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135화 (135/196)

# 135

그럴 줄 알고 (2)

부탁을 마치고 나니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 서유림과 김영자가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고.

채희라라도 곁에 있었다면 이런저런 이야기로 분위기를 이끌어줬을 텐데.

게다가 기 수련 선생님이 찾아오려면 아직도 한 시간은 넘기 기다려야 할 것이다.

괜히 기다린다고 했나?

김영자도 조금은 어색했는지 리모컨을 들어서 TV를 켰다.

채널은 늘 YTN에 고정되어있었다.

요즘 뉴스는 늘 정치권 문제에만 집중되어있었다. 여권과 야권의 말도 안 되는 당리싸움이었다.

보면 답답하기만 한 그런 뉴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새로운 뉴스가 떴다. 서유림의 관심을 끄는 뉴스였다.

[어제 밤 서울의 한 유흥가에서 베트남계열의 하노이파로 추정되는 동남아시아 폭력배와 명동파로 추정되는 폭력배간의 대규모 유혈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양쪽 합해서 무려 100명이 넘는 폭력배들이 충돌했는데, 그 과정에서 다섯 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부상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부상자 중에는 폭력배와 무관한 일반 시민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조직원들은 경찰이 도착하기 직전에 대부분 도주하였습니다.

경찰은 명동파의 핵심 조직원 다섯 명의 소재를 확인하여 검거하였지만, 하노이파 조직원은 소재가 불분명하여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어머, 외국인 폭력단 문제가 정말 심각하네요.”

김영자가 그 말을 하면서 서유림을 바라보았다. 서유림이 국내 조폭들을 휩쓸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즉, 서유림이 힘 좀 써줄 수 없겠느냐는 바람이었다.

물론 서유림도 마음은 굴뚝같았다.

힘도 어느 정도 확보했다고 생각했다. 조직원의 머릿수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노예들을 다수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들 몇 명만 데려가도 저런 놈들은 깔끔하게 쓸어버릴 수 있다.

게다가 나름대로 정보원까지 확보해놓은 상태다.

찌엣과 구엔.

신라 모텔 사건 때 서유림에게 잡혀왔던 놈들이다. 이제는 오히려 서유림의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핵심 조직원의 위치는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들과 뜻을 함께하는 반 하노이파 사람들을 결성하는 데만 주력하고 있었다.

때문에 놈들에 대한 정보만 확보된다면 언제든지 하노이파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폭력단 관련 뉴스는 계속되었다.

이후의 뉴스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폭력단과 관련한 정보의 소개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우리나라에 저렇게 많은 외국인 폭력단이 활동하고 있었다니.

가장 큰 규모의 폭력단은 중국의 흑사파였다. 그다음이 베트남의 하노이파인데 성장세가 뚜렷해서 흑사파를 위협하는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필리핀의 가디언스파도 국내에만 수백 명의 조직원을 두고 기세를 떨치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 폭력단의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들의 범죄행위가 지나칠 정도로 악질이라는 것이다. 불법도박업소나 유흥업소의 운영은 물론이고 마약, 고리대금, 보이스피싱, 청부살인, 납치, 인신매매, 장기밀매 등 돈이 되면 뭐든 가리지 않고 다 했다.

김영자가 뉴스를 보면서 연신 ‘어머!’, ‘어머!’ 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서유림이 그런 김영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저 외국계 조폭들에 대해서도 정보를 구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김영자가 반색했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은 별로 없어요. 하지만 금방 될 일은 아니에요. 게다가 저들은 대부분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서 자세한 정보를 얻기도 힘들고요.”

“핵심들이 언제 어디에서 모이는지 정도만 알아도 충분합니다. 이왕이면 많은 조직원이 한꺼번에 모이는 때를 알아내면 더 좋겠지만요.”

“한번 해볼게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더 뉴스를 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김영자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서유림을 부담스럽게 하는 질문은 전혀 없었다. 서유림에 대한 배려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다가 기 수련하는 사람이 도착해서 생전 처음으로 기수련이라는 것을 배워보았다.

역시 돈이 많으면 좋은 게 많긴 하군. 아예 선생님을 집으로 불러서 배우다니.

물론 서유림이야 기수련을 계속하고자 한다면 다음부터는 학원으로 나가야 하겠지만.

며칠 후.

서유림이 UFC 대리인 알렉스 윌리스와 마주앉았다.

윌리스가 안경을 고쳐 쓰며 굳은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번 일로 대표님의 실망이 큽니다.”

서유림도 각오했던 일이다. MAN FC 챔피언벨트를 딴 후에 계약하면 인지도가 더 올라가지 않을까 싶어서 한 경기 더 뛴 것뿐인데,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이야.

