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138화 (138/196)

# 138

성물 먹으러 갑시다 (1)

서유림은 정령계로 들어오자마자 정령들부터 소환했다.

그런데 서환된 정령의 수가 무척 많았다. 무려 열다섯 마리나 되었다.

아리아나가 그 광경을 보고는 활짝 웃으며 반색했다. 서유림이 소환할 수 있는 정령의 수는 최대가 열 마리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 소환했다는 것은 하나의 이유밖에 없었다.

“어머, 마령의 힘을 흡수한 건가요?”

서유림이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려 다섯 놈이나 되더군. 한꺼번에 일망타진했지. 더는 없을 거야.”

그런데 아리아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요. 유림씨가 사냥한 마령은 아마 첨병 정도에 불과할 거예요. 인간계에 정령의 계약자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보낸 놈들이겠죠.”

“그럼 또 보낼 거라는 이야기야?”

“당연하죠. 정령의 계약자가 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더욱 많은 마령을 보내겠죠. 어쩌면 마왕이 직접 올 수도 있고요.”

서유림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그럼 내가 마령을 잡지 말았어야 했네. 그놈들을 잡는 바람에 마계의 존재를 인간계로 더욱 많이 불러들인 꼴이 됐잖아.”

“꼭 그렇게 생각할 건 아니에요.”

마계의 존재는 분노나 증오와 같은 타락한 기운을 바탕으로 성장한다.

때문에 정령의 존재가 없다고 해도 일단 인간계로 들어온 마령들은 세력 확장을 위해서 인간계를 들쑤시고 다닐 것이다. 그렇게 모인 힘이 마계를 유지하는 근원이니까.

따뜻한 마음이 정령계를 유지하는 근원이듯이 말이다.

“그러니 자책할 것까지는 없어요. 그리고 마신의 능력이 제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다른 세계에 파견할 수 있는 힘에는 한계가 있어요.”

“대충 얼마나······ 보낼 수 있을까?”

“글쎄요. 저도 확신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많은 수는 아니에요. 다른 세계에 너무 많은 힘을 보내면 마신의 힘이 그만큼 약해져서 정령계를 제대로 지배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찜찜한 마음이 지워지지는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마령을 신경 써야 하다니.

“어쨌건 마령을 흡수한 건 축하드려요. 귀화정령, 그러니까 본바탕이 마령이었다가 귀화한 정령은 일반 하위정령보다 능력이 훨씬 강해요. 잘 활용하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래? 그것까지는 몰랐네.

그런데 이런 정령을 귀화정령이라고 부르는구나.

“귀화정령도 계약자를 찾아서 계약시킬 수 있지?”

“물론이죠. 일반 정령의 능력은 모두 갖추고 있어요. 교감도도 일반 정령보다 훨씬 높을걸요.”

“그래? 확인해볼까?”

서유림이 망막의 정령 관련 정보를 검색해보았다.

[1 : 최하급정령 1레벨, 교감 50%, 귀화정령]

워리 : 중급정령 174레벨, 교감 5%

블루 : 중급정령 107레벨, 교감 5%

그린 : 중급정령 102레벨, 교감 5%

레드 : 하급정령 79레벨, 교감 5%

······.

귀화정령이 휘파람을 제치고 메인 자리에 올라와있었다. 아리아나의 말대로 교감도도 무려 50%나 되었다.

그런데 이름을 빨리 지어줘야겠다. 그냥 ‘1’, ‘2’, ‘3’······ 하는 식으로 표시되어있다.

속성도 땅, 물, 바람, 불, 빛 하는 식으로 골고루 있었다.

‘각각 바우, 시내, 회리, 노을, 새벽으로 하자. 아, 이름 짓기도 힘드네.’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는 건 더 힘들 것 같다. 정령 아리안 덕분에 기억력이 좋아지지 않았다면 정령의 몸에 이름이라도 새겨야 했을 것이다.

“그럼 한 바퀴 둘러볼까?”

“그래요.”

아리아나와 함께 방을 나섰다.

정령계는 인간계 못지않게 바쁘고 긴장감 넘쳤다.

마족 군단은 그 수가 전혀 줄지 않았다. 서유림을 비롯한 특공대가 틈틈이 기습을 펼쳐서 수를 줄이는데도 새로운 마족군단이 계속 추가되어서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수가 느는 듯했다.

반면 리니스 성안의 요정은 그 수가 자꾸만 줄었다. 처음 서유림이 들어올 때만 해도 10만 명이 훨씬 넘었는데, 지금은 9만 명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다.

남문에 도착 서유림이 눈을 크게 떴다.

“오! 드디어!”

