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141화 (141/196)

# 141

욕망의 계약자 (1)

서유림이 눈을 떴다.

‘아, 개운하군!’

정령계의 문제가 일단락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창문으로는 벌써 아침이 느껴졌다. 한여름이다 보니 이렇게 이른 시간인데도 밖이 환했다.

그러고 보니 푹푹 찌는 날씨였다. 물론 서유림이야 정령의 도움으로 날씨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지만.

서유림은 먼저 일정표부터 확인했다.

‘오늘은 조금 바쁘군.’

아침을 먹자마자 나가서 새벽에나 일이 마무리될 것 같았다.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래도 해야만 한다. 그게 서유림에게 주어진 역할이니까.

아침운동을 마치고 가족과 함께 식사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밖에서 자고 내일 들어올게요.”

“알겠다. 그런데 요즘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쁘냐? 심심하면 날밤을 새고 들어오고? 만나는 아가씨라도 생긴 거냐?”

서유림이 대답 대신 가볍게 웃어주었다.

“그런 일이 있습니다. 그럼 저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서유림이 밖으로 나갔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임채모 선생님께서 가장 고생하셨죠.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요. 다들 조심히 들어가세요.”

임채모가 촬영팀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는 승합차에 올랐다. 승합차에는 운전기사와 임채모 둘뿐이었다. 운전기사는 마스크에 모자를 써서 얼굴이 가려진 상태였다.

승합차가 천천히 출발했다.

그러자 오토바이 한 대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승합차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자정을 훌쩍 넘어서 새벽 2시가 되었다.

그런데도 피곤한 줄을 몰랐다. 오히려 에너지가 넘쳤다. 다음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있다고 해도 얼마든지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 일정은 여기까지였다.

승합차가 천천히 출발했다.

임채모는 차량 안에서도 쉬지 않았다.

“으쌰! 으쌰!”

10kg짜리 아령을 각각 한 손에 들고는 계속해서 운동했다. 승합차 실내가 제법 넓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안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는 이런 것뿐이었다.

그래도 부지런히 해야 한다. 그렇게라도 강해져야만 한다. 놈들이 언제 다시 공격해올지 모르니까.

승합차는 어느새 도심을 벗어나서 양주시로 향했다. 두리랜드 입구에 있는 임채모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집 입구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 승합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한참 운동하던 임채모의 몸이 급격히 앞으로 쏠릴 정도의 급정거였다.

“무슨 일이오?”

“이상한 놈들이······.”

운전기사가 손가락을 뻗어서 앞을 가리켰다.

승용차 두 대가 왕복 2차선 도로 양쪽을 완전히 막아서고 있었다. 게다가 차량 안에서 무려 여섯 명이나 되는 사내들이 승용차에서 내려서 승합차로 뛰어들고 있었다.

하나같이 복면을 쓴 자들이었다.

임채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얼마 전에 있었던 악몽 같은 일이 떠올랐다.

‘그놈이 동료들을 데리고 왔구나!’

다섯 명이 한 놈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동료는 운전기사와 자신 겨우 둘뿐이었다. 여섯 명이나 되는 자들을 상대로 무사할 수 있을까?

승합차 문은 완전히 잠겨있었다.

하지만 저들의 힘이라면 유리창을 깨부수고 금방 들어올 수 있겠지.

‘아무래도 난 오래 살 팔자가 못 되는 모양이군.’

그다지 미련은 없다. 어차피 덤으로 사는 인생이니까.

그래도 힘이 닿는 데까지는 반항할 것이다.

임채모가 아령을 힘껏 움켜쥐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는 사이 여섯 명의 복면인들이 승합차에 달라붙었다. 예상대로 유리창부터 깨뜨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뒤따라오던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달려오더니 그대로 복면인들을 들이받았다.

그와 동시에 운전자가 뛰어내리며 복면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임채모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혼자서 쇠파이프를 들고 싸우는데 여섯 명의 복면인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실력이었다.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다더니 오토바이 운전자는 나는 자조차 가볍게 짓밟을 실력자였다.

복면인들도 처음에는 대항하려 해보았지만, 능력의 차이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벌써 능력의 부족을 느끼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여의치 않았다. 운전자가 쇠파이프를 휘둘러서 복면인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있었다.

