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광명회 (3)
“실장님.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장성식의 말에 한상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불사파, 석균이파, 한방파에 이어서 이태원파까지 넘어갔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파죽지세로 세를 확장하고 있었다.
이런 속도라면 조만간 서울의 모든 조폭을 손아귀에 넣을 것이다. 그런 후에는 전국으로 세력을 확대하겠지.
문득 서방파가 생각났다. 지금은 여러 조직으로 찢어져서 세가 크게 약화되었지만, 전성기 때는 전국에 1만 명이 넘는 조직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때문에 웬만한 대기업들도 서방파 앞에서 벌벌 떨기도 했다.
어쩌면 서방파를 능가하는 대규모 제국을 건설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부분도 있었다. 서방파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조직이었다.
아니, 조직이라고 하기도 조금 그랬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광명회라고 했습니다.”
맞다. 광명회.
조폭이 아니라 마치 사이비종교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물론 자기들은 종교가 아니며 실제로 이름도 ‘광명교’가 아닌 ‘광명회’로 지었지만, 조직원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사이비종교의 신도들 같았다.
실제로 자신들의 수장을 ‘주군’이라고 부르며 마치 인간이 아닌 신을 떠받드는 듯했다.
그러니 헛갈릴 수밖에.
그냥 똑같은 조폭이라면 이놈이나 저놈이나 무슨 상관이랴? 늘 상대하던 대로 상대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종교적인 성격을 띤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상민이 추진하려는 일과 정면으로 부딪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성식이 우려하는 것도 그 부분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한상민이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민했다.
하지만 뚜렷한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 아니면 판로를 만들기 어려우니까.
결국 결심을 내렸다.
“씨발,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돼? 걸레 빤다고 누가 수건으로 써줘? 제깟 놈들이 그래봤자 조폭이지. 알잖아? 이런 거는 한 번도 안 해본 놈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놈은 없다는 것.”
“물론 그렇긴 하죠.”
“그냥 풀어. 풀면 다 사게 되어있어. 안 팔리면 먼저 사들이는 놈에게 값을 20%쯤 싸게 준다고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꼬리를 하나 더 만드는 게 어떨까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상민이 괜찮은 방법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서 나쁠 것 없지. 그렇게 해.”
* * *
“훅. 훅. 훅.”
온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하지만 서유림은 멈추지 않았다. 가파른 철마산 산비탈을 뛰고 또 뛰었다.
경사도 심하고 지형도 험했다. 게다가 양손에 30kg짜리 덤벨을 들고, 발목에도 모래주머니를 찼다. 그러다 보니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벌써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겨우 이 정도에 힘이 들다니. 그냥 산을 뛰기만 한 것뿐인데.
그동안 운동을 너무 소홀히 한 거다. 하루에 최소 열두 시간은 해줘야 하는데.
한 바퀴만 더 돌고 들어가자.
서유림이 더욱 속도를 높였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럴수록 체력이 더 오른다는 생각에 오히려 고통이 쾌감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뛰다 보니 어느덧 제법 깊은 밤이 되었다. 그제야 호흡을 가다듬으며 철마산 기슭에 위치한 창고 향했다. 창고의 겉모습은 무척 허름했지만, 규모만큼은 무척 컸다.
석균이파가 작업장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지금은 광명회의 작업장으로 변해있었다.
무슨 작업장이냐고?
인간개조 작업장.
서유림은 창고 앞에서 배낭을 열었다.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아래위로도 검은색 사제복으로 갈아입었다. 이렇게 차려입으니 순식간에 분위기가 달라 보였다.
서유림이 들어서자 창고 안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허리를 깊이 숙였다.
광명회의 회원들이었다. 조폭의 옷을 벗고 새롭게 광명을 찾은 자들이라고 해야 할까?
특별히 사후관리 하는 것도 아닌데 시간이 갈수록 회원들의 충성도가 높아졌다. 아마도 새로운 장로들이나 회원들을 만들 때마다 보여준 신기한 이적 때문이겠지.
서유림이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앞에는 새로 잡아온 돌산파 핵심들이 묶여있었다.
돌산파 보스 한성기는 이미 온몸이 만산창이로 변해있었다. 장로드ᅟᅳᆯ에게 사전작업을 시켜놓으라고 했는데 작업을 제대로 해놓은 모양이다.
서유림이 다시 몇 가지 기적을 보여주었다. 정령 아리안을 활용하여 물줄기를 움직이거나, 물을 사람의 형태로 만들어서 대신 이야기하거나 하는 식이었다.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 있으면 물방울을 총알처럼 튀겨서 상처를 내주기도 했다.
이제 이 정도로는 체력소모도 크지 않았다. 게다가 5m 밖의 물까지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었다.
그러면 충성심 확보작업은 끝이었다.
새로운 조직의 충성심을 확보하겠답시고 굳이 하위정령을 조폭들에게 침투시킬 필요는 없었다. 눈앞에서 보여주는 ‘물쇼’나 ‘체력흡수’의 기적만으로도 경외심과 공포심을 주기에 충분했고, 또한 기존에 확보한 세력만으로도 억제력이 충분했으니까.
또 하위정령을 아낄 필요도 있었다. 수치가 높아지면서 정령소환력 올리는 것도 점점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 정도면 100% 이상 올랐겠다.’ 했을 일인데도 실제로 확인해보면 정령소환력에 거의 영향을 못 미치곤 했다.
