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당신은 누구? (3)
창고 문이 열리자 놈들이 반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웁! 웁!”
미리 잡아두었던 두 놈을 포함해서 모두 다섯 놈이었다.
서유림은 그중 보스인 마태수만 상대했다.
서유림이 직접 마태수의 눈가리개를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서유림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거칠거칠하면서도 거대한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것 같았다. 목소리가 크지 않는데도 창고 전체가 우렁우렁 울리는 듯했다.
마치 사람이 아닌 귀신의 목소리 같았다.
<< 필로폰을 취급한다고 들었다. 전부 어디에 숨겨두었지? 대답할 생각이 있으면 가만히 고개만 끄덕여라. >>
목소리 변조기 따위의 기계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정령 아리안의 힘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여자 같은 목소리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서유림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울림이 강한 목소리가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물론 마태수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마약의 위치를 이야기하라는 것은 마태수의 모든 것을 밑바닥까지 다 드러내라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마태수는 대답은커녕 오히려 서유림을 도발하듯 맹렬한 눈빛으로 응답했다. 부리부리한 눈빛이 ‘네놈이 감히’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물론 예상했던 일이다. 단번에 답이 나올 리가 없지.
그래. 얼마나 버티나 보자.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이건 기세 싸움이니까. 마태수의 기를 완전히 죽여 놔야 다음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죽이지만 않으면 되잖아. 과감해지자, 유림아!
서유림이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대로 발목을 걷어찼다. 힘이 제대로 실린 발차기였다.
우두둑-
발목 뼈 부러지는 소리가 끔찍하게 들려왔다.
“우우욱!”
고통에 찬 비명소리.
서유림의 얼굴도 살짝 일그러졌다.
정령계에서 마물을 그렇게 많이 칼로 찌르고 죽여 보았지만, 이것은 느낌이 전혀 달랐다. 같은 사람을, 그것도 반항하지 못한 상태의 사람을 이런 식으로 걷어차서 뼈를 부러뜨리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와! 죄책감마저 살짝 느껴진다. 마태수가 제아무리 죽어 마땅한 범죄자라고 해도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냐, 마음 약해지면 안 돼. 그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마태수가 어떤 놈인지 잊었어? 저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았겠어? 폭력으로, 마약으로.
이런 놈은 더 혼이 나야 한다니까.
물론 마태수는 서유림의 표정을 전혀 볼 수 없었다.
<< 어디 있지? >>
서유림의 목소리는 차가울 정도로 차분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발길질은 거칠었다.
“우욱!”
역시 뭐든지 처음만 힘든 법이다. 처음을 눈 딱 감고 해내자 두 번째, 세 번째는 일도 아니었다.
서유림은 만족스러운 대답과 눈빛이 나올 때까지 같은 질문과 같은 발길질을 계속했다.
그럴 때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우우욱!”
<< 굳이 네가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아직도 물어볼 사람은 많으니까. 나도 이참에 기분이나 실컷 풀어야겠다. 어디에 숨겨놓았지? >>
“······우욱!!”
발길질을 시작하고 겨우 10분도 넘기지 않았는데 마태수의 신음소리가 벌써부터 약해지는 듯했다.
하긴, 발길질을 할 때마다 뼈가 부러졌으니 짧은 시간에 녹초가 되는 게 당연했다. 발목도 부러지고, 정강이도 부러지고, 팔뚝도 부러지고, 갈비뼈도 부러졌다.
말 그대로 잘근잘근 씹어대듯 온몸을 걷어찼다. 창고 전체가 우렁우렁 울리는 신비스러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면서.
그것도 똑같은 질문을.
<< 어디 있지? >>
“우욱. 욱. 욱!”
그제야 마태수가 고개를 사정없이 끄덕였다.
멍청한 놈. 결국은 그렇게 굴복할 거면서 왜 그렇게 개고생을 했어?
마태수는 온몸에 상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이젠 더 걷어찰 곳을 찾기도 힘들 정도로.
물론 나야 덕분에 계획했던 일을 더 편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마태수 뼈 부러뜨려서 고생시킨 것과 계획했던 일을 편하게 진행하는 게 무슨 관계냐고?
후훗, 그건 조금 지나보면 알게 돼.
<< 말해봐라. >>
서유림이 마태수의 재갈을 열어주었다.
“제 별장 지하금고에 있습니다.”
<< 별장에 누가 있나? >>
“평소에는 비어있습니다.”
<< 확인해서 거짓말이면 너는 죽는 거다. >>
서유림이 곧장 도상국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울림이 강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도상국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기 때문에 조금은 의아해하면서도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서유림은 마태수에게 주소와 출입문 비밀번호, 금고 비밀번호를 받아서 그대로 전달해주었다.
