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130화 (130/196)

# 130

3월 5일입니다. (2)

삼월 오일. 삼오회. 사모회.

왠지 모르게 연관성이 있어보였다. 어쩌면 사모회라는 이름 자체가 3월 5일을 기념하는 뜻에서 만든 삼오회의 변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친 억측인 걸까?

하지만 옥희경과 통화했던 윤경식이 사모회 회원이 아닌가?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획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 확인하는 게 좋을까?

“왜요 형님? 뭐 좋은 거라도 생각나는 게 있어요?”

서유림이 다시 도상국을 바라보았다.

힘이 하나도 없는 모습이었다.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그토록 팔팔하던 녀석이.

물론 정령의 힘 덕분에 금방 원래 모습을 회복하겠지만, 그래도 안쓰러웠다. 이제부터는 죽은 사람처럼 살아야 할 인생이 아니던가? 적어도 이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순간 번쩍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죽은 사람? 그래, 죽은 사람이잖아! 그걸 이용하면 되겠군.’

서유림의 입술이 살짝 말려 올라갔다.

한태민이 병실로 들어왔다.

새로운 비서 양한준이 얼른 일어서서 고개를 숙였다. 비서인 장성식도 수락산 낙상사고로 크게 다쳐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임시 비서를 데려다 놓은 것이다.

“실장님 오셨습니까?”

한상민이 고개만 돌려서 한태민을 바라보았다.

“왔냐?”

“몸은 좀 어때?”

“최소 한두 달은 이러고 누워있어야 한단다. 이러다가 허리병신 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그러게 조심 좀 하지.”

“씨발, 열 받아 죽겠는데 너까지 왜 그래?”

“형만 열 받는 거 아냐. 나도 돌아버리겠다고. 씨발, 한경민이가 왜 감찰실장이 되는 건데?”

그건 한상민도 같은 생각이었다.

감찰실장 자리는 유진그룹에서 가장 핵심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퇴원할 때까지 공석으로 두던가, 굳이 자리를 채워야겠다면 자신의 의견을 묻던가 해야 할 사안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친동생 한태민을 그 자리에 앉혔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복동생보다는 친동생이 나으니까.

그런데 사고 나고 닷새도 안 돼서 한경민을 그 자리에 앉히는 것으로 전격 인사발표를 내버렸다. 한상민이 최소 몇 달은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 직후였다.

당연히 한유진 회장의 작품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한유진 회장을 대놓고 욕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말이라도 새어나가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될 테니까.

그러니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만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이러다가 한경민한테 그룹 빼앗기는 것 아냐?”

일이 그렇게 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그래서 밤에 잠도 못 자고 곰곰이 생각했었다.

한상민이 새로운 비서를 향해 축객의 손짓을 했다.

“잠깐 나가있어.”

비서가 얼른 고개를 숙이고는 병실을 빠져나갔다.

한상민이 한태민을 가까이 오게 했다.

“태민아. 나하고 거래하자.”

“무슨 거래?”

“네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회장으로 밀어줘라. 그러면 주요 회사 몇 개는 너한테 떼 주마.”

그 정도라면 한태민도 만족스러운 조건이었다. 비록 회장 자리가 욕심나긴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

“좋아.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한수영과 한경민을 궁지로 몰아넣어야지.”

“그러니까 어떻게?”

한상민이 한태민의 귀에 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네. 계획도 좀 더 구체적으로 세우고.”

“어차피 단기간에 갈릴 승부가 아냐.”

“알겠어.”

대충 대화가 끝날 무렵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병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서유림이었다.

한상민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요즘 서유림이 안하무인격으로 노는 것을 보면 실컷 밟아버리고 싶은 놈이었다.

단지 MAN FC의 흥행을 위해서 억지로 웃으며 대해줄 뿐이었다.

“네가 어쩐 일이냐?”

“대표님께서 다치셨는데 와봐야죠.”

“빨리도 오는구나. 그런데 나 이제 MAN FC 대표 아니다. 어제 날짜로 이 친구한테 넘겼다.”

서유림으로서는 금시초문이었다.

하긴, 아직 대외 발표는 없었으니까.