마치 토끼를 사냥하는 호랑이 같았다.

‘저자가 광명회주로구나!’

서유림으로부터 귀띔은 들었다. 광명회주가 직접 임채모 주변을 맴돌 거라고. 그러니 수상한 오토바이 한 대가 뒤따르더라도 놀라거나 의식하지 말라고 말이다.

‘역시······ 광명회주는 대단한 존재로구나.’

상황은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여섯 명 중 한 명은 결국 놓쳐서 산속으로 도망쳤지만, 나머지 다섯 명은 모두 광명회주에게 붙잡혔다.

광명회주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갓길에서 몸을 늘어뜨린 채 쓰러져 있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광명회주는 어느새 오토바이를 타고 모습을 감추었다.

아마 멀지않은 곳에서 계속 임채모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우리도 빨리 이곳을 벗어납시다.”

“예.”

운전기사가 승합차를 반대방향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산속에 숨어있던 마령의 계약자가 멀어져가는 승합차를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씨발 뭐야? 왜 저렇게 강해? 이건 얘기가 다르잖아.”

> 믿을 수 없다. 여섯 명이 하나를 당해내지 못하다니. 혹시 정령왕의 계약자라도 되는 건가?

“정령왕? 씨발, 무시무시하네. 이제 어떻게 해? 동료들도 하나도 안 남았는데.”

> 걱정할 것 없다. 마계의 마왕님께 연락을 넣으면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실 것이다.

마령이 마계와의 소통을 위해서 마력을 뿜어냈다.

사내도 함께 눈을 감았다. 마령이 집중하면 자신도 덩달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마령이 마계와 나누는 소통의 내용은 전혀 알 수 없지만.

> 히로마왕님. 동료 모두가 한 사람에게 당했습니다. 정령왕의 계약자인가 싶을 정도로 강한 자였습니다.

>> 인간계에 그토록 강한 자가 있었던 말인가?

> 여섯 명이 아니라 열 명이 한꺼번에 공격했다고 해도 당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일반 마령의 힘으로는 당해내기 힘들 정도로 강한 자입니다.

>> 그렇다면 내가 직접 가야 하겠군.

* * *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의사가 진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노인은 만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사를 협박이라도 하듯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았다. 나이가 80세를 너머서 90세에 가까운데도 눈빛이 무척이나 매섭게 느껴졌다.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오. 무조건 건강하게 살려내시오. 목숨을 걸고. 알겠소?”

목숨을 걸고.

그 말이 너무도 무서웠다.

이 노인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정계와 재계에 걸친 힘이 워낙에 막강한 사람이니까.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고 오금이 저려왔다. 도저히 회생 불가능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권 박사는 할 수 있소. 이쪽 분야에서는 우리 대한민국을 너머서 세계 최고의 권위자 아니오? 건강하게 살려만 내시오. 설마하니 내가 그 보답을 섭섭하게 하겠소?”

“예, 어르신.”

“그만 병실로 가보자. 혁진이가 보고 싶구나.”

의사와의 면담(?)을 마친 노인이 병실로 향했다.

권혁진은 여전히 혼수상태였다. 노인에게는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그것도 온간 노력 끝에 느지막이 얻어낸 늦둥이 3대독자였다.

노인은 미칠 것만 같았다.

부와 권력으로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자신인데,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에게도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신인데, 아들의 건강 앞에서는 이토록 무력하다니.

‘세상에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떠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이더냐? 힘을 내거라, 이 녀석아!’

노인이 권혁진의 손을 힘껏 잡아주었다.

하지만 눈을 감고 있는 권혁진은 묵묵부답이었다.

노인은 그렇게 한참을 더 있다가 병실을 나섰다. 다른 가족들도 저녁이 되자 하나둘 집으로 들어갔다.

권혁진의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토록 슬픈 표정을 하던 그녀였지만, 모둔 가족이 병실을 나가자 어느새 표정이 흥분으로 바뀌었다.

“나도 그만 가볼 테니까 잘 부탁해요.”

“예, 사모님.”

무려 세 명이나 되는 간호사와 간병인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권혁진의 아내도 그렇게 병실을 떠났다.

