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광명회 (2)
창공 흥신소.
특별히 마련된 사무실은 없었다. 그저 인터넷사이트 하나 개설해놓고 의뢰가 들어오면 일을 처리하는 식이었다.
“형님. 이것 좀 보십쇼. 제법 짭짤한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의뢰비가 무려 1억 원이나 되는데요.”
1억 원이라는 말에 김상균이 얼른 컴퓨터 앞으로 다가왔다. 김상균은 석균이파 보스 김석균의 친동생으로 ‘창공 흥신소’ 업무를 맡아 하고 있었다.
“1억 원? 무슨 일인데 보상이 그렇게 커?”
“의뢰는 제법 간단한데요. 사람 다리 좀 부러뜨려달랍니다. 선수금은 2천만 원이고, 양쪽 다리 모두 부러뜨려주면 그 즉시 잔금 치러주겠답니다. 그런데······. 어! 이거 뭐지?”
“왜 그래?”
“형님, 불사파 모르세요?”
“불사파? 알지.”
“의뢰 대상이 불사파 보스 마태수의 다리인데요.”
김상균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불사파는 석균이파보다는 규모가 조금 작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세력이 있는 조폭이었다.
게다가 불사파는 마약에도 손을 대고 있었다.
석균이파도 예전부터 마약에 손을 대려고 했었지만, 안정적인 공급처를 개척하지 못해서 아직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죠, 형님?”
김상균이 까칠까칠한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고민했다.
1억 원이라는 액수도 탐났지만, 무엇보다도 마약이 자꾸만 마음을 당겼다. 이참에 불사파를 접수한다면 석균이파는 단숨에 거대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혼자 결정하지 못하고 보스 김석균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어떻게 할까?”
김석균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역시 화끈했다.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시원하게 결정을 내렸다.
- 씨발, 언제까지 푼돈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 이참에 불사파 접수하고 마약 루트 개척한다. 그러면 조만간 서울 전체를 먹을 수도 있을 거다. 전 조직원 동원해서 친다.
“역시 우리 형이라니까.”
김상균은 곧바로 불사파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의뢰를 접수하겠다고 하자 의뢰인이 곧바로 불사파와 관련한 정보를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보스를 비롯한 핵심인물이 누구인지, 조직원이 몇 명인지, 그리고 이틀 후 경기도 양평의 ‘물안개 팬션’이라는 곳에서 핵심 조직원의 단합대회가 있다는 정보까지.
단합대회에 참가하는 조직원 명단까지 있었다. 총 열두 명이었다.
이거야말로 너무도 잘 차려진 밥상이었다.
순간 이상한 냄새가 짙게 풍겼다.
“왜 이렇게 쉬워? 이거 함정 아냐?”
다시 김석균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하지만 김석균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 불사파 조직원 중 한 명인 모양이지. 보스 해치우고 자기가 조직 먹으려는 수작 아니겠어?
“그래도 왠지 찜찜한데.”
- 씨발, 겁도 많네. 내일모레 물안개 팬션이라고 했지? 그 자리에 마태수 있는 건 확실하지?
“의뢰인은 그렇다고 하네.”
- 알았어. 내가 애들 데리고 직접 간다.
이틀 후. 양평군 물안개 팬션.
“리시브. 리시브. 헤딩으로 받아야지, 병신아!”
“토스!”
팬션 앞 족구장에 4:4 족구가 한창이다.
족구하는 이들도 불사파 조직원들이었고, 옆에서 구경하는 이들도 불사파 조직원들이었다.
모두 합해 12명.
보스 마태수가 한쪽에서 공격을 주도했다.
그런데 실력이 압도적이었다. 수비면 수비, 토스면 토스, 스파이크면 스파이크 못 하는 게 없었다.
순발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바로 코앞에서 강하게 때린 공도 기가 막힌 몸놀림을 보이며 발끝으로 받아냈다.
다들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다.
“이야, 역시 큰형님 실력이 짱입니다!”
마태수도 흥이 났다.
사실 족구는 어려서부터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40살이 넘으면서 몸이 둔해지니 예전 같은 실력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주군’을 만나고 노예 선언을 하면서 몸이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갔다. 아니, 그때보다 훨씬 좋아졌다.
말 그대로 날아다닐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고마움보다는 원한이 더 컸다. 동산과 부동산까지 합해서 20억 원이나 가져가지 않았는가?
하지만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한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고도 생길 수 있는 것 아닌가?
몸이 이렇게 좋아진다면 그깟 20억 원 정도는 순식간에 다시 모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일단은 납작 엎드려서 주군의 신뢰를 받는 게 중요했다. 그러다가 주군이 방심한다 싶으면 한 방에 죽여 없애는 것이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마태수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족구 경기가 끝났다.
최종 세트스코어는 3:0 완승. 그것도 세트마다 점수가 15:9, 15:7, 15:6일 만큼 압도적이었다.