<< 사람 보내서 확인해봐. >>
다시 재갈을 물리고 의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놈들이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듯 ‘웁. 웁’하며 소리를 냈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한 시간쯤 후에 도상국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 찾았습니다. 필로폰이 맞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할까요? 설마 이걸······?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설마 내가 마약장사라도 할까봐 그래?
<< 다 태워버려. 하나도 남김없이. >>
- 아, 예. 알겠습니다.
도상국의 목소리에서 어딘가 모르게 반가움이 느껴졌다.
설마하니 도상국이 필로폰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진 않겠지.
서유림이 다시 마태수의 재갈을 풀어주었다.
<< 조직의 운영자금은 어디에 있지? >>
마태수는 고통으로 신음하면서도 낙담한 표정이었다. 이를 악물고 버텨봤자 고통만 받을 뿐 결과는 같을 것임을 알고 있는 듯했다.
“일부는 금고에, 일부는 통장에 있습니다.”
<< 금고는 어디에 있고, 통장은 어디에 있지? >>
서유림은 마태수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면서 조직의 운영자금을 모조리 찾아내도록 했다.
물론 100%는 아닐 것이다. 마태수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니까.
그래도 꽤 많은 금액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귀금속에 통장의 돈까지 합하면 동산만 10억 원이 넘었고, 부동산만 해도 30억 원 가까이 되었다.
많이도 모아놓았군.
다른 핵심 조직원들도 마태수의 재산이 그렇게까지 많은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다들 깜짝 놀라는 표정을 했다.
서유림은 모른 척하며 모든 동산을 압수하고 부동산도 관련 서류를 모조리 압수하도록 했다. 인감도장까지.
그러다 보니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긴 시간을 투자한 보람은 충분히 있었다.
마태수는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전 재산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니 삶의 의욕이 사라진 모양이다.
서유림이 피식 웃었다.
<< 후훗, 마약도 다 태워 없어지고 재산도 빼앗기니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지? 내가 깔끔하게 보내줄까? >>
서유림의 말이 진심으로 들렸던 모양이다. 미태수가 깜짝 놀라서 얼른 고개를 들었다.
“아닙니다. 사, 살려주세요.”
역시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좋은 모양이다.
<< 정말 살고 싶은가? 그러면 방법을 하나 가르쳐줄까? >>
“예. 살려주세요.”
마태수가 애원하듯 대답했다. 온몸의 뼈가 마디마디 부러지고 나니 정말 죽을 것만 같았겠지.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이제 하위정령으로 올가미만 씌우면 된다.
<< 네가 살 방법은 내 노예가 되는 것뿐이다. 오직 내 명령에만 따라야 하고, 내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겠나? >>
마태수가 이번에는 잠깐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끄덕였다.
“살려만 주십시오.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빤한 거짓말이다. 일단 이 위기만 넘기자는 속셈이겠지. 그런 다음 철저하게 복수하겠다는 계획이겠지.
상관없다. 어차피 넌 잠깐 쓰고 버릴 놈이니까.
<< 좋다. 네가 나의 노예가 되기로 맹세하였으니 너에게 새로운 삶을 주겠다. 네게 전보다 강한 힘을 줄 테니 앞으로 모든 힘을 나를 위해서만 쓰도록 해라.
만약 나를 배신한다면 죽음보다도 끔찍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
서유림이 마치 축복이라도 내리듯 마태수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순간 차가운 기운이 마태수의 머리로 넘어갔다. 마태수가 깜짝 놀라서 몸을 움찔할 정도였다.
서유림은 모른 체했다.
“그럼 이제 풀어주세요.”
서유림이 피식 웃었다.
아직은 아니다. 마태수에게 알아내야 할 것이 남아있다.
물론 지금 물어도 되지만, 스스로 느끼고 생각할 시간을 준 후에 묻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그걸 느끼는 데에는 몇 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 네 몸이 다 나은 후에 풀어주겠다. 며칠만 기다려라. >>
그리고는 그대로 지하창고를 빠져나왔다.
서유림의 등 뒤로 마태수의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야, 이 사기꾼 새끼야!”
후훗, 내일 찾아왔을 때도 그 말을 할 수 있는지 보자.
아니, 굳이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벌써부터 몸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을 테니까.
저것 봐. 마태수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을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온몸의 뼈가 부러져서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었는데, 정령을 침투시키자 그 힘 덕분에 그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졌을 테니까.
그래도 시간을 조금 끌 필요가 있다.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줘야지.
다음날 아침.
서유림이 다시 별장을 찾아갔다. 별장은 여전히 텅텅 비어있었다. 불사파 핵심들과 서유림뿐이었다.
