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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친 잠재력-95화 (95/196)

# 95

천 냥보다 비싼 말 한 마디 (2)

반응을 보이고 싶어도 그럴 기력이 없는 모양이다.

“제 생명을 그만큼 나눠주면 된다더군요. 오늘 찾아와서 이렇게 손을 꼭 잡고 신께 기도를 하라는 겁니다.”

거짓말은 자꾸 하면 스스로 몸집을 불린다고 했다. 말이 안 되는 걸 되게 하려고 하다 보니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짓말이 커지는 거지.

그러기 전에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어차피 할 말은 다 했다. 중요한 건 나의 희생으로 당신이 더 살게 되었다는 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니까.

임채모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반응도 없었다.

기력도 약해진데다가 내 말이 믿기지도 않겠지.

하지만 곧 달라질 것이다.

서유림이 임채모의 두 손을 더욱 힘껏 잡았다.

“그래서 선생님께 제 삶 10년을 드리겠습니다. 신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부디 뜻하신 바를 꼭 이루십시오.”

임채모의 손에 이마를 대고 기도하듯 눈을 꼭 감았다.

그러자 서유림과 임채모의 맞잡은 손에서 서늘한 기운이 옮겨가는 게 느껴졌다.

바람의 속성을 지닌 하위정령이었다.

사실 물의 속성을 지닌 놈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머니께 선물한 놈이다. 사람의 몸에는 물의 정령이 훨씬 궁합이 잘 맞거든.

하위정령이 침투하자 임채모의 상태가 단숨에 달라졌다. 가쁘게 몰아쉬던 호흡이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바람의 속성을 지닌 정령이라서 호흡의 변화가 더욱 빨리 찾아온 듯했다.

임채모도 자신의 변화를 느낀 모양이다. 놀란 눈을 희번덕이며 서유림을 바라보았다.

서유림이 다시 한 번 임채모를 바라보았다.

서유림의 얼굴이 환해졌다.

“혹시 들으셨습니까?”

“뭘…… 말인가?”

임채모의 목소리도 조금 전보다 확연히 좋아진 게 느껴졌다. 조금 더 명확해졌다고 해야 할까?

서유림이 목소리를 더욱 낮추어 이야기했다.

“못 들으셨군요. 하지만 전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제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응답해줬습니다. 선생님. 부디 제 10년을 가치 있게 써주십시오.”

임채모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임채모의 상태가 시시각각 호전되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유림과 임채모 사이의 대화는 아무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워낙에 작게 이야기했으니까.

“그럼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밖에서 뵙겠습니다.”

말을 마친 서유림이 일어서 병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도상국이 놀라서 서유림을 바라보았다.

“벌써 가시려고요?”

“가야지. 선생님도 생각보다 건강하신데 뭐.”

“……예?”

도상국이 의아한 표정으로 임채모를 바라보았다.

임채모는 당황한 듯 연신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빠르게 회복되는 기력을 느끼고 있는 중이겠지.

“내가 보기에는 며칠 후면 퇴원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선생님 퇴원하시면 그때 함께 찾아뵙자고. 후훗.”

서유림이 활짝 웃으며 도상국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여주었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

새벽부터 서두른 탓인지 시각은 아직도 이른 아침이었다.

오늘은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중국에서 열리는 MAN FC 토너먼트 경기 때문에 내일까지 출장을 달아주어졌다.

그래봤자 경기가 일요일에 열려서 출장은 금요일과 월요일, 화요일 사흘뿐이지만.

‘가만, 아버지는 지금 어디 계시지? 벌써 나가셨을까?’

가만히 정신을 집중해보았다. 정령 아리안이 서유림의 마음을 읽고 하위정령 워리와의 교감을 시도했다.

그러자 정말로 아버지가 흐릿하게 느껴졌다. 어디에 계시는지는 물론이고 감정까지도 흐릿하게 느껴졌다.

‘집에 계시는군.’

아버지는 살짝 흥분상태였다. 물론 주체 못할 건강함 때문이겠지.

서유림이 곧장 집으로 향했다.

부모님이 이제 막 식사를 마치신 모양이다.

그런데 어쩐 일이시래? 아버지께서 설거지를 다 하시네.

싱크대 앞에 서계신 모습이 왠지 좀 어색하게 느껴진다.

“다녀왔습니다.”

“아들 왔어? 어제 시합하는 것 봤다.”

“어, 그래! 유림이 왔구나. 이대로 쭉 우승까지 가자.”

“당연히 그래야죠. 그런데 어머니 어디 편찮으세요?”

“괜찮아. 아침 먹은 게 걸렸나 보네.”

또 소화가 잘 안 되시는 모양이다.

하긴, 언제는 안 그러셨나?

어머니는 움직이는 종합병원이시다.

그렇다고 병원에 가셔야 할 정도로 어디 한 곳이 크게 아프신 건 아니다. 아프다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통증들이 온몸을 괴롭힌다고 해야 할까?

