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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친 잠재력-114화 (114/196)

# 114

알리바이가 필요해 (2)

총을 상대하게 될 줄이야. 이 상황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방법은 하나뿐이다. 이를 악물고 뛰는 것.

서유림이 땅을 박차며 뛰었다.

그때 뒤에서 총성에 울렸다.

한 발이 아니었다.

따다당!

여러 명의 경찰이 동시에 발포한 듯하다.

그와 동시에 왼쪽 허벅지에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다리 힘이 빠지면서 균형이 무너졌다.

서유림이 그대로 땅바닥을 굴렀다.

“잡아!”

잡히면 안 된다. 뛸 수 있다.

서유림이 다시 일어섰다. 균형이 맞지 않아서 심하게 쩔뚝였지만, 그래도 육체능력 덕분에 보통 사람보다 훨씬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다시 총성이 울렸다.

따다당!

대체 몇 발을 쏘는 거야? 그러다 죄 없는 행인들이 유탄에 맞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데 경찰들 중에 명사수가 한 명 있는 모양이다. 또다시 같은 쪽 허벅지가 화끈하게 아파왔다.

서유림이 다시 넘어졌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서 뛰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그냥 잡히나 도망치다 잡히나 달라질 게 없으니까.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무조건 달아나야 한다.

따당!

이번에는 빗나갔다.

다행히 건물 모퉁이를 돌았다.

경찰도 더는 총을 쏘지 못했다. 대신 악을 쓰듯 소리쳤다.

“총에 맞았다. 멀리 가지 못해. 어서 쫓아.”

“싸이카 뭐 하고 있어?”

부다다당- 하는 오토바이 소리도 들려왔다. 한두 대가 아니었다. 얼핏 눈에 보이는 것만 네 대였다.

어쩌지? 경찰오토바이까지 따돌리지는 못할 것 같은데.

슬립다운 마법을 믿어보는 수밖에.

그런데 저 앞쪽에 구원의 빛이 보였다.

‘물이다!’

중랑천이었다.

순간적으로 정령 아리안이 생각났다. 이래봬도 명색이 물의 속성을 지닌 정령이잖아.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중랑천으로 뛰어들기만 하면 어떻게든 방법이 나올 것 같았다.

게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자 허벅지 통증이 사라졌다. 정령 아리안이 통증을 끊어준 듯했다.

여전히 쩔뚝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제법 속력을 낼 수 있었다.

서유림이 악착같이 뛰었다. 중랑천이 빠르게 가까워졌다.

대략 100m 정도.

부다다당-

싸이카 엔진소리도 빠르게 가까워졌다. 중랑천을 70m쯤 남기고 두 대의 싸이카가 서유림을 양쪽에서 따라잡았다.

하지만 그것은 서유림의 불행이 아니라 싸이카의 불행이었다.

‘미안하다!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다!’

서유림이 손가락을 움직여서 왼쪽의 싸이카를 향해 슬립다운 마법을 펼쳤다. 동시에 오른쪽 싸이카를 향해 펄쩍 뛰며 경찰관을 몸으로 밀쳤다.

아무리 부상당한 몸이라고 해도 육체능력은 여전히 엄청났다.

경찰관이 싸이카와 함께 쓰러졌다.

그런데 이런!

서유림에게도 생각지 못했던 위기가 찾아왔다. 모자가 벗겨진 것이다.

다행히 마스크는 남아있지만, 자칫 신원이 드러날 수 있었다.

더욱 악착같이 뛰었다.

두 대의 싸이카가 다시 따라붙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서유림이 손가락이 움직이자 앞서서 달리던 싸이카가 이유도 없이 중심을 잃고 도로 위를 미끄러졌다.

나머지 한 대가 걸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급히 핸들을 꺾었다.

싸이카가 잡지 못하는 서유림을 다른 경찰관이 잡을 수는 없었다.

주변에 행인들도 제법 있어서 더는 총을 쏘지도 못했다. 그저 고함을 지르며 서유림을 뒤쫓을 뿐이었다.

“포기하지 말고 뒤쫓아. 도망갈 곳도 없어!”

“포위해!”

그러는 사이 중랑천에 도착했다.

문득 손에 쥔 옥희경의 휴대폰이 생각났다. 방수 기능이 없다면 중랑천으로 뛰어드는 순간 그 안의 데이터는 날아갈 것이다.

