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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친 잠재력-115화 (115/196)

# 115

알리바이가 필요해 (3)

깊은 새벽.

서유림의 휴대폰이 울렸다.

서유림도 채희라도 바짝 긴장하고 있던 상태였다. 게다가 이 깊은 새벽에 휴대폰이라니.

당연히 깜짝 놀랄 수밖에.

그런데 발신자를 보고는 더욱 놀라야만 했다.

얼른 전화를 받았다.

“예, 아버지.”

- 어디냐?

다행히 아버지 목소리가 평온했다.

“모텔입니다. 그런데 왜요? 이 시간에……?”

- 집에 갑자기 경찰이 찾아왔어. 유림이 너 어디 있냐고?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버지 목소리 듣고 별일 아니구나 싶었는데, 역시 우려하던 일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일 당하시고도 왜 이렇게 침착하셔?

역시 우리 아버지시라니까.

“경찰이 왜요?”

- 네가 직접 통화해 보거라.

아버지가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서유림씨. 서울지방경찰정의 박순모 경장입니다. 살인사건과 관련해서 여쭤볼 게 있는데 지금 어디신가요?

침착해야 한다.

가능성은 적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잖아.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말도 만들어놓았고.

서유림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예에? 살인사건요? 누가 죽었는데요?”

- 옥희경씨라고 모르세요?

“처음 듣는 이름인데요? 그런데 갑자기 저를 조사하는 이유는 뭔가요? 제가 아는 사람이 피의자라도 되나요?”

- 일단 만나서 얘기 나누시죠. 지금 서울지방경찰청으로 와주실 수 있습니까?

아직은 안 된다. 정령 아리안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허벅지 총상이 아직 아물지 못했다.

그리고 반드시 나가야 할 상황도 아니다.

이런 때는 오히려 화를 내야 맞는 상황이다.

서유림이 목소리를 높이며 발끈했다.

“여보세요. 제가 왜 조사를 받아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이 새벽에 그렇게 집안에 들이닥치면 가족들이 다들 깜짝 놀라시잖아요.”

- 죄송합니다. 사안이 워낙 중하다 보니…….

“그럼 영장은 가져오셨습니까? 당연히 가져오셨겠죠?”

경찰이 잠시 말문이 막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내 당당하게 받아쳤다.

- 지금 경찰청으로 와주시지 않는다면 바로 영장 받아오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럼 영장 받아오세요. 됐죠?”

서유림이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기를 거칠게 끊었다.

채희라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괜찮겠지? 오빠라는 증거 못 찾겠지?”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끄는 것이다. 허벅지 총상이 치료될 시간.

‘아리안. 흔적 없이 치료되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 총알이 무척 깊이 박혔습니다. 총알을 빼내지 않는 이상은 완치되기 어렵습니다. 총알을 빼낸다고 해도 이틀은 꼬박 걸릴 것 같습니다.

지금 총알을 빼낼 수는 없다. 채희라는 총에 맞았다는 사실도 모르고, 설령 안다고 해도 의사도 아닌데.

게다가 그렇게 오랜 시간을 끌 수도 없다.

‘젠장, 어쩌지?’

다음날 오전.

서유림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아닌 경찰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 서유림씨. 영장 받아왔습니다. 지금 경찰청으로 나오시겠습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시 댁으로 찾아갈까요?

벌써 받아왔다니. 오후쯤은 되어야 받아올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검찰과 법원에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인물인 모양이다.

더는 시간을 끌 수가 없다. 그러면 의심만 더욱 짙어질 테니까.

“좋아요. 그럼 지금 경찰청으로 가겠습니다. 그런데 데리러 와주시면 안 될까요? 저 지금 신사동 M모텔에 있는데.”

- 알겠습니다. 근처 지구대에 연락해서 차량 보내드리겠습니다.

다행이다. 무리하고 싶지 않았는데.

통증은 전혀 없지만, 총상은 아직도 그대로였다. 바짝 의식하면 별 문제가 없지만, 잠깐 방심하면 쩔뚝이며 걸을 수도 있다.

경찰청까지 가는 도중에도 치료는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통화를 마친 서유림이 일어섰다.

말끔한 정장차림이었다. 모텔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 차림이었다. 채희라가 어제 챙겨온 것을 차량 안에서 갈아입었다.

운동복은 길거리 쓰레기봉투에 집어넣어서 처리했다.

채희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함께 일어섰다.

