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내 눈엔 다 보여 (1)
“그래도 식구인데······.”
<< 분명히 말하는데 불사파는 이제 없다. 나를 따르는 자와 따르지 않는 자로만 구분될 것이다. 나를 따르는 길은 배고픈 길이 될 것이다. 그 길이 싫은 자는 떠나야 할 것이다. >>
이 정도면 명쾌한 답이 되었겠지?
물론 따르기 힘들 것이다. 힘이건 권력이건 돈이건 한번 움켜쥔 것은 놓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유림에게 접수된 순간부터는 불법적인 일은 절대 할 수 없을 테니까.
서유림 몰래 한다고?
후훗, 하위정령을 침투시켜놓은 이상 서유림 몰래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건 웬만한 상황이나 감정까지도 모두 읽을 수 있을 테니까.
서유림이 이번에는 나머지 조직원들을 바라보았다.
<< 너희들은 이놈의 말을 잘 따라라. 이놈의 말이 곧 나의 명령이다. 알겠나? >>
“우웁!”
나머지 놈들이 고개를 숙여서 자신의 뜻을 이야기했다.
<<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라. 그러면 곧 너희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
서유림이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복면을 쓴 사내들이 지하창고로 들어왔다.
마태수 등의 눈을 가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보자기를 뒤집어씌웠다. 그리고는 승합차에 태워서 한참을 이동하다가 불사파 본거지 인근에서 내려주었다.
잠시 후, 불사파 조직원들이 찾아와서 마태수 등을 구해주었다.
마태수 일당은 그제야 바깥세상을 볼 수 있었다.
시각을 확인해보니 자정을 넘은 깊은 밤이었다.
마태수 등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씨발, 살다 살다 별 해괴한 경험을 다 해보네.’
이른 아침.
한상민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평소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대포폰이었다.
전화를 걸자 상대방에서 재깍 받았다.
- 예, 실장님.
“조만간 밀가루 한 포대 수입하기로 했어. 수입하자마자 곧바로 뿌릴 수 있도록 판매선 확보해놔.”
-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침 전화 드리려고 했었는데······ 불사파 조직원들이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한상민이 조금은 석연찮은 표정을 했다.
“무사히?”
- 예. 오늘 새벽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불러서 조사해볼까요?
한상민이 잠시 고민했다. 어딘가 모르게 누군가가 아래쪽을 들쑤시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이런 때는 그냥 조용히 엎드려있는 게 상책이긴 한데.
하지만 조만간 큰일을 앞두고 있지 않은가? 석연찮은 구석을 남겨두는 것보다는 전후사정을 확실하게 알아두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쪽도 저쪽처럼 들쑤시고 다녀서는 안 될 것이다.
“조사해봐. 어떤 새끼들의 소행인지, 며칠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신 불사파도 모르게 은밀하게 진행해.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노출되면 절대 안 돼. 알겠어?”
-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거 참 이상하네!”
마태수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폴짝폴짝 뛰어도 보고 멀쩡한 벽을 주먹을 툭툭 쳐보기도 했다.
확실히 몸이 달라졌다. 아니, 달라지고 있었다. 매일매일. 그것도 좋은 방향으로.
힘도 세지고, 주먹도 세지고, 운동신경도 좋아졌다. 눈도 좋아지고 온몸에 활력도 넘쳤다. 움직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해질 지경이었다.
‘주군’ 덕분이었다.
대체 무슨 요상한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예 선언을 한 이후로 몸이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이렇게 좋아진 몸을 그냥 놀려서야 되나?
그렇지 않아도 전부터 점찍어둔 아가씨가 하나 있었다. 며칠 전에 노래방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찾아온 여대생이다.
안예인.
실제로 여대생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몸매도 좋고 얼굴도 제법 예뻤다. 게다가 새로운 아가씨가 아닌가? 남자는 늘 새로운 여자에 흥분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 아가씨가 좀처럼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 돈을 주겠다는데도 한사코 옷을 벗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든지 한번 걸리기만 하라는 식으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을 그 날로 만들 것이다.
“가서 예인이 데리고 와.”
“예, 형님.”
잠시 후, 안예인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수하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고 좁은 사무실에는 안예인과 마태수 둘만 남았다.
안예인은 퉁명한 표정이었다. 마태수가 자신을 부른 이유야 빤하니까.
그런데도 두려움이 아닌 퉁명함을 보인다는 것은 안예인도 보통 여자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마태수가 안예인에게 5만 원짜리 네 장을 내밀었다.
“한번 하자.”
“저는 몸은 안 판다니까요.”
마태수가 피식 웃으며 지갑을 열었다. 5만 원짜리 두 장을 더 꺼내서 내밀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안예인의 차가운 목소리뿐이었다.
“백만 원을 줘도 안 한다니까요.”
역시 돈으로는 안 되는군.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니까.
“알았어, 알았어. 참 까다롭네. 그럼 잠깐 얘기 상대나 해줘.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비용은 지불할게.”
마태수가 30만 원을 집어넣고, 대신 3만 원을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진열장에서 적포도주를 꺼내서 와인 잔에 따랐다.
안예인의 잔에는 슬쩍 가루약을 넣었다. 하지만 마태수의 몸으로 가리고 있어서 안예인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마태수가 안예인에게 와인잔을 내밀었다. 탁자 위에 놓았던 3만원은 사라지고 없었다. 안예인이 챙긴 모양이다.
“일은 할만 해?”
“할만 해요.”
안예인이 와인잔을 받았다. 하지만 입에 대지는 않았다.
“힘들게 하는 손님은 없어?”
“많지 않아요.”
안예인이 따박따박 대답해주었다. 하지만 와인잔에는 여전히 입술도 대지 않았다.
마태수가 조급증을 느낄 정도였다.
