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100화 (100/196)

# 100

당신은 누구? (1)

월요일 늦은 밤.

“오빠, 여기야.”

채희라가 공항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유림이 얼른 차량으로 다가갔다.

“왜 이렇게 늦었어?”

원래는 일요일 경기를 마치자마자 귀국하려고 했다. 그런데 중국의 여러 방송매체와 광고회사 등에서 갑자기 바짓단을 잡았다.

중화TV에서는 비행기 티켓까지 새로 구해주겠다며 출연을 요청했다.

사실 일찍 귀국해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중국에 오래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특별한 이유를 만들어주니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이렇게 늦어진 것이다.

물론 채희라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수시로 통화하며 일정을 공유했으니까. 다만 서유림의 입으로 직접 들어보고 싶었을 뿐이다.

채희라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와! 그럼 벌써 스타 된 거네.”

“스타는 무슨. 그냥 반짝 인지도를 얻은 것뿐이지.”

말 그대로 반짝이다. 아마 1년은커녕 MAN FC 토너먼트가 끝나자마자 사그라질 거품 같은 인지도일 것이다.

왜냐고?

단지 YJY 덕을 본 것뿐이잖아.

그 인지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유림만의 색깔을 보여줘야 한다. 방송사에서 YJY를 데뷔시켜준 서유림이 아니라 그냥 서유림 본인을 찾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아직 요원한 일이었다.

그러니 호들갑 떨 일이 아니었다.

영월 팬션은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잡아두었다. 오늘은 대충 근처 모텔에서 보내면 되겠지.

사실 그게 더 마음이 편하다. 팬션에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긴장의 연속이 될 테니까.

서울 외곽의 모텔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마음껏 회포를 풀었다.

다음날. 강원도 영월.

서유림은 채희라와 함께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드라이브도 즐기고, 산책도 즐기고, 낚시도 즐겼다.

그리고 다음날인 수요일에는 아예 자리를 잡고 낚시만 즐겼다.

낚시의 재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거사를 치르기 위해서였다. 한 곳에 머물러줘야 놈들이 냄새를 맡고 찾아올 것 아닌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해가 뉘엿뉘엿 지는 오후였다. 출출해서 간식으로 라면을 끓여먹으려고 하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와서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어이, 아저씨. 누가 여기에서 낚시하래?”

고개를 돌려보니 여덟 명이었다.

조금 더 멀리까지 시야를 넓혀보니 봉고차가 두 대나 와있었다. 그렇다면 저쪽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일이 뜻대로 안 풀리면 차량에서 기다리던 놈들까지 합세하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서유림의 양손에는 1.5m쯤 되는 쇠막대기가 하나씩 들려져 있으니까.

“누구세요?”

“그건 네가 알 것 없고. 그런데 이 새끼 눈빛이 마음에 안 드네.”

역시 이유 따위는 필요 없었다. 놈들이 다짜고짜 덤벼들었다. 두터운 외투 안에 숨겨두었던 흉기들을 꺼내서 휘둘렀다.

서유림도 바라던 바였다.

“희라는 피해.”

채희라가 재빨리 텐트 안으로 숨었다.

그러는 사이 서유림도 쇠막대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서유림의 육체능력은 모두 일반인의 다섯 배가량이었다. 감각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능력이라는 것이 단순한 수치가 전부가 아니다. 그것을 세밀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악어가 강력한 턱의 힘으로 새끼를 안전하게 물어 나를 수 있는 것처럼.

서유림은 강한 육체능력을 얻고도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 목적 중 하나가 바로 그런 세밀한 컨트롤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이런 상황을 위해서.

서유림은 보통사람의 1.5배 정도 완력만 사용했다. 너무 강한 힘을 사용하면 자칫 필요 이상의 부상자를 만들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뜻하지 않게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머리 쪽은 피했다. 자칫 머리라도 맞고 죽게 되면 일이 복잡하게 꼬일 수 있으니까.

대신 민첩은 최대한의 능력을 모두 사용했다.

뚜다닥! 따닥!

“으악!”

쇠막대기와 쇠막대기가 부딪히는 소리, 비명소리, 쓰러지는 소리가 난잡하게 뒤섞였다.

하지만 그런 소란은 짧았다. 싸움이 너무도 싱겁게 끝난 것이다.

