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일타오피 (1)
“이야압!”
복면인이 다짜고짜 임채모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임채모는 준비되어있었다. 서유림이 이른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와서 경고해주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시일 안에 괴한의 습격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물론 임채모는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신에게 원한을 품을만한 적을 만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도 찝찝한 마음에 계속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괴한이 습격해오다니.
임채모가 재빨리 몸을 옆으로 피했다. 60세가 훨씬 넘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몸놀림이었다.
아니, 이 정도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복면인이 그 움직임을 보고는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며 웃음소리를 흘렸다.
“후훗, 잡았구나!”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소. 사람을 잘못 본 것이오.”
임채모가 설득해보려 했지만 복면인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단숨에 임채모를 죽여 버리겠다는 듯 주먹을 휘둘렀다.
무시무시한 힘과 스피드가 실린 주먹이었다.
하지만 임채모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이쪽도 숨겨둔 수가 있으니까.
그때 옆에서 갑자기 낯선 이들이 복면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무려 네 명이나 되었는데 그들 역시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헉!”
복면인이 헛바람을 삼켰다. 임채모는 물론이고 나머지 네 명도 하나같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손에는 쇠파이프 하나씩을 들고 있었다.
비로소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복면인은 당황하지 않았다. 막상 부딪쳐보니 그렇게까지 대단한 능력은 아니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막고 피하면서도 이따금 역공까지 펼칠 수 있었다.
임채모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뭐가 이렇게 강해? 인간이 아니다!’
복면인은 육체능력이 압도적일 정도로 강했다. 게다가 움직임도 체계적이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쇠파이프 등을 막고 피해내는데, 운동을 깊이 배운 사람의 움직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무려 5:1의 싸움이다 보니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형국도 아니었다. 그저 치열한 공방전 수준이랄까?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상처만 쌓여갔다. 다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고, 움직임도 현격히 느려졌다.
결국 임채모를 공격했던 복면인이 먼저 자리를 피했다.
임채모 일행도 복면인을 뒤쫓지는 못했다. 뒤쫓는다고 해서 잡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다들 정말 감사합니다.”
임채모가 마스크 쓴 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마스크 쓴 자들은 할 일을 마쳤다는 듯 고개만 살짝 숙이고는 이내 자리를 떠냈다.
임채모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도대체 누가 왜 자신을 공격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자는 어떻게 그토록 강한 능력을 지녔단 말인가?
더욱 이상한 것은 자신의 몸이었다.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흘렀는데, 그런 상처들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통증은 벌써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임채모뿐만이 아니었다. 마스크를 쓴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까 보니 두 명은 제법 큰 상처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피가 전혀 흐르지 않았다.
신기한 현상이었다.
‘유림씨는 그 이유를 알고 있을까?’
* * *
권이슬이 집으로 들어왔다. 나이가 31살이었지만, 아직 미혼이었다. 때문에 24평이나 되는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권이슬은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옷에도 피가 가득했다.
하지만 상처는 전혀 없었다. 겨우 1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상처는 모두 깔끔하게 아물어 있었다.
하지만 권이슬의 얼굴은 일그러져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초능력을 가진 인간이 무려 다섯 명이나 되잖아.”
> 나도 깜짝 놀랐다. 인간계에 정령의 계약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무려 다섯 명이나 되다니.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마계에 연락을 보내면 동료들을 보내올 것이다.
“그래? 그럼 빨리 불러와. 내 집으로 오라고 하면 된다.”
> 알겠다. 지금 지원군을 요청해보지.
권이슬이 잠시 눈을 감았다.
마령이 마계의 존재와 소통하기 위해 집중하자 권이슬도 함께 집중이 되었다. 하지만 권이슬은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소통은 생각보다 길었다. 무려 5분이나 지속되었다.
> 되었다. 마계에서 지금 당장 마령 군단을 파견해준다고 했다.
“몇 명이나 되는데?”
> 넷이라고 했다.
군단이라고 해서 엄청나게 많은 숫자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적었다.
그래도 도합 다섯 명이면 충분할 것이다. 혼자서도 다섯 명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았으니까.