어제는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이명이 들린다고 하시고, 그제는 허리와 어깨가 뻐근하다 하시고, 또 그 전날에는 치아가 아파서 죽을 드신다고 그러시고, 오늘은 소화불량이시다.

그래서 종합병원에서 검진도 여러 차례 받아보았다.

그럴 때마다 그다지 큰 문제는 없다고 하니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아프긴 아픈데 버틸 만은 하시단다.

“점심 저녁 굶으면 쑥 내려갈 거야. 하루 이틀 그러는 것도 아닌데 뭐. 아들은 걱정하지 마.”

당연히 걱정하지 않는다. 이제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거든.

“알겠습니다.”

“아휴, 이제 출근해야겠네. 에고고, 다리야.”

어머니께서 약한 무릎관절을 손으로 짚고 몸을 일으키셨다. 저 약한 몸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러 다니시는 걸 보면 참 억척스럽다 싶은 때가 많았다.

이제 돈도 많이 벌었으니 제발 그만두라고 해도 도무지 말을 듣지 않으신다. 집에만 있으면 안 아프던 곳까지 아파진다며.

“아들, 아침은 먹었어?”

“예, 먹었어요.”

“잘했네. 난 다녀올게.”

“다녀오세요.”

서유림이 인사하면서 어머니를 살짝 안아드렸다.

어머니가 살짝 놀라면서도 기분 좋게 서유림을 안아주었다.

“우리 아들이 웬일이래? 이렇게 예쁜 짓도 다 하고? 엄마 아픈 게 쑥 내려가는 기분이네.”

아마 립서비스 정도로 그냥 해주시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딱 5초만 지나면 어머니의 말씀이 현실이 될 것이다.

서유림이 그 5초 동안 어머니를 계속 안아드렸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를 이렇게 안아드린 것도 무척 오랜만인 것 같다.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어머니가 기특하다는 듯 서유림의 넓은 등을 톡톡 다독여주었다.

그제야 서유림이 어머니를 놓아드렸다.

“그럼 다녀올게.”

어머니께서 조금은 서두는 몸짓으로 신발을 신으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멈칫하셨다.

“어머! 내 몸이…… 갑자기 왜 이러지?”

“왜요? 어디 또 아프세요?”

어머니가 서유림을 바라보았다. 눈빛에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가로저으셨다.

“아니, 그건 아니고…… 아무튼 다녀올게.”

도대체 다녀온다는 말씀을 몇 번을 하시는 건지.

서유림이 멀어져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소와 달리 걸음걸이가 안정적이고 힘차보였다. 괜히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어머니를 잘 부탁해, 블루야.’

그때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림아. 남은 설거지는 네가 좀 해라. 난 답답해서 산책 좀 하고 와야겠다.”

서유림이 피식 웃었다. 어머니를 위해서 모처럼 고무장갑을 끼신 것 같은데 역시 아버지께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녀오세요, 아버지.”

아버지도 그렇게 외출하셨다.

‘아리안. 부탁해!’

순식간에 설거지를 깔끔하게 마치고 그릇도 잘 정리했다.

이제 설거지 정도는 정령 아리안에게 온전히 맡겨도 체력소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설거지를 완전히 마쳐도 피곤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이제 나도 여유 좀 즐겨볼까?

오랜만에 거실에 앉아서 TV 전원을 켰다.

뭐 재미있는 것 없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연예계 소식을 전하는 프로그램에서 손이 멈추었다. 그곳에 반가운 얼굴이 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YJY였다.

서유림이 토너먼트를 통해서 생방송으로 데뷔시켜주자 단 하루 만에 중국에서 저토록 뜨겁게 타오른 것이다.

카메라가 팬들을 화면에 담아주는데 많은 여성팬들이 울고 있었다.

노래를 마친 YJY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눈물을 보니 괜히 서유림의 마음까지 울컥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 지가 짐작되었다.

사실 YJY는 이미 휘발유 먹은 마른 장작이었다. 동방신화 때부터 워낙에 인기가 좋았기 때문에 불씨만 만나면 언제든지 폭발적으로 타오를 준비가 되어있었다.

다만 한상민의 푸르름이 그 불씨를 차단하고 있었을 뿐이다.

‘근데 정말 뜨겁네. 도대체 몇 명이 모여든 거야?’

최소 5만 명은 넘는 것 같았다.

YJY 단독콘서트도 아니었다. 단지 YJY가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하루 만에 저토록 많은 관객이 모여든 것이다.

앞으로는 더하겠지.

아무리도 이번 토너먼트는 선수들을 위해서가 아닌 YJY의 복귀를 위해서 마련된 대회 같았다.

서유림이 흐뭇한 표정으로 YJY의 공연을 지켜보았다.

이벤트성으로 초청된 가수이기 때문에 앵콜곡까지 포함해서 세 곡만 부르고 무대를 내려가야 했다.