안쪽의 보조성벽이 완벽하게 완성되었다. 높이가 비록 10m정도로 낮은 편이지만, 스톤풋 외에는 어떤 마물도 이 성벽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보조성문도 완성되었다.

한마디로 지금 당장 작전을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요정들이 계속 작업에 몰두하는 것은 보조성벽의 높이를 1cm라도 더 높이기 위한 보강작업이 목적이었다.

다른 성문도 가보았다. 리니스성에는 동서남북으로 총 4개의 성문이 있는데, 그 성문마다 같은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동문과 서문, 북문도 작업이 거의 막바지였다. 사나흘 후면 모두가 완성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군! 이번에는 특공대 훈련장으로 가볼까?”

“예.”

아리아나와 함께 성 중앙의 공터로 향했다.

공터 앞 높은 단에서 성주가 훈련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서유림과 아리아나가 다가오자 공손한 자세로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었다.

공터에서는 1천여 명의 요정 특공대가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리니스 성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여전사들이었다.

훈련이라고 해서 창술이나 검술의 연마가 아니었다.

오직 전술 훈련만 했다. 즉, 성벽에서 깃발을 휘두르면 그 깃발을 보고 부대별로 움직이는 것이다.

서유림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역시 조직력이 대단했다. 겨우 보름 정도 훈련했는데 일사불란함이 마치 한 몸이 움직이는 듯했다.

“이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작전을 펼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서유림의 말에 성주가 활짝 웃으며 반색했다.

“그럼 언제 시작할까요?”

“오늘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공사를 멈추고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대기하라고 해주십시오. 저는 특공대와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저도 유림씨와 함께 움직일게요.”

아리아나가 나섰다.

서유림과 성주가 함께 나서서 만류했다.

“그건 안 돼. 이게 다 아리아나를 지키자고 하는 건데.”

“아뇨. 제가 꼭 함께 나서야만 해요.”

아리아나가 고집을 부렸다.

하여튼 저놈의 고집은······.

“왜? 날 설득해봐.”

서유림이 웬만해서는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고지식한 눈빛으로 아리아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리아나 역시 흔들림이 없었다.

“잊으셨어요? 저는 정령신의 후보에요. 제가 잠재력을 모두 동원해서 축복마법을 사용하면 동료들의 능력을 크게 올릴 수 있어요.”

서유림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런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경험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 능력이 있었어? 그런데 왜 아직까지 한 번도 사용을 안 했어?”

“축복마법은 제어가 불가능한 마법이에요. 한번 폭발시키면 모든 기력을 다 쏟아낼 때까지 멈출 수 없어요. 그러면 최소 이삼일은 회복시간을 가져야 움직일 수 있어요. 그동안은 완전히 무방비상태로 놓이게 되죠.”

한마디로 확실한 안전이 보장되거나 최후의 순간에만 사용하는 궁극의 기술이다 그거로군. 그리고 지금은 리니스 성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고.

리니스 성을 들어올 때도 그래서 사용을 못했던 모양이다. 리니스 성의 안전을 확신하지 못해서.

“그리고 정령신의 후보가 나가면 마족 군단의 반응도 달라질 거예요. 위험을 감수하고도 악착같이 달려들겠죠. 어쩌면 마신의 성물을 들고 성 안까지 쫓아올지도 몰라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리아나의 의견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아리아나야말로 꼭 참여해야 할 존재였다.

대신 아리아나의 안전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겠지.

그 전에 축복마법에 대해서 조금 알아봐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유용하게 활용할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

“축복마법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뭐야?”

“모든 능력을 강화시켜줘요. 육체능력도, 마법능력도, 방어력도 모두.”

간단하네. 하지만 엄청난 능력이다.

“얼마나 강화시켜주는데. 지속시간은 얼마나 되고. 또 얼마나 멀리까지 효력을 미칠 수 있지?”

서유림이 꼬치꼬치 캐물었다. 마치 청문회 하는 것처럼.

강화 정도와 지속시간은 제로썸 관계였다. 즉 강화를 약하게 하면 시간을 최대 4시간 정도까지 지속시킬 수 있고, 반대로 그 능력을 10분 정도로 압축해서 폭발시키듯 강화시킬 수도 있다.

물론 조절이 가능하다. 적정하게 강화시키다가 어느 순간에만 폭발적으로 강화시키는 식으로 말이다. 한마디로 잠재력의 분배가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효력이 미치는 범위는 최대 30m 가량이라고 했다.

서유림이 아리라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저런 상황을 꼼꼼하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리아나의 안전이었다. 교전 도중에 아리아나가 기력을 잃고 쓰러질 수도 있으니 그 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일단 가마부터 만들죠.”