싸움이 시작되고 불과 30초도 지나지 않아서 여덟 명 모두가 땅바닥에 나뒹구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자 차량에서 대기하던 놈들이 뒤늦게 합세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땅바닥에 나뒹구는 놈들의 머릿수만 늘어날 뿐이었다.

저쪽에서 대기하던 도상국이 청년들을 이끌고 달려오다가 서유림의 손짓을 보고는 차량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제야 채희라가 텐트 밖으로 나왔다.

“어머! 오빠 다쳤어?”

물론 다쳤다. 20명이 넘는 사내들과 혼자 싸웠는데, 그것도 다들 이런 싸움에 이골이 난 놈들일 텐데, 게다가 쇠몽둥이 같은 흉기를 든 놈들인데 제아무리 서유림이라고 한들 어떻게 다치지 않고 상대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래봐야 멍이 들거나 살갗이 조금 긁히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루나 이틀이면 흔적도 없이 나을 것이다.

“괜찮아. 그보다는 저놈들이 그나마 우두머리 같군.”

서유림이 인상이 험악한 청년 둘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차량에서 대기하다가 나중에 합류한 놈들인데, 다른 놈들을 향해 명령하던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

그중 한 놈은 실력도 제법 뛰어났다.

물론 서유림의 눈에는 그 놈이나 그 놈이나 도토리 키 재기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움직임이 가장 날렵한 놈이었다.

서유림이 차량으로 향했다. 도상국이 청년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승합차였다.

도상국이 차량 문을 열고 놈들을 인수받았다.

“잘 찍어놨지?”

“예, 형님. 이거 성능이 좋아서 제대로 찍혔습니다.”

그럼 됐다. 영상도 있고 녹음된 기록도 있으니 나중에 혹시 경찰서에 가게 될 일이 생긴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런 일 자체가 발생하지 않겠지만.

왜냐고?

이제부터 이놈들을 노예로 삼을 계획이니까.

서유림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다. 정확히는 서울시 외곽에 있는 별장이었다. 채희라의 스폰서가 소유주인데 마치 채희라의 것처럼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었다.

놈들은 별장 지하에 있는 창고에 감금되었다. 온몸이 묶이고 눈도 가려졌다. 그 상태에서 같은 질문을 계속 받기 시작했다.

질문 받는 사람은 동일했지만, 질문하는 사람은 시간마다 계속 바뀌었다. 서유림이 청년들을 시켜서 대신 질문하게 했으니까.

“누가 시킨 짓이냐?”

벌써 100번도 넘게 한 질문이다. 1박2일 동안 잠도 안 재우고 계속 같은 질문만 던졌으니까.

조폭들은 아마 넌덜머리가 났을 것이다. 지겨워서라도 대답했겠지.

하지만 정말로 모르는 듯했다. 계속 같은 대답만 반복하기도 지겨웠는지 애원까지 했다.

“차라리 다른 걸 물어주세요.”

그러자 질문의 내용이 살짝 바뀌었다.

“그럼 너희 본거지는 어디냐? 보스는 누구고?”

서유림과 채희라는 별장 2층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영월에서의 여유를 빼앗겼으니 별장에서라도 여유를 즐겨야지.

이따금 밖으로 나가서 산책도 즐겼다.

그러다가 드디어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서유림과 채희라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자 도상국이 얼른 다가와서 보고했다.

“형님, 놈들이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 그럼 함께 가볼까?”

함께 지하창고로 들어갔다.

놈들은 여전히 눈이 가려져있었다. 승합차에서 처음 눈이 가려진 후로 계속 저런 상태였다.

서유림이 비로소 직접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너희들 본거지가 어디라고?”

“강남 논현동의······.”

“조직원은 몇 명이나 돼?”

“대략 쉰 명쯤······.”

“생각보다 규모가 작네. 서열 1위부터 5위까지 불러. 어디를 가야 만날 수 있는지도 이야기하고.”

놈은 묻는 대로 술술 다 털어놓았다.

그런데 말하는 놈이 조직에서 서열 3위였다. 말하자면 실질적인 행동대장인 셈이었다. 실력도 조직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했다.

서유림도 놈들과 싸우면서 그런 느낌을 받긴 했다.

“거짓말이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너희를 죽이진 않아. 그냥 씨를 발라버릴 거야.”

놈들이 자신도 모르게 가랑이를 오므렸다.

채희라와 함께 다시 위층으로 올라왔다.