병실은 어느새 정적이 찾아왔다. 권혁진의 맥박과 호흡을 체크하는 전자음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려올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권혁진의 몸이 갑자기 살짝 떨려왔다. 완전한 무의식 상태에서 갑자기 의식이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무시무시한 힘이 느껴졌다.

‘누······ 누구냐?’

>>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신 분이다. 선택하라. 나와 계약하여 건강을 회복하고 절대적인 힘을 갖겠느냐? 아니면 이대로 죽겠느냐?

‘건강을······ 되찾는다고?’

>> 그렇다. 나와 계약하는 순간 네 몸은 그 누구보다도 강인하게 탈바꿈할 것이다. 계약하겠느냐?

거짓말 같지가 않았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둠의 힘이었다. 그리고 사악한 힘이었다.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힘을 느끼는 순간 온갖 타락한 욕망이 들끓었다.

하지만 권혁진은 망설이지 않았다.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선하게 살아온 것도 아니고.

‘계······ 계약하겠다.’

다음날 아침.

노인이 급히 병원을 찾았다. 병실 문을 열자마자 석상처럼 몸을 굳혔다. 곧 죽을 것만 같았던 권혁진이 일어나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맛나게.

의사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권혁진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아버님 오셨어요?”

“혁진아!”

노인이 얼른 다가가서 권혁진의 손을 잡았다.

“괜찮은 것이냐?”

“아주 좋습니다. 이제 다 나은 것 같습니다.”

정말로 괜찮아보였다. 무엇보다도 눈빛과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오히려 젊은 시절보다 더욱 건강해보였다. 어려서부터 병약한 몸 때문에 늘 걱정이었는데, 지금은 활력이 넘쳐보였다.

오히려 그 점이 더 걱정스러울 정도로.

원래 사람이 죽기 직전에는 화광반조라고 해서 아주 잠깐 동안 놀라울 정도의 기력을 보여준다고 하지 않던가?

노인이 의사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거요?”

의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자신도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건강이 좋아졌다. 단순히 반짝하는 게 아니라 모든 수치가 정상인의 것으로 빠르게 돌아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기적’을 믿지 않았지만, 이번 일은 분명한 기적이었다.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몇 가지 검사를 진행해봐야 알겠지만, 건강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회복하고 있습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내 섭섭잖게 보답하리다.”

그러자 권혁진이 발끈하며 의사를 노려보았다.

“보답은 무슨. 의사가 한 게 뭐가 있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런 게 있습니다. 어쨌건 의사 도움 받아서 나은 것 아닙니다. 그냥 병원비나 조금 쥐어주면 돼요. 그리고 검사는 개뿔이. 제 몸은 제가 더 잘 압니다. 오늘 퇴원하겠습니다, 아버지.”

“혁진아!”

“절 믿으셔도 됩니다. 그래 안 그래, 의사양반?”

권혁진이 의사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의사가 찔끔했다. 기분 나쁜 말이기는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마, 맞습니다. 하지만 검사는······.”

“시끄러. 빨리 퇴원 준비나 해!”

권혁진이 의사를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는 슬리퍼를 신고 휘적휘적 병실을 나섰다. 걸음걸이에서도 힘이 느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죽어가던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아직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의사가 다시 만류했다.

노인도 그 말에는 공감이었다.

“혁진아. 검사가 끝날 때까지 며칠만 참아라. 뭘 하고 있는 건가? 어서 혁진이를 막지 않고?”

“예, 회장님.”

탄탄한 몸을 가진 경호원들이 재빨리 권혁진의 앞을 막아섰다. 둘은 권혁진의 옆에 달라붙어서 팔짱도 끼었다.

하지만 어림없는 짓이었다.

“이거 안 놔? 감히 누구 몸에 손을 대는 거야?”

권혁진이 거칠게 손을 뿌리쳤다. 그와 동시에 경호원들이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엄청난 완력이었다.

노인은 그런 권혁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저게 정말······ 우리 혁진이란 말인가?’

그러는 사이 권혁진은 병원 밖으로 나갔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탁한 매연이 폐부를 깊이 찔렀다.

하지만 상쾌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냄새가 아니던가?

‘임채모라고 했던가? 그놈만 잡으면 정령왕의 계약자도 잡을 수 있다 그거지?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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