서유림이 휴대폰을 중랑천변 수풀로 던졌다.

휴대폰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너무 어두워서 누구도 휴대폰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유림은 휴대폰이 어디에 떨어지는지 똑똑히 확인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중랑천을 향해 몸을 던졌다.

첨벙. 첨벙.

물 깊이가 허리에 조금 못 미쳤다.

그런데 이런!

따다당-

서유림이 행인들이 없는 곳에 도착하자 또다시 총질을 시작했다. 서유림 근처에서 물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서유림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물속으로 잠수했다. 물이 깊진 않았지만, 서유림의 몸을 감추기에는 충분했다.

서유림이 서둘러서 팔을 저었다.

빨리 달아나야 해.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거센 물줄기에 휘말리기라도 하듯 몸이 앞으로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마치 서유림이 있는 곳만 급류가 만들어진 듯했다.

게다가 산소부족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벌써 10초 이상이 지난 것 같은데 방금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 것처럼 상쾌하기만 했다.

‘아! 아리안이구나!’

> 네, 주인님.

다행이었다. 급류도 아리안이 서유림의 생각을 읽고 만든 것이리라.

문득 물 밖의 상황이 궁금했다.

내가 얼마나 움직인 걸까?

경찰들이 내 움직임을 계속 뒤쫓고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잠수로 달아나야 할까?

일단 경찰들이 서유림의 종적을 놓친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아. 만약 서유림의 위치를 보고 있다면 계속해서 총알이 날아왔을 테니까.

서유림은 중랑천 하류로 움직였다.

무척 빠른 움직임이었다. 이 정도면 100m도 30초 내에 주파할 수 있을 것이다.

호흡도 전혀 문제없었다. 벌써 1분이 넘게 흘렀는데 갓 숨을 쉬고 들어온 것처럼 상쾌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물이 탁하다는 점이다. 앞을 볼 수가 없으니 어디가 상류고 어디가 하류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그나마 아리안의 도움으로 간신히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티자.

그렇게 5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물 깊이가 깊어지는 게 느껴졌다. 게다가 물의 맑기도 달라지고 온도도 달라졌다.

‘드디어 한강 본류에 합류한 거로군.’

이제 나와도 될까?

아니다. 지금 밖으로 나가면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다. 아무리 깊은 밤이라고 하지만, 한강변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으니까.

게다가 서유림을 알아보는 사람도 제법 많을 것이다.

그러면 경찰이 서유림의 신원을 유추해낼 수도 있다.

어차피 호흡도 문제가 없다. 굳이 물 밖으로 나가야 할 이유가 없다.

서유림은 계속해서 한강 하류로 방향을 잡고 움직였다. 중랑천에서보다 더욱 빠르게 물속을 이동했다.

슈슈슈- 하는 물의 흐름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였다.

그렇게 다시 10분쯤 지났을까?

슬슬 피로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아리안이 물을 컨트롤하는 원동력은 서유림의 체력이니까.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컨트롤했으니 체력이 고갈되는 것도 당연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5분 정도 더 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완전히 녹초가 될 것 같다. 물 밖에서 술 취한 사람처럼 흐느적거리는 것도 곤란하겠지.

그렇다고 멀쩡한 시민을 상대로 체력흡수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고.

근처에 적당한 불량배 서너 놈만 있어줘도 좋을 텐데, 개똥도 약에 쓰려면 안 보이는 법이라니까.

이쯤 되면 안전하지 않을까?

서유림이 움직임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물 밖으로 머리를 드러냈다.

한남대교가 보였다. 왼쪽 한강변을 보니 사람이 거의 없었다.

‘됐어! 이제 나가자!’

서유림이 물 밖으로 나왔다. 그와 동시에 머리카락 끝부터 물기가 하나도 남김없이 주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초강력 탈수기가 온몸의 물을 털어 내주는 듯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순식간에 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바싹 말려주었다.

머리카락은 방금 미용실을 다녀온 것처럼 단정했고, 옷도 방금 세탁한 것처럼 뽀송뽀송했다.

총을 맞은 허벅지에도 혈흔이 전혀 묻어있지 않았다.

누가 봐도 방금 집에서 나온 사람처럼 깔끔한 모습이었다.

물론 아리안의 도움이었다. 이 정도는 그다지 큰 체력이 소모되지 않는다.

‘고마워 아리안.’

> 아니에요.

문득 후회되는 게 있었다.