“가마?”

“어렵지 않아요. 금방 만들 수 있어요.”

서유림이 기본적인 설계도를 그려주었다. 모양 따위는 필요 없고 기능만 갖추면 될 일이었다.

요정 몇 명이 달라붙어서 뚝딱뚝딱 하니 금방 만들어졌다.

아리아나가 누울 수도 있을 정도의 규모였다. 총 여덟 명의 요정이 가마꾼이 될 것이다.

아리아나도 크게 만족해했다.

“이렇게 앉아서 축복마법을 쓰면 훨씬 집중이 잘 될 것 같아요.”

“완벽하군. 그럼 이제 놈들을 쪼개러 가볼까? 이왕이면 마신의 성물을 손에 넣을 수 있으면 좋겠군.”

1천 명의 특공대가 남문에 집결했다.

선두에는 서유림과 정령왕 아리안이 섰다.

바로 뒤에는 최정예라 불리는 가디언들이, 그 뒤로는 4색 깃발을 든 기수대가, 그리고 마법에 특화된 요정 군단이 그 뒤에 섰다.

아리아나는 약 20m쯤 뒤에서 쫓아올 것이다. 그러면 아리아나의 안전도 확보하고 축복마법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문 열어!”

서유림이 외치자 남문이 좌우로 입을 쩍 벌렸다. 양쪽 넓이가 10m는 될 정도로 거대한 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서유림과 아리안을 선두로 한 요정 특공대가 송곳처럼 마족 군단을 찔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방향은 마신의 성물이 있는 곳이었다.

마족 군단은 네 개 성문 주변에 잔뜩 몰려있었다. 다들 휴식을 취하듯 어슬렁거리다가 요정 군단이 갑자기 튀어나오자 허둥대듯 부산을 떨었다.

뿌우우-

마족 군단을 지휘하는 뿔피리소리였다.

뿔피리 소리가 들리자 성문 주변에 흩어져있던 마족 군단이 구름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와! 정말 어마어마한 군세였다. 어림잡아 5만 쯤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니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만약 높은 곳에서 군세를 확인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100만이라고 해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축복!”

서유림의 외침과 동시에 붉은 깃발들이 45도 각도로 누웠다. 서유림의 명령을 기수가 아리아나에게 전달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온몸을 감도는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힘이 넘실대는 느낌이었다.

마족 군단과 조우한 것은 그 순간이었다.

서유림와 아리안이 이를 악물고 무기를 휘둘렀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마족 군단을 죽이느냐가 아니었다. 마족 군단을 얼마나 잘 속이느냐 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무리하게 앞으로 뛰어들지는 않았다. 마치 마족 군단에 막혀서 더는 전진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 자리를 유지하며 계속 무기만 휘둘렀다.

특공대 요정들도 분발했다. 다들 아리아나의 축복마법에 힘입어 마족 군단을 맹렬하게 쓰러뜨렸다.

확실히 요정 군단의 우위였다. 요정은 쓰러지는 자가 거의 없었고, 대신 마족 군단이 달려드는 족족 쓰러졌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쪽은 아직 마족이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다. 오직 마귀와 마물들만 달려들고 있었다. 게다가 마신의 성물도 200m 이상 떨어진 곳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한마디로 마족 군단의 껍데기와 싸우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마귀건 마물이건 모두 마족 군단의 일원이니까. 이런 식으로 세를 줄이면 결국 이쪽 이득이다.

‘움직여라. 어서 움직여라.’

서유림이 주문을 외며 카리스의 정령검을 휘둘렀다.

그때 리니스 성에서 뿔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뿌우우우-

마족의 것과는 조금 다른 음색의 뿔피리소리였다.

마족 본진이 드디어 움직인다는 의미였다. 이쪽에서는 멀리 있는 마족 본진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성에서 지켜보다가 뿔피리로 알려주도록 했다.

서유림은 조금 더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에도 마족 군단은 계속해서 학살당했다. 요정 군단도 이따금 희생자가 나왔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때 다시 리니스 성의 뿔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뿌우우우-

마족의 본진이 10m 가까이까지 접근했다는 뜻이었다.

“아리안, 준비해! 본진이 온다!”

“예.”

아리안이 대답함과 동시에 전방에 있던 마족 군단이 좌우로 쫙 갈라지며 길을 열렸다. 마치 순간적으로 기적의 길이 열리는 듯했다.

그 길을 따라서 마족의 본진이 빠르게 돌진했다. 온몸이 붉은 색으로 빛나고 키도 하나같이 2m가 훌쩍 넘는 거구들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게다가 마족은 무기로 상대해서는 안 된다. 회복력이 워낙 빨라서 베고 또 베어도 금방 치유될 테니까.