그런데 YJY가 무대를 내려가기 전 인터뷰에서 기특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건 모두 서유림 선수의 덕분입니다. 서유림 선수가 불이익을 무릅쓰고 저희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이런 방송복귀가 가능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서유림 선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러자 관중들이 함성을 질렀다. YJY를 연호하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 들어보니 YJY가 아닌 ‘서유림’을 연호하는 목소리도 얼핏 들려왔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틀림없이 ‘서유림’이라는 외침이었다.

이렇게 시끄러운 와중에 저런 소리가 들리다니.

그렇다면 한두 명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서유림이 피식 웃었다.

‘YJY 덕분에 내 인기까지 덤으로 올라갔군.’

조금 늦은 오후.

서유림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께서 재깍 전화를 받으셨다.

- 아들. 어쩐 일이야?

“마트 왔는데 드시고 싶은 것 있으세요?”

- 글쎄. 그렇지 않아도 뭐가 막 먹고 싶긴 한데……. 아들이 알아서 사와 봐.

와! 수능보다 더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정답은 알고 있다. 어머니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 잘 알고 있으니까.

지금은 뭘 사드려도 맛있으실 거다. 변화하는 몸을 감당하려면 맛보다는 영양소가, 질보다는 양이 더 중요하겠지.

“알겠어요. 아예 저녁거리를 제가 사갈 테니까 밥만 해놓으세요.”

- 고마워 아들.

서유림이 마트를 쭉 둘러보았다.

“오! 대게 할인행사 하네! 떡갈비도 맛있겠고, 오호! 등갈비도 할인행사 하고…….”

눈에 보이는 족족 카트에 담았다. 담고 보니 이 정도면 스무 명이 함께 먹어도 남을 정도의 양이었다.

하지만 식욕이 왕성한 사람이 무려 세 명이나 되었다. 부족한 것보다는 남는 게 낫겠지.

그리고 남으면 내일 먹어도 되잖아.

두툼한 음식물을 양손 가득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도중에 약국에 들러서 영양제도 듬뿍 샀다.

서유림은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어머니 상태부터 확인했다.

어머니는 청소를 하고 계셨다.

그런데 누가 봐도 움직임이 경쾌하셨다. 어제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마치 춤을 추듯 청소하셨다.

서유림의 얼굴에 가볍게 미소가 지어졌다.

‘블루가 잘하고 있군!’

어머니가 서유림을 발견하셨다.

“아들 왔어?”

그러다가 서유림의 양손을 보시고는 눈을 크게 뜨셨다.

“어머머! 뭘 이렇게 많이 샀어?”

“갑자기 오늘 먹고 싶은 게 많더라고요.”

“아들도 그랬어? 사실 나도 그랬는데. 어머, 어머! 나 이거 먹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았대? 역시 아들하고는 통하는 구석이 있다니까.”

“당연하죠. 아들인데. 그런데 어머니 오늘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글쎄다. 오늘따라 컨디션이 너무 좋네. 여기저기 결리고 쑤시던 증상도 사라지고. 별일이야.”

“언제부터요? 뭐 좋은 거라도 드셨나 봐요?”

“그런 거 없는데. 가만……. 그러고 보니 아들이 엄마 한번 안아준 후부터 그런 것 같네. 역시 엄마한테는 우리 아들이 보약이라니까.”

“하하, 어머니도 참. 그럼 한 번 더 안아드려야겠네.”

“아휴, 예쁘기도 해라.”

어머니가 백 번이라도 안아달라는 듯 고무장갑을 낀 채 팔을 벌리고 서유림에게 다가왔다.

서유림이 그런 어머니를 다시 살짝 안아드렸다.

어머니가 좋아서 못 견디겠다는 듯 서유림을 꼭 안고는 얼굴에 입맞춤까지 하셨다.

“아휴, 오늘 엄마 계 탔네.”

이런 게 그렇게까지 좋으실까? 어렸을 적 기억을 가만 떠올려보니 어머니는 틈만 나면 끌어안고 뽀뽀해주시려고 하셨다.

징그러울 정도로.

그래서 언제부턴가 거부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한 중학교 때쯤 부터였다.

어머니는 그 이후로도 욕심을 내셨지만, 서유림이 자꾸 도망 다니고 피하니 더는 시도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그게 갈증이 식어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토록 좋아하시는 걸 보면 그냥 꾹 참고 속으로만 삭이고 계셨던 모양이다.

부모님은 원래 이런 걸 좋아하시는 건가?

나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면 어머니처럼 행동하게 될까?

모르겠다.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서.

어쨌건 어머니께는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깟 포옹이나 뽀뽀 한번 해드리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도망만 다녔을까?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이제부터라도 조금은 갈증을 풀어드려야겠다.

서유림도 어머니를 꼭 안아드렸다.

“사랑해 아들!”

“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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