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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친 잠재력-125화 (125/196)

# 125

등산은 참 좋은 것이야. (3)

서유림이 장정식의 옷을 툭툭 털어주었다.

“조심 좀 하라니까. 왜 그렇게 서둘러요? 괜찮아요?”

장성식은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게다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몸이······ 이상해요. 움직일 수가······.”

“쯧쯧. 아무래도 장 부장은 이쯤에서 내려가야겠어. 김 실장이 부축 좀 해줘.”

“예.”

간부들을 보좌하던 수행원 두 명이 장성식을 양쪽에서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산을 내려갔다.

한유진이 그 모습을 보고는 혀를 찼다.

“쯧쯧. 칠칠치 못하게.”

그러다가 서유림을 발견하고는 활짝 웃음을 지었다.

“조금 늦었군.”

“서두르려고 했는데, 장 부장님 차가 사고를 당해서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사고를 당했어? 다친 곳은 없고?”

“괜찮습니다.”

“다행이군. 이쪽으로 오게. 함께 얘기나 나누면서 올라가지.”

서유림이 한유진 곁에 섰다.

한유진 곁에는 한수영, 한상민, 한경민, 한태민 등 자녀들과 한명진 등의 친척들만 있었다. 서유림이 당당히 그 일행에 낀 것이다.

그런 서유림을 바라보는 임직원들의 눈빛에 부러움이 가득했다.

“산에 자주 오는 편인가?”

“자주가 아니라 매일 다닙니다. 저는 실내보다는 바깥 체질이라서요. 쓸데없이 돈 들여가면서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사람들 보면 사실 이해가 잘 안 됩니다.”

“하하, 자네는 역시 내 스타일이라니까. 그런데 이번에 토너먼트 우승했지? 그것도 무제한급으로.”

“운이 좋았습니다.”

“운도 실력이지. 그 덕분에 우리 유진그룹 홍보가 아주 잘 되었어. 이봐, 한 사장. 이런 직원한테는 뭔가 특별포상이라도 내려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러자 한상민이 한명진의 대답을 가로채듯 이야기했다.

“그렇지 않아도 명진식품에 팀장 승진을 건의할까 합니다. 홍보효과가 컸으니 그만한 대우를 해줘야죠.”

“좋은 생각이군. 이제부터 서유림 팀장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서유림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수락산에도 이따금 험한 비탈길이 나왔다. 커다란 바위를 아슬아슬하게 가로질러가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다들 아래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조심했다.

한상민도 조심조심 한유진을 뒤따랐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한상민의 발밑이 쭉 미끄러졌다.

“으악!”

한상민은 커다란 바위 위를 미끄러지더니 그대로 아래로 추락했다. 바위 아래는 최소한 3m 높이의 절벽이었다.

다들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특히 한유진의 놀라움이 컸다. 아무리 미워도 아들이지 않은가?

“상민아!”

“실장님!”

하지만 다들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이곳은 바위지형이라서 잘못 미끄러지면 한상민과 똑같은 꼴이 되기 때문이다.

서유림이 나섰다.

재빨리 바위 옆으로 돌아서 나는 듯한 걸음으로 바위 아래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장성식을 그랬던 것처럼 한상민의 멱살을 잡고 길 위로 끌어올렸다.

한상민을 바라보는 한유진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괜찮으냐?”

괜찮을 리가 없지. 그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게다가 위로 올라오는 동안 체력을 바닥까지 빨려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유림은 모른 체하며 걱정스러운 척 한상민을 바라보았다.

“허리가······.”

“일어설 수 있겠냐?”

한상민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일어나보려고 애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한유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나마 가장 믿고 의지하던 아들이 허리병신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헬기 불러. 빨리 헬기 오라고 해.”

한유진의 지시에 비서가 재빨리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역시 한유진의 힘이 대단한 건가? 아니면 원래 이런 곳에서 다치면 소방헬기가 와주는 건가?

전화하고 20분 정도 지나자 헬기가 도착했다.

“조심. 조심해.”

한유진의 호들갑 속에 한상민이 헬기를 타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오늘 등산 행사는 원래 늦은 오후 뒤풀이까지 계획이 잡혀있었는데, 예기치 못한(?) 사고로 그렇게 오전에 일찍 마무리되었다.

서유림의 얼굴에 아무도 모르게 살짝 웃음이 지어졌다.