한태민이 서유림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자신보다 10cm 이상 커서 그런지 한참을 훑어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네가 서유림이구나. 반갑다.”

서유림은 순간 얼굴을 찌푸릴 뻔했다.

한태민의 나이 28세. 서유림보다 세 살이나 어리다.

그런데 한 손은 호주머니에 찔러놓고 악수하자고 내민 손도 거만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저 반말은 또 뭐야?

역시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유림도 손을 뻗어서 잡아주었다. 한태민가 달리 두 손을 공손하게 내밀었다.

적어도 권이슬과의 경기를 마칠 때까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 전에 작업 걸 일도 있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잘해보자고. 경기가 이틀 후지? 너한테 거는 기대가 커.”

“열심히 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형, 나는 그만 가볼게.”

한태민이 병실을 나섰다.

서유림이 의자에 앉았다. 있는 사람들만 사용한다는 특실이라서 그런지 의자도 격이 달랐다.

“좀 어떠세요?”

서유림이 안부를 물으며 한상민의 손을 잡아주었다.

아니,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한상민이 얼른 손을 치우며 경계했다.

“내가 그랬지. 누가 내 몸에 손대는 걸 제일 싫어한다고.”

그놈 참 성격 까칠하네. 스킨십을 강행했다가는 소리라도 지를 분위기다.

아쉽네. 체력 빨아주려고 왔는데.

사실 아예 포이즌 마법으로 중독 시켜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그건 조심해야 한다. 포이즌 마법에 의한 중독은 현대의학으로는 해독할 수 없거든. 한마디로 서유림이 직접 해독시켜주지 않는 이상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

해독도 한 달 이내에만 가능하다. 그런 다음에는 그 어떤 계열의 포이즌으로도 중독 시키는 게 불가능하고.

단 한 번으로 완벽한 내성이 생기는 듯했다.

한상민이 아무리 미워도 평생을 그렇게 만드는 건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적당한 수준에서 해독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다. 한번 중독되었다가 해독되면 몸이 전보다 오히려 좋아지거든.

아주 사소한 차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한상민을 좋게 만들어주는 거잖아.

한마디로 포이즌 마법은 모 아니면 도의 마법이라서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

정령신도 지켜보고 있잖아. 과도한 사용은 정령신의 눈 밖에 날 수도 있다.

“빨리 퇴원하셔야죠.”

“의사가 알아서 해. 귀찮으니까 그만 가봐. 아 참! 거기 내 바지 좀 줘봐.”

바지?

서유림이 옷걸이에 걸려있는 한상민의 바지를 건네주었다. 등산할 때 입었던 바지였다.

한상민이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뭔가를 꺼냈다.

딱 보는 순간 뭔지 알 것 같았다. 거무튀튀하게 때가 묻은 100원짜리 동전이었다. 서유림이 예전에 한상민에게 선물도 주었던 행운(?)의 동전이 분명했다.

하마터면 웃음이 피식 나올 뻔했다.

‘저걸 아직까지 가지고 있었다니.’

“이것도 도로 가져가.”

한상민이 손을 내밀었다.

순간 서유림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기회다!’

얼른 한상민의 손을 잡으며 동전을 도로 움켜쥐게 했다.

“그걸 그렇게 막 꺼내서 보여주시면 안 된다니까요.”

“헛소리 하고 자빠졌네. 빨리 가져가라고 새끼야, 재수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한 실장님께 불운이 닥쳐도 저는 책임 못 집니다.”

“재수 없는 소리 말고 꺼져.”

서유림이 동전을 건네받았다. 그러면서 한상민의 체력을 힘껏 흡수해주었다.

그렇다고 기절까지 시켜서는 안 되겠지. 그러면 서유림이 무슨 테러라도 가한 것으로 생각하고 엄청나게 들볶을 테니까.

‘이 정도면 적당하겠군.’

순간 한상민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체력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심한 현기증을 느끼는 듯했다.

서유림이 모른 척하며 걱정해주었다.

“왜 그러세요? 혹시 동전의 저주라도 받은 겁니까?”

“괜찮으니까 가라고.”

어차피 더 있을 이유도 없다.

“알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오지 마, 새끼야. 귀찮으니까.”

서유림이 병실을 나섰다.