서유림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검은색 사제복에 복면으로 전신을 모두 가린 상태였다.
서유림이 지하창고로 내려갔다. 손에는 사기로 만들어진 작고 예쁘장한 주전자 하나가 들려져 있었다. 산삼주 같은 고급술이나 보이차 같은 고급 차를 담아서 마시면 어울릴 것 같은 주전자였다.
불사파 일당들은 다들 여전히 꽁꽁 묶인 상태였다.
몰골이 무척 초췌해보였다.
하긴, 24시간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쫄쫄 굶었으니 허기 때문에라도 지쳤을 것이다.
하지만 불사파 보스인 마태수만큼은 쌩쌩했다. 서유림을 바라보는 눈빛도 초롱초롱했다.
마태수의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뒤엉켜있었다. 말이 안 되는 일을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있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오늘이 지나면 그 혼란스러움은 사라질 것이다. 더욱 많은 증거들을 경험하게 될 테니까.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서유림이 마태수 앞에 섰다.
<< 밤새 나의 힘을 느껴보았나? >>
“당신은······ 누구십니까?”
마태수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을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겠지. 온몸의 뼈가 수십 군데도 넘게 부러진 것 같은데 밤새 아무런 통증도 없었으니.
정확히는 서유림이 노예로 삼겠다고 선언한 후부터 말이다.
그런데 서유림이 느닷없이 마태수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악!”
정령이 통증을 막아준다고 하지만, 지금 막 뼈가 부러지는 통증까지 막아주지는 못한다.
그나마도 서유림의 의지로 컨트롤할 수 있다. 서유림이 아리안을 시켜서 하위정령에게 지시하면 통증 제어를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마태수가 다시 고통으로 신음했다.
“끄으으······ 왜······?”
그걸 몰라서 물어?
<< 너는 나의 노예고, 나는 너의 주인이다. 그런데 당신이라고? 다시 불러봐라. >>
“주······ 주군.”
마태수가 마지못해서 주군이라고 불러주었다.
어쩔 수 없었다. 어제처럼 원하는 말이 나올 때까지 또다시 온몸의 뼈를 잘근잘근 부숴댈 테니까. 어차피 굴복할 거라면 조금이라도 덜 고통 받고 굴복하는 게 낫지.
주군이라고 부르자마자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심으로는 ‘주인님’이라는 호칭을 원하면 어쩌나 걱정까지 했었다.
<< 앞으로 쭉 그렇게 부르도록 해라. 알겠나? >>
“예, 주군.”
<< 그러고 보니 밤새 아무것도 먹지 못했겠군. 배가 고프냐? >>
“예.”
<< 그럼 일단 물이라도 마셔라. 음식은 다른 이들을 시켜 제공하겠다. >>
서유림이 눈짓으로 주전자를 슬쩍 가리켰다.
거기에 담겨있는 게 술이나 차가 아닌 물이였던 모양이다.
마태수는 갈증이 나서 혓바닥이 갈라질 정도였다. 물이 너무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물을 마시기는커녕 오히려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했다. 물주전자는 마태수 옆이 아닌 서유림의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수로부터 2m 이상 떨어진 곳이었다.
바로 코앞에 있어도 온몸이 묶여서 마실 수 없는 상황인데 2m나 떨어져있는 주전자의 물을 어찌 마시란 말인가? 이건 물을 마시라는 게 아니라 마태수를 놀려먹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물주전자 주둥이에서 가느다란 물기둥이 슬그머니 솟아올랐다. 그것도 모자라서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꿈틀 움직이며 마태수의 입을 향해 날아왔다.
거리가 무려 2m가 넘었는데, 물줄기가 아무런 도구도 없이 맨몸으로 그 먼 거리를 날아오는 것이다.
<< 입을 벌려라. >>
마태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뭔가를 생각할 정신도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입을 벌렸다.
그러자 물이 정확히 마태수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그것도 아주 적당량만.
마태수는 물을 꿀꺽꿀꺽 마시면서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우주의 무중력 상태라면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게 대체 뭐야? 마술도 아니고 마법도 아니고. 저 사람은 누구야? 아니, 사람이 맞기는 한 거야?’
왠지 모르게 사람 같지가 않았다. 뭔가 신비로운 존재 같았다.
하긴, 지금까지 보여준 것들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람의 것 같지 않은 울림이 강한 목소리도 신비감을 더욱 높여주었다.
<< 다 마셨나? >>
“네. 그런데······ 주군.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마태수가 조심스럽게 불러보았다. ‘주군’이라는 단어가 너무 어색해서 입에 잘 달라붙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 뭐냐? >>
“당신······ 아니, 주군은······ 인간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