‘병원에서 보자, 한상민. 후훗.’

산을 내려가자마자 다들 병원으로 향했다. 이런 때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면 한유진에게 제대로 찍힐 수도 있을 테니까.

아마 오늘 등산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인사들도 줄줄이 병원으로 가서 얼굴을 내비쳐야 하겠지.

하지만 서유림은 달랐다.

‘내가 한유진이나 한상민한테 아부 떨어야 할 이유가 뭔데?’

주차장에서 떠나가는 유진그룹 임원진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게 전부였다.

아, 하나 더 있다.

임원을 수행하던 사람들 중 일부가 배낭의 음식물을 버리려고 했다. 산에 올라가서 먹으려고 싸온 것들이었다.

서유림이 얼른 다가갔다.

“그거 버리실 거면 저 주세요.”

“아, 드시겠어요?”

수행원들이 서유림 앞에서 배낭을 열었다.

서유림이 그중 손이 가는 것들만 집어서 자신의 배낭을 채웠다. 김밥, 샌드위치, 과일 등이었다.

“이제 됐습니다.”

나머지 음식물들은 대부분 버려졌다.

수행원들이 서둘러 움직였다. 임원들이 손을 흔들며 재촉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유진 일행과 헤어지고 다시 산을 올랐다.

여기까지 왔으니 운동이나 실컷 하고 가야하지 않겠는가? 산길을 뛰다 보면 집회시간에 맞춰 철마산 아지트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서유림이 산길을 따라서 달리고 또 달렸다. 등산로를 달리기도 하고 등산로를 벗어나서 달리기도 했다.

음식물로 묵직해진 배낭이 조금 거추장스럽긴 했지만, 뛰는 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늦은 오후가 되자 사위는 빠르게 어두워졌다.

서유림이 철마산 아래에 도착한 것은 사방이 완전히 어두워진 뒤였다.

아래로 광명회의 아지트가 된 허름한 창고가 보였다. 휴대폰을 열어보니 집회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지금쯤이면 서유림 아래로 들어온 여러 조직원들이 다 모여 있겠지.

서두를 이유는 없다. 주인공은 조금 늦게 도착해도 되니까.

오히려 조금 늑장을 부려줘야 더 있어 보이는 것도 같고.

‘아, 배고파.’

숲속에 앉아서 배낭의 음식물을 먹기 시작했다.

양껏 배를 채우고 늘 쓰던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다. 천천히 집회장인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태수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밖의 상황을 살피던 수하로부터 손짓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주군’이 도착했다는 손짓이었다.

‘주군은 개뿔이. 오늘부로 싸늘한 주검이 될 것이다.’

마태수가 롱코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날을 예리하게 세운 칼이 그 안에 숨겨져 있었다.

마태수뿐만이 아니었다. 김석균 등의 장로들을 비롯해 무려 20명이나 되는 정예 중의 정예들이 나무상자 뒤, 기둥 뒤 등에 몸을 감춘 채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칼,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창고의 옆문 주변에는 나무상자나 페인트 통 같은 잡다한 물건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한마디로 숨을 곳 천지라는 얘기지.

그것은 명백히 주군의 실수다. 자신이 전용으로 출입하는 곳이라면 깔끔하게 치워서 사람이 숨어있을 곳이 없도록 해야지.

그런데 오히려 저런 식으로 잡동사니를 잔뜩 쌓아놓았다. 마치 자신이 쪽문 드나드는 것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후훗, 미련한 놈. 그것도 다 팔자겠지.’

마태수는 오늘이 ‘주군’의 제삿날이라고 확신했다. 제아무리 대단한 놈이라고 해도 진짜 신이 아닌 이상에는 저곳을 살아서 통과하지 못할 테니까.

잠시 후.

쪽문이 가볍게 열렸다. 복면을 쓴 주군이 쪽문을 통과해서 태연하게 걸어 들어왔다.

완전한 무방비상태였다. 사방에 20명의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매복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 듯했다.

잠시 후, 수하 몇이 벌떡 일어나서 큰 소리로 인사했다.

“주군! 오셨습니까?”

주군의 신경을 분산시키기 위한 술수였다.

복면을 쓴 주군은 술수에 제대로 놀아나주었다. 손을 들어서 흔들어주며 인사에 화답했다. 그러면서 집회장 더 안쪽으로 깊이 들어왔다.