한상민이 그런 서유림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 존재였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왜 이러지? 아, 죽겠네!’

온몸이 욱신욱신한 것 같기도 하고 저릿저릿한 것 같기도 했다. 마치 하루 두세 번씩 사나흘 연속으로 섹스하고 난 기분이었다.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질 정도였다.

‘정말 그 동전한테 저주라도 받은 건가? 아, 새끼. 기분 찜찜하게 이상한 얘기를 하고 있어.’

그런데 그때 휴대폰이 울어댔다.

“아, 씨발! 귀찮아 죽겠네.”

한상민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발신자는 확인했다. 혹시 중요한 인사의 전화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뜻밖의 인물이었다.

썬푸드의 황상규 대리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상민이 황상규 대리를 상대하는 유일한 이유는 태국에서 필로폰을 밀반입하는 것뿐이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직접 연락하는 일도 없었다. 늘 썬푸드 사장이나 장성식 부장을 통해서만 연락했었다.

그래야 무슨 일이 생기면 확실하게 꼬리를 자를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놈에 갑자기 왜 전화를······? 내 전화번호는 또 어떻게 알고?’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피곤한 와중에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받고 싶지 않았지만,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보세요.”

- 실장님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고 나발이고 이 새끼야, 왜 나한테 전화를 걸고 지랄이야?”

- 그만큼 큰일입니다. 아무래도 검찰이 냄새를 맡은 것 같습니다.

“······뭐?”

한상민은 순간 심장이 뚝 떨어지는 줄 알았다.

- 며칠 전부터 경찰이 제 주변을 자꾸 얼쩡거리고 있습니다. 제 주변사람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쩌죠?

“야, 이 미친 새끼야.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 선에서 알아서 처리해야지, 개새끼야.”

- 저보고 혼자 독박 쓰라는 겁니까? 그렇게는 못하죠.

한상민은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가뜩이나 피곤해 죽겠는데 골치 아픈 문제까지 생기니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다.

그래도 일단은 급한 불부터 끄고 볼 일이다.

“그렇다고 같이 죽자는 거야? 그래서 황 대리가 얻는 게 뭔데? 설마하니 내가 입 싹 닫고 말겠어? 일만 잘 마무리 지으면 보상은 충분히 해줄 테니까 일 키우지 말고 적당히 잘 마무리 해.”

- 정말 확실하게 보상 해주시는 겁니까? 제가 독박 쓰고 빵에 다녀오면 얼마 주실 건데요?

이놈이 간덩이가 부은 모양이다.

하긴, 태국에서 그런 짓을 하다 보면 간덩이가 부을 수밖에 없겠지. 잘못 건들면 발등을 깨물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얼마나 원하는데?”

- 10억 주세요.

“뭐, 이 새끼야?”

- 씨발, 자꾸 욕하지 말고. 수틀리면 검찰 가서 확 불어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나도 집에 가면 귀한 자식이라고.

‘어쭈. 이놈 봐라. 갑자기 말까지 짧아지네!’

이 정도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식이었다. 황상규 대리를 자극해서 좋을 것은 없겠다.

물론 겁도 없이 주인에게 대든 값은 확실히 치르게 해줘야 하겠지만.

“알겠어. 10억 줄게. 대신 일 확실하게 마무리하고.”

- 실장님만 믿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 통화내용 다 녹음된 거 아시죠? 허튼 수작 하면 저도 죽고 실장님도 죽는 겁니다.

황상규가 자신의 말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한상민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씨발, 지독하게 걸렸군. 어쩌지?’

10억 원을 준다고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황상규가 이 건을 가지고 평생을 우려먹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 입을 완전히 막아버리는 수밖에.

한상민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 네, 실장님.

“썬푸드의 황상규 대리 알지?”

- 네, 실장님.

“그놈 입을 좀 막아야겠어. 깔끔하게 정리해. 아, 그렇다고 서두르지는 마. 지금 황상규 주변에 검찰과 경찰이 쫙 깔려있는 것 같으니까. 쥐도 새도 모르게 깔끔하게 처리해야 해.”

- 네, 실장님.

한상민의 한쪽 입술이 씰룩 말려 올라갔다.

‘개새끼, 감히 나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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