“곧장 이곳으로 오는 거지? 모여서 함께 가야만 해. 한 명씩 가서는 소용이 없어.”
> 마령들이 계약자를 찾자마자 이곳으로 몰려들 것이다.
“그럼 됐군. 아, 이건 확실하게 해두자고. 내가 가장 먼저 발견했으니까 정령들 중에서 최소한 두 명은 내가 가져야 해.”
> 그건 약속하겠다.
비로소 권이슬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지어졌다.
“정령의 힘까지 먹고 나면 두세 배는 더 강해질 수 있겠군. 후훗. 그런데 마령의 계약자들은 언제쯤 도착하려나?”
마령끼리는 소통이 안 된다고 했다. 상위존재인 마족이나 마왕이 매개체가 되어서 의사를 전달해주어야만 가능했다.
그러니 마령의 계약자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시각.
네 줄기의 어두운 기운이 서울시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럴 때마다 주변에 싸늘한 한기를 뿜어냈다.
슈슈슈-
마계에서 파견된 마령들이었다. 계약자를 찾기 위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계약자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들 마령을 만나자마자 그 차갑고 어둡고 음습한 기운에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치 악마의 기운 같았다.
> 그대에게 상상을 초월할 힘을 주겠다. 나와 계약하겠는가?
“시······ 싫어요. 살려주세요.”
> 나약한 놈이로군.
그렇다고 계약을 강요할 수도 없는 일.
그렇게 마령은 서울 시내를 한동안 계속 떠돌아다녀야 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적당한 계약자를 찾았다.
> 흐음. 냄새가 느껴지는군. 절망, 두려움, 분노, 증오. 그 정도 마음가짐이라면 나와 아주 잘 맞겠어.
마령이 신문지를 덮고 누워있는 중년인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중년인이 차갑고 음습한 기운을 느끼고는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헉! 뭐······ 뭐야?”
> 그대에게 상상을 초월할 힘을 주겠다. 나와 계약하겠는가?
“누······ 누구요?”
> 나는 마계에서 온 존재. 그대의 절망과 분노, 증오를 마음껏 터뜨릴 힘을 줄 존재지. 어떠냐? 나의 힘이 느껴지는가?
순간 중년인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중년인은 한때 잘나가던 조폭이었다. 제법 큰 조직에서 서열 2위의 자리에까지 올랐었다.
하지만 다른 조직과의 싸움에서 무릎 뼈가 으스러지는 부상을 입었고, 여러 차례의 수술로도 회복되지 않으면서 결국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중년인에게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조직에서 버림받았고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다.
몇 차례 죽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거리의 부랑자 생활을 하며 죽을 날만 기다렸다.
그것이 벌써 4년이나 되었다.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무릎은 물론이고 온몸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제 드디어 죽을 때가 되었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통증들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온몸이 너무도 가벼웠다. 지금 당장 전력으로 뛰면 100m를 13초 만에 주파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중년인이 얼른 일어섰다. 이리저리 걸어도 보고 뛰어도 보았다.
역시 통증은 없었다. 다리를 쩔뚝이지도 않았다. 한참 잘나갔던 전성기 때의 몸을 되찾은 기분이랄까?
“나았다. 다 나았어.”
중년인이 기뻐 소리쳤다. 주변에 사람들이 제법 많았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부랑자가 된 후로 그런 시선을 의식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주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부랑자가 자신에게 시비나 걸지 않을까 싶어 피해 다니기 바빴다.
> 나와 계약하면 이보다 더한 힘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거절하면 다시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야 하지. 어떠냐? 계약하겠는가?
중년인은 아주 잠깐 고민했다. 미지의 존재에게서 악한 기운이 가득 느껴졌기 때문이다.
즉, 계약하는 순간부터 세상의 악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세상은 이미 악으로 가득했다. 정치도 종교도 교육도 다들 자신이 가장 선한 것처럼 굴었지만, 조금만 안을 들여다보면 추악하기 그지없었다.