‘휴대폰 던지지 말걸.’

아리안의 도움으로 물기를 깨끗하게 제거하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적당한 시간에 다시 가서 찾아오면 된다.

그보다는 알리바이가 더 걱정이었다.

중간에 모자가 벗겨지면서 얼굴 일부가 훤히 드러났다.

주변에 CCTV가 잔뜩 깔려있을 것이다. 경찰은 아마 벌써부터 CCTV를 확인하며 서유림의 신원을 확인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서유림을 알아볼 수도 있다.

물론 100% 확신할 수는 없겠지. 훤한 대낮도 아니고.

그래도 만약을 위해서 지금 당장 알리바이를 만들어야 한다.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호주머니의 휴대폰을 꺼냈다.

과연 작동이 잘 될까? 오! 잘 된다.

아리안이 물기를 말끔하게 제거해준 덕분이겠지.

서유림이 채희라게에 전화를 걸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정보분석실에 비상이 걸렸다. 군자동에서 중랑천으로 향하는 이동경로의 CCTV 자료를 모조리 가져와 분석하고 있었다.

목표는 살인범의 신원확인과 도주로 파악이었다.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지만, 경찰청장까지 나서서 내일까지 잡으라고 난리를 치니 눈을 시뻘겋게 뜨고 자료를 분석해야 했다.

물론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가 들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목소리는 속삭이듯 한껏 낮춰져있었다.

“젠장, 무슨 미국 대사라도 죽었어? 이렇게까지 해야 해?”

“청장이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어?”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난리야?”

“그러게 말이야. 사람 한 명 죽은 것 가지고 이렇게까지 난리치는 건 처음 보네. 피해자가 청장님 따님이라도 되나?”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범인을 반드시 잡겠다며 열과 성을 다하는 경찰도 있었다.

특히 윤경식 경감이 그랬다. 무슨 역사적 사명감이라도 띤 것처럼 영상 분석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대부분 경찰은 그런 윤경식 경감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버지 잘 둔 덕분에 특별한 공과도 없이 특별승진을 한 것 때문이 아니다. 꼴에 간부라고 남의 사무실까지 찾아와서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고참들을 버릇없이 재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자신은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일치되는 사람 없어요? 잘 좀 찾아봐요.”

“백 경장님. 이런 거 전문이시잖아요. 아직도 못 찾았어요?”

저놈의 주둥이를 그냥 콱!

하지만 누구도 찍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윤경식 경감의 아버지가 바로 경찰청장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윤경식이 보지 않을 때 자기들끼리 속닥속닥 헐뜯을 뿐이다.

“저놈은 왜 여기까지 와서 설쳐대는 거야?”

“그러게. 평소에는 일도 안 한다는 놈이 오늘따라 엄청나게 나대네. 누가 보면 자기 동생 죽은 줄 알겠어.”

그런데 저쪽에서 젊은 경찰이 귀가 번쩍 열리는 소리를 했다.

“어! 이 사람······! 누구인지 알 것 같아요.”

“그래? 누구야?”

간부들이 젊은 경찰 옆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윤경식 역시 그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모니터에는 모자가 벗겨진 채 마스크만 쓰고 달아나는 사내의 얼굴이 제법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MAN FC 안 보셨어요? 요즘 토너먼트 진행 중이잖아요. 거기에서 이번에 결승전에 진출한 서유림 선수! 봐요. 닮지 않았어요?”

젊은 경찰이 다른 컴퓨터로 서유림을 검색해서 보여주었다.

인터넷에는 서유림의 사진이 아직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나마 있는 것도 케이지 안에서 웃통 벗고 경기하는 사진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대충은 비교가 가능했다.

먼저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이 비슷했고, 체구도 비슷했다. 얼굴 형태도 비슷했다.

일치율이 100%는 아니지만 80%는 될 것 같다.

간부들이 손가락을 튕겼다.

“확인해봐. 지금 당장 팀 파견해서 서유림 조사해. 현재 어디에 있고, 사건시간의 알리바이 확인하고.”

그러자 윤경식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더 확실하게 확인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제가 그놈 허벅지에 총알을 두 방이나 박았습니다. 만약 서유림의 허벅지에 총알 박혀있으면 그거로 끝납니다.”

경찰 간부가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렇군! 들었지? 빨리빨리 움직여!”

“예.”

세 팀의 경찰조가 빠르게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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