그때였다. 마태수를 비롯한 정예들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다들 주군을 향해 칼과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그때까지도 주군은 무방비상태였다. 몸을 피하기는커녕 손을 들어 막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쇠파이프가 주군의 머리를 때리는 게 보였다. 수하가 찌른 칼도 주군의 몸을 찔렀다.

마태수의 입술이 깊게 말려 올라갔다.

‘후훗! 죽었다······ 응?’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마태수의 표정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두 눈은 믿기지 않는 광경에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저게······ 말이 돼?’

당황하는 것은 주군을 공격하는 수하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믿기지 않는 눈으로 자신이 들고 있는 쇠파이프나 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쇠파이프를 맞고 칼에 찔리고도 멀쩡한 주군을 다시 바라보았다.

아니, 이건 맞고 찔렸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쇠파이프는 마치 바위를 때린 것처럼 강하게 튕겨 나왔고, 칼 역시 단 1mm도 찌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때린 사람만 다쳤다.

쇠파이프를 휘두른 자는 깡! 하는 충격에 손이 얼얼했고, 칼로 찌른 자는 손이 미끄러지면서 오히려 자신의 손을 베고 말았다.

마태수는 다급해졌다.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실패하면 죽는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무슨 차이일까?

“죽여! 무조건 죽여!”

마태수가 수하들을 독려하며 자신도 주군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는 주군의 옆구리를 향해 칼을 깊이 찔렀다.

하지만 칼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다른 수하들처럼 오히려 자신의 손만 베었다.

그때 주군이 손을 뻗었다.

가벼운 일격.

하지만 그 가벼운 일격에 마태수는 무려 다섯 걸음이나 뒷걸음질하다가 나동그라졌다.

다른 장로들도 마찬가지였다. 주군이 슬쩍 손을 뻗을 때마다 자동차에 치이기라도 한 것처럼 뒤로 나자빠졌다.

마태수가 애써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가슴의 통증 때문에 쉽지 않았다.

그때 주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것처럼 창고 안을 우렁우렁하게 울렸다.

<< 하찮은 인간들 주제에 감히······. >>

그러자 수하들도 더는 공격하지 못했다. 다들 겁에 질려서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 아직도 무기를 버리지 않고 있는 놈은 누구인가? >>

주군의 목소리가 갑자기 천둥소리처럼 크게 폭발했다.

수하들이 깜짝 놀라서 얼른 무기를 버렸다.

떨그렁. 떨그렁.

철제 무기들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둔탁한 금속성 소리를 흘렸다.

> 인간계에서는 역시 마력이 쉽게 떨어지는군요. 더는 방어막을 유지하기 어렵겠습니다.

아리안의 목소리였다.

아리안은 지금까지 서유림의 체력에 의해서 정령마법을 사용했다. 때문에 아리안이 지나치게 힘을 쓰면 서유림이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그런데 정령왕이 되고 독립을 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서유림의 체력은 전혀 건들지 않고 자신의 마력만을 사용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전보다 힘이 약해진 느낌이었다.

물론 사용할 수 있는 정령마법은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진화하긴 했지만.

아리안의 도움은 이 정도로 충분했다. 더는 서유림을 공격할 놈이 남아있지 않을 테니까.

만약 그런다면 서유림이 직접 나서서 본때를 보여주면 되니까.

‘고마워 아리안. 이제 쉬어도 돼.’

아리안이 떠나가는 게 가볍게 느껴졌다. 온몸을 감싸던 방어막도 사라졌겠지. 이제는 맞으면 통증을 느낄 것이고, 찔리면 상처를 입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놈은 아무도 없겠지.

서유림이 뚜벅뚜벅 걸어서 창고 정면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단상을 2m가량 높이 만들어놓아서 의자에 앉아서도 창고 전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었다.

서유림이 마태수를 노려보았다.

<< 대장로는 가까이 오라. >>

마태수가 엉금엉금 기어서 서유림에게 다가갔다. 2m나 되는 단상을 오를 때에는 손을 발처럼 사용하며 움직였다.

가슴의 통증 때문에 허리를 펴지 못한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주군을 향한 굴복의 의미도 있었다.

‘그러게 왜 그랬어?’

사방은 온통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다들 두려움과 경외심 가득한 눈으로 서유림과 마태수를 바라보았다.

‘이놈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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