한마디로 웬만한 일로는 정령소환력이 오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서유림의 정령 소환력은 900% 가까이까지 오른 상태였다.
불사파 사건 덕분이었다. 마약을 모조리 불태운 그날 무려 150% 이상이 훌쩍 뛰었다.
그렇게 해서 현재 정령 아리안이 거느릴 수 있는 하위정령의 수는 여덟.
서유림은 그중 여섯 마리만 대상자를 찾아서 침투시켰다. 부모님과 임채모, 그리고 한방파 보스를 마지막으로 조폭 세 명.
아직 여유가 둘이나 있는 셈이다.
지금부터는 하위정령을 아껴둘 것이다. 언제 어떤 식으로 활용하게 될지 모를 일이니까.
돌산파 보스 한성기도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광명회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서유림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는 장로들과 회원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서유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불사파 보스 마태수가 서유림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주군.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 뭐냐? >>
서유림이 울림이 큰 목소리로 물었다.
“지난번에 지시하신 일과 관련된 것입니다. 은밀하게 보고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지난번에 지시한 일?
아! 기억났다. 마약거래와 관련한 게 분명했다.
얼른 자리를 옮겼다.
서유림은 소파에 편안하게 몸을 묻었고, 마태수가 그 앞에 서서 허리를 깊이 숙였다.
“다시 필로폰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 이번에도 돼지이모에서 풀고 있는 건가? >>
“아닙니다. 전혀 생소한 곳에서 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돼지이모가 꼬리를 만들어서 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 광명회 때문에 뒷골목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무슨 말인지 알겠다.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몸을 사려가며 약을 푼다는 것 아닌가?
<<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돼지이모라 그거지? >>
“아마 100% 맞을 겁니다.”
그럼 됐다. 돼지이모를 잡아 족친다.
물증도 없이 심증만으로 그래도 되느냐고?
당연히 된다. 난 경찰이 아니니까.
설령 이번 마약을 푸는 게 돼지이모가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 전에도 해왔던 놈들이고 앞으로도 언젠가는 할 놈들이니까.
<< 돼지이모 사무실이 역삼동에 있다고 했지? >>
“그렇습니다.”
<< 그곳에 가면 핵심들 다 만날 수 있겠지? >>
“매주 목요일에 사무실에서 회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목요일이라.
이번 주 토요일에 토너먼트 준결승전이 열린다. 그렇다면 계체행사가 있는 금요일부터 시간을 비워둬야 한다.
다행히 이번 대회는 한국의 서울에서 열렸다. 중국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오이르꺼러가 준결승 진출에 실패하면서 중국에서의 흥행요소가 모두 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YJY의 재기도 큰 이유였다. 한상민이 YJY의 출연을 막기 위해서 기를 쓰고 한국 대회를 추진한 것이다.
적어도 한국에서 열리면 모든 진행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을 테니까.
어쨌건 수요일이라면 시간적 여유는 됐다.
이왕 처리할 거라면 하루라도 빨리 처리해야 하겠지. 일주일 뒤로 미루면 그만큼 마약이 많이 풀려서 사회악이 될 것이고, 그러면 사람들도 더욱 고통 받을 것이고, 그만큼 정령소환력도 덜 오를 테니까.
물론 정령소환력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필연적인 관계랄까?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고마움을 느끼게 하면 덤으로 오르는 수치이니, 정령소환력을 올리는 것이 곧 사람들을 위하는 길이었다.
<< 모이는 시각은? >>
“오전일 때도 있고 오후일 때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조금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훤한 대낮이라는 이야기 아닌가?
조금 곤란한걸. ‘서유림’이라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복면을 계속 착용하고 있어야 하는데, 대낮에 복면을 착용하고 움직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그깟 몇 놈들 잡아오는데 굳이 서유림까지 나서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제 조직의 규모가 충분히 커졌으니까.
게다가 하위정령을 침투시킨 놈이 셋이나 되었다.
한 놈은 힘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머지 두 놈은 그래도 제법 시간이 되었다. 정령의 효과 때문에 신체능력을 150% 이상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마태수는 벌써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원래부터가 신체능력이 좋은 놈이었는데 지금은 독보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돼지이모 정도 쑥대밭 만드는 것은 그들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 이번 일은 대장로에게 일임하겠다. 핵심 두세 놈만 데려오면 된다. 할 수 있겠나? >>
“해보겠습니다. 주군!”
<< 역시 대장로는 믿음직스럽군. 그만 가봐. >>
“옛, 주군!”
마태수가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에서 충성심이 뚝뚝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서유림은 그런 마태수를 보며 입꼬리를 깊게 말아 올렸다.
사실 처음에는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다른 조직은 광명회에 흡수되자마자 조직원들의 이탈이 줄을 이었는데, 유독 불사파만큼은 그런 이탈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30명이 넘는 불사파 조직원들이 마태수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정말 산앙심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버티고 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결국 마태수를 감시하는 과정에서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아서 그 돈으로 조직원들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서유림을 향한 충성심 때문은 아니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서유림을 치고 모든 조직을 혼자 집어삼키겠다는 계획이겠지.
마태수에게 침투시킨 정령이 중급으로 성장하면서 그의 생각과 감정을 대충은 읽을 수 있었다. 서유림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대충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도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유림은 모른 척했다. 그런 마태수의 꿍꿍이가 결과적으로는 서유림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그 전에 돈이나 좀 더 뜯어내야겠다. 이번 일 마치고 10억 원쯤 뜯어내면 적당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