하지만 후회는 없다.

오히려 잘했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마령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으니까.

그깟 명성이나 돈과 비교한다면 마령의 존재를 확인한 게 몇 배는 가치 있는 일이었다.

서유림은 묵묵히 윌리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계약조건이 조금 변경되었습니다.”

알렉스 윌리스가 계약서를 내밀었다.

사실 서유림은 더는 계약조건에 관심이 없었다.

마령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오직 ‘돈’과 ‘인지도’를 위주로 생각하고 UFC와 복싱 진출을 고려했지만, 이제는 목표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부터는 마령의 존재를 찾는 것에 목표를 둘 것이다.

계약조건도 전과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액수가 조금 줄어든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번 UFC 도쿄 경기는 예정대로 진행되는 거겠죠?”

“그건 이미 확정되었습니다. 발표만 조금 미루고 있을 뿐입니다. 예정대로 진행될 겁니다.”

그렇다면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좋습니다. 계약하겠습니다.”

그렇게 계약서에 서명했다.

서유림은 윌리스와 헤어지자마자 도상국에게로 향했다.

도상국은 집을 처분하고 김영자의 별장에서 지내고 있었다. 좁아터진 원룸과 비교한다면 호화스럽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서유림이 도착하자 도상국이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나오고 있었다.

서유림이 피식 웃었다.

“신수가 훤하네.”

“그러게요. 제가 이런 집에서도 살아보고.”

“몸은 다 나았어?”

“완전히 나은 것 같습니다. 낮에도 산을 몇 바퀴 뛰고 왔습니다.”

역시 정령의 힘이 대단하긴 하다. 사고 당하고 겨우 닷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게다가 죽기 일보직전의 상황까지 갔었는데.

“그런데 정말 이상해요. 사고를 당한 후로 몸이 전보다 훨씬 더 좋아진 것 같아요. 힘도 세진 것 같고······.”

당연히 그렇겠지.

아마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받을 거다. 마치 자신의 육체능력이 끝도 없이 성장하는 느낌이겠지.

하지만 과연 누가 그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을까?

그냥 기적이 일어난 거다. 넌 그렇게만 알고 있으면 돼.

“그래? 신기하네. 정말로 김미연씨 혼령이 힘써주고 있는 것 아냐?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이해 못할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난다니까.”

“그러게요.”

도상국이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그나저나 이제 사장님 곁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곁을 너무 오래 비웠어요.”

“아니, 아직은 일러. 놈들이 아직도 널 찾고 있을 거야.”

“제가 죽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시신을 확인하지 못했잖아. 계속 찜찜함이 남아있을 거야. 만약 계속 주변을 지켜보고 있다면 얼굴을 드러내자마자 금방 발각되겠지.”

“그것도 그러네요. 휴우.”

도상국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다 때가 있는 거니까. 그건 그렇고 날 좀 도와줄 수 있겠어?”

“뭔데요?”

“상국이도 알고 있겠지만, 내가 광명회의 장로 중에 하나잖아.”

“아, 그때 그 종교 비슷한 모임 말씀이세요?”

다들 그렇게 믿고 있었다. 채희라도 도상국도 김영자도.

지난번 마태수를 복종시킨 사람 역시 서유림이 아닌 광명회의 회주라고 믿고 있다. 서유림이 그때 모두를 별장에서 나가게 한 것도 회주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회주님께서 지시하신 일이 있는데 내가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서 처리하지 못할 것 같아. 상국이가 나 대신 좀 맡아줘.”

“알겠습니다.”

며칠 후.

철마산 인근데 도착한 서유림이 휴대폰을 열었다. 산을 뛸 때에는 휴대폰을 꺼놓기 때문에 그 전에 한 번씩 인터넷이나 카톡,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검색했다.

그런데 인터넷 기사에 서유림의 이름이 제법 크게 떠있었다.

서유림과 UFC의 계약이 드디어 인터넷 기사로 뜬 것이다. UFC 도쿄 대회에서 쿵리 선수를 대신하여 후쿠다 선수와 대결한다는 사실도 함께 발표되었다.

이와 관련한 한태민 대표의 인터뷰 기사도 있었다.

딱히 ‘배신’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와 비슷한 뉘앙스의 인터뷰였다. 자신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UFC와 계약했다는 것이다.

격투기 팬들의 반응은 어떨까?

서유림이 관련 기사들의 댓글을 살폈다.

대부분 서유림을 옹호하는 댓글이었다. 어떤 팬은 한태민의 인터뷰를 비난하기도 했다.

[대전료나 제대로 챙겨주고 ‘배신’ 운운하던가.]