그렇다고 이쪽 멤버를 유리하게 가져왔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엇비슷한 실력자로 편을 나누었다.
한마디로 마태수의 발끝으로 만들어낸 압도적인 승리였다.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제대로 술판을 벌일 차례였다.
저쪽에서는 아까부터 장작불을 피워놓고 삼겹살, 목살 등을 굽고 있었다. 술도 잔뜩 준비되어있었다.
모두 장작불 옆으로 이동했다.
“야, 기분이다. 마음껏 먹고 마셔!”
“잘 먹겠습니다, 형님!”
실컷 떠들면서 먹고 마셨다. 말 그대로 흥청망청이었다. 그리고 깊은 밤이 되자 다들 방으로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팬션의 불은 모두 꺼지고, 사방은 쥐 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그때 물안개 팬션 인근으로 네 대의 승합차가 조용히 다가왔다.
승합차는 팬션에서 조금 먼 곳에서 멈추어 섰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렸다. 사람들 손에는 저마다 쇠파이프 등의 흉기가 들려져 있었다.
움직임은 은밀하고 조심스러웠다. 작은 소리도 흘리지 않기 위해서 말 대신 손짓으로 지시했다.
석균이파의 보스 김석균이 손가락 네 개를 뻗으며 팬션을 가리켰다.
그러자 아포카라고 불리는 20대 중반의 청년 네 명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석균이파의 핵심으로 에이스 네 명이라는 뜻으로 김석균이 직접 지어준 별명이었다.
김석균을 비롯한 50명의 조직원이 아포카를 은밀하게 뒤따랐다.
그리고 잠시 후, 물안개 팬션에서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쳐라!”
“마태수 잡아!”
시작은 석균이파의 기세가 일방적으로 드셌다. 물안개 팬션을 무너뜨릴 것처럼 거칠게 공격해 들어갔다.
하지만 불과 30초도 안 돼서 전세가 역전되었다. 검은 복면을 뒤집어쓴 사내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석균이파 조직원들을 낫질하듯 쓸어버렸기 때문이다.
“으악! 저거 뭐야?”
“뭐가 저렇게 빨라!”
“괴물이닷!”
“잡아!”
아포카를 중심으로 한 석균이파가 복면인을 공격하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조금만 다가가려고 하면 이유도 없이 픽픽 미끄러지며 넘어졌고, 간신히 접근해도 휘두르는 몽둥이에 맥없이 쓰러졌다.
거기에 팬션에서 불사파 조직원들까지 튀어나왔다. 술에 잔뜩 취해서 깊이 잠든 줄 알았는데, 다들 멀쩡했다.
김석균은 그제야 상황이 파악되었다. 동생 김상균의 예감이 맞았던 것이다.
“씨발! 함정이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대부분 조직원들은 바닥에 쓰러져서 버둥거렸고, 얼마 남지 않은 조직원들은 독 안에 갇힌 쥐 꼴이 되었다.
게다가 누군가가 김석균을 향해 손가락을 뻗으며 소리쳤다.
“저자가 김석균입니다.”
그러자 복면을 쓴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석균이파 조직원들이 김석균을 보호하겠다고 앞을 가로막았다.
그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복면인이 손을 뿌리자 조직원들이 이유도 없이 벌러덩 나자빠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복면인이 10m가 넘는 거리를 단숨에 도약해서 김석균 앞에 착지했다.
이건 뛰는 게 아니라 나는 수준이었다. 저 정도면 올림픽에서 멀리뛰기, 높이뛰기 모두 세계신기록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석균의 생각은 거기에서 멈추었다. 복면인이 코앞에 착지하자마자 손을 뻗어서 목을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억!”
그것이 김석균이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김석균이 가물가물 눈을 떴다.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우웁! 우웁!”
입에 재갈이 물려있었다. 온몸도 꽁꽁 묶여있었다.
당혹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창고였다. 동생 김상균과 아포카를 비롯해서 석균이파의 핵심 일곱 명이 붙잡혀있었다.
“우웁! 우웁!”
김석균이 소리를 내서 조직원들을 불렀다. 그러자 하나둘 정신을 차리며 호응해주었다.
하지만 다들 입이 막혀있어서 제대로 소리는 내지 못했다.
김석균이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씨발, 일이 제대로 꼬였네.’
하지만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간밤의 일이었다.
‘그 새끼는 대체 누구였지?’
검은 복면을 뒤집어쓴 사내.
마치 싸움의 신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움직임이었다. 다시 맞붙는다고 해도 절대 이길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아! 이렇게 끝나는 건가?’
잠시 후. 창고 문이 열리면서 다섯 사람이 들어왔다.
눈에 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마태수를 비롯한 불사파의 핵심 조직원들이었다.
그리고 한 명은 검은 복면을 뒤집어쓴 사내였다. 간밤에 믿기지 않는 능력을 보여준 자였다.