카리스의 정령검이라면 냉기 효과 때문에 조금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겠지만, 그래도 물리력으로 상대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래서 지금껏 마법 군단을 아껴두었던 것이다.

서유림이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전방에 마법!”

청색 깃발이 앞쪽으로 45도 누웠다.

그러자 뒤쪽에 포진하고 있던 요정들이 전방을 향해 각종 마법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쩌저적- 번개가 내리치고, 화르륵! 불길이 타올랐다.

슈아악- 돌풍이 불며 마족의 시야를 가렸고, 꾸구궁! 땅이 꺼지며 마족의 발목을 잡았다.

마족이 제법 높은 항마력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집중포화 같은 마법까지 버틸 재간은 없었다.

다들 고통스러워하며 쓰러졌고, 일부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마귀와 마물은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마족 본진도 추가적으로 병사를 보냈다.

뿌우우우-

리니스 성의 긴 뿔피리 소리가 그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다시 마족 본진의 모습이 보였다.

그럴 때마다 서유림도 소리쳤다.

“전방에 마법!”

마법 요정의 수만 무려 200명이나 되었다. 한 번에 20명씩 10회나 쏠 수 있다.

서유림은 마족 본진이 달려들 때마다 같은 식으로 요리했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까?

리니스 성에서 둥. 둥. 둥. 하는 북소리를 울리기 시작했다.

서유림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아리안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마신의 성물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일까? 마족 본진의 공격이 더욱 거세졌다. 처음에는 기껏해야 열 명 내외가 공격했는데 지금은 수백 명의 마족 본진이 한꺼번에 달려들고 있었다.

더 오래 버티다가는 희생이 너무 클 것이다.

지금이 기다리던 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축복 강화!”

붉은 색 깃발들이 일제히 완전히 쓰러졌다.

그러자 따스하게 감돌던 기운이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전체 느리게 후퇴!”

“전방에 마법!”

서유림이 빠르게 소리쳤다. 그럴 때마다 흰색 깃발이 뒤로 45도 기울어지고, 청색 깃발은 연신 앞으로 휘둘러졌다.

요정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했다. 서유림이 명령하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대로 지켜졌다.

그렇게 본진의 일부가 성문 안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마족 군단이 미친 듯이 뒤쫓았다.

“마법을 거의 다 썼어요.”

그렇다면 마족 본진의 공격이 거세질 것이다. 제아무리 강화된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전력으로 후퇴!”

흰색 깃발이 완전히 쓰러졌다.

그러자 요정 군단이 전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서유림과 아리안도 연신 뒤로 달리며 몰려드는 마족 군단을 베어 넘겼다. 쩌저적! 화르륵! 하며 마법이 마지막 기세를 올렸다.

그렇게 서유림과 아리안도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마족 군단이 성문 너머로 그대로 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성문을 닫을 수 없었다.

요정 군단은 다들 보조성문 안으로 사라졌다. 서유림도 이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으로 뛰었다.

아리안 혼자 남아서 열심히 정령검을 휘둘렀다.

활짝 열린 남문 성으로 마족 군단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들어오는 족족 쓰러져야 했다. 보조성벽 위와 그 뒤에 잔뜩 포진한 2만여 명의 요정들도 일제히 활을 쏘았기 때문이다.

화르륵!

쩌저적!

꾸궁!

슈슈슈-

보조성벽 안쪽은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다. 벌써 1만이 넘는 마귀와 마물이 들어왔는데, 멀쩡히 서있는 놈은 거의 없었다.

서유림은 보조성벽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아리아나의 상태를 살필 틈도 없이 재빨리 성문 위로 올라갔다.

“마신의 성물은 어디 있죠?”

“저기 있습니다.”

요정의 손끝을 따라가 보니 마신의 성물이 보였다. 제법 큰 탑으로 만들어져있는데 암흑오거로 보이는 마물들이 들것으로 떠받든 채 성문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는 3천여 명의 마족 본진이 무리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나머지 2천여 마족은 곳곳에 흩어져서 마족 군단을 지휘하고 있겠지.

마신의 성물은 성문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그래 조금만 더.’

서유림이 주먹을 움켜쥔 채 마지막 타이밍을 기다렸다.

먼저 마족 본진이 성문 안쪽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1천여 명의 마족 본진이 들어왔다. 이어서 마신의 성물도 기어이 성문을 통과했다.

서유림의 손을 번쩍 들었다가 힘차게 내렸다.

“지금이다! 성문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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