댓글에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50배는 많은 듯했다.

물론 일부 팬은 한태민처럼 서유림을 비난하기도 했다. UFC로 진출하자마자 실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나라망신만 시킬 것이라는 악담도 있었다.

물론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UFC에서 승승장구하면 알아서 기어들어갈 의견일 테니까.

이젠 명진식품과도 결별할 때가 된 것 같다. MAN FC와 갈라졌는데도 명진식품이나 유진그룹이 서유림을 붙잡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유림도 아쉬울 것 없다. 찾아보면 지원이 훨씬 더 크고 확실한 곳이 많을 것이다.

그거야 여동생 서미진에게 맡기면 될 일이고. 명색이 매니저잖아.

그때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가 YJY의 영웅제중이었다.

서유림이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그래, 제중아! 오랜만이네. 바쁘지?”

- 형님 덕분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습니다.

“거 참 미안하게 됐네. 하하.”

- 하하. 그런데 UFC와 계약하셨네요. 축하드려요.

벌써 기사를 본 모양이다. 그것 때문에 축하전화를 건 모양이지.

“고마워.”

- 그런데 혹시 저희 도움 필요하세요?

“무슨 도움?”

- 입장할 때 저희가 함께 있어드릴까요?

아, 그 도움을 말하는 거였어? 말만으로도 고맙네.

“이번 대회는 일본인데. 혹시 그 즈음에 일본에서 활동할 계획이었어?”

- 그건 아니고요. 저희도 빨리 일본으로 활동무대를 넓히고 싶은데 중국에서의 일정이 1년 치가 벌써 꽉 잡혀있습니다. 일본 활동은 내년에나 계획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잘됐네. 그런데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거야?”

- 일부러라도 시간 내야죠. 형님 일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대신 나중에 꼴 필요할 때 부탁할 테니까 그때 도와줘.”

- 알겠습니다, 형님.

서유림이 흐뭇하게 통화를 마쳤다. 무려 YJY씩이나 되는 자들이 이렇게 도와주겠다고 전화를 걸어오다니. 마치 든든한 지원군이 뒤에서 버티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럼 이제 출발해볼까?’

휴대폰 전원을 끄고 철마산을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둠이 짙게 깔린 후가 되어서야 집회장으로 향했다.

철마산을 누빌 때에는 거칠 것이 없었지만, 집회장으로 향할 때만큼은 바짝 긴장했다. 어쩌면 마령의 계약자가 집회장 인근에 숨어있을 수도 있으니까.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주변을 세밀하게 살피고 주의했다.

하지만 마령의 공격은 없었다. 쪽문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도 그런 기미는 전혀 없었다.

‘아직은 이곳을 눈치 채지는 못한 모양이군. 그나저나 몇 명이나 모였을까?’

서유림이 집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집회장은 한산했다. 대충 40명 정도 모인 것 같았다. 200명이 넘게 북적이던 곳에 고작 40명만 모이니 마치 텅 빈 것 같은 느낌이다.

‘하긴, 이 정도도 많이 모인 거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악한 일을 하던 자들이 아닌가? 정반대의 길에 서겠다는 결심이 그리 쉽게 서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들 중에도 중간에 포기하는 이들이 생기겠지.

웅성웅성하던 집회장이 서유림의 등장과 동시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서유림이 단상 위의 의자에 앉아서 회원들을 내려 보았다.

모두가 서유림처럼 검은색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회원 몇 명을 시켜서 다급히 준비한 것이다. 아마 다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복면을 착용하면서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견리사의를 실천한다면서 대체 왜 이런 복면을 써야 하는 건지.

물론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마령 때문이다.

마령의 가장 큰 목적은 정령의 계약자를 찾아 힘을 흡수하는 것.

그렇다면 당연히 이곳 광명회를 노릴 수밖에 없다. 서유림이 장로들과 회원들 앞에서 신비로운 힘을 많이 보여줬으니까.

만약 마령이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면 당연히 정령의 힘을 떠올리겠지.

게다가 광명회 자체가 최근까지 비정상적일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모두에게 똑같이 복면을 쓰게 했다. 그러면 누가 일반 회원이고 누가 정령의 힘을 가진 장로인지 구분할 수 없을 테니까.

단상 위 의자에 앉은 서유림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 오늘 참여한 이들은 모두 사리사욕을 버리고 정의를 위해서 일할 준비가 된 것이냐? >>

“예, 주군!”

다들 입을 맞춘 것처럼 대답했다.