“내가 같이 가줄까?”

“아니. 혼자 가는 게 나아.”

밖으로 나갔다.

통화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순찰차가 찾아왔다. 순찰차를 타고 편안하게 지방경찰청으로 들어갔다.

곧장 조사가 시작되었다. 서유림을 조사하는 사람은 박순모 경장이었다. 새벽에게 서유림에게 전화를 걸어왔던 바로 그 경찰이었다.

역시 잡다한 질문 따위는 생략되었다. 가장 확실한 증거부터 확인하려고 들었다.

“허벅지 좀 볼 수 있을까요?”

“허벅지는 왜요?”

“저희가 어제 범인을 쫓는 과정에서 범인의 허벅지에 총상을 입혔거든요. 서유림씨 허벅지가 멀쩡하다면 굳이 따로 조사할 필요도 없는 거죠.”

조금 긴장되었다.

하지만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시죠. 여기에서 바지라도 벗을까요?”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유림이 과감히 벨트를 풀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양복바지를 내렸다.

튼튼한 허벅지가 드러났다. 보는 순간 ‘이런 걸 두고 말벅지라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박순모 경장이 서유림의 허벅지를 꼼꼼하게 살폈다.

그런데 박순모의 표정이 순간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서유림의 허벅지 어디에서도 총상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유림이 범인일 확률이 80% 이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총상은커녕 작은 상처나 흉터조차도 없었다. 오히려 피부가 매끈해서 우락부락한 근육만 없다면 참 예쁜 피부라고 감탄했을 것이다.

박순모가 믿기지 않는지 서유림의 허벅지를 만져보기까지 했다.

서유림은 순간 긴장했다. 박순모가 손을 댄 부분이 정확히 총상을 입은 부분이었다. 자칫 꾹꾹 눌러보기라도 한다면 심한 통증을 느낄 수도 있었다.

“어제 총상을 입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그러면 굳이 만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형사님은 그런 거 즐기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남자 손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아, 죄송합니다.”

박순모가 얼른 손을 뗐다.

“이제 바지 다시 올려도 되겠습니까?”

“네.”

서유림이 바지를 올렸다. 옷매무시를 다듬고 벨트도 채웠다.

다행이었다. 몸속의 상처는 방치해둔 채 보이는 부분만 집중적으로 치료하게 한 게 주요했다.

덕분에 피부만큼은 완전히 깔끔해졌다.

물론 곧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멀쩡한 피부를 째고 총알을 빼내야 할 테니까. 그러면 내일모레 결승전 경기에도 조금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겠지.

“정말 죄송합니다.”

박순모가 다시금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사실 박순모가 죄송할 일은 없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그러라고 나라에서 월급 주는 거고, 그러라고 국민들도 세금 내는 것 아닌가?

서유림도 딱딱하고 불쾌했던 표정을 풀고 조금은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오해가 풀려서 다행입니다. 경장님께 특별히 불만은 없습니다. 단지 가족들을 놀라게 한 것 때문에 조금 화가 났을 뿐입니다.”

“그 점도 사과드리겠습니다. 필요하시다면 가족분들게 따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그래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아시겠지만, 저는 격투기선수입니다. TV에 출연해야 하는 사람이라서 이미지가 무척 중요합니다. 제가 이런 조사를 받았다는 것도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야 당연한 일이죠.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충 상황이 마무리된 것 같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면 2%가 부족하지.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위기를 넘겼으니 그것을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진짜 범인의 정체를 알아낼 기회.

물론 순서를 밟아야 하겠지. 처음부터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면 오히려 새로운 의심을 살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사건 수사관과 안면을 트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나중에 소주나 한잔하시죠. 사실 제가 왜 이런 엉뚱한 의심을 받아야 하는지 너무 궁금하거든요.”

“그러시죠. 저도 사실 서유림씨 팬이거든요.”

잘됐군. 이야기가 쉽게 풀리겠어.

“하하, 감사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는 서른한 살인데. 저보다는 형님이시죠?”

“정말 서른한 살이세요. 아무리 봐도 20대 초중반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저는 마흔 살입니다.”

“정말이세요? 엄청 동안이시네요.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하하, 이거 피의자로 소환한 것도 죄송한데…… 그래도 되나?”

역시 한국 남자는 다 똑같다니까. 나이 묻고 ‘형님’ 하고 불러주면 어느새 1년은 사귄 것 같은 친분감을 느낀다.