저걸 마셔야 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데.
“마셔. 이래봬도 고급 와인이야.”
그러자 안예인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술에 약 탄 거 다 알거든요. 정말 이러지 마세요. 사장님 정도면 저보다 예쁜 애들 얼마든지 품을 수 있잖아요. 전 정말 몸 팔려고 온 것 아니라니까요.”
마태수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웬만하면 좋게 끝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럴 때는 방법이 있지. 여자는 남자의 완력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법이거든.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정복한 여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런 XX년이. 자꾸 성질 건들래? 왜 좋게 말하면 안 듣는 거야?”
“꺄악!”
마태수에게 손찌검을 당한 안예인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한번 손맛을 본 마태수는 손찌검을 멈추지 않았다. 한번 손을 댈 때 확실하게 대야 다음부터 고분고분하게 굴 테니까.
그게 마태수의 방식이었다.
“이런 썅X이.”
“훅. 훅. 훅.”
서유림이 스텝을 밟으며 펀치를 뻗었다. 하지만 글러브만 낀 가벼운 손이다 보니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다. 한 시간을 쉬지 않고 연습했는데도 호흡이 크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역시 30kg 덤벨을 쥐고 해야 하는 맛이 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벌써 1시간이 지났다.
잠시 휴식도 취할 겸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마태수를 감시하기 위해서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1시간마다 30초 정도씩 시간을 내서 마태수를 감시하고 있었다. 언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지금 당장은 조금 귀찮지만, 며칠만 이런 식으로 고생하면 다음부터는 편해질 것이다.
마태수는 서유림 생각을 자주 하는 듯했다.
물론 좋은 감정은 아니었다. 두려움, 분노, 원한 등의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킨 것 같았다.
그런 감정이야 얼마든지 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상상은 자유니까. 어차피 언젠가는 처리될 놈. 그 전까지 상상이라도 실컷 하게 내버려둘 계획이다.
하지만 범죄는 안 된다.
상상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지만, 범죄는 다르니까.
물론 불사파 조직원 모두를 감시할 수는 없다. 조직원 중에는 몰래몰래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겠지.
그런 것은 어쩔 수 없이 무시해야 한다. 막말로 서유림이 진짜 신도 아닌데 조직원들을 어떻게 일일이 다 감시를 해?
그래도 이 일에 엄청난 만족감을 느꼈다. 불사파가 저지를 범죄의 절반만 줄여도, 아니 10%만 줄여도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니까.
막말로 나라에서도 못 한 일을 서유림이 한 거잖아. 이 정도면 대통령이 표창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냐?
눈을 감은 서유림은 정령 아리안을 시켜서 마태수의 상황을 감시하게 했다.
순간 서유림이 몸을 움찔했다. 마태수가 하고 있는 짓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놈, 여자를 구타하고 있군.’
마음에는 여자를 품고 싶은 욕정이 가득했다. 그게 뜻대로 안 되니 완력으로 여자를 제압하고 있는 듯했다.
하여튼 개 버릇 남 못 준다니까.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준비해둔 게 있었다.
‘아리안! 마태수에게 따끔한 맛 좀 보여주도록 해.’
“썅! 가만히 못 있어?”
“제발 그러지 마세요. 아악.”
다시 손찌검을 받은 안예인이 소파에 쓰러졌다.
마태수가 그런 안예인의 치마를 들어 올리고 팬티를 내렸다. 가랑이 사이를 다급히 파고들었다. 마태수의 바지는 이미 반쯤 벗겨져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마태수의 온몸에서 갑자기 한기가 느껴졌다. 끔찍한 고통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강력한 한기였다.
절로 비명이 새어나왔다.
“으아악!”
끔찍한 한기는 3초 정도 지속되다가 멈추었다.
그러는 사이 안예인이 마태수를 밀어내고 저만큼 도망가 있었다.
문이 잠겨있어서 사무실 밖으로는 달아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마태수을 경계할 뿐이었다.
하지만 마태수는 안예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잠깐의 한기 때문에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이게 대체 뭐지?’
그런데 똑같은 한기가 또다시 느껴졌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욱 지독한 한기였다.
“으아악!”
다시 3초 정도 지속되고 한기가 사라졌다.
또다시 한기가 찾아올까봐 두려움이 느껴졌다.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때 머릿속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머릿속에 들어와서 ‘그러면 죽는다.’라고 겁을 주는 것 같았다.
게다가 휴대폰으로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머릿속의 누군가가 ‘휴대폰을 확인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 상황이 대체 뭐지?’
마태수가 바짝 긴장한 상태로 휴대폰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발신자는 ‘주군’이었다.
주군이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내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 벌써 잊었나? 또다시 한기를 느끼기 싫다면 당장 여자를 돌려보내라.]
마태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씨발, 뭐야?”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혹시 이 방에 감시카메라도 설치했나?
마태수가 다급히 방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감시카메라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면 수하 중에 누군가가 주군에게 일러바치기라도 한 것일까?
설령 그랬다고 해도 말이 안 된다. 그 지독한 한기는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문자를 보니 분명 주군이 가한 체벌이었다.
‘정말 신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건가?’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마태수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얼른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다.
“빨리 꺼져. 내 눈에서 사라져, 씨발!”
안예인이 얼른 사무실 밖으로 달아났다.
밖에서 대기하던 수하들이 안예인과 마태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씨발, 뭘 봐?”
마태수가 사무실 문을 거칠게 닫았다.
그런데 휴대폰에서 문자 알림 소리가 또 들려왔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마태수가 깜짝 놀라서 움찔했다.
얼른 휴대폰을 열어보았다.
[보름 안에 10억 원을 마련해서 가져와라. 명을 거역하면 한기에 몸을 떨다가 죽게 될 것이다.]
마태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런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