서유림이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여주었다. 표정이 보이지 않으니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서유림이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 좋다. 그대들의 앞날에는 광명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 그대들에게 복면을 착용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그대들이 나이, 성별,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건, 누가 위에 있었고 누가 아래에 있었건 모두 잊어라. 지금부터 내가 그대들을 판단하고 각자 성취에 맞는 위치를 부여할 것이다. >>

이 정도면 복면을 착용하게 한 이유로 적당하겠지?

<< 또한, 오늘 그대들 중 한 명을 장로로 삼아서 큰일을 맡겨볼 것이다. 장로의 신분이 되면 큰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그 힘을 견리사의에 맞지 않게 사용한다면 지난번에 대장로처럼 폐인이 될 것이다.

누가 나서서 큰일을 해보겠느냐? >>

서유림의 물음에 회원들은 조용했다. 대장로 마태수가 단숨에 폐인이 되는 꼴을 두 눈으로 지켜봤으니 겁에 질리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손을 번쩍 드는 사람이 있었다.

“저를 시켜주십시오.”

그러자 회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감각이 고도로 발달한 서유림의 귀에는 그 소리가 웬만큼 들려왔다.

“뭐야? 저런 조그마한 녀석이?”

서유림이 봐도 무척 왜소한 사내였다. 키는 160cm나 되었을까? 게다가 몸도 깡말랐다. 거센 바람 한 번 불면 휙 날아갈 것 같은 여린 체구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복면 사이로 보이는 눈빛은 매서웠다. 부족한 육체능력을 정신력으로 극복하며 이겨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긴, 조폭도 아무나 받아주진 않겠지. 뭔가 그 나름대로 써먹을 부분이 있어야 받아주지 않겠는가?

육체능력이 부족하다면 다른 능력이 숨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장로에게 중요한 것은 육체능력이 아니었다. 배신하지 않고 서유림의 뜻에 맞게 조직을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서유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 단상 위로 올라와 내 앞에 서라. >>

왜소한 체구의 사내가 얼른 단상 위로 뛰어올라왔다.

아까 목소리로 봐서는 대략 20대 후반쯤 되는 것 같았다.

서유림은 사내의 인적사항을 전혀 묻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사내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사내의 마음가짐이 어떠한가 하는 것이니까.

<< 그대가 힘을 얻게 된다면 그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세상의 정의를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 그럴 각오가 되어있는가? >>

“예, 주군.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답게 살다 죽고 싶습니다. 더는 더러운 일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일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 정도 마음가짐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나중에 지금의 다짐을 어기고 그릇된 행동을 한다면 그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할 것이다.

<< 좋다. 그대에게 힘을 주겠다. >>

서유림이 사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정령을 투입했다.

뜨끈뜨끈한 기운이 사내에게 옮겨갔다.

사내가 살짝 움찔했다.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는데도 막상 이질적인 것이 느껴지자 조금은 놀란 듯했다.

서유림이 손을 뗐다.

<< 이제부터 그대의 잠재력을 폭발시켜라. 그 힘을 세상을 위해 써라. 그러면 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뒤돌아보며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대가 노력하기에 따라서 교과서에 이름을 남길 수도 있겠지.

그대는 이제 그럴만한 힘을 가졌다. >>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주군!”

사내가 고개를 깊이 숙이며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서 어딘가 모르게 결연함이 느껴졌다.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정령을 투입하는 순간 사내의 마음이 느껴졌다.

흥분과 설렘이었다. 하지만 두려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서유림의 뜻에 맞는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는 거겠지.

‘후훗, 잘 골랐군.’

<< 이제부터 그대가 4장로다. 모두들 4장로의 말을 내 말처럼 따르도록 하라. >>

“예, 주군!”

<< 아무리 정의를 찾고자 해도 생활비는 필요할 것이다.

4장로가 회원들에게 생활비를 나눠주면서 이 양식에 맞게 인명부를 작성하도록. 인명부에 이름을 올린 자들에게는 조만간에 적당한 일거리가 주어질 것이다. >>

서유림이 작은 배낭을 열었다. 배낭에는 회원들에게 나누어줄 돈 봉투와 회원인명부 양식, 필기구 등이 들어있었다.

돈 봉투는 모두 70개가 준비되어있었다. 혹시 모르니까.

그중 50개를 4장로에게 주었다.

회원인명부는 단순한 인적사항뿐만이 아니라 취미나 특기, 원하는 일자리 등도 함께 적도록 되어있었다.

4장로가 그것들을 받아서 현장에서 회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서유림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음 집회를 예고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등골에 소름이 끼쳤다.

서유림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다른 사람과 계약된 정령이 보내는 위태로움의 신호였다.

서유림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임채모 선생님! 마령!’

하지만 이내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후훗, 그럴 줄 알고 준비해둔 게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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