소주 한잔 같이하고 노래방에서 노래 한 곡 부르고, 사우나에서 홀딱 벗고 땀 한 번 같이 빼면 완전한 절친이 되겠지.

“내일까지는 토너먼트 경기 때문에 시간을 못 냅니다. 토너먼트 끝나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형님.”

“그래요. 그때 봅시다.”

“말씀 놓으시라니까요.”

“그래, 그래. 하하.”

박순모 경장이 서유림을 거부감 없이 받아주었다. 깨끗한 허벅지를 보고 ‘서유림은 범인이 아니다.’라고 확신한 게 분명했다.

경찰청을 나온 서유림은 곧장 옥희경이 살았던 신원빌라 인근으로 향했다.

옥희경이 살해된 빌라는 출입이 제한되었다. 경찰들이 수사라인을 만들어놓고 자기들끼리만 수시로 들락거리고 있었다.

어차피 거기 다시 들어갈 일은 없다.

서유림은 신원빌라를 지나쳐서 중랑천으로 향했다.

중랑천에도 경찰이 몇 명 보였다. 하지만 신원빌라처럼 출입을 통제하지는 않았다.

서유림은 산책하는 사람처럼 천변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수풀을 빠르게 살폈다.

‘저기 있군.’

옥희경의 휴대폰이었다. 서유림이 집어던졌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슬쩍 주변을 살폈다. 이쪽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천천히 다가가서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휴대폰을 집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에이 씨발, 김새네. 서유림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또 모니터하고 싸워야 하는 거야? 아휴, 죽겠네.”

정보분석실 경찰들이 앓는 소리를 했다.

하지만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었다. 경찰청장이 이 일에 무척이나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쇄살인사건도 아니고, 사회적 유력인사도 아니고.

물론 살인사건이 가벼운 사건은 아니지만, 경찰 일을 하다보면 흔하디흔한 사건 중 하나에 불과하지 않은가?

막말로 이런 사건 하나하나에 어떻게 다 전력을 기울인단 말인가? 그럴 거면 경찰 인력을 한 두세 배 충원해주던가.

그런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경찰청장 본인일텐데, 유독 이 사건에는 왜 이렇게까지 관심을 두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경찰청장이 까라면 까야지.

“아휴, 오늘도 눈알 빠지겠네.”

한편 형사팀에서는 다들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거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대체 어떻게 빠져나갔지?”

“물속에 마법포탈이라도 만들어놓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다. 그때 무려 20명이나 되는 경찰이 동원되어서 범인의 주변을 철통같이 에워쌌었다.

놈이 빠져나갈 곳이라고는 중랑천밖에 없었다.

하지만 놈은 중랑천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이 못 되었다. 모든 경찰들이 제각각 손전등을 비추면서 중랑천을 눈이 빠지라고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놈이 모습을 드러내기만을 기다리면서.

그런데 물속으로 잠수한 놈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사이 미리 준비해놓았던 산소통이라도 멘 것일까? 어떻게 물 밖으로 머리 한 번 안 내밀 수 있단 말인가?

“이상하네. 정말 이상해.”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은 그뿐이 아니었다. 중랑천에 뛰어들기 직전까지의 놈의 움직임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무슨 우사인볼트도 아니고.

게다가 허벅지에 총알을 두 발이나 맞고도 그렇게 빠르게 달아나다니.

싸이카들이 이유도 없이 미끄러지듯 쓰러진 건 또 어떻고?

놈이 몸을 던져서 싸이카 경찰을 제압하는 모습은 범죄자인데도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확실히 보통 놈은 아니야.”

“마주치면 조심해야겠어.”

“맞아. 쪽팔리게 범죄자한테 당할 수는 없잖아.

그러는 사이 윤경식 경감은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서유림이 범인일 거라고 잔뜩 기대하고 있는데 아닌 것으로 밝혀지자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대체 누구지? 어떤 놈이지?’

범인은 곧 밝혀질 것이다. 자신이 분명히 놈의 허벅지에 총알을 박아 넣었으니까.

놈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혈흔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찾지 못했지만, 경찰들이 놈과 격전을 벌였던 도로 인근을 이 잡듯이 수색하고 있으니 분명히 찾을 것이다.

그러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잡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범인을 잡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대체 휴대폰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이 새끼, 그런 것 하나 제대로 못 챙기다니. 아휴, 답답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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