‘불사파가 저런 엄청난 자를 채용했다니.’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마태수를 비롯한 조직원들이 복면의 사내를 마치 주인 섬기듯 했다. 깍듯이 고개를 숙이는 사이 복면의 사내가 하나뿐인 의자에 편안하게 앉았다.
<< 시작하라. >>
공간을 울리는 것 같은 신비로운 목소리였다. 울림이 너무 심해서 목소리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자 마태수가 허리를 깊이 숙이며 대답했다.
“예, 주군!”
김석균의 머릿속은 자꾸만 더 혼란스러워졌다.
‘씨발, 얘기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저 새끼는 대체 누구야?’
그런데 갈수록 태산이었다. 김석균에게 다가오더니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요구를 했다.
“김석균. 선택해라. 우리 광명회에 들어와서 나와 함께 주군을 섬기겠나? 아니면 이대로 인생 끝내겠나?”
‘광명회? 주군을 섬겨? 이게 무슨 소리지? 사이비종교도 아닌 것 같고.’
하지만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대답이 없자 마태수가 손에 들고 있던 송곳으로 김석균의 허벅지를 찔렀기 때문이다.
“우우욱!”
그것이 시작이었다. 버려진 창고 안에서 김석균의 비명소리가 한동안 이어져야만 했다.
일주일 후.
마태수와 김석균이 서유림을 향해 나란히 머리를 조아렸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서유림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석균은 온몸의 상처가 말끔히 치료된 상태였다. 아리안이 만든 ‘물쇼(?)’도 이미 구경했다.
궁금했던 것도 풀렸다. 서유림이 손을 뿌리자 여러 조직원들이 한꺼번에 나자빠졌던 일이다.
알고 보니 물방울을 암기처럼 뿌리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정말이지 인간 같지가 않았다.
때문에 마태수 못지않게 서유림에게 복종하고 있었다.
<< 마태수가 대장로고 김석균은 일장로다. 김석균은 마태수의 말이 곧 내 말이라고 생각하고 따르라. >>
“예, 주군.”
<< 다음으로 어느 조직을 접수하는 게 좋겠나? >>
서유림이 묻자 마태수가 마치 미리 생각이라도 해두었다는 것처럼 곧바로 대답했다.
“한방파가 적당할 겁니다. 제가 놈들의 소굴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방파라면 채희라가 보여준 서류철에서 본 기억이 있다. 정령 아리안 덕분에 기억력이 좋아져서 조직의 규모는 물론이고 어떤 일로 자금을 확보하는지도 정확히 기억났다.
조직도 제법 크고 불사파나 석균이파 못지않은 악질들이었다.
서유림이 딱 원하는 그런 조직이었다.
<< 좋다! 대장로가 맡아서 계획을 세워보도록. 1장로는 대장로의 일을 물심양면 돕도록 해라. >>
“예, 주군.”
대답하는 마태수의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누구보다도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는 충신의 모습이었다. 아니면 사이비종교에 흠뻑 빠진 맹신도의 모습이거나.
서유림이 그 모습을 보며 복면 안에서 피식 웃었다. 마태수의 속이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른 척했다. 오히려 그게 서유림이 바라던 바이니까.
서유림이 마태수를 칭찬해주었다.
<< 대장로는 참으로 믿음직스럽군! 그대의 충성은 언젠가 반드시 보상받을 것이다. >>
“감사합니다, 주군!”
사흘 후 깊은 밤.
서울시 외곽에 마련된 기획부동산 사무실.
하지만 이곳이 부동산 사무실로 사용되는 것은 낮뿐이었다. 밤이 되자 순식간에 상습도박장으로 탈바꿈했다. 사무실 안쪽으로도 제법 넓은 방이 여러 개 마련되어있었다.
방마다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너무 매워서 눈을 뜨는 것조차도 힘들 정도다.
그 안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도박을 하고 있었다.
사무실도 마찬가지였다. 여섯 사람이 재미삼아 소소하게 1만 원 하프 배팅으로 포커를 치고 있었다.
한방파 핵심 조직원들이었다. 보스 서한길을 비롯해 서열 1위부터 4위까지가 모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낯선 자들이 들이닥쳤다. 다들 얼굴에 검은 복면을 뒤집어쓰고 손에는 쇠파이프 등의 흉기를 들고 있었다.
“뭐 하는 새끼들이야?”
한방파 조직원들이 총동원되어서 방어했다.
하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몇몇 사람의 실력이 지나칠 정도로 뛰어났고, 특히 한 사람은 ‘저게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대단했다.
순식간에 서한길을 비롯한 핵심 조직원이 납치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며칠 후, 서한길을 비롯한 핵심 조직원이 다시 나타났다.
서한길은 온몸이 만신창이로 변해있었다.
다시 돌아온 서한길의 첫 마디는 이랬다.
“우리는 지금부터 광명회로 들어간다.”
“예? 그게 무슨······?”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