한마디로 악하게 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업는 세상이었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더 악랄하게, 그리고 더 강하게 사는 게 낫겠지.
중년인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계약하겠습니다. 계약하고말고요.”
> 후훗. 잘 선택하였다. 이제부터 그대와 나는 한 몸이다. 나는 그대가 원하는 것을 줄 것이고, 그대는 내가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
“알겠습니다.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마령이 부랑자의 머릿속에 주소를 가르쳐주었다.
> 일단 이곳으로 간다.
“조금 먼 곳이로군. 좋소. 갑시다.”
* * *
서유림이 오토바이를 급히 몰았다. 광명회 회원 한 명이 타고 온 오토바이를 차출한 것이다.
하지만 야속한 신호등은 계속해서 서유림을 멈춰 세웠다.
서유림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임채모나 장로들에게 침투한 정령들이 계속해서 위기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어째서 다섯 사람이 하나를 못 당해?’
마령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강했단 말인가?
이건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다섯 명이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차라리 내가 임채모 선생님 곁에 있었어야 했나?
하지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사실 마령이 임채모보다는 광명회에 먼저 관심을 가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임채모 곁에도 능력자들을 붙여놓은 건다.
그런데 그 다섯 명이 마령 하나를 감당하지 못해서 오히려 당할 판이었다.
그때 서유림의 휴대폰이 울렸다.
‘바빠 죽겠는데 누구야?’
서유림이 발신자를 확인해보았다.
순간 눈이 커졌다. 임채모였다.
일단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전화를 할 정도라면 상황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니까.
오토바이를 갓길에 세우고 얼른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마령의 공격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자신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 것으로 해야 한다.
“예, 선생님!”
- 광명회주의 예언이 맞았네. 이상한 사람이 찾아와서 나를 공격했네.
“그랬습니까? 괜찮으세요?”
- 죽을 뻔했네. 광명회주가 보내준 분들이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어. 정말 무시무시한 사람이었네. 아니, 사람이 아닌 것 같았어.
마령의 능력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엄청난 듯했다.
그래도 다섯 명이 어찌어찌 막아낸 것을 보면 대충 실력이 짐작되었다.
“정말 다행입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모텔 같은 곳에서 주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그렇게 하겠네. 그런데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자네는 뭐 아는 게 없는가?
“저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서유림이 발뺌했다. 서유림 역시 임채모와 똑같은 상황임을 강조했다.
모르겠다는데 어쩌겠는가? 임채모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마친 서유림이 시각을 확인했다.
어느새 밤 열한 시가 다 되었다.
이 시각에 권이슬이 어디로 향했을까? 부상도 당했고 옷도 더럽혀졌을 것이니 일단 재정비를 위해서 집으로 향할 것이다.
지금 잡아야 한다.
서유림이 김영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영자는 올빼미족답게 곧장 전화를 받았다.
- 어머, 유림씨가 이 시각에 어쩐 일이에요? 기쁘기도 해라.
“제가 조금 바빠서 용건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권이슬 선수의 집 주소는 파악이 되었습니까?”
- 집 주소는 확인했어요. 그런데 무슨 일인가요? 아 참! 우리 그런 건 안 묻기로 했죠? 지금 가르쳐드릴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1초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입니다. 서둘러주세요.”
- 어머! 알겠어요.
서유림의 재촉에 김영자가 서두르는 듯했다.
곧바로 주소를 불러주었다.
굳이 받아 적을 필요도 없었다. 아리안은 떠나고 없지만, 서유림의 기억력은 여전히 엄청난 수준이니까.
“감사합니다.”
서유림이 곧장 권이슬의 아파트로 달려갔다.
서유림은 모자와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상태였다.
‘그런데 권이슬의 집 안으로 어떻게 들어간다?’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런 야심한 시각에 권이슬이 낯선 사람에게 현관문을 열도주지도 않을 테고.
방법이 난감했다.
그래도 일단 시도해보고, 만약 열지 않으면 힘으로 부수고 들어가는 수밖에. 그런 다음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일을 빨리 끝내고 달아나야 할 것이다.
서유림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