당장 놈들의 본거지를 급습하고 싶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섣불리 건들면 조직원 전체와 싸워야 한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 핵심들만 잡아와야 일이 쉽게 풀릴 것이다.

“희라가 핵심들이 있는 위치만 파악해줘. 어차피 핵심 몇 놈만 잡으면 되는 일이니까.”

“알았어, 오빠. 그건 나한테 맡겨.”

금요일.

서유림이 사무실로 출근했다.

서유림이 없는 동안에는 강철중이 창고 업무를 보았다. 창고업무 보조를 위해서 새롭게 채용된 이동준이 강철중을 도왔다.

사무실 분위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서유림이 사무실로 들어오는데도 다들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아직도 YJY 데뷔 사건 때문에 서유림을 왕따 시키는 듯했다.

윗선의 지시겠지. 그런 배신자를 반겨서는 안 된다고 말이야.

그런데 그거 알아? 나 왕따 시키면 나도 회사 왕따 시킨다는 것.

그렇지 않아도 뭔가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휴가지에게 그런 테러를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다면 그게 병신이지 사람이야?

물론 한상민도 명진식품도 ‘내가 그런 것 아닌데.’ 하고 발뺌하겠지.

하지만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아는 일이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겠어?

어떻게 보답해줄까 고민하다가 방법을 찾아냈다.

그렇지 않아도 권진아를 명진식품 구매팀으로 복귀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일과 병행해서 처리하면 될 것 같았다.

서유림은 출근하자마자 배기열 팀장에게 서류봉투 하나를 건넸다.

“수리해주십시오.”

“이게 뭔데요?”

“사직서입니다.”

배기열이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예? 사직서는 왜······?”

한동민도 마찬가지였다.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차마 서유림에게 대놓고 말은 걸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서유림에게 완전히 주눅이 든 듯했다.

그런데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팀장님 같으면 이런 분위기에서 회사 다니고 싶겠어?

“저 회사 그만두라고 왕따 시켰던 것 아닌가요? YJY를 데뷔시킨 배신자라고요. 그래서 그만두는 겁니다.”

“아니 그건······.”

그건 뭐? 윗선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그런 거라고?

그러면 당신이 당황할 것 없잖아. 그냥 윗선에 그렇게 보고만 하면 되잖아. 그러면 윗선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지.

물론 나를 붙잡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겠지. 어쩌면 명진식품 사장이 아니라 유진그룹 회장까지 나서서 말이야.

나 역시 정말로 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없어. 단지 받은 게 있으니 돌려줘야겠다는 생각뿐이지.

원하는 것도 얻고 말이야.

“자, 잠깐······. 이런 일은 그렇게 극단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내가 부장님께 보고드릴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요.”

그래. 처음부터 그렇게 나왔어야지.

팀장이 서유림의 사직서를 들고 얼른 사무실을 벗어났다.

한동민도 엉거주춤한 발걸음으로 팀장을 뒤따랐다.

서유림이 자리에 앉았다.

다른 팀원들이 서유림의 눈치를 보았다. 그 눈빛에 미안함이 가득했다.

그렇게 미안해할 것 없어. 당신들한테 원한 있는 것 아니니까. 윗선에서 시키는데 별 수 있었겠어?

이해한다니까.

서유림은 그냥 모른 체했다.

잠시 후, 서유림의 인터폰이 울렸다. 자재부장이 직접 전화한 듯했다.

“구매팀 서유림입니다.”

- 잠깐 나 좀 볼까?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자재부장이 나름대로 높은 자리인 것 같지만, 회사 차원에서 볼 때는 그저 중간관리자급밖에 안 되거든.

내가 원하는 조건 중 단 하나라도 결정할 권한이 없는 자리지.

그래도 앞으로 영영 안 보고 지낼 사이도 아니니 얼굴은 봐주자.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곧장 자재부장실로 들어갔다.

호출 목적은 빤했다. 사표 철회하라고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씨도 안 먹힐 이야기지. 아직 내가 뭘 원하는지 듣지도 않아놓고 일방적으로 그러는 게 어디 있어?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서유림이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타협의 여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결국 사안은 더욱 위로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표 한명진과 독대할 수 있었다. 구매부장과 자재팀장도 모두 한 자리에 있었다.

한명진은 서유림을 보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원하는 게 뭔가?”

역시 대표는 눈치가 빠르다니까. 이제야 조금 이야기가 통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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