
무서워서 떠는 것이 아니었다. 너무 심한 고문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서 그냥 있어도 손이 덜덜 떨렸다.
서유림이 주변 상황을 살폈다.
제법 큰 유흥주점이었다. 주변에는 베트남계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하노이파 조직원이 아닐까 싶었다.
<< 응우옌은 왜 아직도 안 나타나는 거지? >>
서유림이 장문석을 바라보았다. 복면으로 얼굴이 가려진 상태에서 그냥 가만히 고개만 돌린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겁에 질린 장문석은 지레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
“틀림없이 나올 겁니다. 아직 1분 남았습니다.”
반드시 나와야 한다. 만약 나오지 않으면 또다시 고문을 당해야 할 테니까.
그리고 틀림없이 나올 것이다. 장문석이 사주는 공짜 술을 마다할 응우옌이 아니니까.
순간 장문석이 눈을 크게 뜨며 다시 손가락을 뻗었다.
“저기 있습니다. 저자입니다.”
서유림이 그곳을 바라보았다.
차량 두 대가 멈춰 섰다. 여덟 명의 사람이 내려서 유흥주점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중 선두에 선 사람이 응우옌이었다. 사진에서 본 얼굴 그대로였다.
굳이 유흥주점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서유림이 흰색 마스크에 모자를 눌러쓰고는 승합차에서 내렸다. 장로들을 시키면 편하겠지만,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자칫 응우옌을 놓치기라도 하면 시간과 노력을 더 투자해야 할 테니까.
서유림이 응우옌 일당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응우옌이 곧바로 서유림을 발견하고는 멈칫했다.
조심성이 무척 많은 놈인 듯했다. 행색이 조금 의심스럽긴 하지만 겨우 한 사람에 불과한데 저렇게 긴장하다니.
그것도 모자라서 수하들을 향해 눈짓까지 보내면서 슬쩍 뒤로 물러섰다.
수하들이 그런 응우옌을 보호하듯 둘러쌌다.
그런다고 응우옌을 보호할 수 있을까?
거리를 좁힌 서유림이 순간적으로 몸을 날렸다. 마치 탱크처럼 몸으로 조직원들을 밀어붙인 것이다.
“······어? 윽!”
하노이파가 미처 대응할 틈도 없었다. 움직임이 워낙 빨라서 몸을 날리는 순간 벌써 몸을 부딪쳐왔다.
앞에 섰던 조직원들이 서유림과 부딪치면서 힘없이 튕겨져 나갔다. 마치 볼링핀 쓰러지듯 뒤에 선 놈들까지 함께 모조리 쓰러뜨리며.
승합차에서 지켜보던 장로들이 놀라움에 입을 떡 벌렸다.
“뭐지? 저 많은 조직원을 어떻게 한꺼번에······?”
“부딪치지 않은 놈들도 알아서 쓰러지네.”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그럴 수밖에. 서유림이 슬립다운 마법을 살짝 섞어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하지만 응우옌은 쓰러지지 않았다. 서유림이 몸을 밀침과 동시에 응우옌의 팔뚝을 잡아 쥐었기 때문이다.
“아악!”
응우옌이 고통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팔뚝이 부러지는 것 같은 아픔이었다.
하노이파 조직원들이 주춤주춤 일어서려고 했지만, 성공하는 놈은 한 명도 없었다. 일어서려고만 하면 서유림의 삼단봉이 가차 없이 폭격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불과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조직원들은 다들 끙끙거리며 쓰러졌고, 서유림은 체력이 쪽 빨려서 몸을 늘어뜨린 응우옌을 짐짝처럼 들고 승합차로 향했다.
대기하던 장로들이 얼른 문을 열고 응우옌을 잡아주었다.
서유림이 승합차 가장 뒷좌석에 앉아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 가자! >>
“예, 주군!”
승합차가 빠르게 골목을 벗어났다.
한바탕 소란스러웠던 골목은 하노이파 조직원들의 끙끙대는 소리만 가득했다.
* * *
“어디냐?”
“아아악!”
“어디냐?”
“끄으윽!”
똑같은 물음과 비명소리가 계속 반복되었다.
“아직도 안 불었어?”
“지독한 놈이네.”
“내가 교대해주지.”
“고마워.”
3장로가 새로운 고문 장비를 가지고 왔다. 이번에는 송곳이었다. 그것으로 응우옌의 온몸을 구석구석 찌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가장 아픈 곳으로만.
질문을 던지지도 않았다. 어차피 묻는 것은 알고 있을 테니까.
그냥 무턱대로 찌르기만 했다.
“아아악!”
서유림이 눈을 떴다. 상쾌한 아침이었다.
주변은 온통 숲이었다. 인천시 계양산의 숲속에서 노숙한 것이다. 모텔에서 자는 것 못지않게 편안한 잠자리였다.
먼저 대포폰을 열어서 대장로에게 문자부터 보냈다. 그러자 대장로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위치를 털어놓았습니다.]
서유림이 피식 웃었다. 겨우 하루를 못 넘기다니.
베트남 사람이 지독하다고 들었는데, 생각만큼은 아닌 듯했다. 아니면 장로들의 실력이 뛰어나거나.
“그럼 가볼까?”
서유림이 계양산 기슭에 있는 전원주택으로 향했다. 지금은 대장로가 된 김석균이 석균이파 보스로 있을 때 조직원 아지트로 사용했던 곳이다.
외따로 떨어진 곳이라서 이런 일을 처리하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대장로가 응우옌을 고문해서 알아낸 정보들을 늘어놓았다.
“돈과 마약을 숨겨놓은 곳은 여기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핵심으로 꼽을 수 있는 조직원들의 이름과 주소, 연락처, 자주 가는 술집입니다.”
서유림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 찌엣과 구엔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나? >>
“연락 왔습니다. 이름을 대니 아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사진과 위치를 확보하는 대로 보내올 겁니다.”
그 정도면 훌륭했다.
<< 준비가 끝나는 대로 휴대폰으로 보고하도록. >>
“예, 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